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꽃 / 고정완
추석도 며칠 남지 않은 날 대구 백화점에서 택배가 왔다. 보낸 사람 이름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구에 아는 사람이 없다. 지난번에 택배가 와서 풀어봤다가 반송했던 일이 있어 살피고 살폈다. 풀어보니 체크무늬 삼단 닥스 우산으로 가방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예쁜 우산이다. 집에 우산이 많은데 누가 보냈을까….
우산을 보니, 어렸을 때 비가 오면 부잣집 친구는 종이우산을 받고 나는 포대를 반절로 접어 쓰고 학교에 다녔고 갑자기 비가 내리면 파란 비닐우산을 한 아름 안고 젊은이들이 뛰어다니며 ‘우산이요 우산’ 소리치며 팔던 모습, 친구와 함께 우산 받고 가면 시샘하는지 바람이 살짝 건드려 뒤집어 놓고 달아나 비 맞고 걸었던 일회용 우산, 아버지는 짚으로 엮은 도롱이를 입고 논에 나가 일하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비 오는 날이면 학교 골목길은 비 꽃이 핀다.
빨강 노랑 파랑 무지갯빛 우산이 피어나 꽃동산을 이룬다.
♪♪우산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란우산 빨강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 대며 걸어갑니다.♪♪
아이들과 부르던 노래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우산은 중국의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 전 주나라 때 만들어졌고, 왕은 빨강색, 신하들은 파랑색으로 구별하여 사용한 것이 서양으로 전해졌다. 우산은 라틴어로 그늘을 뜻하는 ‘움브라 (umbra)’에서 유래되었다. 귀족들이 태양을 피하기 위해 최초로 사용하여 지위와 부의 상징이었다. 기원전 1200년경 이집트에는 귀족 계층만이 우산을 사용 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우산은 나약한 사람이 사용하는 것으로 간주 하였다.
우리나라는 구한말 개항 이후 선교사들에 의해 우산이 도입되었으며, 1950년대까지는 부유층의 상징물이었다가 60년대부터 대중화되었다. 종이우산은 현대의 비닐우산이 등장하기 전 대나무 살에 기름 먹인 종이를 이용해 만들었다. 종이로 만들어져서 비 한 번 맞으면 바로 찢어질 것 같은데, 한지는 워낙 질긴 종이인데다 물과 섞이지 않는 기름을 발라 내구성과 방수성을 높여서 의외로 오래간다. 비를 맞으면 펼쳐서 바싹 말려야 오래 사용할 수 있다. 요즈음은 장식용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전주 지우산 마을은 196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지우산을 만드는 공장이 35개로 가내 수공업이 번창했다. 가까운 담양에서 나오는 살의 재료인 대나무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전주에서 질 좋은 한지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한지 우산 제작이 활발했다. 대나무와 청비닐로 만든 우산이 나오고, 값싼 중국산 우산이 판을 치면서 지우산 만드는 집은 한 곳만 남았다. 윤규상 명인이 명맥을 유지하고 전북무형문화재 45호로 지정받아 활동하고 있다.
프랑스 최고 명예 훈장을 받은 우산장인 미셸 오르토(michel heurtault). 20살 시골에서 파리로 상경한 한 남자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우산과 양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갖고 싶은 우산 양산을 사기 위해서 파스타(면)만 먹으면서 돈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오래되어 가치가 있는 우산, 양산은 서른 살 때 800여 점에 이르더니, 50대가 된 지금은 3천 여 점이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우산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이렇게 우산을 분해하고 해체하며 행복했던 여덟 살의 소년은 우산을 복원하고 제작하는 세계 유일무이한 장인이 되었다. 얼마 전 전시<summer bloom 여름이 피다>를 위해 내한한 우산 장인의 실화다. 중고품 우산을 복원하거나 예술 같은 우산을 제작하는 미셸 오르트는 실력과 장인정신을 인정받아 2013년, 프랑스 문화부가 최고의 장인에게 수여하는 마티에르 아트 maitre d’art를 받았다.
우산을 선물한 사람은 손녀 예나였다. 비 올 때 마트를 가는데 할아버지 우산이 구멍이 났더란다. 생일 선물로 새 우산을 사드리고 싶어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더니 대구백화점에 예쁜 우산이 있어 주문했고. 생일 축하 편지도 보냈다.
“모세 나이까지만 살아 주세요, 예나를 3년 동안 사랑으로 키워 주어서 감사합니다.”
어렸을 때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치과 의사가 되어 할아버지 이를 치료해 주겠다고, 10원 100원 500원 동전과 천원 오천 원 모은 전 재산을 할아버지 용돈이라 준다. 바닷가에 가면 조개껍데기도 주워다 주고 괌에 여행가서는 야자나무가 그려진 고래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어 항상 예나 생각을 하며 사용한다. 제 엄마와 함께 가방도 선물하여 서예와 수필 공부하는데 잘 메고 다닌다.
우산은 맑은 날에는 아무렇게나 팽개쳐 있지만, 비 오는 날에는 누군가에 들림을 받아 활짝 핀 얼굴로 기꺼이 지붕이 되어 준다. 노란 우산 초록우산 민들레처럼 더 멀리멀리 날아 비를 맞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위안이 되었으면…….
[고정완] 수필가. 2006년《대한문학》등단.
전북문협 전북수필 행촌수필 대한문학작가회
* 수필집《백두산 천지에 손을 담그고》
봄 가뭄이 제법 긴데요. 선생님! 우산 쓰고 외출하고 싶어서 비 기다리시는 것 아니세요?
사려 깊고 마음씨 예쁜 손녀 예나 자랑을 하시는 거죠? 그래요. 자랑하실 만하네요.
우산이 만들어진 경위와 색깔로 신분 구별이 되었던 점. 구두가 지위와 부의 상징이듯, 살기 어려웠던 그 옛날에는 우산도 마찬가지였네요. 우산이 대중화되어 참 다행이구요. 각 분야 최고의 호칭이 ‘장인’일 듯해요. 한 분야에 골몰해서 이룬 성스러운 칭호죠. 그나저나 저도 비가 기다려져요. 가뭄이 너무 길어서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가뭄에 비꽃을 읽었으니 비가 올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