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마트 의료’, 우크라 난민 캠프에 온기 전하다
폴란드 바르샤바 의료봉사 현장
국내 IT 기술로 첫 스마트 의료봉사… 난민촌-보육원 등 300여 명 진료
인공지능-모바일 기기 적극 활용… 한국 의료진 연결해 원격진료도
우크라이나 난민 의료봉사 및 의약품 지원에 경기국제의료협회 및 의사 출신 본보 기자와 순천향대 의료진 등이 합류해 진료 및 의료상담을 펼쳤다. 바르샤바=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23일(현지 시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글로벌 엑스포 난민캠프 1층. 한국의 스마트 헬스케어를 활용한 원격의료 봉사가 시작됐다. 의사 출신인 동아일보 기자와 경기국제의료협회, 순천향대 의료진이 합류했다. 지금까지 해외 의료봉사는 주로 청진기를 이용한 진료와 의약품 처방에 머물었지만 이곳 의료진은 달랐다. 진료에 인공지능(AI), 모바일 기기 등을 적극 활용했다. 국내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첫 스마트 의료봉사였던 셈이다. 임수빈 협회 단장(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외과 교수)은 “우리나라 스마트 헬스 IT는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고 이번 의료봉사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며 “덕분에 환자의 진료 및 의료상담이 정밀해졌고 원격진료로 한국에서 수술 가능한 환자도 발굴했다”고 말했다.
본보 기자를 포함한 의료팀은 난민촌 2곳과 글로벌 엑스포에서 난민 환자 100여 명을 진료하고 의료상담을 했다. 또 보육원 2곳 등을 돌아다니며 어린이 200여 명의 건강을 체크했다.
● 스마트 헬스케어 도구 다양하게 활용
경기국제의료협회는 사전 준비부터 철저했다. 봉사단은 의사 3명과 간호사 1명, 그리고 예비 한의사, 예비 간호사 등 11명으로 꾸려졌다. 의사는 신경외과, 가정의학과, 본보 기자로 구성됐다. 진료 및 의료상담을 받은 환자들 대부분은 고혈압, 당뇨병, 허리통증, 두통 등 만성질환을 호소했다. 독감, 감기, 빈대 물린 감염자, 소화기 질환 등 급성질환자도 있었다. 빈대는 이곳에서 일상이었다.
협회는 △실시간으로 AI를 활용해 심장 소리와 폐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스마트 사운드 △귓속, 입안 치아 상태, 콧속을 파악할 수 있는 스마트 귀이경 닥터클로버 △손으로 들고 다니며 몸속을 볼 수 있는 스마트폰 크기의 초음파 기기 소논 △손가락에 끼면 환자의 호흡수 박동수 산소포화도 등을 잴 수 있는 스마트 반지 △손가락만 대면 심전도를 잴 수 있는 카디아 모바일 등을 준비했다.
폴란드 바르샤바 글로벌 엑스포에서 신경숙 순천향대 구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가 다양한 스마트헬스케어 도구를 이용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봉사단은 이들 기기를 활용해 캠프 난민들을 대상으로 진료 및 의료상담을 했다. 신경숙 순천향대 구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현장에서는 속도감 있는 진료와 의료상담,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면서 “다행히 스마트 기기들을 활용하니 환자의 상태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한국-폴란드 의사들 서로 협력 진료
글로벌엑스포엔 40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이곳엔 폴란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 등 7명의 의사가 일주일에 1명씩 돌아가면서 상주한다. 의료팀도 이곳 현지 폴란드 의사들의 협조하에 진료 및 의료상담을 했다.
한국에서 의사들이 왔다는 소식에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더 밀도 있는 진료가 필요한 경우 우크라이나 의사 출신 한국인 이신이 리터러시M(종양외과) 국제영업이사와 온라인 화상으로 연결해 소통했다. 시차 탓에 한국은 오후 11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도 이 이사는 진료를 도왔다.
캠프 난민 중 사시가 심한 타샤 양(9)의 경우 순천향대 부천병원 안과 장지호 교수와 화상으로 원격진료를 했다. 상담 결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료팀은 글로벌 엑스포뿐만 아니라 바르샤바 외곽의 난민촌 두 곳에서 의료상담과 의약품 및 물품지원 활동을 펼쳤다.
● 난민 고아들의 마음도 위로
전쟁의 상흔이 여전한 보육원(현지 비정부기구·NGO TPU가 운영)은 바르샤바에서 북쪽으로 약 500km 떨어진 항구 도시 그단스크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직원이 자원봉사자들로 꾸려져 운영된다. 현재 이곳 보육원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아이는 모두 200여 명이었다.
의료봉사팀은 아이들의 건강 이상 여부를 체크하고 의약품 및 물품 등을 기부했다. 이번 봉사단에 합류한 그림책 작가 송은경 씨와 청년 대사들(국내 NGO 프로보노)을 주축으로 전쟁 발발 당시 아이들에게 남겨진 트라우마(외상성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위한 미술치료와 놀이치료를 진행했다. 의료팀도 같이 합류해서 놀이 프로그램에 동참했다. 함께 봉사에 참여한 간호대생, 한의대생 등이 ‘풍선아트’ ‘우크라이나 동요와 함께하는 율동수업’ 등을 진행해 아이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해줬다.
보육원에서 만난 마타 알리나 양(14)은 “한국 언니들과 새로운 율동도 배우고 무엇보다 다시 만나게 되어 무척 기뻤다”고 말했다. TPU의 안드레프 디렌고스키 팀장은 “아이들에게 사용될 소중한 의료품과 옷가지 속옷 등을 기증해줘 긴 겨울을 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국에서 잊지 않고 다시 찾아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바르샤바·그단스크=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