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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6일 성령강림절 후 일곱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29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고후4:5-12절(신290)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승리의 사람들
우리는 주님에 의해서 세상에 뿌려진 천국 복음의 사람, 제2의 복음서입니다(마13장). 세상은 우리를 통한 천국 복음을 보고 읽을 것입니다. 이는 주님이 복음(새 언약)대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복음의 열매(천국의 복)를 맺으시기 때문입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복음대로 될 것을 믿으시고,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든 상황에서 항상 이기는 승리의 사람들입니다. 이는 우리가 복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고후4:5-12)을 통하여 이것을 확인하며, 우리의 복음이 보장하는 승리를 항상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승리를 보장하는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5절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우리)이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전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을 직접 전하였을까요? 아마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를 전파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기 이익을 위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2:17절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또한, 2절입니다. “이는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복음)을 혼잡하게 한다’는 것은 장사꾼같이 자기 이익을 위하여 복음에 더하거나 빼거나 하여 다른 복음으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사람이 바울 당시에 많이 있었다면(2:17), 오늘에도 많이 있을 것이므로 잘 분별하여야 합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무엇입니까?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을 통하여 ‘우리(만물)의 주’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그의 부활)에 대한 바울의 해석(적용)은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우리의 주가 되신다면, 우리는 그의 종(소유)입니다. 당시에 ‘종’은 자신을 위하여 사는 존재가 아니라, 그의 주인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죄 사함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게 하는 그의 부활(그의 주가 되심)이 바울이 전한 바른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복음을 진실로 알고 믿는다면, 우리는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롬14:7-9절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이것(자기를 위하여 살 수 없고 주를 위하여 사는 것)에 대하여 복음을 믿는 우리 중에서 예외가 없습니다(롬14:7). 이것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복음)의 목적(열매)이기 때문입니다(롬14:9).
성도 여러분, 이렇게 산다면, 치열한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요? 전도사 시절에 이것에 대하여 고민한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마 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살 수 있다, 그것도 항상 승리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렇게 사셔서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이 속량(값을 주고 물건을 사는 것)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죄와 마귀와 저주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하사 자신의 소유로 삼았고, 부활을 통하여 우리의 주, 즉 우리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주(남편, 목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과연 그럴까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다시 확인하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하나님의 재창조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6절입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여기서 ‘빛이 비치라’(창1:3)에서 ‘빛’은 햇빛(창1:14)이 아니라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는 생명(생기)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이 존재하며 행하시는 방식, 즉 ‘영광’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은 그 안에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곧 ‘예수 그리스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영광(4)은 하나님의 영광(6)이며,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4), 하나님의 아들입니다(1:19).
이것(6)은 창조주 하나님이 복음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언약적 연합, 일치) 빛(생명)을 우리 마음에 재창조하셨다. 즉 성령을 통하여 복음으로 우리를 중생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창1장)같이 복음도 그 복음대로 우리에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재창조 말씀입니다. 복음은 첫 장조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욱 크고 놀라운 말씀입니다. 첫 창조는 창조 언약의 조건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질그릇’(7)과 같이 깨어질 수 있었지만,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재창조는 첫 창조의 완성으로서 더욱 영광스러우며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를 대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율법) 언약의 조건을 십자가 죽음으로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재창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천지가 흔들려도 우리에게 복음대로 완성될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재창조 결과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7a)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질그릇’은 세월이 지나는 동안 사용됨에 따라 마모되고 금이 가고 깨어져서 결국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질그릇’은 빠르게 흘러가는 세월에 여러 고난을 만나고 점점 늙어가고 병들고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연약한 우리’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이 보배’는 앞(6)에서 말한‘복음으로 재창조된 하나님 생명의 빛’(6), 즉 ‘하나님을 알게 하는 복음’(요17:3)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통한 하나님의 재창조 결과로 질그릇같이 연약한 우리는 우리 안에 ‘이 보배(생명의 복음)’를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7b절입니다.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질그릇으로서 고난과 죽음의 경험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 존재하거나 살 수 없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생명과 자원)으로 살아가는 피조물이다, 즉 오직 하나님을 의지해서 믿음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도록 하는 것이 복음의 계시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이 보배(복음)는 처음 듣고 회개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받을 때뿐만 아니라 성화 구원과 영화 구원을 향하여 가는 동안에, 아니 영원히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하여 성령으로 우리에게 승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다 알았으니, 이제 더 확고한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떠나서는 어떤 승리도 열매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이것(질그릇 안에 있는 이 보배)을 자신의 고난과 승리의 경험을 통하여 설명합니다. 8-9절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여기서 ‘사방으로(엔 판타)’, 즉 ‘모든 면에서’는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면에서 네 가지 고난의 예를 듭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연약한 ‘질그릇’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난에도 연약한 질그릇이 절대로 깨어지지 않는 것은 이 보배(복음)의 능력, 즉 하나님에게서 그 능력이 나왔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고난을 통한 승리의 경험으로 우리 안에 있는 복음을 계속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제자훈련(성화 구원)입니다.
이제 바울은 선교(목회) 신학적으로 ‘질그릇 안에 있는 이 보배’(7)를 설명합니다. 10절입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8-9절에서 ‘모든 면에서(엔 판티),’ 여기서는 ‘항상(판토테)‘으로 표현하여 복음으로 재창조된 우리(천국 백성)에게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실제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에게 고난을 피할 길을 찾으라고 권하지 않고,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복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앞에서 고난의 경험(8-9)을 ‘예수의 죽음,’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골1:24)으로 표현합니다. 이는 주 예수의 복음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소유(종), 즉 그와 하나(연합, 일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입니다(골1:24). 그것도 주님으로 예수님이 책임지시는 고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우리의 고난)을 연약한 우리 몸에 짊어지는 목적은 그 고난 자체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 목적은 그 고난을 통하여 예수의 (부활) 생명이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롬6:4-5절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성도 여러분, 이것이 ‘질그릇 안에 있는 이 보배’(7) 즉 복음의 진리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위해서 주님이 살아 있는 우리를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고난)에 넘기시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11절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넘겨짐’은 신적 수동태입니다.
이것이 고난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것이 의인인 우리가 계속 고난과 죽음을 경험하는 이유요, 모든 사람이 고통 속에서 땀의 수고하고 병들며 죽어가는 이유입니다(창3장). 그 이유는 우리 죽을 육체에 예수의 부활 생명이 나타나게 하여 우리가 승리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13-14절입니다.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성도 여러분, 우리의 복음(질그릇 안에 있는 이 보배)은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이 주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은 우리에게 최종적이며 영원한 승리를 보장합니다. 이 최종적이며 영원한 승리를 보장하는 복음을 확실히 믿으시고, 믿음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연약한 우리가 주님과 함께 마귀와 죄의 유혹, 여러 고난과 질병을 항상 이기게 하고, 마침내는 사망까지도 이기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나님 앞에 영원히 서게 하는 것이 우리의 복음입니다. 이는 우리를 대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율법) 언약을 그의 십자가 죽음으로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울과 같이 이 승리의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환경과 고난에 대하여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결론적으로 우리 복음(질그릇 안에 있는 이 보배)의 선교(목회)적 열매를 설명합니다. 12절입니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이것이 예수님 자신이 보여주신 복음 사역의 원리입니다. 이처럼 복음의 사역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예수의 죽음)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열매를 맺는 하나님이 정하신 원리입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의 원리입니다. 요12:24-25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그렇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통하여 재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우리)이 살아가는 원리입니다(요12:25). 즉 우리는 복음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든 환경에서 승리하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의 사람, 즉 복음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피할 수 없는 고난들을 통한 복음의 승리를 경험을 통하여 복음을 계속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복음)대로 될 것입니다. 이것에 믿음의 선한 싸움의 열매인 승리를 누리시길 바랍니다.
찬송 336장을 부르신 후에 다같이 기도하시고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