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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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두이 문화국장
[장두이 문화국장] 연극을 포함해 모든 영화, 드라마는 결국 연기하는 배우(俳優)가.....!
아무리 대본이 뛰어나고 연출 감독이 뛰어나도 결국 배우가 마지막을 담당하고 감당하는 것.
그래서 소위 ‘국민배우’란 명칭이나, 연극의 나라 영국에서 ‘SIR’ 라는 작위(爵位)를 헌정하는 것!
며칠 전 또 한 번 우리 연극을 보며, 배우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감지했다.
배우가 가져야 할 “지성, 인성, 감성, 영성”중 하나라도 구멍이 생기면 그건 채워지지 않는 법. 배우가 던지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화술(話術)과 신체 표현이 온 몸 구석구석 발현되지 않으면 그건 ‘배우(俳優)’가 아닌 것.
1979년과 1982년 그리고 1985년 연극 강국 프랑스 ‘빠리’와 ‘포아띠에’에서 연극을 하며, 난 불멸(不滅)의 프랑스 대배우 '장루이 바로오(Jean-Louis Barrault/1910~1994)'를 보고 전율하고, 지금도 내 맘 한 구석에 그를 흠모하는 분향소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
사진: 프랑스 배우 장루이 바로오(1)
세계 1차 대전 중, 약사였던 아버지가 사망.
21세에 본격적으로 연극에 입문, 방값을 내지 못할 정도의 빈한하고 고독한 삶을 극장에서 먹고 자며 연극과 함께 한 진정 연극인 ‘장루이 바로오’! 절대적으로 타고난 육체 표현의 감수성을 가진 ‘장루이 바로오’는 운명의 ‘Etienne Decroux’를 만나 연기의 첫 표현인 판토마임을 익히고 함께 공연을 만든다.
사진: 프랑스 배우 장루이 바로오(2)
이윽고 1942년에 프랑스 국립극단 격인,
'코메디 프랑세즈(Comedie Francaise)'에 입단,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프랑스 극작가 꼬르네이유의 르시드(Le Cid) 주인공을 맡아 일약 명배우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1946년 빠리에 있는 ‘Theatre Marigny’에 둥지를 틀고 연기와 연출을 겸하면서 프랑스 연극의 대들보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1959년부터 ‘Theatre de France’ 예술 감독으로 1990년까지 쉼 없이 일하며, 연극에 대한 저술 '(연극 고찰/Reflections on the Theatre)'을 또한 펴낸다.
사진: 프랑스 배우 장루이 바로오(3)
그는 배우로서 50편의 영화에도 출연, 매우 창의적이며 독창성을 가미한 탁월한 배우로 프랑스의 대표 배우로 각인되었다. 그 가운데 필자는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Macel Carne 감독의 <천국의 아이들/Les Enfants du Paradis>에 Deburau 역할을 맡아, 뛰어난 거리 마임이스트의 명연기를 잊지 못한다. 특히 그의 표정과 환상적인 그림을 마법처럼 그리는 듯 움직이는 손 졔스츄어와 무언(無言)의 움직임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현연기”의 결정(結晶)과 절정(絶頂)을 느끼게 해 줬다.
사진: 프랑스 배우 장루이 바로오(4)
지구상 뛰어난 대배우 중 한 사람인 그를, 필자는 1983년 빠리 ‘Peter Brook’ 극단에서 작업할 때, 그가 후원자 중의 한 사람인 걸 알았고, 마침내 연습장에서 감격적인 해후(邂逅)를 했던 만남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나의 연기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프랑스 판토마임의 대가(大家) ‘마르셀 마르소’와 버금가는 판토마임이스트 ‘장루이 바로오’는 동시에 배우가 갖춰야 하는 화술(話術)의 대가이기도 하다. 필자도 보았지만, 폭풍처럼 쏟아 붓는 대사는 프랑스어 특유의 음운론적인 리듬과 멜로디 패턴을 만들고, 더불어 그의 지적인 분석에 의한 캐릭터 변신은 늘 관객의 탄성을 불러일으켰다. 연기의 정석 그대로, “연기는 말과 신체표현의 불가분의 하모니다!”를 그대로 보여주는 배우의 롤모델이다.
사진: 프랑스 배우 장루이 바로오(5)
필자도 국내에서 공연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공연되는 프랑스 극작가 ‘유진 이오네스꼬’가 1960년 배우 장루이 바로오를 위해 ‘코뿔소’란 멋진 작품을 써서 헌정할 정도며, ‘조르주 페이도’, ‘새뮤엘 베케트’, ‘장 아누이’, ‘장 폴 싸르뜨르’ 등 프랑스의 대표적 작가들도 기꺼이 그에게 작품을 의뢰해, 자신이 관계한 극장 ‘Theatre Marigny’에서 연출과 연기를 병행하며 프랑스 연극의 부흥에 앞장서기도 했다.
특히 ‘장루이 바로오’는 1950년대부터 70년대 ‘오데옹’과 ‘나시옹’ 그리고 ‘오르세 극장’을 세우고 상임연출자로, 주연 배우로 맹활약을 이어갔다.
사진: 프랑스 배우 장루이 바로오(6)
국수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프랑스 고전작품뿐 아니라, 외국 연극과 동시대 프랑스 작가들의 현대작품들을 많이 올려, 평자나 관객들로 하여금, “장루이 바로오 연극은 믿고 보는 연극”으로 늘 성황(盛況)을 이루게 만든 것이다.
사진: 프랑스 배우 장루이 바로오(7)
장루이 바로오’는 배우로서 ‘아벨 강스’ 같은 훌륭한 연출자의 ‘베토벤의 위대한 사랑’에 ‘베토벤’ 역할을 크리스티앙 자크의 ‘왕관의 진주’란 작품에선 ‘나폴레옹’, 막스 오필스 연출 작 ‘라론데’에서 시인(詩人) ‘쿨렌캄프’를 그리고 안드레 후네벨 작품에선 ‘루이11세’ 등을 연기했다.
사진: 프랑스 배우 장루이 바로오(8)
필자는 지금도 연극 현장에서 작업을 할 때, 후학들에게 표본이 될 수 있는 연극과 그런 연극을 창조하는 데, 큰 일조를 한 배우의 예(例)를 소개하는 데,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배우 가운데 늘 ‘장루이 바로오’를 나의 명품배우 리스트 다섯 번째 안에 드는 배우로 소개한다.
사진: 프랑스 배우 장루이 바로오(9)
필자가 시대의 행운을 입어, 전설의 대배우 ‘장루이 바로오’를 직접 보고 연기를 볼 수 있음에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세월이 흘러도 그 귀한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아, 난 아들에게 ‘장루이’란 이름을 명명해줬고 그래서 지금도 아들 루이를 부를 때 마다, 배우 ‘장루이 바로오’를 떠올리며 나의 <연기의 정석 확장>을 애써 이어본다.
사진: 프랑스 배우 장루이 바로오(10)
안타깝게도 심장마비로 1994년 1월 22일 빠리에서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장루이 바로오’는 프랑스 연극 뿐 아니라, 전 세계 연극을 위해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사랑하는 부인 배우 마들렌 옆에 영면(永眠)했다.
사진: 프랑스 배우 장루이 바로오(11)
아마도 ‘바로오’는 천국에서 지금도 {천국의 아이들}과 함께 소담하고 겸허하게 지은 ‘천궁소극장(天宮小劇場)’을 세워, 천직(天職)으로 멋진 <명품연극> 공연을 이어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천국에서도 그는 명품연극의 명품배우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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