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설렌다 / 한정숙
제이티비시(JTBC}의 팬텀싱어는 남성 크로스오버 4중창단을 선발하는 경쟁 프로그램이다. 2016년 시작하여 2017년 2회, 2020년 3회, 올해 2023년 네 번째 경연을 진행하고 있다. 예선을 거친 참가자들은 본선 1차전에서 1 대 1 경연을 시작하여 2 대 2, 3중창, 4중창 2차 경연까지 5차례의 본선을 거친 후 결성된 세 팀이 결승에서 두 번의 경연을 통해 우승 팀을 가린다. 참가자들을 보자면 대체로 성악 전공자들과 뮤지컬 배우가 많고 가수도 제법 있다. 가끔 우리 소리를 하는 소리꾼도 참여한다.
나는 2016년 1회 경연 때는 프로그램을 늦게 접하여 마지막 결승 편만 시청을 하였는데 장엄한 남성 4중창의 매력에 빠져 다시 처음부터 돌려보기를 하였었다. 그리고 2회부터는 팬텀싱어의 애청자가 되었다. 본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였고 중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성악을 하여 어깨너머로 우리 가곡과 외국 가곡을 자주 들었었다. 특히 음악시간에 우리 가곡을 많이 배웠는데 보리밭. 목련화, 그리운 금강산 등 아름다운 노래들이었다. 지금도 고등학생들이 그런 노래를 배우는지는 모르겠다. 슈베르트의 ‘마왕’과 헨델의 ‘울게 하소서’는 음악 숙제로 받은 음악 감상을 하면서 알게 된 독일 노래이다.
뮤지컬은 어른이 다되어 접하기 시작했고 내 손으로 돈을 벌게 되면서부터 기회를 만들어 관람하는데 소도시인 목포에서는 기회가 드물어 서울의 공연을 찾는다. 최근에 본 작품은 작년 2022년 10월에 롯데 시어터에서 가수 임창정이 출연했던 ‘미세스 다웃파이어’다.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했던 영화를 감동 깊게 보기도 하였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다룬 작품이라 학부모와 학생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교육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같이하는 선생님들과 토요일 아침 기차를 타고 상경하여 오후 관람을 마친 후 저녁에 다시 내려오는 다소 무리한 일정이었으나 단풍이 짙어가는 계절과 어울리는 매우 기분 좋은 선물이었다.
우리 음악에 대한 애정이야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나는 ‘진도 아리랑’의 고장 진도 출신이다. 그것이 내 노래 솜씨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나 늘 들어왔던 노래이므로 노랫말의 혼과 선율이 핏줄을 타고 흐르는 건 사실이다. 더구나 나이가 들면서 우리 음악은 오래된 친구처럼 정겹다. 대중가요야 잘 부르는 재주는 없으나 즐겨 찾는 노래와 가수는 있으니 좋아하는 장르의 음악적 재능을 갖춘 사람들이 겨루는 경연이 매력적인 것은 당연하다.
2017년 팬텀 싱어 2회가 시작 할 때 나의 시선을 끄는 참가자는 ‘강형호’였다. 프로필을 소개할 때 그가 화학회사에 근무하는 연구원이라는 사실이 새로웠고 본선 1차에서 부르는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주제곡을 남자와 여자의 영역을 넘나들며 불렀는데 나뿐만 아니라 심사위원들과 현장의 참가자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전율하며 들었다. 그때부터 그의 편이 되어 열심히 응원하였다. 그는 합격과 추가합격을 거쳐 테너 조민규, 뮤지컬 배우 바리톤 배두훈, 세계적인 피겨 스케이터 김연아와 결혼하여 더 관심을 받고 있는 베이스 고우림과 포레스텔라(숲별) 팀으로 우승을 하였다. 지금도 그들은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는 찬사를 받으며 일 년 중 360일 이상을 함께 연습하는 열정을 보이며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대표 ‘남성 4중창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상반기부터 코로나19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꽁꽁 묶고, 학교에서는 처음 시도하는 원격수업으로 선생님과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님도 안절부절못하였다. 나는 알 수 없는 가슴의 통증과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피곤에 지쳐 틈만 나면 쉴 곳을 찾았었다. 2018년 11월 자주 가는 병원에서 X-ray와 초음파 촬영 후 이상 없다는 소견을 받았던 터라 몸에 이상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없었다.
3년 만에 팬텀싱어 3회가 시작되었다. 벼르며 기다리던 프로그램이었고 몸이 개운하지 않은 터라 좋아하는 음악과 열정적인 무대는 위로와 힘이 되었다. 더구나 본선 1차전에서 ‘피아노 치는 소리꾼’이라는 별칭을 달고 건반을 두드리며 ‘사랑가’를 부르는 고영열의 퍼포먼스는 강렬했다. 그는 경연을 거듭하면서 테너 존노, 뮤지컬 배우 황건하, 베이스 김바울과 ‘라비던스’라는 팀으로 결승까지 진출하였다. ‘라비던스’는 경연하는 곡마다 음악의 경계를 허물며 자유롭게 편곡하였는데 결승 1차전에는 남도민요 ‘흥타령’과 스티브원더의 ‘Another star’를 불러 1위를 하였으나 2차전 생방송으로 진행된 문자 투표를 포함한 경연에서 라보엠 팀에게 밀려 1위를 양보했다. 그러나 경연 4개월 동안 나를 위로하고 우리 음악의 가치를 알렸으며 다른 장르의 음악과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을 자랑한 뛰어난 음악인들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매우 귀한 경연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즌이 돌아왔다. 3월 10일부터 팬텀싱어 4회가 시작되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 8시 50분부터 시작하는 크로스오버(Crossover) 남성 4중창단 결성을 위한 경연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크로스오버란 장르가 서로 다른 음악의 형식을 혼합하여 만든 음악을 말한다. 회를 거듭할수록 참가자들의 수준도 높아질 것은 자명한 일이라 일찍부터 기대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예고를 알리는 광고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업계의 전설’이라는 자막이 보이기도 하였다. 사실 이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참가자들 중 아마추어는 거의 없다. 서로 이력을 확인하며 평소 팬이었고 동경하고 있으며 어릴 적부터 무대를 즐겨 봤다는 덕담을 주고받는 장면에서 느낄 수 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봄기운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참가자들마다 자신의 이야기가 있고, 세계 각지에서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이거나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이었다. 어떤 이는 이루고자 하는 것을 다 이루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 참가하였다고도 했다. 도전은 참가 신청서 한 장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내가 좋아하거나 다른 이보다 강점이 있는 분야에 긴 시간 갈고닦은 노력과 타고난 재능이 도전의 용기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해외에서 예선을 통과한 72명의 참가자의 경연이 본선 1차의 시작이었다.
경연 첫날 마음을 뺏긴 무대는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카운터테너 이동규였다. 카운터테너는 가성으로 여성의 음역인 콘트랄토나 메조소프라노를 노래하는 남자 성악가를 말한다. 그를 우리나라 카운터테너의 창시자라고 말할 수 있다며 심사를 맡은 프로듀서는 “왜 나오셨어요?”라는 말을 건넸다. 원하는 만큼 얻은 것 같다는 참가자는 혼자 하는 무대보다는 팀을 이루어 활동하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오페라 카르멘의 ‘하바네라’를 노래했다. 집시 카르멘이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오만하고 관능적인 표정과 목소리는 보는 이들을 소름 돋게 하였다. 숱한 수상 경력과 공연 이력, 마흔이 넘은 연륜이 주는 노련미가 무대를 더 사로잡았다. 또 한 사람은 국립 창극단 단원인 20대 젊은 소리꾼 김수인이다. 그의 ‘쑥대머리’는 애절하고도 강렬하여 보는 이들의 숨을 잠시 멈추게 하고 심장을 뜨겁게 달군다. 속절없이 바라보는 표정에서 알 수 있다.
첫날 눈여겨 본 두 참가자는 1차와 2차 경연에서 감동적인 공연을 하여 3차 경연을 치르고 있다. 김수인은 크로스오버의 본질을 살려 어떤 장르의 음악과도 효과적으로 융합하여 힘이 넘치는 무대를 연출하고 있으며 이동규는 팀원들을 가르치고 격려하며 이른바 ‘업계 레전드’의 면모를 음악으로 보이고 있다.
코로나19바이러스 방역이 풀리자 병원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일교차가 크고 미세먼지가 극성을 부려 감기가 낫질 않는다. 어린아이들은 입원이 다반사이고 어른들도 병원 드나드는 일이 예사롭다. 나도 한 달이 다 된 감기가 떠나지를 않는다. 날마다 ‘주의’를 되뇌고 눈 질끈 감고 쉬는 시간이 잦아진다. 그래도 코를 벌름거린다. 봄 냄새가 지천이다. 더구나 소름 돋도록 기분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요즘 나는 설렌다.
첫댓글
와, 팬덤싱어의 찐팬이군요.
글에서 언급한 대다수의 가수가 저는 모르는 이들이네요.
저는 드라마를 즐겨 본답니다. 하하.
저도 1년에 한 두 편은 보고 또 보고 합니다. 김은숙 작가라면 만사를 제친답니다. 그이의 대사는 시를 방불케 하니까요. 하하
아무리 많이 보아도 지나치지 않는 (아마 이 문장은 비문? 흐흐) 션샤인의 대사는 들을 때 마다 거의 기절합니다.
선생님! 세세한 설명 고맙습니다. 저도 몇번 들었는데 이해는 못 하고 귀로만 들었습니다. 이 글 읽고 더 아름다운 선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워낙 비문이 많고 맞춤법이 엉망이라 좋아하는 음악 프로그램에 누가 되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글을 쓰면 꼭 출력하여 낱낱이 뜯어 보고 고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가 내 안의 상처를 꺼내어 햇볕에 말리는 일이라면 음악은 그 부위에 약을 바르는 것이더이다.
선생님의 답글은 상처를 말리고 약도 발라주시는군요. 마음의 깊이와 폭에 감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