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의 역동성은 운영자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각 방장 즉 게시판지기는 소중한 자원이다.
군에서는 소대장,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이 그러하다.
그러나 지휘관이 없을 땐 고참이 지휘하게 된다.
그래서 짬빵(ㅎ)을 이야기한다.
엉뚱한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나의 양띠보다 두 수 위인 뱀띠방의 방장이 물러났다.
그거야 개인사정이겠지만 아쉽다.
언젠가 노래동호회에 나가봤더니
어떤 여성회원이 내 앞을 스쳐가더라.
"이여인은 누구신가...?" 했더니 초상비 님이
"우리 카페 3대 미인 중 한분을 모르시다니요?"
그러더라.
물론 웃자고 해본 소리겠지만
나도 다 알고 웃어보려고 했던 소리였는데...
그 여인을 지난 시월 초하루에 어느 연회장에서 만났다.
그게 위 포스팅의 여인인데(초상권 양해 앙망 ㅎ)
다시 뱀띠가 생각나서 지난 글을 소환해본다.
나는 뱀띠가 싫었다
시골 동산 밑에서 자란 나는 읍내의 중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하지만 무려 10 킬로미터의 신작로를 걸어 다녀야 했다.
그런데 3학년 반장인 신복이가 나를 어떻게 봤는지
주산반에 들라고 강요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주산(珠算) 연습을 하고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
고개를 넘을 때마다 무서워서 원망하기 일쑤였다.
그 선배가 바로 2년 위인 뱀띠였는데
그래서 나는 뱀띠가 싫었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배 덕분이었던지
상급학교에 진학해서는 호산, 독산, 암산 모두 장원메달을 땄다.
중학을 졸업하고 남녀공학인 멀리의 K 사범에 진학하게 됐는데
중학 여동창인 예쁜 윤이와 함께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방학을 맞아 집에 갈 때나 방학 마치고 하숙집에 찾아들 때
어쩌다 버스정류장에서 눈 마주침만 했을 뿐이었다.
왜 그리 못났던지...
당시는 각 학교에 패권을 놓고 다투는 학생클럽들이 많았는데
나는 보호막을 찾기 위해 그랬던지
제일 세다는 Y고의 클럽회장이 든 집으로 하숙집을 옮기게 됐다.
그런데 그 회장이 윤이의 근황을 자꾸 묻는 거였다.
벌써 각 학교 예쁜 여학생들의 정보를 다 꾀차고 있던지
식구는 어떻게 되느냐, 잘 사느냐면서 별 걸 다 묻는 것이었다.
그것 참!
그 회장이 뱀띠였는데
그래서 나는 뱀띠가 싫었다고 하는 것이다.
K 사범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해 대전 지역 부대에 배치받았을 때다.
얼마 있지 않아 중학교 후배이면서 윤이 동생인 윤민이도 배치받아 왔다.
그러니 지극정성으로 돌봐줄 수밖에 없었다.
중학교 후배니까...
어느 크리스마스 날, 선임병들은 모두 외출하고 난 뒤에
나는 졸병 몇몇과 함께 내무반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제일 믿을 만하고 만만했던 모양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애인이 없으니 면회 오는 사람 하나 없어
졸병들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는데
면회실에서 갑자기 어떤 여성이 면회 왔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박수를 받으며 면회실로 막 뛰어갔는데, 야 참!
그건 K 사범 동창 윤이가 예쁜 여선생이 되어 떡보따리를 들고 온 것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런데 설레던 마음도 잠시,
그 뒤에 건장한 공군소위후보생이 제복을 입고 떡 나타나
악수를 청하는 거였다.
그리곤 이등병인 나의 후배 윤민이가 그 뒤에 나타나고
그 뒤에 윤이의 어머니가 나타났다.
그것 참!...
그 공군소위후보생이 바로 나의 중학교 2년 선배 신복이었는데,
결국 나와 윤이, 윤민이, 신복이는 중학교 동문이었지만
저들은 약혼관계에 처남매형 사이였고, 나만 홀로였던 셈이었으니
그래서 또 뱀띠가 미웠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서울에서 K 사범 동창회라도 열라치면
대전에 사는 윤이는 제일 먼저 나에게 달려오곤 하니
그보다 더 반가울 순 없다.
나의 막내삼촌이 나보다 두 살 위이다.
또 중학교 때의 일인데
교과서 값을 미리 내고 정산 후 나머지를 돌려받을 때의 일이다.
그걸 아버님께 갖다 드려야 하는데
삼촌도 그 돈을 돌려받고는
“너 얼마 받았어?”하고 다그치는 거였다.
그래서 그 돈을 모두 내놓고
함께 비과를 사서 까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데
너무 달치고 이가 아파서 혼나 원망스러웠던 기억이다.
그 삼촌이 뱀띠였으니
그래서 나는 뱀띠가 미웠다고 하는 것이다.
나의 초등학교 동창녀들은 거의 일찍 도회로 나갔다.
그런데 한 여성만 시골에 남아있었으니,
중학교도 못 들어간, 시골 훈장님의 딸로 참 곱게 생긴 영자였다.
객지에서 나돌다 시골에 내려가면 그 영자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골에 남아있는 반반한 처녀들이 없었으니
영자는 자연 신데렐라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막내삼촌이 결혼한다고 기별이 왔다.
내려가 보니 신부가 바로 그 영자였던 것이다.
그것 참!...
그래서 나는 뱀띠가 미웠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골에 내려가 초교 동창모임이라도 하노라면
남들이 뭐라든
나의 숙모가 된 영자는 나의 팔짱을 끼며
“조카님! 조카님!” 그러신다.
물론 이것들은 나와 뱀띠와의 우연한 인연이었지만
한 살 위 말띠와는 늘 다투고 경쟁해 온 것과 달리
뱀띠 그늘에서 배우고 성장했으며,
그들이 허물을 벗을 때 나도 허물을 벗는 방법도 배웠으니
나도 내 후배들에게 허물을 벗어내는 모습이라도 보여주며 살고 싶다.
띠 이야기를 더 해보자.
나폴레옹이 전쟁터에 나갈 때면
으레 푸른 띠를 두르고 만토를 걸쳤다 한다.
만토를 걸친 것이야 위엄을 보이려고 그랬겠지만
푸른 띠를 두른 건 왜였을까?
그건 바지가 내려가면 거시기가 나올까 봐 그랬을 텐데
거시기라면 2차 대전의 영웅 처칠의 일화도 유명하다.
어느 날 처칠이 연설을 하고 있는데
여비서가 보니 바지의 지퍼가 내려졌더란다.
그래서 “각하!, 지퍼가...” 그랬더니
처칠의 하는 말이
“죽은 새는 새장 문을 열어놔도 날아가지 않는다네.”
그랬다는데,
거시기라면 또 나폴레옹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그의 거시기를 지금 유물전시관에 보관 중인데,
그게 그렇게 작다고 하던가.
아마도 그건 작은 고추가 맵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은데
세계경제의 사이클이 위축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하니
이젠 곳곳마다 실없이 덩치만 키울 게 아니라
허리띠 졸라매며 축소화하고 축소화하면서
실속이나 찾아갔으면 좋겠다.
묵은 허물은 뱀처럼 벗어버리면서 말이다.
남성 휴게실의 신사들이시여!
가끔은 너스레도 떨어보는 겁니다.
첫댓글 굳모닝 하하하 지금 사진 여성분이 뱀띠방 운영위원이신가요
엊그제 일요일 뱀띠방 주관
전체띠방 단합대회 가을낭만 남산길 걷기에
카페 최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정기산행방 깃발기수로 하늘높이 펄럭이며 참가 하였고
뒤풀이식당에서 카페 최상최고 아름다운 절세의 미인 미녀 사진 주인공께서 음식 자리 봉사 하시더군요
정말 깔끔 산틋 선명한 눈부신 화려한 미인이심니다
저에게 친근하게 닥아와 부족한거 없냐고 친절을 베푸셔서 순간 황홀감에 잠시 넋이 나갔다 들어왔습니다 하하하
식당일 큰봉사 수고하시는데 한잔하시지요 술못한다고 하시며 미소 웃음띤 밝은 얼굴로 친절 봉사 아주 보기 좋아요
다음 모임 행사때 커피한잔 나누는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소원 소망함니다 하하하
좋은하루 되세요 필승
잘했어요.ㅎ
성격도 참 좋아요.
뱀과의 안좋았던 관계들이 이제 추억으로 남았네요
저는 소띠라서
뱀띠랑 찰떡궁합이랍니다~ ㅎㅎ
그렇군요.ㅎ
믿거나말거나지만
난 토끼띠라던가~~?
누구든 궁합보는사람 거들면 좋겠는데요.
저도 초등학교 2학년 이맘때 쯤에
학교 갔다가 돌아 오는길에 작대기만한 뱀 한마리가
우리집 담장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 정말 놀라고 무서웠어요.
그때부터 가끔씩 그 구렁이가 나를 칭칭 감고 혀를 날름거리는 꿈을 꾸고는 했는데 깨어보면 땀으로
옷이 젖을만큼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해서 저도 뱀을 싫어하게 되었는데, 뱀띠와 저는 세살 차이로 아주 적당한 나이 차이인데, 이상하게도 뱀띠 여인과는 연애도 한번 못 해 봤군요.
그런데 저와 네살 차이인 말띠와는 이런 저런 인연이 참 많습니다. 띠도 궁합 이란게 있나 봅니다..
집담장 속으로 들어갔다면 그걸 업이라 했는데 지킴이란 상징성도 있고 무서움의 상징성도 있으니 꿈이 그렇게 나타났나보네요.
긴 글인데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 미운 뱀띠 분들이 석촌님의 멘토 노릇을 알게 모르게 한 거 같습니다.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맞아요.
모두 그 그늘에서 성장했으니 모두 멘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