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 (1745 ~ 1806?(또는 1810?))
영조 21년에 태어나 정조24년을 지나 순조6년(1806라고 할때)까지 활동.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첩취옹(輒醉翁) 등.
스승 강세황(姜世晃)의 천거로 도화서 화원(圖畵署畵員)이 된 뒤
1771년(영조 47)에 왕세손(뒤의 正祖)의 초상을 그렸고,
1781년(정조 5)에 어진화사(御眞畵師)로 정조를 그렸다.
아울러 스승 강세황과 함께 그린 송하맹호도(소나무 아래 호랑이)가 유명하다.
*"김홍도는 분명 일본에 간 적이 있다"라는 이야기는...
1788년 스승 김응환(金應煥)이 왕명을 받고 몰래 일본의 지도를 그릴 임무를 띠고 떠날 때 그를 수행, 부산까지 갔으나 김응환이 거기서 병으로 죽자 홀로 쓰시마섬[對馬島]에 가서 일본 지도를 모사(模寫)해 가지고 돌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김응환 가계(족보)에 있는 이야기로 현재로서는 신빙성을 얻기에는 불충분한 요소가 많다고 함.)
*알려지지 않은 그의 죽음.
조선시대 하급관리인 단원의 죽음이 정확히 전해지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따라서, 앞서 글에 언급한 단원에 대한 일본 '작가설'이 있기도 하는데, 현재로서는 국내에서 살다가 간 것이 가장 유력하단다. (단원 김홍도 - 오주석)
하지만, '그가 평생 조선에만 살다 갔다'라는 증거가 명확하게 없는바,
'샤라쿠'와 같은 재밌는 상상은 해볼만 하다. '다빈치 코드'처럼.
그가 판화를 제작했던 사실이 있기 때문에.
평민으로 스스로의 노력과 타고난 재주로 왕의 어전을 세번이나 그려 최고의 권세(종6품 현감직)를 얻었던 그였지만,
특별히 돈을 탐하거나 관리를 잘하지 못했으므로 말년이 외로웠다는 내용은 그의 아들과 주변의 지인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