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백경
함석헌
1. 격동속의 백 년 과제 ‘개화(開化)’
개화운동 백 년의 일을 정신사(精神史)의 자리에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역사가들은 우리나라 역사의 최근대사를 대개 1864년에 시작하는 것으로 보려 합니다. 그것은 그 해에, 이조 마지막에서 둘째 임금인 고종(高宗)이 임금 자리에 올랐고, 그로부터 나라가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새 시대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이날껏 양반집 사랑간으로 돌아다니며 술이나 얻어먹고 궁도령(宮道令)이라 업신여김을 받던 이하응(李昰應)이 그의 열두 살 되는 어린 아들을 들여보내어 임금이 되게 하고 스스로 대원군이 되어 하루아침에 정권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못 놀랐으나 설마 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또 그 자신도 그랬기 때문에 전날의 모든 악정의 근원인 외척(外戚)을 완전히 제해 버리고 길이 길이 저 혼자서 해먹으려고 어린 임금을 위해 왕후를 고를 때에도 각별 주의하여 그럴 만한 걱정이 없는 사람으로 택한 것이 바로 민씨(閔氏)였습니다. 그러나 그 둘이는 사실은 이씨 왕조의 마지막 막을 맡아 가지고 무대에 올라온 두 주연 배우였습니다. 그 둘이 서로 세력다툼을 하는 판에 나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에 내 건 제목이 개화(開化)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싸우는 진정한 목적은 세력다툼에 있지만 그 내세우는 주장은 나라를 여느냐 닫느냐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의 의미가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나라에는 일이 많았습니다. 양요(洋擾) 이후 일청(日淸), 일로(日露)의 두 전쟁을 거쳐 나라가 망하고 일제 36년 동안에 갖은 압박, 만주사변(滿洲事變), 일지사변(日支事變), 제 2차 세계대전 등 변동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겉은 말고 역사의 속을 생각한다면 줄곧 하나의 문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이 곧 개화입니다. 개화운동(開化運動)은 거의 백 년 동안을 계속해온 역사적 과제입니다.
해방 이후 새로 나라를 세운 오늘에 있어서는 새 시대라면 새 시대입니다. 오늘날은 ‘개화(開化)’ 라는 말은 없고 ‘근대화(近代化)’ 라고 합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고 보면 이 둘은 결국 하나입니다. 근대화는 개화를 하려다가 잘 아니 됐기 때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몇십 년 전에 ‘개화’가 유행어였던 것처럼 지금은 ‘근대화’가 유행어입니.
개화 당시 ‘얼개화꾼’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참개화는 못하고 겉치레로만 흉내를 냈던 것이 ‘얼개화꾼’이었던 것입니다.
개화는 무엇입니까? 마음이 열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깨닫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개천(開天)으로 시작됩니다. 단군이 나라를 세우신 날을 개천절(開天節)이라 하여 지금도 기념합니다. 그러나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늘이 어디 입니까? 결국 사람의 마음, 정신을 가리켜 하는 말일 것입니다. 나라라 할 때 정신이 열리지 않고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럼 4천 년, 5천 년 전에 벌써 열린 마음이요, 정신인데, 또 새삼 열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거기에 역사가 있습니다.
2. 역사는 살아 있는 나무
역사의 흐름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 변하는 것을 보다 더 적절하게 형용하려면 ‘자란다’ 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살아 있는 생명의 나무입니다. 그것은 변하지만 그저 기계적으 로 달라만 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라서 모양이 달라질수록 그 변하지 않는 나무의 특성은 더 드러납니다. 사람의 역사도 이와 같습니다 이 자꾸 변합니다. 그러나 시대는 각각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의 뜻으로 꿰뚫립니다. 역사는 목적을 가지고 자라나가는 정신의 운동입니다.
3. 고난을 이겨 온 창조의 의욕
열린다는 것을 또 다른 말로 하면 혁명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은 혁명(革命)이란 말이 많습니다. 백 년 전에는 혁명이란 말을 별로 쓰지 않았습니다. 요새 같다면 혁명이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바꾸어 생각해 보아야 개화운동의 의미가 더 분명해집니다. 그때에 개화, 개명이라 했던 것을 오늘 말로 하면 문화혁명입니다.
개화란 말을 정신사(精神史) 위에서 말한다면 차라리 ‘개화(開花)’라 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우리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봅니다. 처음부터 오늘까지 오는 역사를 그 파란곡절을 통해서 하나의 의미를 붙잡으려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역사를 고난의 연속이라 볼 때 그것은 하나의 패배주의같이, 약자의 소극주의같이 보이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고난 속에는 단련과 인내와 정화와 반도(反挑)의 뜻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역사는 기다림, 대망의 역사입니다. 나는 우리 역사에서는 이 생각을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우리는 이날껏 우리 사명을 다 하지 못한 민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부터 할 책임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역사 창조를 하는 주체로서의 씨알이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정신으로서의 역사에서는 그렇다고 봅니다. 아무리 알 든 곡식이라도 요리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고 먹어서 소화되지 않으면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4. 속이 죽어 있던 낙낙장송
개화란 말이 유행하던 그때, 반면에는 미개, 구습, 야만, 밤중, 긴 꿈 이런 말들이 또 많이 나돌았습니다. 그것은 다 국민적으로 반성하는 데서 나온 말일 것입니다. 그때 만일 민중의 그 깨는 운동이 힘차게 나가서 정신의 한 큰 혁명을 하는 데 성공했더라면 나라 일이 오늘 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동쪽의 일본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본도 완전히 새로워졌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어느 정도 낡은 껍질을 탈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제까지 우리나 다름이 없던 처지에서 단번에 뛰어 동양의 맹주(猛主)라고 하게 됐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개화백년(開化百年)의 역사를 보면 실로 분한 마음 참을 수 없습니다.
어젯밤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말가
낙락장송이 다 휘드리 치단 말가
하물며 피다 못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이 노래 그대로입니다. 피다 못핀 꽃입니다.
5천 년 자란 나무에 백 년 개화기(開花期)입니다. 그것은 한 떨기 국화라고 할까 정신적인 준비가 되어 있으면 밖에서 오는 환난으로 나라가 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5. 근대화(近代化)는 근대화(根大化) 되어야
근대화를 부르짖고 있는 오늘의 우리는 그 점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개화 백 년에 실패한 민족입니다. 역사에는 기적도 없고, 에누리도 없고, 외상도 없습니다.
우리는 빚을 졌습니다. 전시대에서 낼 것을 못 냈습니다. 빚쟁이는 산업(產業)을 못합니다.
빚을 물어준 후에야 내 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빚진 종’이란 말은 진리입니다. 빚을 지고는 개인이나 국민이나 자유 할 수 없습니다. 개인보다 국민의 경우는 더합니다. 하여간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역사적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38선은 개화에 실패한 값으로 역사가 복수를 한 것입니다.
6.25도 그것입니다.
부끄러운 한일조약도 그것입니다.
국민은 원치 않는 명분 없는 전쟁을 남의 체면에 잡혀서 하게 되는 것도, 시퍼런 청년이 당당히 죽으면서도 죽었다는 말을 못하는 것도, 다 이 피워야 할 꽃을 못 피운 죄로 당하는 역사의 복수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근대화가 되지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불행을 더할 뿐일 것입니다. ‘개화(開化)’가 ‘개화(開花)’였다면, 했어야 할 개화(開花)를 못해서 오는 ‘근대화(近代化)’는 마땅히 ‘(根大化)’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개회백경 (1969. 신태양사)
저작집30; 없음
전집20;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