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말
[낯설다, 새롭다, 음, 좋다.]
이영숙
시인ㆍ문학평론가
노을과 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거늘
그것이 이리 좋아서 눈이 물렁해질 때까지 겨워하였다
―박지웅, 「별에서 자꾸 석류향이 났다」에서
이 글이 「추천의 말」보다는 조금 딱딱하고, 「작품 해설」보다는 조금 말랑한 질감을 지녔으면 한다. ‘구성―문법―장르’라는 건조한 키워드 안에 정갈하고 다정하고 밀도 높은 문장들이 차고 넘쳤으면.
구성
전체적인 내러티브의 흐름을 스토리라 했을 때, 『지수』는 지수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거쳐 연애와 결혼에 이어 육아 중인 현재까지의 시간을 순행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모든 삶의 보편적 요소인 갈등과 고뇌 역시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화해와 해결의 국면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의 플롯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 스토리를 구성하는 구체적 사건의 의도적 배치는 구본순 작가가 플롯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1장 「지수의 풍경」은 짧은 에피소드를 징검다리 삼아 징검징검 건너뛴다. 더욱 과감한 압축도 있다.
그렇게 16년이 지나고,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2장 「지수의 연애」와 3장 「케냐의 선물」은 이 문장 안의 ‘16년’에 수렴된다. 그리고 4장 「파? 파!」의 전반부는 ‘결혼’ 후 ‘아이를 낳’기 전의 임신 정황을, 후반부부터 5장 「몇 걸음만 더 가자」와 6장 「코다 가족입니다」는 ‘아이를 낳’은 후의 정황을 그려낸다.
우선 1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2장부터 4장의 전반부까지의 역류성 완급장치를 저 한 문장 속에 매설함으로써 평평할 수 있는 스토리를 플롯으로 구조화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지수』의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1장을 지배하는 중심축은 지수의 삶이 아니라 동생 지영의 죽음이라는 점이다. 자신이 일정 부분 원인 제공을 했다는 부채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지영을 그리워하는 엄마에 대한 소외감 역시 누적된 지수는, 친정에서 산후조리하면서 감정적 폭발과 해소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고, 마치 화해 의식을 치르듯 엄마와 함께 20여 년 전 지영의 뼛가루를 흘려보낸 강을 찾는다. 이 부채감은 스스로 강제한 선행처럼 지수를 “지영이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딸로 지내려고 노력하며 살”게 했지만, 이 화해를 통해 지수는 어디 얽매이는 데 없이 자유로워져 비로소 독립된 한 인격체로 거듭난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따라가며 그의 연애와 결혼, 육아에 대한 선택들에 신뢰의 눈길을 보내면서도 우리는 자주 1장으로 되돌아가 그 선택의 최초 동기가 무엇이었나를 새삼 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이 와중에 엘피판에 바늘 튀듯 맥락적으로 3장은 조금 튄다. 인솔 교사인 지수가 학생들과 함께 3주 동안 선교 활동을 한 케냐는 마치 무균실 같은 느낌을 주는 시공간으로, 가족이나 준호 등 한국에서의 현실적 삶이라는 고리와 전혀 연계되지 않는다. “왜 서울에서는 이렇게 벅찬 하루를 맞이하지 못했을까?” 혹은 “왜일까? 지수는 자신도 물을 마시면서 ‘마실 물이 있어 감사하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와 같은 자각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3장은 지수가 ‘행복은 풍부하게 소유하는 게 아니고, 풍요롭게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법정스님의 전언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문득 유의미해진다. 내적 풍요가 외적 에너지로 발현되는 일이 그녀 삶에서 더욱 잦아졌을 것이므로.
문법
최근 새로움이란 측면에서 인류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었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출현만큼 강렬한 게 또 있을까. 코로나19는 인간의 삶은 물론 의식의 지형까지 거세게 훑고 지나가면서 인류사에 원래대로 환원될 수 없는 상흔을 남겼고, 잠재적 폭발력을 지닌 채 현재도 진행 중이다. 돌이켜보면 국민의 다수가 매일 시청하던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 정규 브리핑의 긴장감은 사망자ㆍ확진자 추이가 큰 요인이었지만, 브리핑 당사자 곁에서 온몸으로 연기하는 것 같은 수어 통역사의 역할도 한몫했다. 간간이 뉴스 화면 귀퉁이의 원 안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화면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은 한편으로 코로나19와는 다른 형태의 신선한 새로움이었다. 자연스레 수어 통역사들을 필요로 하는 이들, 곧 언어 소수자인 농인(청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는 계기가 되었다.
몇 해 전 영화 <도가니>(2011)에는 청인 교사와 함께 청각과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농아(聾啞) 어린이들이 주인공으로 다뤄졌고, 최근 한국 드라마 최초로 코다(CODA,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소재화했다고 표방한 <반짝이는 워터멜론>(2023)에는 코다 소년 은결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영상물의 특성 때문이겠지만 두 편에 등장하는 수어에 대한 자막 번역은 청인들 간의 대화처럼 완벽한 문장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조사와 접속사, 존대어가 없는 한국수어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문법으로, 『지수』에 표현된 수어 문법과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난다.
① [사람들, 나, 농인, 착각, 아마] → “사람들이 아마 나를 농인으로 착각할 거 같아요”
② [놀다, 남이섬, 가다] → “우리 남이섬 놀러 가자”
③ [둘, 놀다, 오다.] → “둘이 놀러 갔다 와”
④ [아빠, 저기, 소리, 있다] → “아빠, 저기서 소리가 들려”
앞의 [ ] 속 언어가 수어 체계고, 화살표 뒤의 언어가 구어 체계다. “한국수어는 단어(수지기호)가 아닌 문법(비수지기호)으로 존대와 조사의 의미를 구현한다. 그러니 한국어가 제1언어가 아닌 농인 입장에서는 이 메시지를 청인의 입맛에 맞게 구사하기가 쉽지 않다.”(김유미, 『영혼에 닿은 언어』) 그런데 영상물에서는 농인과 청인 간에 너무도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되는 것처럼 그려져 수어 사용의 어려움이 간과되거나 농인의 정체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수어가 가진 매력적인 요소들이 간과될 여지도 있다. ①~③에서 보듯 수어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은 명징하고, 단어와 단어는 표정과 동작으로 이어진다. 이는 말할 때 구강과 성대를 주로 사용하는 청인과 달리 온몸을 사용하는 농인만의 풍부한 언어 세계다. ④는 청인인 연우가 농인인 아빠에게 하는 수어인데, 이때 [소리]는 [있다]라는 시각적 언어로 바뀐다. [비, 오다]라고 하지 않고 [비, 있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수어는 일상언어의 중의적 의미나 은유적 표현을 배제해야 정확한 의사 전달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시의 근원적 풍요로움을 회복해야 하는 시인의 숙명처럼 수어에서 ‘소리’나 ‘비’는 태초 자신에게 주어진 아날로지의 위상을 회복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수어 문법은 『지수』를 통해 아방가르드적으로 문학에 진입하였다. 농인의 사전적 의미는 ‘귀에 이상이 있어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문화적 개념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이다. [소리, 있다]와 같은 표현의 낯섦을 수어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수어 번역의 유창한 구어화 때문에 놓친다는 것은 문학적 손실이 되지 않을까. 수어가 품고 있는 미지를 담은 『지수』로 인해 2023년은 수어가 문학의 외연을 넓힌 사건 원년으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장르
치명적 도약이 없으면 연애도, 결혼도 없다. 자주 ‘그렇게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종결되는 동화 속 그 숱한 연애와 결혼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로 도약할 때 문득 성사된다. 사람이 마법에 걸려 개구리가 되었다가 사랑의 힘으로 다시 사람이 되는 현상 따위가 그 한 예다. 소설에도 연애와 결혼이 있지만, 행복보다 파국이 더 많고 동화보다 현실적이다. 그러나 지수는 준호에게 두 번의 “뒤통수를 맞”고 사랑에 빠진다.
① 어느 날, 준호는 지수에게 왜 통역사가 되고 싶은지 물었다.
[지수, 수어, 배우다, 왜?]
[농인, 돕다, 봉사, 원하다.]
[그러면, 영어, 배우다, 왜?]
[영어? 여행, 원하다, 외국, 사람, 대화, 자유, 하다.]
[수어, 영어, 같다, 언어, 그런데, 수어, 돕다, 영어, 대화, 이상, 수어, 농인, 대화, 하다, 위해서, 배우다, 좋다.]
지수는 준호의 말에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지수는 수어를 소통을 위한 평등한 도구가 아닌 시혜의 수단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농인을 알아 가고 싶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도와줘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던 자신이 우스웠다. (중략) 지수의 눈에 준호가 다시 보였다.
② 준호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무대에 서 있는 배우들처럼 둘에게만 조명이 비추는 것 같은 신비로움을 느꼈다. 수어는 지수와 준호를 하나로 엮어주고 있었다. (중략)
[나, 농인, 자존감, 있어.]
[농인, 자존감? 무슨 뜻?]
지수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어 되물었다.
[농인, 때문에, 창피하다, 없다. 농인, 자랑스럽다]
지수는 준호의 말에 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준호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했다. 그런 준호가 멋져 보였다. 지수는 문득 스스로가 작게 느껴졌다. 자신감 있는 그의 모습을 닮고 싶었다.
청인인 지수와 농인인 준호의 관계에서 ‘그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사람은 늘 지수다. 준호의 높이로 도약하면서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 지수는 옛 동화 속 주인공처럼 우아하고, 현대 동화 속 주인공처럼 독립적이다. 그리하여 『지수』는 성장동화로도 읽힌다.
① 아빠가 중학생일 때 인공와우 수술을 하고 보청기를 사용했었대. 그런데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커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대. (중략) 우리도 갑자기 쾅쾅하는 큰 소리를 계속 듣게 되면 귀가 아프겠지? 그래서 아빠는 보청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대.
② 지수는 농인을 위한 자막이 있는 공연은 봤지만 수어 통역사들이 함께하는 공연은 처음이었다. 수어로 뮤지컬을 할 수 있다니. 말에 멜로디가 붙어 노래가 되듯 말에 수어가 붙으니 춤이 되고 몸으로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악보에서 음표들이 춤을 추듯 손끝에서 수어의 선율이 피어났다. (중략) 지수는 무대가 끝난 후에도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중략)
“연우야, 봤어? 엄청 멋지지.”
그러자 연우가 수어로 말했다.
[엄마, 수어, 대화, 말, (엑스), 아빠, 궁금하다.] (중략)
[아빠, 춤, 같다. 나, 수어, 배우다, 원하다.]
연우가 더듬더듬 수어를 했다. 지수는 이때 연우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수어, 말, 정말, 아름답다.]
준호는 자신의 언어가 자랑스러웠다.
소리의 세계로 진입하려는 노력을 거부하고 침묵의 세계를 자발적으로 선택한 준호의 도약(①)은 그에게 삶의 어떤 국면에도 위축되지 않는 자존감의 표상이 된다. 성장기의 정체성 확립을 통해 그는 자기 생의 주인이 되었고, 자신을 존중하는 만큼 다른 이들도 준호를 존중하게 만든다. 지수가 그랬던 것처럼.
연우 역시 농인인 아빠를 내심 부끄러워하던 자신으로부터 도약한다(②). 수어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교감을 통해 연우는 어둠이 될 수도 있었던 침묵의 세계를 빛의 세계로 받아들인 것이다. 준호가 그랬던 것처럼.
동화에세이는 <출판사 핌>이 ‘발명’한 새로운 문학 장르가 아닐까 싶은데, 이미 발간된 『어쩌면 너의 이야기』와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쉽게 말하지』에 이은 『지수』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자신의 개별적 삶을 동화 형식으로 구현했다는 점이다. 이 책들은 유년의 잃어버린 꿈, 상처 입은 자아나 성장의 단면들이 현실 속에서 도약한 결과물이다. 앞의 두 권이 생의 단면에 관한 동화적 성찰이라면, 『지수』에선 생이 전면적으로 펼쳐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저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거늘” 그 무엇이 “이리 좋아서 눈이 물렁해질 때까지 겨워”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지수』의 주인공들은 ‘그 무엇’을 겹게 살아냈고, 또한 현재도 살아내고 있다. 자아를 갱신해 나가는 성장통의 동화적 성찰이 [낯설다, 새롭다, 음, 좋다.]
―구본순, 『지수』(추천의 말), 출판사 핌,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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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순 | 장애문화예술교육단체 풍경놀이터의 대표다.
수어통역을 하며 농인들을 위한 문화예술 교육을 기획 · 지도한다.
공저로 동화에세이 『어쩌면 너의 이야기』가 있으며,
소리샘청각학습지원센터 청각학습연구회 연구진으로
수어 교재 『신나는 수어 놀이터』 집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