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가는 저세상은 있다
여러분! 첫 번째 말씀드립니다.
죽어서 가는 저세상은 있습니다. 내세(來世) 있습니다. 다음생 있습니다.
이 생에서 살고 저 생에 가서도 살고 하는 인간주체가 있습니다.
지금 기존의 불교는 인간 주체가 없다라고 무아(無我)를 해석합니다.
무아(無我). 없을 무(無)자, 나 아(我)자.
아(我)를 범어로는 아트만(atman)이라고 해요.
무아는 안아트만(anatman).
부처님께서 무아를 말씀하셨는데, 기존의 불교계는 이 무아 해석을 잘못 해버렸어요.
그래가지고 오늘날 지구촌 불교는 나(我)가 없다고 주장하고 대중법문을 해요.
너도 없고 나(我)도 없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무아를 잘못 해석해버린 경우인줄 압니까?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이 세상 만법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되어서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인연 따라 모여지니,
하나의 생명체도 어떤 정신적인 것과 어떤 물질적인 것이 모여 이루어지고
또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니까 없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공(空)이 아니냐.
공(空)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것 아니냐. 실체가 없다.’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합니다.
제법무아니까 제행무상(諸行無常)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제행무상 제법무아, 이것은 현상계의 진리예요.
열반적정(涅槃寂靜)은 본체계의 진리예요.
현상계에서 볼 때에는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되어 있어서 분석해보면 공(空)이어요.
육체를 지닌 우리 인간도 그래요.
사람도 가죽 뼈 살 피... 전부 다 조각조각 분리시켜 보면 아무것도 없잖아요.
여러분이 볼 수 있는 실체가 없잖아요. 현상세계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그 말씀을 하신 의도가 있어요.
무엇 때문에 그 말씀을 하셨나?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지옥가거든.
지금 절대다수가 죽으면 지옥갈 수 있거든.
오계(五戒) 등 계율을 못 지키고 악업을 지으면 지옥갈 수 있어요.
여러분! 이건 우주의 법칙이어요. 그~ 불쌍하지 않습니까?
지옥에서 받게 되는 벌이 얼마나 무섭다고요.
붓다의 눈을 뜬 사람이 지옥풍경을 볼 때에도
가슴이 아파와서 계속 지켜볼 수가 없어요.
여러 지옥이 있는데 한 가지 지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장본원경》에도 없는 ‘대꼬챙이 지옥’이 있어요. ‘
대꼬챙이 지옥’이 뭐냐?
열 손가락 사이-이 손톱과 이 피부 사이사이를 대꼬챙이로 찌르는 거예요.
지옥의 벌은 자동으로 집행되어요.
열 손가락을 나란히 정리해서 펴놔요.
정해진 자리에 놓으면 저기서 기계가 촤~악 와가지고 침이 이 손가락 사이 살 속으로
촤~악 들어간다고요. 대꼬챙이는 아주 날카로운 침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때의 고통은 어떤 줄 압니까?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이건 거짓이 아닙니다.
내가 모든 것을 걸고 이야기합니다.
이 지옥 법문은 별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기가 싫어서요.
이 법문은 무섭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좀 그렇습니다.
그러면 까무러쳐서 죽는 거예요.
벌 받는 지옥중생은 까무러쳐 죽는 거예요.
그러나 지옥중생은 영혼체로 되어 있어서 이 영혼체는 조금 있으면 살아납니다.
이 육신과 다릅니다. 살아나면 또 저기서 대꼬챙이가 와서 찔러요.
이렇게 하기를 하루에도 수 십 번이 아니라 수 백 번을 집행하는 거예요.
이렇게 하루만 하느냐? 백 년, 천 년도 아니어요. 거기는 수명이 겁(劫)으로 따져요
이런 지옥을 가고 지옥벌을 다 받은 중생은 축생계로 가서 동물 육신을 받습니다.
이것도 맞아요. 이런 법문 말씀을 부처님밖에 못했어요.
2600년 전 부처님밖에 이 법문을 하지 못했어요.
윤회를 인정하고 철학 사상이 오묘하다고 하는 저 힌두교도
지옥이 있다고만 했지 어떻다는 설명을 못했어요.
기독교라든지 이슬람교라든지 유대교 등에서도 지옥이 있다고는 했어요.
그러나 그 지옥을 한 가지라도 실제로 어떻다는 설명은 없어요.
우리 부처님께서《아함경》,《지장경》에 자세히 말씀을 했지요.
우리 영산불교에서 보니까 정말 맞아요.
8만4천 지옥이 있어요. 하나의 지옥은 이 사바세계만 해요.
출처:2013년 자재 만현큰스님 법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