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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성령과 지혜로 충만의 달☜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잠10:1-16절) 자식 농사의 중요성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꽃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꽃은 벗 꽃처럼 나무에 피는 것도 있지만, 코스모스나 국화처럼 나무가 아닌 줄기 위에 피는 꽃들도 있습니다. 특히 여인들은 꽃과 함께 있으면, 더욱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에 꽃을 특히 좋아해서 집 안에 꽃꽂이를 하기도 하고, 꽃을 선물로 주고받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많은 말들이 있고, 일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지혜의 말입니다. 사람들은 지혜를 찾아서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지혜를 찾아서 유명한 선생을 찾아가 배우기도 합니다. 혹은 지혜를 찾아서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찾아보기 드문 하나님의 지혜만을 모아서 꽃다발처럼 모아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잠언 10장-24장 사이에 나오는 지혜 모음집입니다. 잠언 앞부분 즉 잠언 1장-9장까지는 지혜의 초청이 나옵니다.
성경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미련하여 멸망의 길을 고집스럽게 가고 있다는 것을 전제(前提)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고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지혜의 가르침을 받아서 바른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축복(祝福)은 그들에게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널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치명적인 문제는 너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흔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가치를 모르고, 세상의 지혜를 따라가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앞부분에서 솔로몬은 지혜와 어리석은 음녀(淫女)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즉 어리석은 음녀(淫女)란 자기 스스로는 똑똑한 체하지만, 결국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절대로 앞을 향해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것은 마치 늪에 빠진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바른 말씀을 붙잡고 이 욕망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살펴보려고 하는 잠언10장-24장 사이의 내용은 지혜 모음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중에서 꽃에 해당하는 부분을 모아서 꽃다발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세상의 지혜와도 비슷한 내용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꽃 저 꽃을 가지고 꽃다발을 만들다 보면, 하나님의 지혜나 세상 지혜나 비슷비슷한 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뿌리나 줄기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잠언 10장-24장의 내용을 *무질서한 혼동*이라고 말하면서 이 안에는 일관된 질서나 논리성 없이 제멋대로 묶여져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하나님의 지혜의 하이라이트들만 모아놓았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구조는 없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부분이 결코 무질서한 모음집은 아닙니다. 특히 이 부분에서 저자가 많이 쓰고 있는 부분은 대구법(對句法)이라는 수사법(修辭法)입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비교해서 말함으로써 좋은 것을 더 돋보이게 합니다. 즉 저자는 의인의 길은 이러이러한데, 악인의 길은 저렇다는 식으로 표현해서 의인의 길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혹은 같은 것을 이중 삼중으로 나열해서 더욱 설명하거나, 강조하는 표현 방법도 쓰고 있습니다. 즉 의인의 길은 이런데, 또 이렇기도 하다며, 의인의 길을 더욱 설명하거나, 진전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지혜의 모음집에서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흔히 쓸 수 있었던 구분, 세 대지나 네 대지로 묶기는 좀 곤란한 경우를 만나게 됩니다. 즉 이 지혜의 모음집은 한 절 한 절이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억지로 몇 개의 대지로 묶어버렸을 때, 그 가치가 손상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지혜의 모음집에서는 한 절 한 절이 가지는 향기와 아름다움을 따로 음미해야 이 부분을 제대로 감상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Ⅰ.자식 농사의 중요성
먼저 10:1절에서 *솔로몬의 잠언이라*고 말함으로써 이제부터의 내용은 지금까지 말한 것과는 다른 새로운 말씀인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의 내용은 하나님 지혜의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지혜의 모음집입니다.
즉 이 부분을 꽃으로 비유한다면, 꽃만 꺾어서 모아놓은 지혜의 꽃다발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이 지혜의 아름다움을 재대로 감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지혜들이 세상의 지혜와 비슷비슷하게 보이지만, 그 뿌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지혜의 꽃다발은 놀랍게도 자식(子息) 농사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10:1절)...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여기서 *지혜로운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자식(子息)이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합격을 하여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지혜로운 아들*이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서 믿음의 길을 가는 아들을 말합니다.
아마도 부모의 심정으로는 자식이 교회에 열심히 다녀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좋아지기보다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합격하여 성공적인 인생길을 걸어가는 것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미련한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기 위해서는 젊었을 때부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잘 듣고, 믿음의 길을 걷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키워보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잘 듣고, 열심히 믿음 생활을 잘하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처음에는 반항하고, 자기 멋대로 굴다가 어느 순간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잘 듣고, 믿음으로 사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가 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로 들어가지 않은 자녀가 세상적으로는 머리가 좋아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세상적으로 성공해서 처음에는 기쁨을 줄지 몰라도 나중에는 부모의 마음에 큰 고통을 주게 됩니다.
이런 세상의 지혜를 가진 자녀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욕심이 통제가 되지 않아서 정욕적인 생활에 빠지거나, 대형 사고를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부모의 속이 너무나도 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믿음의 자녀는 처음에는 좋은 대학도 나오지 못하고,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해도 일단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기 때문에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큰 욕심을 내지 않기 때문에 큰 실패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축복하시기 때문에 계속 하나님이 물질적인 복(福)을 주시고, 세상적으로도 형통하게 하시므로 꾸준히 잘 되게 됩니다. 사실 사람이 꾸준히 잘 된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자식은 결국 자기 인생을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겠지만, 부모가 이 자식들에 대한 욕심이 엄청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부모의 솔직한 마음은 자식이 신앙이 좋은 것보다는 세상적으로 잘 되는 것을 더욱 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자식이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려고 하면, 하나님의 연단(練鍛)을 받아야 할 텐데, 부모가 자식이 고생하고, 연단(練鍛)하는 것을 봐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부모의 지나친 사랑이 자식의 미래를 망칠 때가 많습니다.
부모가 정말 자식을 사랑하고, 그의 미래가 복되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의 연단(練鍛)을 받을 때, 오히려 환영하고, 실컷 고난을 잘 받으라고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부모 자신이 거짓 없이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보다 자녀들에게 좋은 교육은 없습니다.
자식들에게는 언제나 성경을 읽으시던 아버지, 언제나 기도하시던 어머니가 기억에 남게 됩니다. 그 대신 부모가 너무나 억압적으로 가정 예배를 강요하거나, 경건을 강요하는 것은 아무리 부모의 의도(意圖)가 좋다 하더라도 반발심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부모가 정말 자기가 살아있을 때에나 죽은 후에도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자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식이 철저하게 하나님에게 붙들린 사람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보다는 세상적인 성공을 원한다면, 부모는 그 자식의 영광과 축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생명의 말씀의 가치를 믿지 않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Ⅱ.재물의 가치
잠언에는 재판에 대한 가르침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결국 물질적인 축복으로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실 때에는 말씀으로 은혜를 주시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것이 물질적인 복으로도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돈을 목적으로 해서 부자(富者)가 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런 경우 꽃은 비슷하지만, 뿌리는 완전히 다른 사례입니다.
10:2절)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 생명을 지켜주는 것은 과연 돈일까? 아니면 의리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은 많이 벌었지만, 너무나 인색(吝嗇)한 나머지, 인심을 잃어버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얻어먹고,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하면, 발을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바람에 인심(人心)은 아주 좋지만, 실속이 없어서 늘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다른 사람을 많이 도와주었지만 자기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서 인생을 망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아주 잘 사는 부자(富者)가 동네 사람들이 어려울 때, 곳간을 열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산적(山賊)들이 쳐들어오고, 공산당(共産黨)이 와서 그 집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을 때, 동네 사람들이 나서서 그 집 사람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지켜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불의의 재물*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부터 제대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불의의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재물이 아닌 것을 악한 정권과 토개공처럼 자기 소유로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아마도 대표적인 예(例)가 다른 사람의 돈이나, 재산을 맡은 사람이 자기 것처럼 착복(着服)을 하면, 그것은 불의의 재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정신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재산 전체를 불의의 재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눅16: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번 돈이 모두 다 나쁜 짓을 해서 벌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재물은 영구적으로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이 세상에 있는 재물은 하나님께서 좋은 일 하라고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재물을 모으는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인생 전체는 탐욕(貪慾)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불의한 것은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차지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을 더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이 세상의 재물은 숟가락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갈 때에도 비행기를 타고나면, 우리나라 돈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돈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만 통하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휴지조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즉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만 통하는 것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믿음이 자라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10:2).고 말씀했습니다.*의리(義理)*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신의(信義)를 배신하지 않는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약속(約束)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약속(約束)한 것을 일일이 모두 다 지킨다고 하는 것은 귀찮은 일입니다. 또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신의(信義)를 지키려고 하면, 자기 자신을 그 약속(約束)에 잡아매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약속을 해놓은 후에, 그 약속에 매이지 않으려고, 약속을 깨거나, 신의(信義)를 배신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약속에 자신을 복종시키고, 특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자신을 복종시킬 때,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祝福)을 받는 것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신실하게 붙들려고 하면, 자신의 자유와 모든 가능성을 포기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매여서 세상의 좋은 것들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신의(信義)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우리에게 신의(信義)를 지키셔서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에게 부흥(復興)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해서 신의(信義)를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우리를 위기에서 지켜주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매이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위기에서 살아나기 위한 것입니다.
10:3절)여호와께서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 악인의 소욕은 물리치시느니라.”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여호와께서는 의인의 영혼은 주리지 않게 하시나’의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영혼이 주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음식을 한두 끼 먹지 않아도 쓰러지지 않지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먹지 못하면, 그 영혼은 침체되어 쓰러져 죽게 됩니다.
여기서 *의인(義人)*이라고 하면 죄를 전혀 짓지 않은 성인군자를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인(義人)*은 우리같이 허물과 죄가 많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어떤 거래를 하십니다. 즉 우리의 죄와 허물은 하나님이 모두 다 가져가시고, 하나님 안에 있는 의(義)를 우리에게 넘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육신의 음식보다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더욱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주시면, 반드시 육신의 먹을 것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떡(밥)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양식을 먹으면, 우리는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부흥이 일어나고, 어느 순간 기도 응답이 일어나면서 나중에 하나님께서 복이란 복은 모두 다 부어 주시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악인(惡人)의 소욕(所欲)은 물리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악인(惡人)은 우리가 보기에 나쁜 사람을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악인(惡人)은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에 최고의 가치를 두지만, 자기 야망이나 욕심대로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아무리 성공하거나 돈을 많이 벌어도 마음에 만족함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 마음은 배가 고프듯 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돈을 벌어도 더 벌어야 하고,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올라가더라도 더욱 높이 올라가야 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더 가져야 허전함을 달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의 소욕(所慾)을 물리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사람은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자꾸만 더 달라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듣기 싫어하시고 물리치십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들의 성공은 별 볼일 없는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는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 부흥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영적 부흥이 일이나면서 우리 인생은 가장 가치 있는 보석(寶石)같은 인생이 되고, 그때 우리는 가장 많은 영혼을 건지게 됩니다.
10:4절)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여기서 손을 부지런하게 놀린다고 하는 것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잘못 생각하면, 죽어라고 일을 많이 하면,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손을 놀린다고 하는 것은 반드시‘일만 죽어라고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물론 이 세상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모두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즉 남자들은 추운 겨울에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하러 가고,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밤늦게까지 남아서 공부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손을 놀리거나,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모르고, 이 세상에서 살아보려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은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애굽에서 노예로 있으면서 죽어라고 일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을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면, 애굽의 노예 감독관이 사정없이 채찍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리갈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에서 일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 대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훈련을 했습니다.
그리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진군(進軍)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라*고 한 것은 애굽의 노예같이 먹고 살기 위해서 죽도록 일을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잡게 되었을 때, 오히려 이 세상에서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안정된 직장이라든지, 유명한 출세 자리 같은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는 대로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길이 열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왕의 칼이나, 투구를 탐내지 않고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물맷돌로 싸웠을 때,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또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을 칠 때,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까 여우 꼬리에 횃불을 붙여서 블레셋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꼭 이 세상의 성공 기준이라든지, 안정된 직장의 개념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빌 4:13).고 했는데, 우리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작은 것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모여서 기적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자기 길을 찾은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하든간에 자기 길을 열심히 꾸준히 가기만 하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길을 찾지 못한 사람은 말이 많을 것이고, 남들이 하는 것은 다 따라서 하려고 할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10:4). 고 했습니다. 우리가 축복의 길에 들어섰더라도 침묵하고 가만히 있으면, 결과는 초라하게 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흥을 주셔도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침묵하고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가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흥을 주시고, 할 일을 주셨을 때,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에서 최선의 것을 얻어야 합니다.
10:5절)여름에 거두는 자는 지혜로운 아들이나. 추수 때에 자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는 아들이니라.”
여름은 이 당시 가장 중요한 보리나 밀을 추수하는 시기를 말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는 이유는 추수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농부가 다른 것은 다 했다 하더라도 추수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도 하나님이 주신 때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형통할 때가 있는가 하면,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적인 축복을 주시고, 성령의 바람이 불 때에는 더욱 열심히 모이고, 기도해서 백배의 추수를 거두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셔서 일을 주시지 않으실 때에는 *하나님이 내 영혼을 먼저 건강히 하라고 하시는구나*생각해서 이때는 또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여 나 자신을 준비시킬 때인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 말씀으로 자기를 준비하지 않고,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을 때, 엉뚱한 짓을 하느라고 기회를 놓치는 아들은 나중에 엉뚱한 잘못을 저질러서 다른 사람들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眼目)이 없기 때문입니다.
Ⅲ.의인의 길
성경은 끊임없이 이 세상에는 의인의 길이 있는가하면, 악인의 길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인(義人)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자기 인생을 맡긴 자를 말합니다. 거기에 비해서 악인(惡人)은 아직까지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지 않고, 부모가 책임을 진다든지, 아내가 책임을 진다든지 하는 사람은 무능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즉 우리는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지, 하나님이 책임을 져서 되겠느냐? 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나 하나님은 우리를 중증장애인으로 생각하셔서 우리 인생 전체를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인의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 이유를 가장 먼저 설명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하나님께 맡겨야 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독(毒)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10:6절)의인의 머리에는 복이 임하나.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우리가 보통 *머리*라고 하면, 생각이나 명예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인의 머리*는 의인(義人)의 생각을 말합니다. 사실 우리 인간보다 뛰어난 피조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생각하기 따라서 천사가 될 수 있는가 하면, 악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가 어떤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 어떤 희생이 있어도 사랑하게 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을 *괴롭히겠다*고 생각하면, 정말 심술궂은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입니다. 즉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천사같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악마같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마음을 먹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설사 그런 마음을 먹는다 하더라도 우리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은 우리 머리를 축복(祝福)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 즉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이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이 은혜가 가슴에 내려오게 되는데, 그때는 이미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원래 상태 그대로 있으면, 우리의 머리는 저주받은 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연히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되고, 의심하게 되며, 나쁜 것을 지적하고 싶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없으면, 입에 독(毒)을 머금고, 나쁜 말을 하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나쁜 말을 하면서 얼마나 그런 우월감(優越感)으로 스스로 즐기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바로 독사(毒蛇)가 춤을 추는 모습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독(毒)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독(毒)을 버리는 방법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은혜 받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사랑의 말씀이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독(毒)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 안에 채워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의인(義人)의 머리에 복(福)이 임하는 것입니다.
10:7절)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게 되느니라.”
*이름*의 가치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의인을 기념한다.’는 것은‘의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자기 인생을 다 살고 난 후에 과연 무엇이 남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대단한 것 같지만, 일단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의 *살이 썩음과 동시에 모든 기억도 다 썩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의인의 이름*은 살아 있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축복(祝福)을 이 세상에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너무나도 좋은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긁어모으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인생을 다 살고 나니까 모래 장난만 실컷 한 것과 같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아무리 유명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그것은 이 세상의 모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이 세상을 가치 있게 하고, 사람들에게 복을 받게 한 사람은 하나님의 복(福)을 가져온 사람입니다. 즉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게 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의 영적인 복과 육체적인 삶이 모두 다 가치 있게 살아 있습니다. 그의 육체적인 삶은 영적인 복의 열매요, 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세상만 바라보고 산 사람이 가장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들의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 썩은 성공인 것입니다.
10:8절)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리라”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의 가치를 아는 자입니다. 그 사람은 구체적인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만 던져주시고, 알아서 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제적인 삶 가운데서 우리에게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지 자꾸만 가르쳐주십니다.
사실 우리가 처음에 어떤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면, 너무나도 생각이 산만해서 무엇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연할 때가 많습니다. 이때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상담(相談)할 상대가 있으면, 너무도 좋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는 유익한 것도 있지만, 유익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많고, 심지어는 우리 영혼을 죽이는 독(毒)이 되는 말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여과(濾過)시켜서 어떤 것은 버리게 하시고, 어떤 것은 택하게 하시고, 심지어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는 그런 수많은 말들을 여과(濾過)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에 매일 독(毒)을 한 사발씩 마시면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술로 그것을 풀려고 하는데, 풀리지 않습니다. 결국 악(惡)한 사람은 가만히 있기만 해도 되는데, 자기가 한 말에 걸려서 패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분노가 가득 들어 있어서 참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10:9절)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사람이 바른길을 가려고 하면, 일단 바른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굽은 길을 택했다면, 자기 자신은 아무리 바른 길을 걷는다고 해도 길 자체가 굽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바른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사람들 중에 자기 앞길이 어떻게 될지 정확하게 알고, 길을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단지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길을 선택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당장 편한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단 당장에 편한 길을 선택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길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히려 처음에 길이 보이지 않아서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길은 홍해속에 고속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이 미래가 불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안해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안정되면, 부패(腐敗)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처음에는 고생을 하지만, 나중은 편안합니다. 그러나 굽은 길을 가는 자는 나중에‘드러난다.’고했는데, 어떻게 보면 굽은 것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생각이 되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10:10절)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패망하느니라.”
여기서 모처럼 악(惡)한 것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즉 눈짓한다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게 뒤에서 일을 꾸미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언제나 말하는 것과 실제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걱정을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눈짓하는 사람은 당장은 필요해서 쓰지만, 결국은 소모품으로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입이 미련한 사람은 할 말, 하지 않을 말 가리지 않고, 마구 자기 안에 있는 악(惡)한 생각을 쏟아내는 사람인데, 당장은 그 사람이 똑똑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이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구정물통과 같은데, 그 물이 자기에게 자꾸 쏟아 붓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결국 정직하지 못한 자와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사람은 결국 정직한 자를 좋아하고 말을 가려서 하는 자는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가치가 한결 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0:11절)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사람은 몸만 다치고,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상처를 입고, 다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몸이 병이 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지만, 마음이 다치면, 그냥 꾹 참으면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사람의 입을 통해서 나올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샘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게 되면, 눈물이 흐르면서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노에 차서 하는 말이나, 교만한 말은 독(毒)이 들어 있어서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이 병들게 됩니다. 사람이 할 수 있으면, 그런 나쁜 말을 듣지 말아야 하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에는 참으로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과 대화를 통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아니면 조용한 곳에서 스스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치료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입에는 언제나 독(毒)이 있기 때문에 아무런 생각 없이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10:12절)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사람의 마음에 분노가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 분노를 퍼붓게 됩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 분노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기를 방어하려면, 자기도 분노를 퍼부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소리를 지르면, 자기도 그 이상으로 소리를 질러야 화(禍)가 미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더 소리를 지르게 되기 때문에 싸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그런데 결국 사랑은 다른 사람의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이해하기 때문에 똑같이 소리를 지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위대한 것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의(正義)를 부르짖는데, 우리는 절대로 완전히 정의로울 수가 없습니다. 정의보다 위대한 것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즉 부모가 자식을 돌볼 수 있는 것은 자식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10:13절)명철한 자의 입술에는 지혜가 있어도 지해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는 채찍이 있느니라.”
명철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생활화하여 구체적인 지혜가 된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지혜가 되지 않아서 참으로 미련하게 행할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이 미련하다고 해서 채찍에 맞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연단을 통해서 나중에는 정말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주시는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복을 받게 하시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이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입에 있는 지혜는 그냥 지혜가 아니고, 기도하는 지혜이고, 응답받는 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세상의 요령을 피우는 자는 애초부터 칭찬을 받고, 절대로 채찍에 맞을 짓도 하지 않습니다.이런 사람들은 자꾸 교만해지기 때문에 나중에 죄를 쌓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죄가 터지게 되었을 때에는 수습이 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 꾀를 믿고, 요령을 부리면서 사는 자는 끝에 가서 죽도록 채찍에 맞고 감옥(監獄)에 갇히게 됩니다.
10:14절)지혜로운 자는 지식을 간직하거니와 미련한 자의 입은 멸망에 가까우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지혜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간직합니다. 이 사람은 그 지혜를 어디에 간직할까? 자기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마음에는 언제나 지혜가 있기 때문에 허황된 생각이나 거짓이나 악(惡)한 탐욕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련한 자는 자기 꾀를 믿는 자인데, 이런 사람의 입이 멸망이 가깝다고 하는 이유는 이런 사람은 너무나도 낚싯바늘에 매달린 미끼가 먹고 싶어서 그 주위를 자꾸만 맴돌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지혜의 특징은 평범한 축복(祝福)이 너무나도 시시해서 마음에 들지 않고, 언제나 금지된 것이 그렇게 마음에 당기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머리를 믿고, 아슬아슬하게 죄를 즐기다가 어느 날 걸려들면 끝장이 나고 맙니다.
10:15절)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부자의 재물이란 그냥 부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대로 산 사람의 축복(祝福)을 말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은 끝에 가서 물질적인 복도 주시고, 세상의 명예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물질의 복은 빙산(氷山)의 일각(一刻)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백성들에게 이미 수천 배의 영적인 복을 주시고 나중에 물질의 복까지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복(福)은 견고한 성(城)이기 때문에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 만을 위해서 살아온 사람은 그것이 그의 전부이기 때문에 돈이 없어지면 진짜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완전한 멸망입니다.
10:16절)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의인의 수고라고 할 때, 의인(義人)은 무엇을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고 살까? 그는 영혼(靈魂)을 건지는 것을 위해서 삽니다. 물론 의인이 다른 것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로 사람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수고는 생명(生命)입니다. 즉 의인은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림니다. 그리고 악인(惡人)은 욕심을 위해서 사는데, 결국 권태(倦怠)가 오고, 욕심이 발동하면, 죄에 빠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욕심으로 사는 사람은 이 귀한 인생을 살면서 죄만 실컷 짓고, 아무것도 가치 있는 것을 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소중한 인생을 살면서 내 머리를 믿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를 믿어서 우리의 머리가 복(福)을 받고, 가슴이 복(福)을 받고, 우리의 손과 발이 복(福)을 받아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복(福)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아-멘
찬송가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오늘의 묵상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3:9)
◁가족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족▷
☞ 후원 이사(理事) (마28:18-20/롬8:28)
36개 셀(cell)공동체는
은혜 빚진자들로써 열방의 죽어가는 소중한 생명을 멸망에서 구령할 사명이 있습니다.
씨뿌리고. 잃은영혼찾고. 성례전과 수련회하기에 적합한 동탄 황금어장(漁場)에 교갱원을 설립할 동역후원 이사(理事)를 찾습니다.
☞ 비전(vision) (잠29:18)
각 셀(cell)공동체의 긴급기도를 공유하며. 연약한 셀 지원과 상담 등 우리와 다음 세대의 행정 중앙 총괄본부가 될 것입니다. 풍성하고 다양하고 균형잡힌 육신과 영혼에게 유익한 생명의 양식. 후계자 : 정현흥 목사(총신대학원 졸업). 경력 : 지혜로운아이들, 찬양사역,레크리에이션(recreation강사, 협동목사가 섬길 것입니다.
☞ 권면(勸勉) (출20:6/왕상3:13)
솔로몬이 성전(聖殿)하나 건축(建築)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지혜(智惠)와 전무후무(前無後無)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얻은 것처럼 신실(信實)하신 하나님이 천대(千代)까지 약속(約束)하신 복(福)을 함께 받아 누립시다.
▽교갱원 설립할 온라인 특별 헌금▽
농협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종류)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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