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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단 강을 건너다
수 4:10-18
10 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말하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일이 다 마치기까지 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 서 있고 백성은 속히 건넜으며
11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으며
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13 무장한 사만 명 가량이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 싸우려고 여리고 평지에 이르니라
14 그 날에 여호와께서 모든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여호수아를 크게 하시매 그가 생존한 날 동안에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기를 모세를 두려워하던 것 같이 하였더라
1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6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요단에서 올라오게 하라 하신지라
17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에서 올라오라 하매
18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가운데에서 나오며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요단 물이 본 곳으로 도로 흘러서 전과 같이 언덕에 넘쳤더라
수 4:10-18 / 계약궤를 메고 있던 제사장들은 계약궤를 멘 채 저녁때까지 요단강 한가운데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강을 다 건너기까지 그렇게 서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은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당부한 일이기도 하였다. 백성은 제사장들이 강 한가운데에 서 있을 동안 서둘러 강을 건넜다. 11) 백성이 모두 다 요단강을 건너자 여호와의 계약궤를 메고 있던 제사장들이 백성 앞으로 나갔다. 백성은 이러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12) 르우벤 지파 사람들과 갓 지파 사람들과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은 모세가 이미 그들에게 명령하였던 대로 싸울 채비를 하고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앞서서 강을 건너갔다 13) 그들은 약 400명쯤 무장을 하고 강을 건넜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도우셨다. 그들은 벌써 싸울 준비를 다 하고 강을 건너 여리고 부근에 있는 평지에 모여 있었다. 14) 그날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를 크게 드높이셔서 이스라엘 사람마다 그가 큰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마치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가 살아 있는 동안 모세를 존경하여 따랐던 것과 똑같았다. 1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셔서 16) 증거궤라고도 부르는 계약궤를 메고 다니는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요단강에서 이제 그만 올라오라고 하셨다. 17) 여호와의 말씀대로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요단강에서 올라오라고 명하였다. 18) 여호와의 계약궤를 메고 다니는 제사장들이 요단강에서 나와 강둑에 다다라 발바닥이 마른 땅에 닿자마자 요단강물이 흐르던 그곳으로 다시 흘러 양쪽 언덕에 흘러 넘쳤다.
본문은 백성이 요단을 건넌 후 저편 언덕의 관점에서 건너기를 완료하기까지 과정을 다시 기술합니다.
순종의 사람들(10-13) 모든 백성이 강을 건너기까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 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이백만 명이 넘는 숫자가 건넜으니 꽤 많은 시간동안 제사장들이 요단 강 가운데 머물렀을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건너기를 마친 후에 비로소 제사장들이 백성의 목전에서 건넜습니다. 헌신이란 마지막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한편 이 행렬을 앞에서 이끈 자들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요단 동편에 정착할 사람들이었지만, 모세에게 약속한 대로(수 1:14-15) 사만 명의 용사들이 무장하고 함께 요단을 건넜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모두가 언약궤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백성이 여호수아를 두려워함(14) 하나님께서 요단을 건너는 날에 여호수아를 크게 하실 것이라고 미리 예고하셨습니다(3:7). 예고한 대로 ‘그 날’ 곧 요단을 건넌 날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크게 하셨습니다. 그 영향력은 평생 이어졌고 여호수아의 권위가 모세의 권위와 동일할 정도로 백성이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권위의 근거는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것이며, 그 말씀을 그대로 전달한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전달하는 사역자들을 교회는 존경해야 할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요단에서 올라옴(15-18) 이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넜지만 제사장들은 여전히 요단 한 가운데 굳게 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자 비로소 증거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에서 올라왔습니다. 말씀이 서라 하면 서고 말씀이 가라 하면 가는 제사장들의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나오기까지 강이 흐르지 않고 머물렀으나 그들이 그 발바닥으로 육지를 밟는 동시에 강물이 전과 같이 흘러 범람하였습니다. 건너 편 언덕에서 이 장면을 지켜 보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어떤 대적을 만나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능히 물리칠 것이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적용: 헌신은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까?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건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건 당신의 생각은 항상 옳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말입니다. 기회가 찾아왔다면 절대로 망설이거나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매사에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미 달성을 약속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성공의 가능성에 주저하지 말고 과감하게 손을 내밀어 기회를 잡으세요. 프랑스 속담에 ‘기회가 사람을 저버리기보다 사람이 기회를 저버리는 경우가 많다.’라는 말이 우리를 공감하게 합니다.
< 설 교 >
큐 티
수 4:10-18
본문은 요단강 도하 사건을 다시 한 번 요약한다. 특히 첫 번째 문장이 흥미롭다. 여기서는 요단강 도하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말하게 하신 일 곧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일"(10절)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모세가 명령한 일이라는 것은 아마도 요단강을 건너라는 명령(신 31:2-3)을 가리킬 것이다.)
여호와-여호수아-백성의 전달 구도와 더불어 "모세"가 등장한다. 즉, 본문에 따르면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자 모세의 유지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앞에서 "크게 하"셨다(14절). 이스라엘은 모세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여호수아를 두려워했고, 모세의 말처럼 여호수아의 말을 청종했다.
가장 먼저 건넌 것은 르우벤 자손, 갓 자손, 므낫세 반 지파였다(12절). 그들은 요단강 동편에 자신들의 거주지를 마련하였지만, 모세의 말을 따라 동족을 위해 앞장서 싸웠다. 이후 나머지 백성들이 건넜고(10절), 끝으로 여호와의 궤와 제사장들이 강을 건넜다(11절). 이 사건은 다시 한 번 자세하게 다루어진다. 여호와-여호수아-백성의 전달 구도 속에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요단에서 올라오라"고 명하셨고(15-17절), 제사장들이 육지를 밟자마자 요단강이 회복되었다(18절).
요단강 도하 사건의 결과, 약 4만 명의 군인들이 여리고 평지에 도착하였다(13절). 흥미로운 것은 이 기사에 나오는 "여호와 앞에서 건너가"라는 표현이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강 한가운데 서 있었던 궤 앞으로 지나갔다는 이야기이겠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음을 표현하고 있다.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다. 본문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여호수아가 전달하였고, 그 말씀을 들은 백성이 그대로 순종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10, 12, 15-17절). 그러자 이들의 행로가 "여호와 앞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13절).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있는가? 내가 있는 이곳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순종하는 삶일까? 고민하는 하루가 되길 원한다.
순종하는 그 길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순종하는 당신을 주님은 기뻐합니다
미래를 위하여
수 1:10-18 / 한진호 목사
사람을 만나서 지내다 보면 그 사람의 스타일을 알게 됩니다. 작년에는 갑자기 대한민국의 싸이라는 가수가 ‘강남 스타일’이라는 노래로 세상을 들썩이게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 하나로 이제 은퇴를 바라보아야 할 나이의 싸이라는 가수는 대박을 터뜨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이 노래 하나로 대한민국의 강남은 졸지에 전세계인들이 한번쯤 가볼 만한 관심의 도시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한사랑교회 안에서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각자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영기 스타일이 있습니다. 김영기 장로님 스타일입니다. 영기스타일=어느 목사님일지라도 그 목사님에게 순종하실 스타일입니다. 세진 스타일이 있죠. 김세진 장로님 스타일입니다. 세진 스타일=아무리 화가 나도 가슴에 꾹꾹 눌러 담으시며 유머로 풀어내시는 스타일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는 진호 스타일이 있습니다. 바로 제 스타일이지요. 진호 스타일=찌질이 맨날 울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자기 밥을 못 먹어도 도와주려는 스타일입니다. 거기다가 조그마한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보니까 교회 그만둔다는 사람 앞에서는 벌벌 떠는 소심스타일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제발 제 앞에서 교회 떠난다는 분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저마다 자기 스타일이 있죠. 우리에게 각자마다 있는 스타일을 서로 잘 이해하고 포용하여서 행복스타일로 발전해 갔으면 좋겠습니다.
소나무 중에는 귀족스타일이라고 불리는 ‘홍송’이 있습니다. 이 ‘홍송’은 6층짜리 건물만큼 크게 잘 자라고 가지와 이파리도 울창해져서 건축자제로도 쓰이고 보기에도 좋아서 나무 중에서도 귀족이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소나무를 분재로 만들면 50센티미터 밖에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소나무가 좋은 품종이라 할지라도 분재로 만들면 작아지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에 대한 가능성이 있고 아주 크게 될 인물이 마치 화분 속에서 자라는 것처럼 ‘나는 할 수 없어’라고 하며 자신의 성장 잠재력을 잘라버리고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면 성공하지 못하고 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갖는 마음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고 의심하고 두려움과 불안 속에 빠지면 그 사람은 크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면 크게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주역이었던 모세가 죽은 이후에 그 뒤를 이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상황입니다. 애굽에서 탈출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새 땅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여정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함께 광야에서 40년을 지나다가 결국에는 출애굽 1세대는 모두 그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단 2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 1장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 모두 새로운 세대입니다. 이들은 광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자랐습니다. 그야말로 광야 스타일입니다.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이스라엘의 광야는 모래사막입니다. 거기는 백사장의 모래가 아니라 먼지모래입니다. 바람이 불면 한 순간에 여기에 산이 생기고 저쪽에서 바람이 불면 산이 옮겨지는 그런 열악한 환경입니다. 또 돌산으로 가득합니다. 거기에는 나무 하나 없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5절 말씀에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 가난하고 보잘 것 없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니라. 내가 모세와 함께 한 것처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고 선포하십니다.
오늘 본문이 말씀의 10절은 “이에”라고 시작합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라는 말입니다. 즉 40년 동안 광야에서 괴롭고 어려운 삶을 살았던 이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여호수아를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그런 말이지요. 그래서 그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결과적으로 보면 이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철저히 복종을 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말씀대로 가나안을 차지하고 번성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갑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 속에서 열악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광야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그 힘들고 괴로웠던 삶을 극복하며 미래의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미래를 위하여 첫 번째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대신하여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모세와 동일한 은혜를 약속 받은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유사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명령합니다. 11절의 말씀입니다.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예비하라 삼 일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얻게 하시는 땅을 얻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장정의 수만 60만 명이 넘는 백성들에게 이 명령이 전달되어야 하는데 삼 일밖에는 시간이 없습니다. 삼일 후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입성해야 합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아주 급하게 또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중에 두루 다녀라' '양식을 예비하라' '삼일 안에 가나안에 입성한다' 이런 단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로부터 오는 확신과 열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삼으셔서 백성들 앞에 세워주셨지만 그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말을 듣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 백성들의 우두머리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자 그들이 백성들에게 신속하게 모세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이 모습이 미래를 위한 노력임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에 여호수아의 그 명령 앞에서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백성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면, 아니 단 한 사람이라도 여호수아를 향해서 ‘지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너나 잘하세요’ 하며 무시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았겠습니까! ?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께서 오늘 이 한사랑교회를 통해서 미래에 어떤 큰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를 불러주셨다면, 어떤 한 사람이 이 비전을 끌고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세워주신 사람이 바로 한진호 라는 목사라고 한다면, 그 목사가 평생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련 받고 하나님 스타일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그런 저를 믿고 그 하나님의 뜻을 서로 협력하며 이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과 확신, 그리고 신뢰가 형성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잘못 만난 사람들입니다.
올해 우리는 창립20주년을 맞이하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함께 기도해야 할 책임을 나누는 신앙 공동체의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여기에는 구경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게으름의 자리에서, 불평과 불만의 자리에서, 부정적인 자리에서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빛을 세상에 비추시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미래를 위하여 나타나는 두 번째의 모습은 협력입니다. 아무리 지도자가 날고 긴다 해도 협력자가 없으면 큰 일을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여호수아에게는 가나안 정복이라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에게 한가지 중요한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 지파가 가나안 정복의 선봉에 서라는 것입니다.
민수기 32장에 보면 많은 가축 떼를 가지고 있던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의 자손들이 모세에게 나와서 자신들은 요단강 건너편의 가나안 땅을 포기하겠으니 아모리 왕 '시혼'의 영토와 바산 왕 '옥'의 영토였던 야셀과 길르앗 땅을 유산으로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 때,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다른 지파들과 함께 가나안에서 싸우고 가나안 정복이 끝난 다음에그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 즉 마길, 야일, 노바 자손들은 길르앗에서 벌어진 아모리 사람들과의 전투에서 수훈을 세우고 르우벤과 갓 지파와 함께 요단 동편 지역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지역은 여러 가지 수목과 삼림이 무성했고, 넓은 초원이 있어서 가축을 기르기에 아주 좋은 땅이었습니다.
이미 여러 해 전에 땅을 차지하고 여유 있던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마길, 야일, 노바 자손)의 자손들에게 여호수아는 가나안 전쟁의 선봉에 서라고 지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명령은 그들이 민수기 32장에서, 모세와 세운 약속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이 요단 강 건너편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울 때에, 함께 나가서 싸우겠다고 모세와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시일이 많이 지났고 지도자도 새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들은 얼마든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이용하여 여호수아에게 반항 할 수 있었습니다. 설령 그들이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들어 가나안을 정복하고 지파 별로 그 땅을 분배 받을 때에 이미 그들이 갖고 있는 땅보다 좋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궂이 목숨을 걸고 선봉에 나설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명령을 받은 세 지파의 사람들이 어떻게 합니까? 16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이 세 지파 사람들은 이미 차지한 땅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어떤 지파보다도 너희가 먼저 선봉에 서서 가나안에 들어가라는 여호수와의 명령에 반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던 기득권을 포기하고 공동체를 위해서 협력에 나섭니다.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좋은 믿음의 동역자, 협력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협력할 때, 가나안의 축복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동역자입니까? 아니면 구경꾼입니까? 하나님과 교회에 꼭 필요한 협력자로 끝까지 남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나타나는 세 번째는 백성들의 헌신입니다. 17-18절을 말씀을 보면 "우리는 범사에 모세를 청종한 것같이 당신을 청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무릇 당신의 시키시는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는 자 그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당신은 마음을 강하게 하시며 담대히 하소서"
여호수아가 하나님으로부터 격려와 지지를 얻었지만 당장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백성들의 지지가 없다면 상당히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될 것이 뻔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때, 백성들이 순종과 충성을 맹세하는 고백을 들었으니 여호수아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은 감격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로 삼으신 여호수아, 그리고 그의 협력자들과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었을 때에 그들의 소망이었던 가나안 정복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숙하고 미래 지향적인 신앙공동체에는 세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도자와 같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세를 청종한 것과 같이 당신을 청종하겠나이다" 이 말은 여호수아의 마음을 헤아려 여호수아와 같은 마음으로 헌신하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힘이 날 때가 있다면 목사가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온전하게 사역하도록 목사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따라주는 성도를 만났을 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의 미래는 바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가 되느냐 그렇지 못하고 갈라지냐에 달렸다면, 우리 모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지도자의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이것이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의 지도력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지도자로 인정될 때 최고의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이 영적인 권위가 있을 때, 그 가정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목사는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셨습니다’하며 겸손함으로 그 권위를 인정할 때에 우리 교회의 미래는 엄청난 성장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항상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은 대개가 건강한 사람입니다. 반면에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대개가 병든 사람이 많습니다. 얼굴이 어둡습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언어가 있는 공동체는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언어가 많은 공동체는 병든 공동체입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이 많은 교회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믿음의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입니다. 열정적인 비전의 지도자와 신실한 협력자가 있으며, 철저히 헌신하는 백성들이 있는 한 그 공동체는 어떤 난관도 헤치고 가나안의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래 속에 우리교회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협력하며 헌신하여 이 세상의 어떤 교회, 어떤 신앙 공동체가 이루지 못한 큰 일을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후손이 이 땅 위에 더욱 번성하고 이 시대를 책임지고 이끌어갈 영적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그런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가나안을 눈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그마한 화분의 분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6층 건물 이상 크게 성장하여 모든 세상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흠모하는 홍송이 될 것인가 하는 선택에서 서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지도자 여호수아와 함께 신앙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육신의 질병과 고통, 장래에 대한 두려움, 자녀에 대한 걱정, 재물에 대한 염려들. 여러분,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직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힘차게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여러분, 그리고 한사랑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순종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
여호수아 4장 10절-14절,
하나님의 명령대로 요단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요단강을 건너는 순서에 한 가지 특이점이 있었습니다. 이미 요단 동편에서 땅을 분배 받고 정착하여, 가나안 정복을 서두를 필요가 없던 두 지파 반의 4만 용사들이 가장 앞서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너 어디 가든지 순종하라
하나님은 순종을 원하신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세계적으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게임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모두 456명인데 참가자 한 사람이 죽을수록 나머지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상금이 1억씩 많아지게 됩니다.
이들은 자신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잊어버린 채, 다른 사람이 죽으면서 늘어나는 상금 1억원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옆에서 함께 게임하는 사람의 목숨을 노리기도 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돈에 대한 욕심이 더 크게 변해버린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드라마 속에 나타난 사람들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456억의 돈보다도 생명이 더 중요한데, 돈만 바라보다보니 자신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돈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돈에 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당장 눈 앞의 돈 456억이 눈 앞에 있어도 내가 생명을 잃으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주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면, 함께 하시고 모든 필요한 것들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성경에서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 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며 순종하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순종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1절을 통하여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원하시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영생의 은혜를 주십니다.
순종에는 희생이 뒤따른다
하지만 축복의 이유가 되는 순종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순종을 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때로는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어야만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두 지파 반의 용사들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수월하게 건넙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 강의 한 가운데에는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서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들의 옆을 지나쳐 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도 강을 건너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누가 가장 먼저 요단강을 건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우리 함께 1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수아 4:12,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는 모세가 그들에게 이른 것 같이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들보다 앞서 건너갔으니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건너갔다고 12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용사들이었고 그 수가 약 4만명 정도였습니다. 이들은 이전에 모세와 약속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 약속의 내용은 신명기 3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스라엘은 요단 동편에 있던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물리치고 이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의 목초지와 비옥한 땅이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래 약속하신 땅인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이 아닌, 요단 동편의 목초지를 자신들의 땅으로 달라고 모세에게 요청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나머지 지파들이 화를 냈고 모세도 두 지파 반을 꾸짖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세가 두 지파 반이 요단 동편에 정착하는 것을 조건부로 허락하게 됩니다.
신명기 3:18, 그 때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의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건너가되
가족들은 정착을 하더라도, 용사들은 계속해서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전쟁에 참가하라는 것이 모세의 조건이었습니다. 그것도 "선봉"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조건을 두 지파 반은 받아 들였으며, 오늘 본문에서 두 지파 반이 약속을 지켜 앞서서 요단강을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두 지파 반이 앞서서 요단강을 건너 전쟁에 임하는 것은, 과거 모세의 조건을 받아 들이는 것이며 약속을 지키고 순종하는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약속을 지키는데 있어서 희생이 뒤따릅니다.
그들이 감내해야만 하는 희생은 어떤 것입니까?
요단 동편에 자신들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모든 재산을 두고 언제 끝날 지 모르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4만 명의 용사는 계속해서 전쟁에 참가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전쟁을 통하여 누가 언제 어떻게 생명을 잃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었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순종하다
1. 두 지파 반의 순종
가족과의 이별과 생명의 위협이라는 희생에도 불구하고, 르우벤과 므낫세와 갓 반 지파는 약속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모세는 이미 요단 동편의 느보 산에서 죽었기 때문에, 슬쩍 핑계를 대며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요단 동편에 그대로 머무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신실하게 약속을 준행합니다. 여러 핑계들 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실하게 순종합니다. 그것도 전쟁의 선봉이 되어 가장 위험하고 두려운 전쟁 한 가운데 뛰어 들어 싸움을 시작합니다. 이들이 이처럼 용감하게 선봉이 되고, 어쩌면 자신들과는 상관 없을 수도 있는 가나안 정복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2. 믿음과 순종
여기 백원짜리 동전이 하나 있습니다. 이 동전의 뒷면에는 주조한 연도가 적혀 있고 그 밑에 숫자로 '100'이라 적혀 있고 그 아래에 발행처인 한국은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앞면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동전을 주웠는데, 숫자가 적힌 부분만 있다든지 혹은 이순신 장군의 그림이 있는 부분만 있다면 그 동전은 백원의 가치가 있을까요? 한쪽 면만 있다면, 동전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지고 맙니다. 동전은 양면이 같이 붙어 있어야만 기록된 숫자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이, 믿음과 순종은 함께 붙어 있어야만 가치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믿음과 순종이 항상 같이 발견 됩니다.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은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주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반대로,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지파 반의 용사 4만명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주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순종하였습니다. 희생이 뒤따를 수도 있었지만, 신실하게 순종하였습니다. 요단강을 마른 땅을 걸어가듯 건너게 하신 능력의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 전쟁을 승리하게 하실 것이며, 전쟁 가운데 지키실 것이며, 승리하여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순종하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에 순종하였습니다.
여리고와 가나안 정복 전쟁의 승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약속한 대로 선봉에 서서 요단강을 지나고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선봉에 선 이들을 사용하여 여리고 성의 전투와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이스라엘 전체가 승리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당장은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강을 건너고 전쟁의 선봉에 나서는 일이 희생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본다면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누리게 될 승리의 영광이 두 지파 반과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됩니다. 또한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상을 받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해 보십시오. 우리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을 희생하셨고 십자가에서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순종에는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순종으로 인하여 3일 만에 영광의 부활을 하셨으며, 온 인류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순종으로 인해 이 모든 영광을 누리시게 되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순종이 어렵고 희생이 뒤따르지만, 순종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승리를 주시며 영원한 축복을 허락해 주십니다.
순종을 통하여 승리를 주신다
요단강 동편에 이미 땅을 분배 받았기에 더이상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할 필요가 없었던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였지만, 모세와 했던 약속을 지키고 승리를 주실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선봉으로 정복 전쟁에 참여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일하시며 역사하시며 세상을 바꿔 나가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주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봉에 세우시고 우리를 통하여 우리 가정을 변화시키시며 직장을 바꿔 나가십니다. 우리 교회의 순종을 통하여 한국 교회를 변화시키시고 이 땅과 전 세계 열방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십니다. 우리의 믿음과 그에 따른 순종을 하나님께서는 지금 요구하고 계십니다.
혹시 나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일들에 순종하기를 미루거나 모른 척 무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장 손해가 될 것 같아서 불순종하고 있습니까?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즉시 믿음으로 주의 말씀과 명령에 순종합시다. 즉시 순종하여 선봉이 되어 가정의 앞에, 직장의 앞에 교회의 앞에 내가 섭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나를 통하여 일하시고 역사하시며 어디로 가든지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사명과 시작과 마침
출 4:10-18, 신 34:01-12 / 조병우 목사
하나님 앞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명자는 아마도 모세일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세의 충성을 예수님의 충성과 비교하면서 그 충성의 성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 3:2)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삶과 충성의 표본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슨 일이든지 모세가 표준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기준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평생의 삶이 성경 속에 기록된 매우 특별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40년을 주기로 3가지 특징을 가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사십이 될 때까지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사십 년은 광야에서 한 아내의 남편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십 년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이스라엘 지도자로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출애굽기의 말씀은 모세가 팔십 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장면과 신명기의 말씀은 백 이십의 모세가 주어진 사명을 여호수아에게 물려주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사람에게 충성이 무엇이냐 하는 해답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충성해야 할 것인가를 다짐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1. 자신의 부족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에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는 자신의 부족으로 인하여 자신은 주의 일에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모세가 사명을 받을 때에 처음 고백한 내용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일을 하고자 할 때에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라는 생각입니다.
세상에는 주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주의 일에 조건이나 자격을 가졌기 때문에 쓰임을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사람을 보면 그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부름을 받을 때를 보면 충분한 자격들이 있어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거나 혹은 보통 사람들 수준 이상은 아니었음을 보게 됩니다.
주의 일에 내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전 1:26-29)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 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직분을 받을 때에 내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내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내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주의 일에 쓰임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이런 사람은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항상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위해서 사람을 사용하시기보다는 사람을 위해서 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직분에 대해서 내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주의 일에 쓰임이 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지만 항상 자신에 대해서 사도들 가운데서 작은 자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충성자일수록 자신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양)
2.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을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면서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과 모세를 도와 줄 동역자를 붙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는 자들이 먼저 마음에 새겨 두어야 것은 자기 혼자 이 일을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아론을 함께 붙여 주어 동역자로 세우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올 때에 모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셔서 모세를 통해서 그 놀라운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홍해 앞에서 백성들이 모세를 향해서 원망할 때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수종드는 것이 바로 충성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에게는 충성스러운 동역자들을 붙여주셔서 자신이 힘이 없을 때 그 약함을 도와 주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아말렉과 전쟁에서 손이 내려 올 때에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손을 잡아 주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자신이 입이 둔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아론을 붙여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자신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 하나님은 자라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일은 동역자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어떤 사람이 자기 혼자 충성한 사람이 있습니까? 있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진정한 충성자는 동역자를 인정하고 동역자를 귀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운동선수)
잘못된 직분자의 특징은 내가 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하는 충성에 대해서는 판단하는 자리에 서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가리켜 이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충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충성을 짖밟는 사람입니다. 자신만이 충성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코 충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충성자는 자신이 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혼자 충성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은 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하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이 했다는 말조차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 역시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충성자는 혼자 충성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충성을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역자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충성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항상 자신의 사역에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들을 기록하므로 자기 혼자 충성했다는 영적 함정에 빠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3. 주의 일을 하는 자는 마무리를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그 가나안 땅을 한 번 밟아보고 죽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의 사명을 여호수아에게 물려주고 너는 사역을 마감하라고 했습니다. 이 때 모세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여호수아에게 모든 사명을 물려주고 자신은 사명의 마친 것입니다.
어쩌면 충성보다 충성을 놓기가 어렵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키우기보다 자녀가 결혼 한 이후 그 자녀를 포기하기가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많은 직분자들을 보면 직분을 맡아 충성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가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는 것입니다. 교회에 직분을 맡은 분들은 항상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직분자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충성을 이어받을 일군을 키워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