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 높은 알부잣집의 고명딸, 그것도 아리따운 아가씨를 차지할 수 있었으니…
K는 뜻하지 아니한 행운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소리 없이 한 십년 잘 살기만 한다면…
그 모든 재산이 다 어느 곳으로 가겠는가?
그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다.
머리 회전이 참으로 빠른 K는 실권자인(?) 장모님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 입에 대지도 못한다던 토속 음식들, 그 맛을 칭찬하는 일을 시작하더니만 이내 장모님의 마음에 꼭 들게 되었다.
냄새만 풍겨도
“애그, 무서워라!”고개를 돌리던 그가 장모님의 된장국, 된장찌개 맛을 밤낮 없이 노래 처럼 읊어대다니…
그가 워싱턴에 유학을 하게 된 것도 장모님의 배려였고, 보기 좋은 주택을 하나 세내어 살게 된 것도 순전히 장모님 덕분이었다.
그는 장모님께
“어머님의 된장 맛은 최고” 라고 하기만 하면 만사가 그저 오케이였다.
워싱턴에 장모님이 다니러 오셨을 때 첫날 저녁부터 그는 은근히 장모님의 된장 솜씨를 화제에 올렸다. 그리고는 쉴 새 없이 졸라대었다.
“어머님! 어머님의 된장 맛을 잊지 못해 죽을 지경이라구요. 꼭 된장 좀 담가 주고 가세요.”
대한민국도 아닌 미국에서 꼭 이래야만 한단 말인가?
된장찌개 끓이다가 경찰에 신고되고, 환풍기 구멍을 다른 쪽으로 돌려 놓으라는 즉심 판결에 멀쩡한 벽 까지 뚫었다는 어느 교포의 이야기도 듣지 못하였는가?
이제는 옛날 같지 않아 대형 수퍼에 가지가지 메이커의 된장 쌈장 고추장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데 그게 무에 그리 필요하단 말인가?
K의 아내는 남편의 너스레와 어리광이 밉지 않아서 그냥 지켜 보고 있었다. 장모님은 연 사흘을 부산스럽더니 기어이 커다란 장독 까지 사다가 한 말이나 되는 된장을 담가 놓았다.
막 첫 아기를 임신하여, 그 냄새가 무척이나 거슬리던 그녀였지만 잠자코 두 사람의 하는 일을 보고 있었을 뿐…
장모님은 새하얀 나일론 망사로 된장 독의 아귀를 싸고 고무줄로 단단히 동여매었다. 그리고선 거퍼 일러 주었다.
햇볕에 바짝 달궈야만 된장이 노르스럼 잘 익어 제 맛이 난다며…
그것이 젤로 중요하다며…
장이 맛있게 익을 때 까지 머물러 지켜 보아주지 못함을 못내 아쉬어 하면서 장모님은 귀국 길에 올랐다.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국제 전화로 입덧이 심한 딸의 안부를 묻기는커녕, 된장의 안부 만을 염려, 또 염려하는 것이었다.
긴 여름 날의 따끈한 햇볕을 받고 된장은 맛있게 익어 갔다.
어느 하루 그녀가 남편에게 빗물이 들어가지 않게 장독을 지키고, 해질 때 쯤 뚜껑을 잘 덮어 두라고 신신 당부를 하였다.
그러마고, 그러마고 대답이 썩 활달하던 그 남편을 믿고, 여기 저기 볼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이게 웬 일인가!. 장독 뚜껑은 활짝 열려 있고 저녁 나절 잠간 내린 소나기가 한 바가지 만큼이나 들어가 있지 않은가?
기가 막히고 속이 부글거렸지만 이미 쏟아진 물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녀는 참았다.
어찌 어찌 물을 따라 내고, 소금을 뿌려 잘 동여매 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 장독 가장 자리에서 고자리 한 마리가 고물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에구머니나!”
그녀는 혼비 백산, 장독 속을 들여다 보았다.그 속에 생각지도 못한 고자리들이 어느 새 군집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 줄을 몰랐다. 두 집 건너 한국 할머니 한 분이 사시기는 하지만 새댁 이 칠칠치 못하다고 소문만 무성할 것 같아 말씀도 못 드리고 혼자서 이 궁리 저 궁리 하였으나…
“에라 모르겠다. 마당에 파묻어 버리지 뭐!”
남편에게 알리기도 뭣하고 하여, 새댁은 혼자서 앞 마당의 커다란 해 묵은 은행나무 둘레를 힘들여 파고 그 속에 적지도 않은 된장을 쏟아 붓고 말았다.
긴 겨울이 다 가고 앞 뜰에 쌓여 있던 눈이 반 만큼은 녹아 내리고 수선의 싹이 땅을 뚫고 뾰족뾰족 솟아 나던 어느 날,
“이제 머잖아 봄이 오겠지!”
하며 창 밖을 무심히 내다보고 있던 그녀의 눈에 저 만치 은행나무 밑둥 옆에 전에 못 본 럭비공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저게 뭘까?”
그녀는 그것을 자세히 보려고 창으로 가까이 눈을 가져 갔다.
“이상도 하네! 이웃 집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였는가?”
다시 한 번 눈길을 주었으나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마당에 나가 볼 밖에…
그녀가 은행나무를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다가 가고 있을 때,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그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꿈틀” 하고 움직인 것은!
“꿈틀꿈틀… 뒤뚱…”
“으악!”
그녀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땅 바닥에 쓰러지고야 말았다.
이 날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생소한 짐승…
옆 집에 사는 구척장신의 럭비 선수 아저씨(?)가 달려 나와 럭비공(?)을 껴 안았다. 그제야 겨우 정신을 수습한 우리의 그녀! 그만하여 정말 다행이었다.
삽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고 …
모두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정말 놀랍다는 듯이 쥐 꼬리가 달린 럭비공을 둘러 싸고 그녀가 알아 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저마다 한 마디 씩, 떠들어 대었다.
무리를 이룬 많은 사람들!
그들은 의아해 하고 놀랄 뿐, 어느 누구도 사태를 풀어내지는 못했다 .
다만 한 사람, 기절하기 직전이었던 우리의 그녀!
그녀 만이 확실한 진상을 알 수 있었을 뿐…
겨우내 쥐 한 마리가 먹이가 궁한 터에 그녀가 묻어놓은 된장을 요긴하게 다 먹었던 것, 거기에다 양질의 단백질, 고자리 까지…
럭비선수 아저씨가 그리 놀란 기색도 없이 럭비공을 안고 가 버린 후, 한참 동안 그녀는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노라 애를 썼다.
첫댓글 야, 꼭 꽁트같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실은 축구공만 했는데... 믿으시기 힘드실 것 같아서...크기를 좀 줄였답니다. 감사합니다.
아휴! 그 꼬리달린 럭비공이 등장인물 그 남편보다 더 큰 행운을 잡았네요. 된장 한 독을 다 먹었으니, 뒤뚱거리며 어떻게 살아갈꼬!
진짜 있었던 일인가요? 으음.... 대단히 엽기적인 이야기네요!
동네 아저씨가 삽을 들고 살금살금... 이쯤 되면 메나리님 너무 놀라시지 않을까 하여...저는 그저 기절해 있었던 것으로 다행(?)이었어요. 메나리, 들과 산에 피는 야생 나리꽃인가 생각했는데요. 맞나요?
그게 아니구요... 내가 우리 민요를 잘 부른다나 어쩐다나... 그러면서 우리 샘이 지어주신 이름이 메나리(민요의 한 종류을 일컷는 말. 주로 농부들이 부르는 농요의 한 가지.)랍니다. 설명하고 보니 내자랑 같네요. 쪼매 부끄러버질라 캅니당...
비행기 타고 날아가걸랑 꼭 들려 주셔요. 샘님을 비롯하여 모든 회원님들 가창실력, 대단할 것 같습니다. 제 짐작이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