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하며 살 일만 남았다.
박래여
마당도 겨울 빛이 난다. 마른 잔디밭에 떨어진 나뭇잎도 가녀린 가지를 드러낸 느티나무도 샛노란 모과도 시나브로 모습을 바꾼다. 은행 알이 뚝뚝 떨어져 구린내를 풍기던 삽짝도 노란 은행잎이 곱게 쌓여있다. 찻잎은 여전히 푸르고, 차 꽃은 순백의 자태를 드러낸다. 텃밭의 무와 배추 역시 속을 너무 채우는 것 같아 슬슬 불안하다. 김장을 일찍 해 치워야 할까. 농부는 김장 적게 하라고 노래한다. 김장하는 일이 중노동임은 익히 알면서도 농부의 말에 대답을 안 한다.
큰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배추와 무가 얼마나 필요한지 물었다. 대수술 후 건강이 안 좋아진 언니는 김장을 망설인다. 우리 김장할 때 넉넉하게 해서 한 통 보내주면 좋겠단다. ‘잘 생각했어. 김장 하지 마. 언니 몸만 생각해. 맛집 찾아 사 먹으면 돼.’했다. 솔직히 나도 김장이 겁난다. 시집 온 이래 백 포기가 넘는 김장을 했었다. 동치미, 백김치, 무청김치, 깍두기 등등, 내가 젊었을 때는 시어머님과 둘이 시동생 네 김장까지 했었다. 고추농사, 마늘농사, 파농사, 양파농사, 김장하는데 필요한 양념도 농사지은 것들로 해결했었다.
농사일이 많으니 일꾼 쓸 일도 많았다. 대식구 모이는 날도 잦았다. 김장 퍼낼 일도 많았다. 김장을 아무리 많이 해도 남아나지 않았다. 시어머님과 나는 몇날 며칠을 준비하고 다듬고 씻고 버무려 넣는 일로 파김치가 됐었다. 시어머님도 나도 나잇살 늘면서 김장은 한 해가 다르게 줄었다. 시어머님이 노인이 되자 농부가 도왔다. 김장이 힘들어지면서 시동생 네는 직접 김장하라고 했다. 농사를 줄이니 일꾼 쓸 일도 없어졌다. 손님 칠 일도 적어졌다. 지난해는 동치미는 조금만, 무청김치 한 항아리와 배추 서른다섯 포기 정도 김장을 했지만 아직 묵은지를 먹는다.
텃밭의 김장배추를 볼 때면 걱정이 앞선다. 저걸 어떻게 하지? 농촌은 집집마다 김장거리를 심는다. 촌부의 손은 넉넉해서 김장거리가 넘친다. 요즘은 절임배추가 대세다. 여자들이 힘든 일을 멀리하는 것도 나이 탓이다. 몸의 기운이 약해지니 중노동이 겁나는 거다. 김장은 중노동이다. 나는 아직 절임배추를 주문할 마음도 없고 사 먹는 김치를 먹을 마음도 없지만 김장은 마지막 한 해를 마무리하는 큰일임에는 틀림없다. 올해는 시댁 김장도 필요 없다는 것을 안다.
남은 배추를 어떻게 할까. 생각 같아서는 도시 사는 친구에게 김장을 담가 보내고 싶으나 자신이 없다. 예전에는 누가 김치 필요하다면 바리바리 싸서 보내기도 잘 했다. 그때가 새삼스럽게 떠올라 빙긋 웃는다. 젊음이 좋다는 것을 생각한다. 이미 가버린 세월의 잔해를 뒤적거리며 미소 지을 수 있다는 것, 고맙지 뭐.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누구 배추 필요한 사람 없을까? 우리 고장은 가뭄이 심해 속 찬 배추가 귀하다는데. 아랫말 친구에게 물어봐야지.
몇 년 전부터 절임배추가 대세란다. 적당히 절여서 씻어 보내주는 배추에 고유의 양념만 바르면 된다. ‘무시 배추 심을 필요 없어. 절임배추 주문하면 돼. 김장하기 참 쉽더라.’는 주부가 는다. 배추에게 묻는다. ‘너희들 내년에는 심지 말까? 나도 절임배추 사다 김장해 볼까? 아니다. 농사지어야 푸지지. 약도 안 치는 우리 집 배추 같겠어? 우거지도 하나 버릴 필요가 없는데. 다른 말 할 필요 없이 푸지잖아. 키우는 재미도 쏠쏠하고. 이렇게 잘 자라주는데. 어찌 사다 김장을 하겠어.’ 톡톡 푸른 배추를 두드려준다.
시어머님 말씀이 맞았다. 둘이 사니 음식이 굴지 않는다. 반찬거리가 있어도 반찬을 만들기 귀찮아 방치하기 일쑤다. 예전에 시댁 살림을 살 때다. 실컷 시장 봐다 정리해 놓고 시댁을 나오며 ‘어머니, 생미역 삶아 씻어놨으니 저녁에 꺼내 드세요. 고추장도 있어요. 꼬막은 양념만 바르면 돼요. 양념장도 만들어 놨어요. 냉장고에 생선 있으니 한 마리씩 굽기만 하면 돼요.’ 그래놓고 집에 오지만 번번이 버릴 것이 많았다. 어머님은 아예 냉장고 문을 열기 싫어했고, 아버님은 그런 어머님을 못 견뎌 하셨다.
시어머님은 함께 살길 원했다. 삼시세끼 며느리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싶어 했다. 새댁 일 때 그렇게 살았던 기억 때문일까. ‘우리가 머 무 샀나. 밥 채리 묵고 가든가.’ 점심 때 가면 저녁까지 먹고 가라 했다. 두 집 살림을 참 오래 살았다. 두 어른이 팔십을 넘기면서 시댁 살림은 내 살림이 되었고, 나는 농사와 두 집 부엌살림을 살다시피 했다. 힘들고 고단할 때마다 내 몫은 하고 살아야지. 마음을 다졌고 그 과정을 푸념하듯 글로 풀어냈다. 두 어른이 아흔을 넘기면서 며느리 자리는 더 힘들어졌고 가능하면 짐을 벗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올해 시부는 먼 길 떠나시고 시모는 요양원에 계신다. 마음의 짐을 덜긴 했다. 두 집 살림 사는 것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내 삶을 살고 싶었다. 남은 인생 쓰고 싶은 글 원 없이 쓰다 죽을 수 있길 바랐지만 참 요원하다. 예전처럼 뜨거운 열정도 사라지고 사물을 대하는 것도 신선함보다 익히 알았고 몸에 밴 습성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억지로라도 부름에 응해야 할 때의 고단함도 없지만 뭔가 허전하다. 치열함이 사라져버린 자리라서 그럴까. 올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이 그렇다. 느슨함. 이젠 내 차례가 오고 있다는 자각이랄까. 감사하고 고마워하며 살 일만 남은 것 같다.
첫댓글 저는 올해 직접 배추와 무 농사를 지어서 김장 했습니다. 50포기 쯤 김장했는데 무와 배추를 너무 많이 심어서 이 엄동에 아직도 그대로 밭에 남은 게 상당 합니다. 배추는 검정 비닐봉지로 빵모자 처럼 덮어 씌워 놓았는데 얼지 않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무는 이미 다 얼었고 .
달라는 사람들 간혹 있기도 하지만 무 뽑아서 가져다 주는 일도 여간 힘들지 않아서 그냥 밭에다 내버려 두었습니다. 음식을 그냥 내버리는 듯하여 마음이 짠 합니다. 흔한 것은 아무도 고마워 하지 않는 세상이니 뭐 그거라도 고마워 해야겠습니다.^^
무는 진작 뽑아서 저장하시지 그랬어요. 아이스 박스에 못 쓰는 이불 한 장 깔고 무청을 떼어 시래기로 처마밑에 걸면 되고 무는 신문지로 싸서 차곡차곡 넣어두면 내년 봄까지 두고 먹을 수 있어요. 배추도 그래요. 아이스박스 창고에 두고 한겨울에는 헌이불 하나 더 덮어두면 새싹이 나요. 오랫동안 밭에 구덩이를 파고 무를 무를 묻어두고 먹었는데. 아이스박스에 넣어놔도 바람 안 들더라고요. 배추도 봄까지 싱싱해요.^^ 나이들면 주변에 나누어주는 것도 힘에 부쳐요.^^ 내년에는 조금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