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칼럼
K컬처 시대, 전통문화의 도전을 응원한다
(서울대총동창신문 제534호(2022.09.15)
신예리
영문87-91
JTBC교양팩추얼본부장 본지 논설위원
동시대와 호흡하는 국악인 눈길
전통문화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에헤요~ 베 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에 수심만 지누나~’
빨간 염색 머리에 새까만 선글라스, 빤짝이 바지 차림의 남자가 온몸으로 리듬을 타며 ‘베틀가’를 부르는 모습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지난 2017년 미국 공영라디오 NPR의 인기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아시아 출신 최초로 출연한 밴드 씽씽의 보컬 이희문 얘기다. 경기민요 이수자인 그는 늦깎이로 국악에 입문한 뒤 우리 민요에 재즈·디스코·록 등 다채로운 장르의 색깔을 덧입히는 음악 작업을 해왔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국악계의 이단아, 혹은 파격의 아이콘. 얼마 전 필자가 기획·제작 중인 JTBC ‘차이나는 K클라스’에 출연한 그에게 결코 쉽지 않은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전통이 박제화 된 채 잊혀져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때 이 땅의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던 경기민요를 소수의 국악인들만 부르게 된 작금의 상황을 깨뜨리고 싶었다는 거다. 그의 취지에 십분 공감해 이희문 편에 제작진이 붙인 제목은 이랬다. 세상 ‘힙’한 요즘 노래, K민요-.
‘차이나는 K클라스’는 요즘 세계 각국이 주목하는 K컬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각적으로 짚어보는 20부작 특집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K드라마와 영화, K팝이 갈수록 각광받는 반면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전통문화는 여전히 관심 밖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게 됐다. 앞서 얘기했듯 이희문이 속한 민요 밴드의 공연에 먼저 반응을 보인 것도 해외 팬들이었다. 우리가 국악을 케케묵은 유물로만 취급하는 사이, 최신 감각으로 ‘힙’하고 ‘핫’하게 재탄생한 그들의 음악이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거다.
K팝스타들이 최근 잇따라 시도한 국악 크로스오버 역시 비슷한 양상을 낳고 있다. BTS 멤버 슈가의 ‘대취타’를 접한 글로벌 아미들은 도입부의 태평소 소리에 “멋지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거문고 연주로 시작하는 블랙 핑크의 신곡 ‘핑크 베놈’ 뮤직비디오의 유튜브 조회수는 일주일 만에 2억 회를 넘어섰다. 전통을 올곧게 보존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대와 호흡하며 다채롭게 변주할 필요가 크다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차이나는 K클라스’에 나온 또 다른 걸출한 소리꾼 이자람이 기존의 판소리 다섯 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에 얽매이지 않고 창작 판소리에 뛰어든 이유도 그래서다. 춘향가도, 심청가도 솔직히 요즘 잣대로 보면 청중이 불편하게 여길 구석이 적잖은 게 사실이다. 동시대성을 화두로 붙잡은 이자람은 그간 현대 한국 사회의 면면을 이야기하는 ‘사천가’ ‘억척가’ 등을 새롭게 만들어 꾸준히 무대에 올려왔다. 그 결과 이들 작품 역시 높디높은 언어의 장벽을 깨고 여러 해외 투어 공연에서 기립 박수와 함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연일 쏟아지는 K컬처 예찬에 너나 없이 뿌듯함을 느끼는 요즘. 조금 더 눈과 귀를 열어 자랑스러운 우리 전통 문화에도 관심 갖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무엇보다 대중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용기있게 새로운 도전에 나선 예술인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