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324](월) [동녘이야기] / [성소부부고 톺아보기] 41#
✦권5 문부2 서(序) / 태각지(台閣誌) 서(序)1
https://youtu.be/LbRJWaoMhNs
오늘은 조선 건국과 관련된 조선 초기 내각 이야기를 남긴 것입니다. 비교적 긴 글입니다. 먼저, 태각지에 대한 이해를 하여야 할 듯싶네요. 태각은 궁전, 궁궐을 가리키는데 나라를 움직이는 으뜸 상층부인 내각을 가리키며 그것에 대한 기록으로 태각지를 이해하면 좋을 듯싶습니다.
이런 태각지는 교산 허균이 쓴 것으로 조선 초기의 관료 제도와 운영, 변천에 관한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읍니다. 명단과 임명 과정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먼저 『국조상신고(國朝相臣考)』라는 제목 밑에 개국 당시의 좌시중(左侍中) 배극렴(裵克廉)으로부터 정조대의 우의정 김사목(金思穆)에 이르기까지 각 왕대별로 역대 의정 역임자 318인의 명단을 수록하였다고 하네요. 이제 그것에 덧붙인 글인 서를 바로 읽어 보기로 하겠읍니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태조 강헌대왕(太祖 康獻大王)께서 천명을 받아 개국하셨는데 그 문하우시중(門下右侍中) 배극렴(裵克廉)은 전조(前朝)의 상신(相臣)으로서 태조의 개국에 실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문하성의 제도는 고려의 제도대로 따르고 고치지 않았었다.
2년 뒤에 한성에 도읍을 정하고서 비로소 2부(二府)를 창설하였다. 고려 말엽의 제도를 모방하여 도평의사(都評議司)를 설치해서 국정을 맡게 하고, 삼군부(三軍府)를 설치해서 군무를 다스리도록 하니 그 조(曹)·진(鎭)의 제도가 한결같고, 직사(職事)도 예전과 똑같았다. 그리고는 배극렴을 판도 평의사(判都 評議司)로, 정도전을 영삼군부(領三軍府)로 삼았다. 그리하여 조인옥·정희계·이옥·이서·설장수·조림 등이 모두 훈척 중신(勳戚 重臣)으로서 서로 전후하여 동판 사사(同判 司事)가 되었는데 군국 대사의 경우는 혹 서로 참여하여 결정하곤 하였다.
2년 뒤에 배극렴이 해면되자 조준·김사형이 그 직임을 대신하였고, 또 삼군부의 직무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하여 정도전에게 도평의사의 직무를 겸관(兼管)하도록 하였다. 조준·정도전이 그 자리를 떠나고 나서는 심덕부·이서가 서로 이어 그 일을 관장하였다. 안종원·이이·이승원·장사정·박위·이거이도 차례로 동판사사(同判司事)가 되었고, 이지란·이온·조박·남은·전백영·이지·조온·황거정이 상의평리(商議評理)가 되었는데 모두가 다른 관직에 있으면서 그 직무를 겸하였었다. 그러나 모든 군국 기무에 관계된 일은 두 재상이 주장하며 결단하였고, 동판사사 이하는 감히 가부를 말하지 못한 채 자리만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공정대왕(恭靖大王=정종) 때에 도평의사를 고쳐서 의정부로 만들었다. 그런데 태종(공정대왕,恭定大王)이 즉위하자 의정부와 삼군부를 혁파하고 좌정승·우정승을 모두 정1품으로, 시랑찬성사(侍郎贊成事)를 종1품으로, 참찬을 정2품으로 하여 하륜·성석린을 좌정승·우정승에, 이첨·정탁을 찬성에, 이내·권근을 참찬에 임명하였다,
그로부터 14년 뒤에는 영부사 1인·판부사 2인을 모두 정 1품으로, 동판부사(同判府事) 2인을 종1품으로 설치하고, 참찬 지부사(參贊 知府事)를 혁파하였다. 얼마 후에 제도를 다시 개정, 영의정·좌의정·우의정 각 1원을 모두 정 1품으로 하여 이서·이직·조영무에게 그 직을 임명하였으며 좌참찬·우참찬 각 1원을 모두 정 2품으로 하여 박석명·유관에게 그 직을 임명하였다. 의정부의 소속으로 사인(舍人)·검상(檢詳)·사록(司錄) 등의 관직은 모두 한 때의 대단한 청선(淸選)이었고, 녹사(錄事)·도리(都吏)는 모두 처음 벼슬한 문관으로 임명하였다. 그렇게 하자 군국의 대정과 육관의 서무가 모두 의정부에 귀속되고, 전장과 제도가 비로소 정해져서 그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하여 여기서 마무리를 짓고, 다음 주에 이어 가도록 하겠읍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월요일이라 '성소부부고 톺아보기'를 했읍니다.
'태각지 서'입니다.
조선 초기의 내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주 자세하게 기록을 한 것이네요.
기회가 되시면 한번, 살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