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문대작(屠門大嚼)
허 균
도문대작은 1611년 홍길동의 저자인 허균(許筠)이 자신의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 실은 것으로, 조리서라기보다는 조선 팔도의 명산 식품을 열거한 식품서이다.
성소(惺所)는 허균의 호(號) 중 하나로, 성소부부고라는 이름으로 유배 기간중에 저술한 시와 산문을 직접 엮은 문집이 26권 12책으로 남아 있는데 마지막 책에 도문대작 편이 실려 있다.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도살장 문을 바라보며 입을 크게 벌려 씹으면서 고기 먹고 싶은 생각을 달랜다는 뜻으로, 흉내 내고 상상만 해도 유쾌하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중국 후한(後漢)의 환담(桓譚)이 신론(新論)에서 고기 맛을 아는 사람들은 도살장 문을 바라보고 크게 씹어본다. 라고 한 데서 비롯된 말이다.
허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형조판서와 의정부 참판을 지냈다. 이 책은 허균이 바닷가로 귀양(歸養)갔을 때 쓴 책이다.
귀양지에서 귀양지의 거친 음식을 먹게 되자 허균은 자신이 직접 지역을 방문하여 맛본 음식을 회상하며 각지의 이름난 산물과 음식을 분류, 나열하고 명산지와 특징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병이지류(餠餌之類, 떡류) 19종, 과실지류(果實之類) 33종, 비주지류(飛走之類) 6종, 해수족지류(海水族之類) 52종, 소채지류(蔬菜之類) 38종, 기타 차, 술, 꿀, 기름, 약밥 등과 서울에서 계절에 따라 만들어 먹는 음식 43종을 기록하였다.
외가(外家)가 있는 강릉에서 2월에 이슬을 맞고 처음 돋아난 방풍 싹으로 끓인 방풍죽은 사흘이 지나도 단맛과 향이 가득하다고 칭찬했으며, 금강산 표훈사에서 단옷날 맛보았던 석이병은 다른 떡과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하다고 했다. 박산(산자)은 전주, 다식은 안동, 밤다식은 밀양과 상주, 차수(叉手, 유밀과의 일종)는 여주, 이(飴, 엿)는 개성, 큰 만두는 의주, 웅지정과(熊脂正果)는 회양, 콩죽은 북청의 것이 명물이라고 소개하였다.
배, 감, 귤 등 과일의 품종과 각 명산지, 맛이나 향의 특징도 자세히 소개하였는데 배는 천사리(天賜梨, 하늘에서 내려준 배), 금색리(金色梨, 금색을 띤 배), 현리(玄梨, 검은 배), 홍리(紅梨, 붉은 배), 대숙리(大熟梨, 잘 익은 배) 등이 있고, 귤류는 제주에서 나는 금귤(金橘), 감귤(甘橘), 청귤(靑橘), 유감(柚柑), 감자(柑子), 유자(柚子) 등이, 감 종류로 조홍시(早紅柹, 일찍 딴 감), 각시(角柹), 수분이 적어 곶감으로 이용한다는 오시(烏柹, 먹감)가 있다고 했다.
들짐승과 날짐승을 이르는 비주지류로는 강원도 회양의 곰 발바닥과 사슴 혀, 양양의 표범 태, 전라도 부안의 사슴 꼬리, 평안도 양덕과 맹산의 꿩, 평안도 의주의 거위 등이 유명하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식품들이다.
수산물도 지역 명물로 소개했다. 한성과 경기도는 숭어, 웅어, 뱅어, 복어, 곤쟁이, 쏘가리, 맛조개가, 강원도는 붕어, 열목어, 은어, 송어, 고래 고기가, 충청도는 뱅어, 조기가 유명하다고 했다. 경상도는 청어, 전복, 은어가, 전라도는 오징어, 큰 전복, 곤쟁이 새우가 맛이 좋다고 소개했다. 황해도, 함경도, 평안도 등 북부 지역은 청어, 청각, 소라, 게, 굴, 송어, 청어, 언 숭어, 새우알 젓 등이 유명하다고 설명했다.
채소류는 한성과 경기도의 토란, 여뀌, 파, 부추, 달래, 고수 등이 질이 좋다고 하였고, 전라도의 순채, 생강, 무가 좋고, 경상도는 토란, 강원도는 표고, 평안도는 황화채(원추리꽃)가 유명하다고 했다. 고사리, 아욱, 콩잎, 부추, 미나리, 배추, 가지, 오이, 박 등의 채소류는 전국에서 나는 것이 다 좋다고 했으니 당시에 흔히 먹던 일반적인 채소로 볼 수 있겠다. 특히 채소 음식 가운데에서 죽순해(竹筍醢)는 호남 노령(蘆嶺) 이남의 것이 유명하고, 산갓김치는 강원도 회양·평강에서 잘한다고 하였다.
술은 개성부의 태상주(太常酒)가 가장 좋고 삭주의 것도 좋다 하였다. 창의문 밖에서는 두부를 잘한다고 소개하였다.
지금은 볼 수 없는 식품의 종류와 품종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지역별 특산물의 특징을 언급한 덕에 조선 중기의 식품과 음식의 실상에 관한 세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도문대작은 허균 자신이 직접 그곳을 찾고 음식을 맛본 것이다. 따라서 간략한 해설이지만 식품과 음식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더욱이 별미음식이 넓은 지역에 걸쳐 선정되어 있으므로 당시, 상류계층의 식생활과 향토의 명물을 일별할 수 있어 17세기의 우리나라 별미음식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도서관, 규장각 등에 있다. 1961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영인, 간행되었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실국수(絲麪)에 대해 설명하면서 중국의 오동(吳同)이라는 사람이 이를 잘 만들었기 때문에 그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 오늘날의 우동이라는 말이 일본에서 유래된 것이 아님을 입증해 주고 있다.
도문대작은 조선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요리책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