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물앵두가 익어 가면 섬진강변 마을엔 모내기가 시작된다.
보색대비에 가까운 초록잎 사이 빨간 물앵두를 보면 두 눈이 다 시원해진다. 벚나무와 흡사하지만 벚꽃보다 열흘 먼저 꽃을 피운다. 열매 또한 먹을 수 없는 보랏빛 버찌와 달리 붉디붉은 물앵두는 아주 달큼하다. 이른 아침 섬진강변 술꾼들의 숙취해소에 아주 큰 역할을 한다.
살아갈수록 물, 물이라는 말이 참 좋아진다. 물매화, 물앵두, 물봉선, 물푸레, 물까치, 그리고 김남주 시인의 별명이었던 ‘물봉’ 등. 아수라지옥 같은 ‘불의 시대’에 상선약수의 물을 생각한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아주 오래전에 발표된 강은교 시인의 이 시가 더 간절해지는 시절이다.
보리가 누렇게 익으면 섬진강 물을 거슬러 남해에서 보리은어가 오르고, 너나없이 가난했던 보릿고개, 춘궁기의 대표적인 나무인 이팝나무가 환하게 피어난다. 전남 순천의 오지 농소마을의 노거수 이팝나무도 어느새 가난한 마을의 환한 고봉밥 같은 꽃무더기를 피워낸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이 바빠진다. 별이 빛나는 밤을 기다리고 기다려 몇 번을 찾아간 끝에 겨우 하늘의 시간(天時)을 엿볼 수 있었다.
이팝나무 꽃이 피었다가 지는 며칠 동안 밤이슬을 맞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하동의 녹차밭과 섬진강 너머 광양의 백운산 위로 은하수가 떠올랐다. 바야흐로 은하수의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달빛 약한 그믐밤 전후의 맑은 날들을 숨죽여 기다렸다. 음력 보름이 지나 다시 은하수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1주일은 더 기다려야 한다.
살다 보니 지난 가을부터 이름 하여 ‘별나무’ 시리즈가 한 장 두 장 내게로 왔다. 감잎 다 진 뒤에 홍시를 주렁주렁 매단 채 녹차밭에 서 있는 감나무, 그 너머로 별빛이 쏟아지는 사진이 그 시발점이었다. 이후로 매화, 산벚꽃, 오동나무, 이팝나무, 평사리 부부송 등 지상의 나무와 저 하늘의 별들이 조우하는 모습을 장노출로 담기 시작했다.
밤 10시부터 새벽 3시 사이에 환한 꽃과 푸른 밤하늘의 별들이 만나는 사진을 찍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그 시간 그 곳에 잠들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을 견디는 큰 힘이 되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이들의 머리 위에도 날마다 은하수는 빛나며 흘러갔을 것이다. 푸른 하늘 은하수를 보며 내가 만난 지상의 별들, 그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올해는 전국적으로 큰 가뭄 없이 오뉴월 모내기철을 맞았다. 지난해에 비하면 얼마나 큰 다행인가. 섬진강과 평사리 들녘에 때 이른 무더위를 식혀 주는 비가 내렸다. 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미리 우비를 입고 빗발이 약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모터사이클 시동을 걸고 길을 나섰다. 후다닥 구재봉에 올랐다.
막 비가 그치자 구름 사이 햇살을 받은 섬진강은 더욱 빛나고, 모내기 준비로 논물을 받은 무딤이들도 덩달아 환해졌다. 유장하게 흐르는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비 그친 뒤의 멋진 노을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큰 기대를 하면 할수록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노을빛은 그런대로 좋았지만 막판의 연무로 가시거리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7월이 오기 전에 한 번쯤은 황금빛 섬진강을 보여 주리니 뭐 그리 서러울 것인가. 사람의 일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날도 있었다. 비오는 날에도 산정에 올라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먹구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이미 젖은 몸은 더 이상 젖을 일이 없으니 구름 속의 알몸 산책을 했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옷을 훌훌 벗는다는 게 미친 짓이지만 이보다 더 행복한 무장해제의 순간이 또 있으랴. 대자연 속에서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는 것이 더 어색한 일인지도 모른다.
몽유운무화의 날들은 한순간이요, 살다 보면 꽃시절은 1년에 단지 열흘뿐이다. 그 열흘도 언제 어떻게 왔다 갔는지도 잘 모르니 날마다 꽃시절을 꿈꾸는 것은 미몽일 수도 있다. 자주 몰려오는 생의 먹구름을 피한다고 피해지겠는가. 차라리 적란운의 먹구름이 몰고 오는 천둥과 벼락을 기다리는 일이 정면의 삶이다. 바로 그때 생의 환한 꽃 한 송이 피어날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하지 무렵이 다가오면 날마다 구재봉에 올라 섬진강을 내려다보았다. 바야흐로 섬진강 노을빛이 가장 아름다울 때인 것이다. 하동군 평사리 들녘과 섬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데, 때마침 모내기가 막 끝난 무논과 부부송, 그리고 섬진강에 노을빛이 내려앉는 순간은 그야말로 진경이다.
섬진강 위로 쏟아지는 빛내림은 황홀경
멀리 지리산 왕시루봉과 전남 광양시와 구례군의 백운산 사이로 유장하게 흐르는 섬진강, 바로 그 위로 석양이 지기 때문에 하지 무렵의 보름 정도가 연중 최적기다. 그렇다고 날마다 이런 진경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다.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오히려 너무 맑아도 노을빛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서쪽 하늘의 적당한 구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기상청 예보를 보고 하늘을 살펴본 뒤에 올라가도 예상은 늘 빗나가기 마련인 것이다.
그래서 하지 무렵의 저물녘이면 날마다 오르고 또 올라갈 수밖에. 아름다운 노을빛 또한 ‘인간의 시간’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하늘의 시간’, 천시(天時)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기대에 부풀어 조급해지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순리(順理)와 역천(逆天)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면, 마치 거짓말처럼 어느 순간 한 번쯤은 노을빛이 섬진강으로 내려앉으며 황홀한 진풍경을 보여 준다.
나 또한 5년 이상을 오르내리며 단 3장의 사진을 찍었다. 물론 날마다 같은 곳에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모두 지워버리고 겨우 3장의 사진만 남았다는 말이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섬진강 위로 쏟아지는 빛내림 사진이다. 그날도 너무 흐려져 삼각대를 접고 돌아서려는데 문득 구름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며 셔터를 눌렀다. 저무는 섬진강이 그 빛을 받아 환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황홀경이라는 말, 살아 있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말을 제대로 실감했다.
해질녘이면 구재봉에 올랐다가 내려와 가볍게 저녁을 챙겨 먹고 날이 맑으면 다시 별이 빛나는 밤길을 나섰다. 그믐 가까운 초여름밤, 밤하늘 별들이 너무 많아 아찔할 정도였다. 밤이슬 맞으며 녹차밭에 쪼그려 앉았다가 섬진강 포플러나무와 밤꽃 나무 아래서 어린 소년이 되어 별밭을 바라보았다. 바야흐로 은하수 시즌이니 한줌 별빛마저 그냥 보내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하지만 동네마다 밤새 가로등 불빛이 켜지니 광해(光害)로 은하수의 얼굴이 갈수록 희미해졌다. 별빛 천국은 더 밝은 전깃불에 조금씩 가려졌다. 단 한순간도 캄캄해질 수 없다는 것 또한 고문이 아닌가. 평사리 부부송도 불빛 몸살을 앓고 있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 한결같이 서 있는 부부송을 보며 세상을 휘휘 둘러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대명천지에 OECD 국가 중에 자살률이 세계 1위라니, 부끄럽고 참담한 나라가 아닌가. 37분 만에 어딘가에서 또 한 사람이 별똥별처럼 허공에 발을 내딛는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너무 밝은 세상에 오히려 잘 안 보이는 것들이 많다는 역설이라니! 그늘과 어둠 속에서 더 빛나는 것들의 이중성에 대해 오래 생각하는 초여름 밤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절감했다. 빈집을 수리하며 수많은 이들의 성원과 격려를 받고 있다. 고맙고 고마운 날들을 되새기며 ‘그래, 천천히 가자, 함께 가자’ 다짐했다. 산중 홀로 선 오동나무 꽃들이 더불어 별빛도 없이 어찌 저 홀로 빛나겠는가. 오래전에 쓴 <지리산 편지> 중에서 ‘옆을 보라’를 되새기며 다시 읽어보았다.
앞만 보지 말고 옆을 보시라.
버스를 타더라도 맨 앞자리에 앉아서
앞만 보며 추월과 속도의 불안에 떨지 말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시라.
기차가 아름다운 것은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이지요.
창밖은 어디나 고향 같고
어둠이 내리면
지워지는 풍경 위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얼굴들.
언제나 가파른 죽음은 바로 앞에 있고
평화로운 삶은 바로 옆에 있지요.
고통스러울지라도
우리를 밟고 가는 이들에게 돌을 던지지는 말아야지요.
누군가 등 뒤에서 똑같이 뒤통수를 후려칠지도 모르니
앞서는 이에게 미혹되지도 말고
뒤에 오는 이를 무시하지도 말아야겠지요.
일로매진(一路邁進)의 길에는 자주 코피가 쏟아지고
휘휘 둘러보며 가는 길엔 들꽃들이 피어납니다.
평화의 걸음걸이는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것.
오로지 앞만 보다가 화를 내고 싸움을 하고
오로지 앞만 보다가 마침내 전쟁이 터집니다.
더불어 손잡고 발밑의 개미 한 마리.
풀꽃 한 송이 살펴보며 가는 생명평화의 길.
한 사람의 천 걸음보다
더불어 손을 잡고 가는 모두의 한 걸음이 더 소중하니
앞만 보지 말고 바로 옆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다 보면 자주 코피가 쏟아질 뿐이다. 생의 안개와 구름이 자욱하게 밀려와 한 치 앞도 안 보일 때면, 그냥 잠시 그 자리 그대로 주저앉아 때를 기다리는 것도 큰 지혜일 것이다. 소낙비 맞은 염소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그냥 푹 젖는 것 또한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땅 이 세상에 살아남은 우리는 모두 서로의 반영(反影), ‘나는 너’인 것이다. 잠시 지리산을 벗어나 군산-순천-광주를 돌아 먼길을 다녀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언제 봐도 반갑고 고마운 사람들, 지리산행복학교의 강지원 시인과 싱어송라이터 박제광, 언제나 환한 쑥국님, 멀리서 달려온 정택근 선생, 그리고 참 오랜 인연의 강형철 시인 등과 밤술을 마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은 너와 나의 반영(反映)이자 반영(反影)이다. ‘인드라망의 그물’이 바로 그런 얘기일 것이다.
군산에서 김제 벽골제를 지나는데 노랑어리연꽃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흐린 대낮이라 반영 사진이 아쉽기는 했지만 무주 어느 오지에서 만난 홍도화 반영과 동행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모내기철의 평사리 부부송도 어린 모들 사이에 슬그머니 물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렇다. 나는 너, 너는 나다. 내가 비로소 나일 때 너 또한 마침내 온전한 존재의 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