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반의 이야기이다.
모난 성격 탓에 사람을 잘 사귀질 못해서 서울 생활을 하면서도 친구를 많이 사귀질 못했다.
학교 다닐 때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이 네 명이 있었는데 그중 한명은 앉아서 볼일 보는 친구이며 지금도 가끔씩 네 쌍이 서로 내왕도 하고 마음이 내키면 여행도 다니며 지내고 있다.
그 중 한명이 도자기를 전공 했는데 지금은 남양주에서 가마를 묻고 사는데 중견이라기엔 나이가 있는지라 나이대접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
어느 해 여름에 이 친구가 산청으로 쏘가리를 잡으러 가자며 내려왔다.
낚시 갈 핑계가 없어 엎드려 있는 나한테는 한여름 가뭄에 소나기같이 반가운 존재일 수밖에.
루어 대를 챙기고 낚시가방을 싣고는 산청으로 내 달리니 오후 늦게 도착을 해서 물가에 돌아 다녀보니 눈이 있는 쏘가리는 말할 것도 없고 눈먼 쏘가리도 한 마리 잡히지 않는다.
지리산 자락에는 어느 고을이나 그렇듯이 산나물이 풍부하여 산채정식이 유명한데 산청에도 역사가 깊은 산채정식집이 있어 일찌감치 산나물 맛본다는 핑계로 들어 앉아 죄 없는 술병만 쓰러뜨린다.
초저녁에 들어간 식당에서 문 닫아야 된다며 궁시랑 거리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듣고서야 여관을 향해 비틀걸음을 옮겼다.
새벽에 나가보자는 잠들기 전의 말은 어디가고 일어나 보니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기울어 있다.
낚싯방에 들러서 고기 못 잡은 하소연을 했더니 한심한 중생들을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여기서 합천댐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는데 차황 어디메를 가면 보가 있고 거기서 짧은 대로 떡밥낚시를 하면 돌 붕어가 잘 올라온다는,
그 때까지도 헤롱 거리는 우리에게 술이 확 깨는 이야기를 해준다.
늦은 점심을 먹고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이나 넘어 가니 넓은 들판이 보이고 그 들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수로가 보인다.
농협창고 옆길로 수로 둑을 올라보니 바로 발밑에 가르쳐준 수로의 보가 보이는데 농부가 벌거벗은 채로 물속에 들어가 조개를 줍고 있다.조개는 보리밭이나 물레방앗간에서 잡는 줄 알았는데 벌건 대낮에 물속에서도 잡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각자 칸 반대를 들고 떡밥을 달아 던지니 줄줄이 올라오는 게 전부 신발짝만치나 한 돌 붕어들이다.
낄낄거리며 쉴 새도 없이 잡아 올리다 보니 어망 속에 그득히 돌 붕어들이 들어앉아있다.
언제 왔는지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한참 위쪽에 꼬마가 둘이서 대나무장대에다 줄을 묶은 대를 드리우고 앉아서 우리가 노는 모습을 보면서 뭐라고 쫑알거리는데 그 때까지는 관심이 없어 못 들었는데 우리를 보고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히야 니가 고기 좀 달라고 말해봐라”
“우째 말하노! 내사 말 몬 하것다”
“그라마 할매는 우짤라카노?” (형을 “히야” 혹은 “시야”로 부르는 이곳 사투리.)
그때 까지도 조개잡기에 여념 없던 농부가 아이들을 보고
“느그들 또 괴기 잡으러 나왔나, 쯧 쯧 느그 할매는 쫌 어떠노?”
“그냥 누버 있어예”
“느그 손에 잡힐 괴기가 있것나? 저기 아재들한테 괴기 좀 달라 캐봐라”
그러면서 그 때까지 잡았던 조개를 아이들 손에 들려주고는 쯧쯧 혀를 차며 둑 위를 휘적휘적 걸어간다.
“느그들 일로 와봐라”
쭈뼛거리며 닦아온 아이들에게
“느그 할매 어디 편찮으시나?”
“마이 아파 예! 고기 고아드리면 낳는다 케가 잡으러 나왔는데 영 안잡혀 예”
“어데가 그리 편찮으시노?”
“암이라 카는데 고기 푹 삶아 묵으마 낳는다 카는데 암만 해도 고기가 안 잡혀서 학교도 안가고 매일 나와서 잡는데 우짜다가 큰 거 잡을때도 있어 예”
“몇 학년이고?”
“히야는 5학년이고 나는 3학년이라 예”
“고기는 누가 삶아 드리노?”
“즈들이 잘 삶아 예”
아버지는 기억이 없을 때 죽고 어머니는 얼굴을 익힐 때 쯤 집을 나갔다며
조부모 밑에 자랐는데 할아버지도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암으로 누워 계시며 큰 병원에 가야된다는데 아이들 밥해줘야 된다며 병원을 가지 않으신단다.
이렇게 잘나오는데 왜 가자느냐면서 툴툴 거리는 친구를 차로 보내고 잡았던 고기를 봉투에 부어 형 손에 들려주고 낚싯대 두 대와 지갑에 있던 돈을 동생 손에 쥐어주고는 가라고 손짓을 하니 손에 들린 고기와 낚싯대를 번갈아 보며 그 자리에 서 있다.
어서 가라고 손짓을 해도 쭈뼛 거리고 갈 생각을 않고 서 있기만 한다.
내가 돌아서며 올려다 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너울 파도를 만났는지 일렁거려서 자꾸만 헛발을 디딘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무슨 일이냐? 며 궁금해 하는 친구에게 설명을 하려니 그 때 까지 참았던 아픔이 모질게도 가슴속을 후벼 판다.
첫댓글 좋은글 잘 읽 고갑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우리에게 그런 시절도 있었죠...
지금 그 애들 잘 살고 있으려나~
향토 흙냄새 나는 좋은 글 즐감하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얻그제 같은데 30여년이 흘렀습니다.
심성이 착한 아이들이 였으니 바르게 잘 살거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감동 ~
사람 사는 냄새 폴폴나는글 잘 보았어요.
복 받아서 잘 사실 것같다는 ㅎㅎ
고맙습니다.
복은 모르겠고 그냥 즐겁게 살려고 노력중 입니다.
내가 돌아서며 올려다 본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너울 파도를 만났는지 일렁거려서 자꾸만 헛발을 디딘다
그렇습니다
이젠 저도 헛발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말입니다
자꾸만 헛발질을 하네요...
읽어주셔서 영광 입니다.
건강 하세요.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조개는 보리밭이나 물레방앗간에서 잡는 줄 알았는데 벌건 대낮에 물속에서도 잡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네요.
조개를 보리 밭에서 잡다니요?
안녕하세요.
우답이 될까요.
쌍팔년도에 한 시골에서 처녀,총각이 사귀다 총각이 군대를 갔답니다. 처녀가 면회를 갔는데 위병소에서 면회신청서를 주면서 쓰라고 해서 인적사항을 쓰고 밑에보니 "관계"를 적는 난이 있어서 머뭇거리다가 위병에게 닦아가서 얼굴을 붉히며 관계를 다밝혀야 되느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는듯이 관계를 안쓰면 면회가 안된다고 하니 머뭇거리다 한숨을 폭폭쉬면서 관계란에다 "보3, 물 6" 이렇게 써서 줬더니 위병이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버럭 화를 내면서 "관계를 똑똑히 밝혀야지 이게 뭡니까?" 처녀가 얼굴이 홍당무가 되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보리밭에서 3번, 물레방앗간에서 6번 관계를 했습니다"
@파회 이랬다고 하네요.
와이담으로 보리밭에서 그 총각은 거시기를 켔겠지요.
웃자고 한 소리 입니다. 건강하세요.
@파회 아하!
그 소리였군요.
전
그 쪽 지방어디는
보리밭에 서식하는
특별한 조개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