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우 작가가 <PEN문학> 2020. 3.4월호(vol. 154)에 동화 <물귀신>을 발표했다. 동화 물귀신 김현우
옛날 옛적 장개늪 옆에 있는 주막집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주인장! 주인장!” 쇠고기 국밥을 먹던 박 서방이 큰 소리로 주막집 주인을 불렀어요. 주인아주머니가 무슨 일인가 싶어 부엌에서 달려왔지요. 그릇을 씻던 물 묻은 손을 치맛자락에 닦으면서 물었어요. “감태골 아저씨, 김치 더 드려요?” “김치는 무슨!” 감태골 박 서방은 버럭 소리를 치고는 큰기침을 했어요.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술 푹 떴어요, 그리고 그걸 아주머니 코앞에 내밀었어요. “이, 이거, 뭐야? 이거 밥이라고 한 거야?” “왜요?” “왜라니! 눈이 있으면 똑똑히 봐! 밥에 이렇게 돌멩이가 많아도 되겠어?” “돌이라니요? 쌀을 씻으면서 돌이나 풀씨를 잘 골라냈는데?” 박 서방이 내민 숟가락에 든 밥을 내려다봤어요. 정말 하얀 밥알 속에 작고 까만 돌이 두어 개 들어 있었지 뭐예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장날 싸전에서 좋은 쌀을 사 왔는데…… 쌀을 씻을 때 잘못했네요.” 아주머니가 미안해서 고개를 숙였어요. 예전 그 시절에는 방앗간에서 벼를 찧으면 흔히 돌이나 풀 씨앗이 들어 있기도 했어요. 그래서 쌀을 씻을 때 모래나 돌을 걸러내려고 애썼어요. 흔한 일이니까 감태골 박 서방이 너그럽게 웃으면서 모르는 척해 주면 될 것을. 그게 아니었어요. 더욱 고함을 쳤어요. “뭐야? 돌이 없는 쌀을 사 왔다고? 아지매는 쌀장수에게 책임을 떠넘기는군.” “그, 그게 아니고…….” 감태골 박 서방은 쇠고깃국을 휘휘 젓더니 까맣게 생긴 뭔가를 찾아내 아주머니 앞에 디밀었어요. “이, 이거 뭐야? 조금 전 하나가 있어 건져내 버렸더니 또 있구먼.” “그, 그게 뭐예요?” 말다툼이 벌어지자 주막에서 밥을 먹던 손님들이 구경하러 우 몰려들었어요. 아주머니는 더욱 기가 막히고 어쩔 줄 몰라 얼굴이 붉어졌어요. 손님들도 감태골 박 서방이 국 속에서 찾아낸 새까만 뭔가를 들여다봤어요. 사람들이 서로 떠들었어요 “돌맹이는 아니군! 풀씨도 아니고!” “무슨 열매 같아. 쥐똥나무 열매인가?” 그때 감태골 박 서방이 버럭 고함을 쳤어요. 새까만 뭔가를 밥상 위에 올려놓으면서. “이, 이거 쥐똥이야. 쥐똥!” 사람들이 모두 놀랐어요. 아주머니는 기절할 듯 얼굴이 노랗게 변했지요. 쇠고깃국에 쥐똥이 들었다니! 보통 일이 아니었지요. 주막 주인 영감이 뒤에서보다 못해 나서며, “옜다! 감태골 박 서방! 밥값 안 받을 테니 트집 그만 잡고 그만둬! ” 하고 소리쳤어요. 국에 쥐똥이 들었다고 소문이 나면 큰일이니까요. “자자! 막걸리도 한 사발 줄 테니 쭈욱 마시고 이 일을 더 물고 늘어지지 말게나.” 주인 영감의 말에 박 서방도 못 이기는 척 남은 밥을 다 먹고 술도 벌컥벌컥 마시더니 천천히 일어났어요. “앞으로 조심하소. 내 영감과 더 싸우기 싫어서 그만둡니다. 국에 쥐똥이 들었다니! 어험!” 박 서방이 주막집 밖으로 나가버리자 그때 지켜보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지요. “감태골 저 사람이 물귀신이라더니 정말 물귀신이네. 멀쩡한 밥에 돌을 넣은 거야.” “뭐든 시비를 하고 물고 늘어져서 싸움질해. 그럼 꼭 이기고 말아서 물귀신이라 부르지.” “밥값 내지 않으려고 국에다 일부러 쥐똥을 넣은 거야.”
주막을 나선 감태골 박 서방은 공짜 밥에 맛좋은 쇠고깃국도 먹고 술도 한 사발 마셨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지요. 집으로 가는 길옆의 큰 늪인 장개늪을 지나면서 큰소리쳤어요. ―― 내가 누구야? 바로 물귀신이 아닌가? 물귀신 작전에 안 넘어갈 작자가 어딨어? 어어, 취한다. 공짜로 마신 막걸리가 독했던지 박 서방은 금방 다리가 휘청거리고 힘이 없어졌어요. 얼마 걷지 않아 앞으로 꼬꾸라졌어요. 길바닥에 솟은 큰 돌멩이에 발이 걸린 거지요. ―― 어어! 돌멩이에 걸려 넘어지면서 그만 길옆 늪으로 빠졌어요. 술에 취했으니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지요. 미쳐 ‘사람 살려라!’ 소리도 지르지 못했지요. 박 서방은 물속에서 누군가 호통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어요. 바로 눈앞에서 물거품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지요. 희미하게 뭔가 보였어요. “야! 이놈아! 네가 물귀신이라며? 정말 물귀신이냐?” 허우적거리며 박 서방이 대답했어요. “동네 사람들이 다 날 물귀신이라 불러요. 다, 당신은 누구요?” “야, 이놈아! 내가 바로 장개늪에 사는 물귀신이다. 감히 내 이름을 써먹다니! 고약한 놈이로고!” “허어! 그러니까 물귀신 형님을 만났군요. 반갑습니다.” “곧 죽을 놈이 날 보고 반갑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네가 지은 잘못을 뉘우치지 못하고 죽겠구나.” “제가 죽어요?” “참 한심한 놈이로고. 물에 빠졌으니 죽지 않고 살겠냐? 내가 진짜 물귀신이다. 닥치는 대로 사람을 물에 끌어들여 죽게 만드는 물귀신이란 말이다.” 그제야 박 서방은 덜컥 겁이 났어요. 정신이 확 들었지 뭐예요. “이놈아. 네가 돌아다니면서 물귀신 노릇을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물고 늘어져서 공짜 술에 밥을 먹었는지 아느냐?” “…….” “넌 이제 나한테 끌려들었으니 죽어야지. 그러면 나와 같은 진짜 물귀신이 된단 말이다.” 그제야 죽는다는 말에 그만 겁이 더럭 났어요. 급하게 싹싹 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고! 물귀신 형님. 살려주이소. 이제 살아서 나가면 물귀신 작전은 절대 안 하겠습니다.” “허어! 이제야 급하니까 비는구먼.” “당장 살아나가면 주막집 밥값과 술값을 싹 다 내겠습니다. 아니, 동네 사람들에게 손해 보게 한 것까지 싹 다 갚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그리 쉽게 살려 줄 듯싶으냐?”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용서를 빌고 빌었어요. 그렇지만 형님 물귀신은 그를 끌고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가려 했어요. 박 서방은 가기 싫다고 팔을 내저었어요. 그러다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지요.
“이, 이보게! 물귀신!” 누군가 고함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어요. “정신 차리게! 박 서방!” “죽고 싶으면 집에 가서 죽지 늪에 뛰어들어 죽어서야 안 되지.” 물귀신 박 서방이 넘어져서 장개늪 물에 빠질 때 뒤따라 나왔던 젊은이가 그걸 보았지요. “사람이 늪에 빠졌소!” 하고 고함쳐서 주막집에 있던 사람들에게 알리고 달려와서 물속에 뛰어들어 박 서방을 구했던 것이지요. 물을 많이 마셔 축 늘어진 박 서방은 죽은 듯 땅에 누어 정신을 한참 동안 차릴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이 달려들어 인공호흡도 시키고 물을 게워내도록 하자 이윽고 정신이 돌아왔어요. 박 서방은 정신을 차리고 앉으면서 희멀건 눈으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았어요. 주막집 주인 영감과 아주머니, 동네 사람들이 보였어요. 사람들은 속으로 겁을 내고 있었어요, 옛날 옛적에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놓으니까 ‘내 보따리 내놔라!’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에요. 틀림없이 주막집 술을 마시고 늪에 빠졌으니 주인 영감을 붙들고 물귀신 작전을 벌일 것이라 여겼어요. 아니나 다를까? 박 서방 첫 마디가 수상쩍었어요. “술이 독했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소.” 아아! 사람들은 속으로 혀를 찼어요. ‘또 주막집 영감 물고 늘어져 돈을 뜯으려 하는구나!’ 그때 박 서방이 벌떡 일어나더니 주인 영감과 사람들에게 엎드려 큰절을 올리는 게 아니겠어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이 박 서방의 큰절에 놀라 할 말을 잊었어요. 박 서방이 다시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어요. “다시는 물귀신이 되지 않겠습니다. 밥값 술값 다 내겠습니다. 영감님.”
김현우 약력 * 1964년 ‘학원’에 장편소설 당선, 동화집 『산메아리』 『도깨비동물원』 『나는 냐옹이야』 외, 소설집 『욱개명물전』 『그늘의 종언』 외 다수. 경남아동문학상, 남명아동문학상, 경남도문화상, 경남문학상 등 수상 동화가 실린 <PEN문학> 154호
|
첫댓글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는 자기는 더 큰 늪에 빠진다는 ......
회개해서 천만다행이네요~
재미있네요.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