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로 전팽조를 기록하다.(記松老全彭祖)
공의 성은 전(全)이고 자는 백로(伯老)이며 호는 송로(松老)이니 정덕(正德) 기묘년(1519)에 생원시에 올라서 구성교수(龜城敎授)를 역임하였고 관향은 옥천이며, 그리고 고려말엽 충의신이고 판도판서를 역임한 숙(淑)의 현손이다. 조(祖)는 성화 갑자(1468)에 무과에 올라 석성현감을 역임하고 가선대부(종2품직)에 추증된 효순(孝順)이고, 부(父)는 이조참판에 추증된 응경(應卿)인데, 진사 거창(居昌) 신호겸(愼好謙)의 가승(家乘)에
“공은 효행이 있고 문명(文名)이 일찍 나타났는데, 나이 23세에 졸(卒)하여 공명(功名)을 이루지 못했다.”
고한 응경(應卿)이다. 첫째 아우 팽수(彭壽)는 문과에 올라 숙천부사(肅川府使)를 역임하였고, 둘째 아우 팽령(彭齡)은 문과에 올라 가선(嘉善)에 오르고 상주목사를 역임하였으며 염근(廉謹, 청백리의 이명(異名))에 선정되었다.
공은 3형제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으므로 조부의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공은 두 아우와 같이 학업에 진력하였는데, 말째인 송정이 먼저 사마(司馬)와 문과에 올라 관직에 나갔고, 다음은 중제(仲弟)인 팽수(彭壽)가 사마시와 문과에 올라 관직에 나갔다. 이는 모두 공의 조력(助力)의 덕분이다. 그러므로 시를 읊는다.
麗末顯於節義家 /고려 말에 절의로 나타난 집안인데
采地管城美名佳 /채읍 관성에서 아름다운 이름 있었네.
先父早去兄弟幼 /부친께서 먼저 돌아가고 형제는 어렸는데
盡力學業朝鮮華 /학업에 힘을 써서 조선에서 빛을 발하였다네
공이 노년 시에 금강 상류에 압구정(鴨鷗亭)을 짓고 문인들과 같이 시를 짓고 학문을 논의하면서 우유(優遊)하였다. 그러나 공께서 돌아간 지 500여 년이 지났으니 오늘날 남은 글은 모두 없어졌고 남긴 말씀도 또한 모두 없어져서 자세한 행적은 알지 못한다.
이후에 증손 식(湜)은 호가 사서(沙西)이니 서애 유성룡과 여헌 장현광을 사사하고 문과에 올라 자헌대부(정2품)에 오르고 대사헌 및 예조참판을 역임하였으며, 시(諡)는 충간(忠簡)이고, 현손 규천(虯川) 극항(克恒)은 문과에 올라 예문관 검열 시에 호란을 당하여 어가(御駕)를 호송하고 남한산성에 올랐는데, 군왕(인조)의 명으로 궁궐에 돌아와서 도성을 지킨 지 수 일에 순절하였으니, 슬프다. 위 글이 공의 대략을 적은 글이다.
병오년 소서절 전3일 16대방손 홍산(鴻山) 전규호(全圭鎬)는 삼가 기록하였다.
◌記松老全彭祖
公姓全 字伯老 號松老 正德己卯 中生員 歷龜城敎授 貫沃川 而麗末忠義臣及版圖判書全淑之玄孫也 祖 成化戊子 登武科 行石城縣監 贈嘉善孝順 而父贈嘉善吏曹參判應卿 而進士居昌愼好謙家 家乘曰 公有孝行 文名早著 而年二十三年卒 未就功名應卿也 一弟彭壽 登文科行肅川府使 而二弟 彭齡 登文科 陞嘉善行尙州牧使 而選廉謹也 公三兄弟幼時父先亡故祖父膝下而成長也 公與二弟 學業盡力 而季弟彭齡先中司馬試及登文科而出官 次仲弟彭壽中司馬及文科而出官 此皆公之助力之餘 故吟詩曰 麗末顯於節義家 采地管城美名佳 先父早去兄弟幼 盡力科業朝鮮華 公老年時 於錦江上流築鴨鷗亭而 與騷客吟詩論學 而優遊 然公去五百餘年 而今餘文皆失傳 傳言亦如 故細細事蹟 不知也 以後 曾孫湜號沙西 師西厓柳成龍與旅軒張顯光 而登文科 陞資憲 行大司憲及禮曺參判 諡忠簡也 玄孫虯川克恒 登文科 禮文館檢閱時 當胡亂 登扈駕南漢山城 而依君命還宮 守城中數日 而殉節 惜乎 此書則公之大略也 丙午 小暑前三日 十六代傍孫 鴻山 全圭鎬 謹識
* 전팽조(全彭祖, 1476~1535) : 자는 백로(伯老)이며 호는 송로(松老)이고 관향은 옥천이다.
1519년 생원시합격. 1534년 평안북도 구성교수(龜城敎授) 역임. 증통정대부 승정원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의재 정원건(懿齋 鄭元鍵)이 찬한 행장이 있다.
*** 조선시대 전팽조선생이 지은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의 압구정(鴨鷗亭)은 현재 정자는 남아 있지 않지만, 마을 이름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마을 입구의 유래비에는 오교탁 선생이 지은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傳說賦(전설부)
龍頭山下 鴨鷗亭(용두산하 압구정)/용두산 아래 압구정
亭無痕迹 傳說遺(정무흔적 전설유)/정자는 흔적도 없고 전설만 남았네.
錦江淸水 不變流(금강청수 불변유)/금강 맑은 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前野古今 飛鳥樂(전야고금 비조락)/앞 들에는 예나 지금이나 새가 날아다니며 즐겁게 노니네.
**** 전응경(全應卿)은 아들 셋이 있는데 3형제 중 첫째인 전팽조(全彭祖)는 금암리에 압구정(鴨鷗亭)을 지어 학문을 논했고, 전팽수(全彭壽)는 적하리 용죽에 취원정(聚遠亭)을 지어 학문을 논했으며, 전팽령(全彭齡)은 금암리에 양신정(養神亭)을 지어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했다고 한다. 현재는 양신정만 존재한다.
2026년 7월 4일 작성자 : 옥천전씨 판서공파 이사 전재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