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종로구 필 운 동 사직 공원 옆에 살 때 만난 장 여사는 한국 일보 여기자 이었다. 학식도 외모도 실력도 대단한 그녀는, 남편은 빨갱이들한테 총 맞아 죽고 아들 하나 데리고 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가장 친한 친구도 역시 아들 하나 데리고 밤중에 산 넘고 물 건너 걸어서 두 여인은 남쪽으로 온 것이다.
평양 여고를 졸업한 두 여자의 일생을 지켜보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본다.
장 여사는 한국 일보의 유명한 기자로 활동하면서 아들을 경기 중 경기고 서울 법대 수석 졸업 그리고 미국으로 가서 나사 미 항공 우주 국에 취직 후 계속 공부 하바드 대 교수 등 공부 벌레로 성공했다.
장 여사와 만남 후 자주 아들 자랑과 편지를 보여주고... 지금부터 35 년 전 이야기다.
서울 대학 시절 아들 뒷바라지 하는 재미로 살고 아들 자랑 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근데 미국으로 건너간 후 편지만 올 뿐 가끔 국제 전화 얼굴은 도통 볼 수가 없었다.
너무 바쁘니 오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의 글이 편지에 적혀 있었고 장 여사도 이 곳 신문사 일이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휴가 때 미국에 아들 보고 싶어 미국에 갔는데 아들은 만나 주지를 않았다. 여기 저기 강의 강연 스케쥴 때문에 엄마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것은 성공한 아들 아니냐며 아들은 분명 엄마가 원하는 성공한 아들이 되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시라는 거였다.
울면서 비행기 타고 한국에 왔다. 생일날 이면 어김없이 20 불 카네이션을 주변 꽃 집 에서 사서 달고 다니라고 보내온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결혼식 했 노 라고 사진과 편지를 보내왔다.
워낙 바빠서 그냥 둘 이 동거를 하기 위해서 간단히 사진만 찍는 결혼식 했 노 라고 이해해 달라고 했다.
노랑 머리 파란 눈 며느리 사진으로 보고 내 앞에서 엉엉 운다 성공한 내 아들 하며 슬 피 운다. 엄마 재산은 전혀 필요 없으니 사회 단체에 기부 부탁한다고 써 있었다.
한국에 올 시간이 전혀 없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미국 간 날 마지막 얼굴 본 아들 10년이 흐르고 또 10년이 흐르고
장 여사 친구는 평양에서 오자마자 남대문시장 순대 국 집 주방에 취직했다. 아들 때문에 취직이 불가 했으나 순대 국 집 주인은 받아 주었다.
해서 열심히 일했고 아들은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식당 근처에서 남대문시장에서 뛰어 놀고 6 년 후 순대 국 집 주인이 죽고 그동안 모은 돈 사채 일 수돈 빌려 순대 국 집을 인수했다.
24시간 영업 남대문 시장 순대 국 집 골목 나란히 여러 개 있는 집 들 중 가장 열심히 장사를 했다. 아들이 도와주고 효자 아들은 비록 국민학교도 안 가 보았지만 아침마다 엄마를 업고 재롱을 부린다. 18살에 시골에서 올라와 식당에서 일하는 2살 많은 여 종업원과 결혼식을 올렸다.
아들 셋 딸 하나 웃음 꽃으로 시작하는 그 집은 돈 버는 걸 20 년 전 부 터 강남에 땅을 사두었다.
무식하니까 여기 저기 미사 리 오 금 동 천 호 동 땅을 사두었다. 조금씩 그걸 모두 팔아 테헤란 로 에 34층 건물을 사고 삼성 동에도 건물을 샀다. 두 여인은 가끔 만난다.
근데 이제 장 여사도 연락이 두절 되었다. 서울대 하바드 대 교수 그리고 국민학교가 뭔가요? 순대 국 집 주인 아들 누구의 삶이 잘 사는 건가요? 깊이 깊이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받은 글/청 목 어느 것이 정답일까(실화)?
내가 종로구 필 운 동 사직 공원 옆에 살 때 만난 장 여사는 한국 일보 여기자 이었다. 학식도 외모도 실력도 대단한 그녀는, 남편은 빨갱이들한테 총 맞아 죽고 아들 하나 데리고 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가장 친한 친구도 역시 아들 하나 데리고 밤중에 산 넘고 물 건너 걸어서 두 여인은 남쪽으로 온 것이다.
평양 여고를 졸업한 두 여자의 일생을 지켜보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본다.
장 여사는 한국 일보의 유명한 기자로 활동하면서 아들을 경기 중 경기고 서울 법대 수석 졸업 그리고 미국으로 가서 나사 미 항공 우주 국에 취직 후 계속 공부 하바드 대 교수 등 공부 벌레로 성공했다.
장 여사와 만남 후 자주 아들 자랑과 편지를 보여주고... 지금부터 35 년 전 이야기다.
서울 대학 시절 아들 뒷바라지 하는 재미로 살고 아들 자랑 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근데 미국으로 건너간 후 편지만 올 뿐 가끔 국제 전화 얼굴은 도통 볼 수가 없었다.
너무 바쁘니 오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의 글이 편지에 적혀 있었고 장 여사도 이 곳 신문사 일이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휴가 때 미국에 아들 보고 싶어 미국에 갔는데 아들은 만나 주지를 않았다. 여기 저기 강의 강연 스케쥴 때문에 엄마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것은 성공한 아들 아니냐며 아들은 분명 엄마가 원하는 성공한 아들이 되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시라는 거였다.
울면서 비행기 타고 한국에 왔다. 생일날 이면 어김없이 20 불 카네이션을 주변 꽃 집 에서 사서 달고 다니라고 보내온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결혼식 했 노 라고 사진과 편지를 보내왔다.
워낙 바빠서 그냥 둘 이 동거를 하기 위해서 간단히 사진만 찍는 결혼식 했 노 라고 이해해 달라고 했다.
노랑 머리 파란 눈 며느리 사진으로 보고 내 앞에서 엉엉 운다 성공한 내 아들 하며 슬 피 운다. 엄마 재산은 전혀 필요 없으니 사회 단체에 기부 부탁한다고 써 있었다.
한국에 올 시간이 전혀 없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미국 간 날 마지막 얼굴 본 아들 10년이 흐르고 또 10년이 흐르고
장 여사 친구는 평양에서 오자마자 남대문시장 순대 국 집 주방에 취직했다. 아들 때문에 취직이 불가 했으나 순대 국 집 주인은 받아 주었다.
해서 열심히 일했고 아들은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식당 근처에서 남대문시장에서 뛰어 놀고 6 년 후 순대 국 집 주인이 죽고 그동안 모은 돈 사채 일 수돈 빌려 순대 국 집을 인수했다.
24시간 영업 남대문 시장 순대 국 집 골목 나란히 여러 개 있는 집 들 중 가장 열심히 장사를 했다. 아들이 도와주고 효자 아들은 비록 국민학교도 안 가 보았지만 아침마다 엄마를 업고 재롱을 부린다. 18살에 시골에서 올라와 식당에서 일하는 2살 많은 여 종업원과 결혼식을 올렸다.
아들 셋 딸 하나 웃음 꽃으로 시작하는 그 집은 돈 버는 걸 20 년 전 부 터 강남에 땅을 사두었다.
무식하니까 여기 저기 미사 리 오 금 동 천 호 동 땅을 사두었다. 조금씩 그걸 모두 팔아 테헤란 로 에 34층 건물을 사고 삼성 동에도 건물을 샀다. 두 여인은 가끔 만난다.
근데 이제 장 여사도 연락이 두절 되었다. 서울대 하바드 대 교수 그리고 국민학교가 뭔가요? 순대 국 집 주인 아들 누구의 삶이 잘 사는 건가요? 깊이 깊이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받은 글/청 목 어느 것이 정답일까(실화)?
내가 종로구 필 운 동 사직 공원 옆에 살 때 만난 장 여사는 한국 일보 여기자 이었다. 학식도 외모도 실력도 대단한 그녀는, 남편은 빨갱이들한테 총 맞아 죽고 아들 하나 데리고 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가장 친한 친구도 역시 아들 하나 데리고 밤중에 산 넘고 물 건너 걸어서 두 여인은 남쪽으로 온 것이다.
평양 여고를 졸업한 두 여자의 일생을 지켜보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본다.
장 여사는 한국 일보의 유명한 기자로 활동하면서 아들을 경기 중 경기고 서울 법대 수석 졸업 그리고 미국으로 가서 나사 미 항공 우주 국에 취직 후 계속 공부 하바드 대 교수 등 공부 벌레로 성공했다.
장 여사와 만남 후 자주 아들 자랑과 편지를 보여주고... 지금부터 35 년 전 이야기다.
서울 대학 시절 아들 뒷바라지 하는 재미로 살고 아들 자랑 하는 재미로 살았는데 근데 미국으로 건너간 후 편지만 올 뿐 가끔 국제 전화 얼굴은 도통 볼 수가 없었다.
너무 바쁘니 오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의 글이 편지에 적혀 있었고 장 여사도 이 곳 신문사 일이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휴가 때 미국에 아들 보고 싶어 미국에 갔는데 아들은 만나 주지를 않았다. 여기 저기 강의 강연 스케쥴 때문에 엄마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것은 성공한 아들 아니냐며 아들은 분명 엄마가 원하는 성공한 아들이 되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시라는 거였다.
울면서 비행기 타고 한국에 왔다. 생일날 이면 어김없이 20 불 카네이션을 주변 꽃 집 에서 사서 달고 다니라고 보내온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결혼식 했 노 라고 사진과 편지를 보내왔다.
워낙 바빠서 그냥 둘 이 동거를 하기 위해서 간단히 사진만 찍는 결혼식 했 노 라고 이해해 달라고 했다.
노랑 머리 파란 눈 며느리 사진으로 보고 내 앞에서 엉엉 운다 성공한 내 아들 하며 슬 피 운다. 엄마 재산은 전혀 필요 없으니 사회 단체에 기부 부탁한다고 써 있었다.
한국에 올 시간이 전혀 없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미국 간 날 마지막 얼굴 본 아들 10년이 흐르고 또 10년이 흐르고
장 여사 친구는 평양에서 오자마자 남대문시장 순대 국 집 주방에 취직했다. 아들 때문에 취직이 불가 했으나 순대 국 집 주인은 받아 주었다.
해서 열심히 일했고 아들은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식당 근처에서 남대문시장에서 뛰어 놀고 6 년 후 순대 국 집 주인이 죽고 그동안 모은 돈 사채 일 수돈 빌려 순대 국 집을 인수했다.
24시간 영업 남대문 시장 순대 국 집 골목 나란히 여러 개 있는 집 들 중 가장 열심히 장사를 했다. 아들이 도와주고 효자 아들은 비록 국민학교도 안 가 보았지만 아침마다 엄마를 업고 재롱을 부린다. 18살에 시골에서 올라와 식당에서 일하는 2살 많은 여 종업원과 결혼식을 올렸다.
아들 셋 딸 하나 웃음 꽃으로 시작하는 그 집은 돈 버는 걸 20 년 전 부 터 강남에 땅을 사두었다.
무식하니까 여기 저기 미사 리 오 금 동 천 호 동 땅을 사두었다. 조금씩 그걸 모두 팔아 테헤란 로 에 34층 건물을 사고 삼성 동에도 건물을 샀다. 두 여인은 가끔 만난다.
근데 이제 장 여사도 연락이 두절 되었다. 서울대 하바드 대 교수 그리고 국민학교가 뭔가요? 순대 국 집 주인 아들 누구의 삶이 잘 사는 건가요? 깊이 깊이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받은 글/청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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