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30. 큐티
여호수아 5:1 ~ 9
길갈에서 할례를 행하다
관찰 :
1) 요단 서쪽 가나안 족속의 두려움
- 1절.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 요단 동편의 땅을 차지하고 있던 가나안 족속들은 철기 문명을 소유하여 철검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는 철병거가 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키가 2m가 훨씬 넘는 거인들이 주축으로 이뤄진 군대가 있는 아낙 자손들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행하신 기적에 대하여 들을 때 그들의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이 넘쳐나는 아빕월의 요단강물을 말리시는 장면을 정탐꾼을 통해서 듣게 된 이들이 얼마나 놀라고, 두려워했을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기선을 다 제압해 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이 할 일은 하나님의 명령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전쟁을 담대히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그들이 행해야 하는 정체성 증명이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곧 할례의식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이 길갈에서 할례를 받다
- 2절.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 할례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내려온 선민으로서의 흔적이었습니다. 자신의 몸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드러내는 증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남자의 생식기의 표피를 제거하는 것인데, 의술이 발달하지 않은 때에 그렇게 살을 잘라버리게 되면 덧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고, 일주일에서 열흘 가량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할례를 행하게 하시도록 했다면 좋았을 것을 요단을 건너서 대적들을 눈 앞에 두고 대략 일주일에서 열흘 간 움직이기가 어렵도록 할례를 단체로 행하라는 명령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여겨졌을 수 있습니다.
- 3절.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시금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할례를 행한 곳은 “할례 산”(기브앗 하아랄롯)이라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부싯돌로 자른 그들의 표피를 할례 산에다가 묻었습니다.
3) 이스라엘이 할례 산에서 할례를 단체로 시행한 이유
- 4절 ~ 5절.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 할례를 행하게 되면 행군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대략 일주일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술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는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오래 걸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광야 생활 가운데에서는 할례를 받지 않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 6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38년간 헤메인 것은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열두 정탐꾼의 보고를 받고, 불신의 보고를 택하게 된 이들이 모두 광야에서 죽기까지 그들이 광야에서 헤메이면서 출애굽 세대가 다 죽기까지 하나님이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광야에서 태어나고 자란 세대는 할례를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 7절.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의 표지인 할례가 없이 지내온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은 수치를 상징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하여 가나안에 진작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몸에 새기지도 못한채 그렇게 유리방황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 정복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몸에 새기는 할례를 행하는 것은 마땅한 처사였습니다.
- 8절.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 온 이스라엘이 할례를 받았다는 소식이 가나안 족속들에게 퍼지게 되면 가나안 족속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은밀하게 할례를 행하고 백성들이 진중의 각 처소에서 낫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들은 순종했다. 요단강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을 올려주었고, 두려워하지 않고 이들이 함께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 9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 하나님께서 길갈에서 이스라엘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시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의 그들의 첫 야영지의 이름을 “길갈”이라고 붙였습니다. ‘길갈’은 ‘굴러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많이 참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할례를 행하게 하시고, 언약 백성으로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하도록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요단강 서편의 가나안 족속과의 싸움에서 이미 거의 다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두려움으로 싸우는 자들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전의를 상실한 자들을 하나님은 싹쓰리 하실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하는 라합과 그녀의 가족과 같은 사람들은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는 자만이 살게 될 것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언약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백성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광야에서 불순종한 이들에게 할례를 행하도록 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불순종의 후손들이 할례없이 지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요단강을 건너는 만나세대들에게 하나님은 할례를 명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몸에 새겨 자신들이 언약 백성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바로 할례가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고 그 표피를 할례 산에 묻게 하심으로 다시금 언약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가다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하시는 전쟁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것을 다짐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순종하는 이스라엘의 수치를 벗겨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길갈이라고 이름을 붙이므로 이스라엘은 기억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길갈은 상당한 시간동안 이스라엘의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적용 :
1)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홀로 싸우도록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 편에 서게 되면 여호와 닛시의 하나님이 승리를 그 백성에게 허락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궁극의 승리로서 지금 잠깐의 패배는 진짜 패배가 아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노예가 된 것이 부끄러운 일이었고, 그들이 출애굽 해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음이 수치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할례가 행해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시고 길갈에서 할례산에 그들의 표피, 그들의 수치를 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오늘의 패배, 혹은 오늘의 곤궁을 모두 굴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끝까지 주님의 편에 서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2) 나의 수치를 주님이 굴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내가 미얀마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서도 주님은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이유로 모두 굴러가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로 수치를 면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3)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언제나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