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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art, Requiem In D minor K. 626]
말년의 모차르트는 경제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아 심신이 지쳐있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쥐어 짜내야 했던 창작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당시에 [마술피리], [티토 왕의 자비] 같은 대작 오페라를 작곡하고 있었던 모차르트는 1791년 늦은 봄, 신원을 알 수 없는 인물로부터 [레퀴엠] 작곡 의뢰를 받는다. 밀로스 포먼 감독의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이 장면이 등장한다. 배우 톰 헐스가 분했던 모차르트는 검은 옷을 입은 의뢰인을 보고 오페라 [돈 조반니]의 테마가 울리는 가운데 돌아가신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를 떠올린다. 작곡료는 50두카텐(당시 국제 통화로 사용된 금화)이란 파격적인 금액에다가 절반을 선수금으로 받는 조건은 어려웠던 천재 작곡가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을 것이다.
No. | 아티스트 & 연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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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Introitus_Requiem /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지휘], 아놀드 쇤베르크 합창단, 빈 콘첸투스 무지쿠스 | |
2 | Kyrie | |
3 | Dies Irae | |
4 | Tuba Mirum | |
5 | Rex Tremendae |
1분감상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레퀴엠] 작곡의 착수는 9월에야 가능했다. 모차르트는 [티토 왕의 자비] 초연이 끝날 때까지 전혀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또한 9월 30일 초연을 앞둔 [마술피리]의 마무리 작업으로 바빴고, 10월 이후에도 [클라리넷 협주곡] K622과 그 외 몇 개 작품의 작곡에 매달려야 했다. 쉴 틈이 없었던 그의 몸 상태는 공이 언덕을 굴러 내려가듯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 11월 20일 죽음을 앞두고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모차르트는 그의 제자인 프란츠 크사버 쥐스마이어의 도움으로 [레퀴엠] 작곡을 계속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한 일을 쥐스마이어에 대입시켜 보면 된다. 끝내 건강을 회복되지 못한 모차르트는 12월 5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신의 [레퀴엠]은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그런데 레퀴엠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형식을 이루는 전례문과 그 용어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이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자.
임종 직전의 모차르트를 그린 상상화. [레퀴엠]은 모차르트가 남긴 최후의 미완성 걸작이다. <출처 : Hermann Kaulbach at en.wikipedia>
레퀴엠은 진혼곡, 즉 죽은 이의 넋을 달래는 곡이란 뜻이다. ‘Requiem’은 라틴어로 ‘안식’을 뜻한다. 가톨릭 미사는 엄격하게 치뤄진다. 그 중에서도 죽은 자를 위한 미사이니 얼마나 엄숙하고 예를 갖춰야 할지는 짐작이 갈 것이다. 그래서 곡의 역할에 따른 이름, 순서 등을 형식으로 정해 놓았는데 이를 전례문이라 한다. 전례문에는 고유문(Proporium, 미사가 행해지는 날과 목적에 따라 고유하게 쓰이는 예문)과 그와 대조되는 통상문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 고유문에는 미사의 성격이 스며들어가 있고 통상문은 붙박이로 보면 될 것이다. 전통적인 순서와 내용은 대개 이렇다.
입당송(Introitus) - 키리에(연민의 찬가) - 승계송(Graduale) - 연송(Tractus) - 부속가(Dies Irae, 진노의 날) - 봉헌송(Offertoriu m) - 상투스(Sanctus, 감사의 찬가) - 아뉴스 데이(Agnus Dei, 신의 어린 양) - 영성체송(Communio)로 이루어지며 이상의 예문들 가운데 키리에, 상투스, 아뉴스 데이 등은 보통의 미사에서도 쓰이는 통상문에 해당되며 나머지는 고유문이다.
따라서 레퀴엠에서는 일반 미사에서 사용되고 있는 ‘글로리아Gloria’ ‘크레도 Credo’ 또는 ‘알렐루야 Alleluja’ 같은 기쁨의 표현을 갖는 예문은 쓰지 않는 것이 관례가 되어있다. 당연하다. 죽은 자를 위한 미사니까. 엄숙 또 엄숙이다.
레퀴엠의 입당송 첫 구절은 ‘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Requiemaeternam dona eis Domine’라고 되어 있다. 이 기도는 두 번째 예문인 승계송의 첫 구절에서 또 한 차례 그대로 등장하게 된다. 승계송은 레퀴엠 고유문 중 가장 오래 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부속가 ‘진노의 날’은 14세기 경에 성립됐으며 그레고리우스 선법으로 만들어졌고 대단히 극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특히 모차르트 이후에 작곡된 베르디 [레퀴엠]의 ‘진노의 날’은 깜짝 놀랄 정도로 극적이다. 그러나 레퀴엠의 작곡에 있어서 반드시 위의 9개 부분이 순서대로 되어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한 개의 예문을 여러 개로 세분하거나, 여러 예문을 하나로 묶는 경우도 왕왕 찾아볼 수 있다. ‘리베라 메 Libera Me, 자유롭게 하소서’ 같이 전통적 미사 예문과 관련없는 악장이 삽입되기도 한다.
다시 모차르트의 [레퀴엠]으로 돌아가자. 그렇다면 이 미완의 작품에서 작곡가 모차르트가 썼던 부분은 어디까지일까. ‘인트로이투스’ 전체와 ‘키리에’에서 ‘오페르토리움’까지의 노래 성부와 베이스 그리고 관현악 성부의 주요 음형뿐이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미망인인 콘스탄체는 의뢰인에 대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한 것을 걱정했다. 어떻게든 작품을 완성시켜야 했던 콘스탄체가 이 작품의 완성을 부탁한 사람은 생전의 모차르트가 높이 평가한 적 있었던 요제프 레오폴트 아이블러라는 사람이었다. 아이블러는 12월 27일 콘스탄체로부터 악보를 넘겨받고 ‘세쿠엔치아’의 오케스트레이션을 하며 ‘라크리모사’의 소프라노 성부를 쓰다가 작업을 중단하고 만다. 결국 이 일을 떠맡은 사람은 모차르트의 제자 쥐스마이어였다. 그는 아이블러가 손 댄 악보를 새롭게 필사해 고친 뒤 ‘세쿠엔치아’ ‘오페르토리움’의 관현악과 ‘라크리모사’의 9마디 이후 ‘상투스’ ‘베네딕투스’ ‘아뉴스 데이’를 새롭게 작곡해 넣었다. ‘코무니오’는 곡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키리에’의 음악을 이용해 마무리했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레퀴엠]은 의뢰자에게 무사히 전달되었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가 선수금으로 받았던 작곡료의 나머지 절반을 받았다. 1793년 1월 2일, 궁정 도서관장이었던 고트프리트 판슈비텐 남작(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모차르트의 지지자로 등장한다)의 도움으로 성사된 콘스탄체를 위한 자선 연주회에서, 그녀는 비로소 남편이 마지막으로 남긴 [레퀴엠]을 듣게 된다.
‘레퀴엠’은 죽은 자를 위해 올리는 진혼 미사에 사용되는 음악이다. <출처 : NGD>
그럼 수수께끼의 그 의뢰인은 누구였을까? 그는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었다. 백작은 1791년 2월 세상을 떠날 아내를 추모할 목적으로 [레퀴엠]을 주문했고 그것을 자신이 작곡했다고 하면서 1793년 12월 14일 자신의 지휘로 연주했다. 권력자가 음악가의 재능을 돈을 주고 자신의 것처럼 속이는 일은 18세기 당시에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이때 쥐스마이어는 [레퀴엠]을 자신이 추가로 작곡해 완성시켰음을 출판인 브라이트코프에 편지로 전해 확실히 했다. 어쨌든 [레퀴엠]은 완성되었지만, 이 작품을 진정한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첫째는 쥐스마이어가 가필을 한 부분이 모차르트의 음악성을 생각해볼 때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비판과 그것을 정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쥐스마이어의 가필 자체가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그대로 옹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후 여러 개의 판본이 제각기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세우며 등장했다. 모차르트 [레퀴엠] 음반을 고를 때 판본에 유의해야 하는 까닭은 연주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곡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쥐스마이어를 옹호하면서 최소한의 변화만을 시도한 바이어 판, 아이블러가 보필한 부분을 강조한 로빈즈 랜던판, 쥐스마이어의 ‘상투스’와 ‘베네딕투스’를 아예 빼버린 대담한 리처드 몬더판, 쥐스마이어의 원래 부분을 고쳐쓴 로버트 레빈판이나 던컨 둘스판 등이 있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모차르트 [레퀴엠]은 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열린 텍스트’로 기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1곡 인트로이투스(입당송)
‘주여 영원한 안식을 그들에게 주시옵소서. 끝없는 빛을 그들의 머리 위로 비춰 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옵소서’라고 노래한다.
제2곡 키리에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앞, 뒤 곡을 연결시키는 음악적 이음새 역할을 하며 첫 부분부터 장대한 합창이 전개된다. 알토, 베이스가 서로의 주제를 제시하면서 음악의 드라마틱한 효과가 증대된다.
제3곡 세쿠엔치아 (연속된 노래)
전반부 구성의 정점이라 할 수 있으며 모두 6부로 구성된다.
Lacrimosa - 눈물과 한탄의 날은 비통한 감정이 극에 달하는 부분이다. <출처: NGD>
1. Dies irae (진노의 날)
극적인 텍스트를 통해 격렬한 감정이 터져나오는 부분이다. 화려한 연주가 곡 전체를 통털어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2. Tuba mirum (놀라운 금관 소리 울려퍼지네)
트롬본 울림으로 시작해 베이스가 힘차게 노래한다. ‘이상한 나팔이 전 인류를 옥좌 앞으로 모이게 하리라’에서 베이스와 트롬본이 대화하듯 나아가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3. Rex tremendae (무서워해야 할 대왕이시여)
앞선 ‘Dies irae’와 유사한 드라마틱한 분위기가 등장한다. 이어지는 ‘salva me’에서는 애절한 분위기가 심금을 울린다.
4. Recordare (주여 생각해보소서)
앞 곡 끝의 음조를 그대로 받아 첼로와 바세트 호른 2대의 트리오에 의한 서주가 이어지며 4중창이 진행된다.
5. Confutatis (사악한 자들이 혼란스러울 때)
남성 합창이 거친 관현악 반주를 타고 ‘저주받은 자의 상’을 격렬한 정서로 이야기한다. 반대로 여성 합창은 구원을 바라는 노래를 부른다.
6. Lacrimosa (눈물과 한탄의 날)
탁월한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서정성이 돋보이며 [레퀴엠]의 애통함이 정점을 이루는 곡이다. 긴장된 고양감은 모차르트의 창조적 생명의 등불이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것을 애달프게 보여주는 듯하다. 악장의 끝에 등장하는 ‘레퀴엠 주제’가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도 감동적이다. 장대한 세쿠엔치아의 최후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아멘’을 위해 모차르트는 거대한 푸가를 구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제4곡 오페르토리움 (봉헌송)
1. Donmine Jesu Christe (주 예수 그리스도)와 2. Hostias (주께 바칩니다)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5곡 상투스 (거룩하시다)
강하고 힘찬 모습으로 ‘Sanctus’를 외치는데 앞의 ‘Dies irae’의 격렬한 모습과 유사하다.
[레퀴엠]의 마지막은 ‘자비롭게 내려오시는 주여’를 합창하며 장엄하게 끝맺는다. <출처: NGD>
제6곡 베네딕투스 (주에 축복 있으라)
제1바이올린의 선율에 이어 알토의 독창이 ‘주의 이름으로부터 오는 이에게 축복 있을지어다 Benedictusqui venit’ 라고 축복한다. 이 선율은 1784년 당시 모차르트가 여제자에게 준 [바르바라 플로이어를 위한 연습 노트]로 알려진 작곡입문 첫 머리에 나오는 선율과 일치한다. 쥐스마이어가 완성한 악장도 스승의 악상에 크게 의존했음을 알려준다.
제7곡 아뉴스 데이 (하느님의 어린 양)
저음 비트에 미세한 현의 움직임이 얽히며 엄숙한 표정의 함창이 세상을 떠난 이의 안식을 기원하며 노래한다. 선율 전체의 베이스 선이 ‘레퀴엠 주제’와 강한 연관성을 지닌다. 모차르트의 제자 쥐스마이어가 쓴 3개의 악장 가운데 가장 충실한 모차르트의 정신을 전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8곡 코무니오 (제찬 봉령)
1곡 인트로이투스와 2곡 키리에의 선율이 다시 사용된다. 곡의 처음과 끝을 동일하게 처리해 [레퀴엠]의 음악적 구성 전체에 동질성이나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한 타당한 방법이라 할 만하다. 모차르트가 미리 지시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이다. 마지막은 2곡 키리에처럼 템포를 늦추며 장엄하게 끝을 맺는다.
흔히 찾아볼 수 없는 몬더판인 크리스토퍼 호그우드/고음악 아카데미의 녹음(루아조뤼르, Decca)은 에마 커크비를 위시한 독창자들이 한 폭의 그림 속 주인공처럼 작품에 녹아들고 있다. 합창의 순도가 매우 높고 목소리와 기악의 어우러짐이 지극히 아름답다. 원전연주 중에 고전으로 남을 음반으로 첫손에 꼽고 싶다. 쥐스마이어 판인 카를 뵘/빈 필의 연주(DG)는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애청음반이었다. 곡의 강건한 구조적인 측면을 그 비극성을 엄숙하게 드러낸 부분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통의 명연이다. 윌리엄 크리스티 지휘, 레자르 플로리상의 연주(Erato) 역시 쥐스마이어판을 채택했는데, 전체적인 곡의 흐름이 압도적이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유기질처럼 살아 있는 듯하다. 오래 들어도 귀가 피곤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로버트 레빈 판을 사용한 마틴 펄만 지휘, 보스턴 바로크의 연주(Telarc)는 소규모 앙상블이 화문석의 씨줄과 날줄처럼 올올이 정교한 맺음새를 자랑한다. 화려하진 않지만 세밀한 원전 연주로 들어볼 만하다. 바로크/고전 종교 성악곡들에서 헤레베헤를 빼놓을 수 없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연주(HMF)는 쥐스마이어판에 대한 오랜 숙고의 결과라 할 수 있는데, 헤레베헤의 다른 해석에서도 볼 수 있는 어슴푸레한 합창에 관악기들의 드라마틱한 포효가 섬광처럼 번뜩인다. 안개처럼 불투명한 모습이 어찌 보면 사자를 위한 진혼곡이라는 레퀴엠의 분위기와 성격상 잘 맞아 떨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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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근엄하면서 영혼을 울려주는 곡이네요.
레퀴엠 진혼미사에 사용되는 연주이군요.
감상 잘 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