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꿈의 땅 바이칼, 변신이야기
바이칼 여정에서 내 덤으로 한 짓이 하나 있었다.
책 한 권 읽은 것이 곧 그 짓이다.
독문학자 천병희 교수가 옮긴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가 내가 읽은 그 책이다.
오비디우스는 이 작품에서 몸을 바꾸며 변해 온 삼라만상을 노래하고 있었고, 그 노래 속에 인류의 시원에 대한 관심, 다이내믹한 상상력, 서양 고대의 인식 체계, 인간의 욕망에 대한 상징과 은유 등, 삶에 대한 풍부한 모티브를 녹여내고 있었다.
저자 오비디우스에 대해 알아봤다.
오비디우스는 BC 43년에 중부 이탈리아 펠리그니 술모(Sulmo, 현재 술모나)의 기사 가문 아들로 태어났고, 로마가 크게 융성해서 로마사와 로마 문학사를 연구하는 이들이 칭송을 아끼지 않는 소위 ‘아우구스투스 시대’를 살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엘리트 청년들이 그러하듯 법률가나 정치가가 되려고 한 살 위인 형과 함께 로마로 가서 웅변술의 대가였던 아우렐리우스 푸스쿠스와 포르키우스 라트로에게서 수사학을 사사한 뒤 잠시 법관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문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를 못해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신분 계층이라면 따 놓은 당상이랄 수 있었던 원로원직을 과감히 포기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했고, 그래서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로마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알려지게 된 것이라고 했다.
베르길리우스와 호라티우스 등 선배 시인이 세상을 떠나고 오비디우스가 로마의 문학계를 대표하며 시인으로서의 최고의 명예를 누리던 어느 날, 그가 쓴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면서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인 흑해 서안으로 유배를 당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시베리아나 다름없는 유배지인 그곳에서, 오비디우스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비참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가, 끝내 그렇게도 꿈꾸던 로마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유배된 지 10년 만에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이 책 ‘변신이야기’(Metamorphoseon)를 비롯해서, ‘여걸들의 서한’(Heroides), ‘비탄가’(Tristia), ‘흑해에서의 편지’(pistulae ex Ponto), ‘로마의 축제일’(Fasti), ‘여성의 얼굴화장법’(Medicamina Faciei Femineae)등이 있다고 한다.
다음은 옮긴이 천병희에 대한 소개다
1939년생인 그는 독문학자로서 우리 한국의 독보적인 그리스어 고전 번역가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횔덜린의 핀다르 수용에 관한 연구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5년 동안 독문학과 고전문학을 수학했고, 서울대학교 사범대 전임강사와 인문대 강사를 지냈으며, 지금은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명예교수로 있다고 한다.
저서로는 ‘그리스 비극의 이해’, ‘횔덜린의 핀다르(핀다로스) 수용에 관한 연구’가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횔덜린의 송시 소고’, ‘독일 비가 소고’, ‘아이스퀼로스와 희랍 비극’, ‘호메로스의 작품과 세계’, ‘핀다르 시의 이해’, ‘소포클레스 비극의 이해’, ‘에우리피데스 비극의 이해’ 등이 있다.
지금은 복권이 되기는 했지만,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해직되면서 10년간 자격정지 되기도 했었는데, 그때 많은 그리스어 고전을 최초로 원전 번역했다고 한다.
질곡 같았을 그 삶의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아내와 함께 한 서유럽여행을 했던 11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야 한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를 거쳐, 마지막으로 들른 나라가 이태리였고, 이태리에서도 로마와 바티칸과 피렌체와 베니스와 폼페이 등의 도시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그때 피렌체 단테의 생가 앞에서 문득 한 생각이 일어 그 생각을 다짐으로 내 가슴에 새겨둔 것이 있었다.
바로 단테 그가 쓴 ‘신곡’(神曲)을 꼭 읽고야 말겠다는 다짐이었다.
학창 시절에 ‘신곡’이라는 그 책의 이름과 ‘단테’라는 그 책을 쓴 이의 이름은 숱하게 외고 또 외웠었지만, 정작 그 책을 읽어볼 생각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있던 터였다.
좀 비겁한 짓이기는 하지만, 내 속마음으로는 그 책의 내용이 아주 생소해서 읽기 어렵겠다 싶었고, 또 두툼한 그 책의 두께로 봐서 읽다가 도중에 그만 두기 십상이겠다 싶어서였다.
그 비겁한 생각을 그때 그 자리에서 털어버렸다.
그러나 그 다짐도 내 마음속에만 담은 것으로, 그 책을 실제로 읽기에는 3년이라는 세월이 더 흘러야 했다.
2007년 12월에 우리 맏이 혼인날짜가 잡히면서, 새로 맞을 큰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되는 나로서 부끄러울 수 있는 짓들을, 내 마음속에서나마 털어내야 했다.
이미 오염된 내 현실의 삶은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지어갈 수 있는 마음의 세계만큼은 오염되지 않아야 하고 떳떳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함이 큰며느리에게 주는 마음의 선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내 마음속에 집힌 것이 바로 그 단테의 ‘신곡’이라는 책을 읽겠다고 다짐해놓고도 읽지 않고 있던 현실이었다.
그래서 혼인날짜 석 달을 앞두고 드디어 그 책을 읽기 시작함으로써, 내 마음속 다짐 하나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내가 선택한 책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한형곤 교수가 번역한 것으로, ‘지옥편 34곡’ ‘연옥편 33곡’ ‘천국편 33곡’ 해서 모두 100편의 시가 담긴 968쪽짜리의 것이었다.
그러나 곧장 그 책을 다 읽은 것이 아니었다.
5년의 세월이 더 흘렀고, 그래서 2012년 7월 13일에 ‘epilogue’라는 제목으로 100편째의 독후감을 남기면서, 결국 그 책 읽기를 끝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하는 신과 영웅들의 이름과 지명이었다.
단테가 그 책을 쓰던 14세기 그 당시에 실존했던 인물들뿐만이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성경에 등장하는 신과 영웅들도 수두룩했다.
그 이름들에 대한 이해 없이 그냥 읽는 것은, 그 등장 사연에 대한 것까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어서, 그 책은 읽으나마나 할 것이 빤했다.
그래서 그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대한 내력을 이해한 뒤에 그 문단을 넘어가고는 했다.
그렇게 그 책을 읽었기에, 그 책에 대한 이해가 나름대로 풍부했다 싶었고, 또 그와 유사한 책 읽기가 겁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연결 선상에서 읽은 것이 성경 구약과 신약이었고, 그리스 서사시인인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lias)와 ‘오뒷세이아’(Odysseia)이었고, 같은 시대 서사시인인 헤시오도스(Hesiodos) ‘신들의 계보’(Theogonia)이었던 것이다.
천교수는 ‘읽어도 읽어도 매혹적인 신화, 이제는 원전으로 만날 때’라는 제목으로 쓴 옮긴이 서문에서 스스로 이 책의 가치를 이렇게 평가했다.
「후세의 서양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라틴문학의 걸작으로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작품은 처음 쓰여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2000년 동안 끊임없이 읽혀지며 서양문학에, 그리고 서양인들의 자의식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아이네이스’가 로마에 부여된 세계사적 사명을 장중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노래함으로써 로마를 위대하게 만든 작품이라면, ‘변신이야기’는 그리스 라틴문학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작가이 가장 재미있는 작품으로 그시르 신화에 관한 한 다른 문헌에서는 접할 수 없는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였으며 나아가 문학작품 가운데 서양 미술에 가장 많은 소재를 제공해왔다.」
다음은 그 목차다.
「Ⅰ. 서시 / 우주와 인간의 탄생 / 네 시대 / 하늘의 신들에게 도전하는 기가스들 / 뤼카온 / 대홍수 / 인간의 조상 데우칼리온과 퓌르라 / 퓌톤 / 월계수가 된 다프네 / 암소로 변한 이오 / 백개의 눈을 가진 아르구스 / 쉬링크스 / 에파푸스의 모욕 / 아버지를 알고 싶은 파에톤 / Ⅱ. 아버지의 마차를 모는 파에톤 / 미루나무로 변한 헬리아데스들 / 퀴그누스 / 암곰이 된 칼리스토 / 아르카스 / 코로니스 / 케크롭스의 딸들 / 코로니스의 죽음 / 오퀴로에의 예언 / 돌이 된 밧투스 / 케크롭스의 딸 아글라우로스 / 질투의 여신 / 아글라우로스의 최후 / 에우로파를 납치한 황소 / Ⅲ. 카드무스와 뱀의 사투 / 디아나의 알몸을 본 악타이온 / 불타는 세멜레의 사랑 / 사랑의 쾌감을 이야기한 티레시아스 / 나르킷수스와 에코 / 펜테우스 / 튀르레니아의 선원들 / 펜테우스의 형벌 / Ⅳ. 마뉘아스의 딸들 / 퓌라무스와 티스베 / 마르스와 베누스, 레우코테아, 클뤼티에 / 실마키스와 헤르마프로디투스 / 박쥐가 된 미뉘아스의 딸들 / 아타마스와 이노 / 이노의 시녀들 / 카드무스와 하르모니아 / 페르세우스와 아틀라스 / 안드로메다의 구출 / 메두사 / Ⅴ. 케페우스 왕궁의 결투 / 페르세우스의 후일의 행적들 / 폭군 퓌레네우스 / 무사 여신에게 도전한 피에로스의 딸들 / 신들의 변신 / 케레스와 프로세르피나 / 아레투사가 도망친 사연 / 트립톨레무스 / 숲 속의 험담꾼이 된 피에로스의 딸들 / Ⅵ. 아라크네와 여신의 베짜기 경쟁 / 니오베의 파멸 / 뤼키아의 농부들 / 마르쉬아스의 경연 / 펠롭스의 어깨 / 프로크네와 필로멜라의 복수 / 보레아스의 혼인 / Ⅶ. 이아손과 메데아 / 회춘하는 아이손 / 펠리아스의 희망과 죽음 / 메데아의 도주 / 메데아와 테세우스 / 미노스와 아이아쿠스 / 아이기나에서의 역병 / 케팔루스와 프로크리스 / Ⅷ. 스퀼라와 니수스 / 미노타우루스 / 다이달루스와 이카루스 / 페르딕스 /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 알타이아와 멜레아그로스의 죽음 / 멜레아그로스의 누이들 / 아켈로우스와 테세우스 / 필레몬과 바우키스 / 에뤼식톤과 그의 딸 / Ⅸ. 아켈로우스와 헤르쿨레스의 혈투 / 넷수스 / 헤르쿨레스의 죽음 / 헤르쿨레스의 탄생과 갈란티스 / 드뤼오페의 변신 / 이올라우스와 칼리로에의 아들들 / 뷔블리스 / 이피스 / Ⅹ.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 나무들의 목록, 퀴파릿수스 / 미소년 가뉘메데스 / 휘아킨투스 / 케라스타이족, 프로포이티데스들 / 퓌그말리온의 기도 / 뮈르라의 광기 / 아도니스와 베누스 / 아탈란타와 힙포메네스 / 아도니스의 죽음 / XI. 오르페우스의 죽음 / 미다스 / 라오메돈 / 펠레우스와 테티스 / 다이달리온 / 펠레우스의 소 떼를 짓밟은 늑대 / 케윅스와 알퀴오네 / 잠의 신 솜누스 / 아이사쿠스 / XII. 이피게니아 / 소문의 여신 파마 / 퀴그누스 / 카이네우스의 성 전환 / 켄타우루스족과 라피타이족의 싸움 / 카이네우스의 최후 / 네스토르와 헤르쿨레스/ 아킬레스의 죽음 / XIII. 아킬레스의 무구를 두고 벌이는 아이약스와 울릭세스의 설전 / 트로이야의 함락 / 헤쿠베, 폴뤽세나, 폴리도루스 / 멤논의 주검에서 나온 새 / 아이네아스의 방랑 / 아키스와 갈라테아 / 스퀼라를 사랑한 글라우쿠스 / XIV. 마녀 키르케와 스퀼라 / 운명의 뜻에 따라 떠나는 아이네아스 / 사랑받았던 여자 시뷜라 / 아카이메니데스 / 울릭세스의 모험 / 키르케의 섬 / 피쿠스와 카넨스 / 디오메네스의 전우들 / 야생 올리브나무 / 아이네아스의 함선들 / 아르데아 / 아이네아스의 죽음 / 라티움의 왕들 / 포모나와 베르툼누스 / 이피스와 아낙사레테 / 로물루스와 헤르실리에 / XV. 뮈르켈로스 / 퓌타고라스의 철학 / 힙폴뤼투스 / 키푸스 / 아이스쿨라피우스 / 카이사르의 신격화 / 맺는 말」
모두 15권으로 엮은 800쪽의 책에는 146편의 시가 실려 있었다.
한 편 한 편 그 시의 제목만으로도 그 담긴 내용이 언뜻 짐작되는 시들도 여러 편 있었다.
‘인간의 조상 데우칼리온과 퓌르라’가 그렇고, ‘월계수가 된 다프네’가 그렇고, ‘암소로 변한 이오’가 그렇고, ‘아버지의 마차를 모는 파에톤’이 그렇고, ‘암곰이 된 칼리스토’가 그렇고, ‘아르카스’가 그렇고, ‘나르킷수스와 에코’가 그렇고, ‘메두사’가 그렇고, ‘ 라크네와 여신의 베짜기 경쟁’이 그렇고, ‘미노타우루스’가 그렇고, ‘다이달루스와 이카루스’가 그렇고, ‘헤르클레스의 죽음’이 그렇고, ‘휘아킨투스’가 그렇고, ‘퓌그말리온의 기도’가 그렇고, ‘미다스’가 그렇고, ‘아킬레스의 죽음’이 그렇고, ‘트로이야의 함락’이 그렇다.
책의 머리의 1곡은 서시(序詩)가 장식했다.
그 전문이 이렇다.
새로운 몸으로 변신한 형상들을 노래하라고 내 마음 나를 재촉하니,
신들이시여, 그런 변신들이 그대들에게서 비롯된 만큼
저의 이 계획에 영감을 불어넣어주시고, 우주의 태초로부터
우리 시대까지 이 노래 막힘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2곡은 ‘우주와 인간의 탄생’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그 첫머리에서 태초 우주의 모습은 이렇다고 했다.
바다도 대지도 만물을 덮고 있는 하늘도 생겨나기 전 자연은
세상 어디서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카오스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원래 그대로의 정돈되지 않은 무더기로
생명 없는 무게이자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들의 수많은
씨앗들이 서로 다투며 한곳에 쌓여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에는 어떤 티탄도 아직 세상에 빛을 주지 않았고,
어떤 포이베도 자라면서 그 뿔들을 다시 채우지 않았다.
어떤 대지도 제 무게로 균형을 잡으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 속에 떠 있지 않았으며, 어떤 암피트리테도
육지의 긴 가장자리를 따라 팔을 뻗지 않았다.
대지와 바다와 대기가 그곳에 있기는 했으나
대지 위에 서 있을 수 없었고, 바닷물에서 헤엄칠 수 없었으며,
대기에 빛이 없었다. 그 어떤 것도 제 모양을 띠지 못했다.
모든 것이 서로에게 방해만 되었으니, 하나의 무더기 안에서
찬 것은 더운 것과, 습한 것은 메마른 것과, 부드러운 것은
딱딱한 것과, 무게가 없는 것은 무게가 있는 것과 싸웠던 것이다.//
그렇게 다투던 혼돈의 카오스가 조화로운 우주로 탄생된 모습을 2곡의 끝 대목에서 이렇게 적고 있었다.
이렇듯 그가 만물을 서로 떼어놓고 제각기 경계를 정해주자
오랫동안 눈먼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별들이
온 하늘에서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영역 안에 각각의 생물이 살도록
별들과 시니들의 형상들은 하늘나라를 차지했으며,
바닷물은 반짝이는 물고기들에게 거처를 만들어주었다.
대지는 짐승들을, 움직이는 대기는 새들을 맞아들였다.
이들보다 더 신성하고, 더 높은 생각을 할 수 있으며,
다른 것들을 지배할 수 있는 동물은 아직 없었다.
그래서 인간이 태어났다. 만물의 창조자이자 세계의 더 나은
근원인 신이 자신의 신적인 씨앗으로 인간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갓 생긴 대지가 최근에 높은 아이테르에서 떨어져 나와
아직은 친족인 하늘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그 대지를 아이페투스의 아들이 빗물로 개어서는
만물을 다스리는 신들의 모습으로 인간을 빚었을 수도 있다.
다른 동물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대지를 내려다보는데
신은 인간에게만은 위로 들린 얼굴을 주며 별들을 향하여
얼굴을 똑바로 들고 하늘을 보라고 명령했다.
방금 전만 해도 조야하고 형체가 없던 대지는 이제
여태까지 알려져 있지 않던 인간의 모습이라는 옷을 입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시를 써내려 간 오비디우스는 맨 끝 편인 146편째에서 ‘맺는 말’이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대서사시의 끝맺음을 했다.
이제 내 작품은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윱피테르의 노여움도
불도, 칼도, 게걸스런 노년의 이빨도 없앨 수 없을 것이다.
원한다면, 오직 내 이 육신에 대해서만 힘을 갖고 있는
그날이 와서 내 덧없는 한평생에 종지부를 찍게 하라.
하지만 나는, 나의 더 나은 부분은 영속하는 존재로서
저 높은 별들 위로 실려 갈 것이고, 내 이름은 소멸하지 않을 것이다.
로마의 힘에 정복된 나라들이 펼쳐져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나는 백성들의 입으로 읽힐 것이며, 시인의 예언에
진실 같은 것이 있다면, 내 명성은 영원히 살아남게 될 것이다.//
오비디우스의 이 마지막 시에 나오는 ‘내 덧없는 한평생에 종지부를 찍게 하라.’는 구절로 봐서, 그가 아우구스투스로부터 밉상을 받고 난 뒤에 이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이다.
출판사 ‘숲’의 서평이 있었다.
다음은 그 핵심 대목이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와 함께 후대의 서양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라틴문학의 걸작으로, 처음 쓰여 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2000년 동안 끊임없이 읽혀지고 있지만 오비디우스의 영향이 가장 강렬했던 서양의 12~13세기는 ‘오비디우스의 시대’라고 부를 정도였다. 16세기의 영국 또한 ‘오비디우스의 시대’라 할 정도로 오비디우스는 초서, 스펜서, 셰익스피어, 밀턴을 비롯한 작가들에게 참된 시인의 모델로 지목되었으며 후대의 제임스 조이스, 엘리엇 역시 <변신이야기>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시를 전개해 나간다. 또한 단테, 보카치오, 괴테, 릴케, 세르반테스 등도 모두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를 소재로 삼아 작품을 썼다. 천교수가 번역한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첫째, 라틴어 텍스트를 대본으로 원문 1만1천995행을 꼼꼼히 번역했다. ‘시인’의 ‘작품’을 가능한 한 그대로, 그 문체, 그 분위기, 뉘앙스를 살려서, 시인이 전하고자 한 바를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주려고 옮긴이는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심있는 독자에게, 그 줄거리를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비디우스의 놀라운 문체와 재치, 파토스까지 그의 놀라운 문학적 성과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월의 먼지에 풍화된 프레스코화를 한 장면씩 복원하듯 난해한 라틴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기면서도 옮긴이는 오비디우스 특유의 표현법에 흠뻑 매료되어 충만한 행복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둘째, 옮긴이는 이미 서양의 주요 고전들을 오랫동안 번역하면서 파악한 텍스트 간의 관련성을 기반으로 풍부한 주석과 인덱스를 달고 있다. 오비디우스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할 수 있는 상징체계를 만들어내면서도 별도의 주석 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이 작품을 썼지만, 문화적인 배경 지식, 동일 인물·동일 사건이 다른 작품에서는 어떻게 나오는지 텍스트 간의 관련성을 알면 읽는 재미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동일 인물이 고전마다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는 스펙트럼까지 살피고 있는데 오비디우스의 경우에는 워낙 혁신적으로 인물들을 그려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통찰력과 이해가 전제되면 이 작품의 또 다른 가치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만한 고전 번역에서는 기본이지만) 행수를 표시하여 인용하거나 라틴어 원문 혹은 영어판 등과 비교하며 읽을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잘못된 인명과 지명의 표기를 바로잡아 라틴어 이름을 그대로 적고 그리스 이름을 병기하였다. 이제 우리 독자들도 그리스 로마 신화를 꼼꼼하게 읽을 때가 되었다. 이제 독자들은 첨삭되지 않은 원래 모습 그대로의 <변신이야기>를 통해 그리스 라틴 문학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작가의,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Daum사이트에는 총 19편의 독자 리뷰가 검색되고 있었다.
다음은 그 중 한 편으로, BANDI/LUNI'S 블로그 중에서 ‘고전의 숲’이라는 블로그에 실린 ‘위대한 변신, 추악한 변신’이라는 제목의 글 그 전문이다.
「우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신화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지혜로운 이야기임을 알고 있다. 그 까닭은 우리의 생각을 자극하는 독특한 상상력과 구조, 그리고 각 신화가 전해주는 삶의 교훈이 '그리스 로마 신화' 안에 풍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신화들 중에서 '유독' 그리스 로마 신화만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많은 작가들이 아직도 그것에서 영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고(故)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와 아직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얻는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고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있다. 그런데 이렇게 방대한 양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눈에 보는 방법은 없을까? 나도 그것을 찾고 있었다. 책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전부 실린 게 아니라서 아직 읽지 못한 신화가 얼마나 될지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모든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근원지를 찾아냈다. 바로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이다. 변신 이야기. 말 그대로 '변신'에 대한 시들을 모은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 그리고 '로마 신화'이다. 어떤 이들은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토대라고 주장하지만 시대적으로도 오비디우스가 2000년 가까이 앞서 있는데다가, 그의 작품이 존재하기 이전에 나온 그리스 로마 신화집이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그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집대성자'로 여기고 있다. 입으로 오고 가는 것을 모두 담아 한 권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오비디우스가 부럽다. 물론, 오비디우스 자신의 시적 재능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유명하고 재미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탄생하지 않았을 테지만 말이다. 800쪽에 달하는 분량이지만 나는 무척 재미있게 이 시들을 읽었다. 아이네아스의 건국 신화나 트로이 전쟁, 오디세우스의 모험과 몇몇 시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 안에는 '변신'이라는 요소가 들어간다. 이 변신이라는 것도 두 가지 유형의 변신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위대한 변신'과 '추악한 변신'이 바로 그것이다. 위대한 변신이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신들에게 거짓 없이 헌신을 다하고 그 보답으로 '변신'이라는 '축복'을 받는 것이다. 반면, '추악한 변신(이것이 물론 더 많이 나온다)'은 개인적인 욕망에 의해 어리석은 일을 저질러 신들을 분노하게 하여 그 대가로 받는 '저주'다. 전자의 예로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 등이 있고, 후자의 예로는 미다스 왕, 나르키소스 등이 있다. 내가 예로 든 신화들은 너무나 유명한 것이므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는 ‘변신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는 '변신'이란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카프카의 ‘변신’처럼 신체적으로 완전히 변화되는 것만을 뜻하는 줄 알았다. 물론 이 시집에서도 그러한 사례들이 등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 예외란 미다스 왕의 경우처럼 신체의 일부만 변하는 것이며, 또한 정신적으로만 변하는 것이다. 더 지혜로워지거나 더 사악해지거나. 이 변신은 결국 신에 충성해야 하는 인간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멸의 이야기는 한편의 거대한 신화로 요약할 수 있다. 세상의 창조부터 로마의 건국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들이 존재하고,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신화들은 허무맹랑하지만 세상이 끝날 때까지 변하지 않는 진리를 담고 있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시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12권 110편째인 ‘소문의 여신 파마’라는 제목의 시가 바로 그 시라고 했다.
다음은 그 시 전문이다.
세상의 한가운데에, 대지와 다다와 하늘의 중간에,
우주의 세 세계가 하나로 만나는 장소가 있다.
그곳에서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무엇이든 다 보이고,
열린 귀에는 무슨 소리든 다 들린다.
그곳에 소문의 여신 파마가 살고 있다. 그녀는
맨 꼭대기에다 거처를 고른 다음 그 집에 수많은 입구와
일천의 통로를 냈으나 문턱에 문을 달지는 않았다.
그 집은 밤낮으로 열려 있다. 그 집은 온통 울리는
청동으로 되어 있어 전체가 울리고, 메아리치고,
들은 것을 되풀이하여 들려준다. 그 안에는 고요도, 정적도 없다.
하지만 요란한 소음도 없고, 누가 멀리서 들을 때
바다의 파도 소리와도 같은, 또는 윱피테르가 먹구름을
맞부딪칠ㅇ 때 천둥소리의 여음(餘音)과도 같은, 나지막한
목소리의 속삭임이 있을 뿐이다. 군중들이 홀을 메우고 있다.
경박한 무리들이 오가고, 참말과 뒤섞인 거짓말이
도처에 돌아다니고, 수천 가지 소문과 혼란스런 물들이 떠돈다.
그들 가운데 더러는 한가한 귀들을 수다로 채우고,
더러는 들은 것을 퍼뜨린다. 그리하여 지어낸 이야기는 자꾸
커지고, 새로 전하는 자마다 들은 것에다 무엇인가를 보탠다.
그곳에는 경신(輕信)이 있고, 그곳에는 부주의한 실수와
근거 없는 기쁨과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이 있으며,
그곳에는 갑작스런 선동과 출처를 알 수 없는 속삭임이 있다.
소문의 여신은 하늘과 바다와 대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지켜보고 있고, 온 세상에서 새로운 소식을 찾는다.//
그 시대에도 사람들의 입소문을 조심해야 했음을, 이 시 한 편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밤하늘을 유난히 빛내는 북두칠성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
‘암곰이 된 칼리스토’라는 제목의 2권 18편째 곡인데, 다음은 그 전문이다.
한편 전능한 아버지는 하늘의 강력한 성채를 둘러보며
불의 힘에 느슨해져 무너져 내리려는 데는 없나 시찰했다.
그는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 튼튼하고 견고한 것을
보고 나서 대지와 인간사(人間事)를 살펴보았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아르카디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그곳에서 샘들과, 아직도 흐를 엄두를 내지 못하던 강들을
복원시켰고, 대지에게는 풀을, 나무들에게는 잎을 돌려주었으며,
손상된 숲들에게는 푸르름을 되찾을 것을 명령했다.
그는 그렇게 분주히 왔다갔다 하다가 노나크리스의
한 처녀에게 시선이 머물렀고, 그러자 골수까지 화염에 휩싸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양털실을 감거나 머리 매무새를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는 여느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브로치로 옷을
여미고 흘러내리는 머리털을 흰 머리띠로 묶고는 때로는 가벼운 창을,
때로는 활을 손에 들고 다녔으니,
그녀는 포이베의 군사였다. 마이날로스 산을 거니는
요정들 가운데 그녀만큼 트리비아에게
귀여움 받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총애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다.
태양이 중천에 올라 천정(天頂)을 막 지났을 때
그녀는 한 번도 벌목된 적이 없는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어깨에서 화살통을 내리고
활시위를 푼 다음 색칠한 화살통을 머리 밑에 베고는
풀이 무성한 바닥 위에 누웠다.
윱피테르는 그녀가 지쳐 있고 무방비 상태임을 보자 말했다.
“여기서 바람을 좀 피운다 해도 내 아내가 눈치 채지 못하겠지.
설사 알게 되더라도 이만하면 그 대가로 잔소리를 들을 만하지 않은가!”
그는 당장 디아나의 옷에 디아나의 얼굴 모습을 하고는 말했다.
“오오! 나를 따르는 무리들 가운데 한 명인 소녀여,
어느 산등성이에서 사냥했는가?” 소녀가 풀숲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윱피테르보다 더 위대하신
여신이시여. 그분께서 들으신다 해도 상관없어요.” 윱피테르는
미소 지으며 자신이 자신보다 더 높이 평가받는 것을 기뻐하며
그녀에게 입 맞추었다. 하나 그것은 처녀가 할 법한,
조심스레 건네는 그런 입맞춤이 아니었다. 그녀가 어느 숲에서
사냥했는지 이야기하려는데 그분은 포옹으로 이를 방해했고,
점잖지 못한 짓으로 본색을 드러냈다. 그녀는 여자가 할 수 있는 한
그분에게 반항했다. (사투르누스의 따님이여,
그대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더 관대했을 것이오.)
반항했지만 소녀가 누구를 이길 수 있으며, 누가 윱피테르를
이길 수 있겠는가? 윱피테르는 승리자로서 높은 하늘로 돌아갔고,
그녀는 수풀과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숲이 싫어졌다.
그곳을 떠나던 그녀는 하마터면 화살이 든 화살통과
그곳에 걸어둔 활을 집어 드는 것조차 잊어버릴 뻔했다.
보라, 딕튄나가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을 거느리고 사냥해서
같은 짐승들을 뽐내며 높은 마이날로스 산을 올라오고 있었다.
여신은 소녀를 보자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이에 그녀는 뒷걸음쳤으니,
처음에는 여신이 윱피테르가 아닐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나 그녀는 여신의 뒤에 다른 요정들이 함께 오는 것을 보고는
속임수가 아님을 알아차리고 이들에게 다가갔다.k 아아, 죄를 짓고도
그것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걷기만 할 뿐, 여느 때처럼 여신의 곁으로
다가서지도 못했고 무리 전체의 선두에 서지도 못했다.
그녀의 침묵과 홍조는 그녀가 정조를 잃었음을 보여주었다.
디아나가 처녀가 아니었더라면 수천 가지 징표로 그녀의 죄과를
알아챌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요정들은 알아챘다고 한다.
초승달의 뿔들이 아홉 번째로 원(圓)을 채우기 시작했을 때,
여신은 사냥과 오라비의 따가운 햇볕에 지쳐
서늘한 숲을 찾았는데, 그곳에서는 시냇물이 졸졸거리며
미끄러지듯 흘러 나와 가는 모래 위로 잔물결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신은 그 장소를 칭찬하고는 발을 물속에 담갔다.
여신은 물도 칭찬하고 나서 말했다. “이곳에는 아무도 보는 이가
없으니, 우리 옷을 벗고 시냇물에서 멱을 감자꾸나!“
파르라시아의 요정은 얼굴을 붉혔고, 다른 여종들이 모두
옷을 벗는 동안 그녀만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적거렸다.
머뭇거리던 그녀에게서 옷을 벗기자 알몸과 더불어
그녀의 죄과가 드러났다. 그녀가 질겁하며 두 손으로
아랫배를 가리려고 했을 때, 퀸티아가 말했다.
“당장 이곳에서 꺼져버리고 신성한 샘을 더럽히지 마라!”
여신은 그녀에게 요정의 무리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이 모든 것을 위해한 천둥 신의 부인은 이미 오래전에 알아채고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엄벌을 미루고 있었다. 한데 이제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어졌으니, 시앗에게서 벌써 아르카스라는 사내아이가
태어났던 것이다. (이것이 그녀를 특히 가슴 아프게 했다.)
여신은 마음속으로 화가 나 그 사내아이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간통한 계집아, 모자라는 것이라고는 네가 자식을 낳는
것이었는데, 네가 자식을 낳아 내가 당한 모욕을 널리 알리고
내 남편 윱피테르의 수치를 증언하는구나. 이제 너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이 발칙한 계집, 너 자신과 내 남편을
즐겁게 해주었던 네 미색을 내가 네게서 빼앗겠단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여신은 그녀의 앞머리를 움켜쥐더니
땅바닥으로 얼굴이 고꾸라지도록 내동댕이쳤다. 그녀가 탄원하려고
두 팔을 내밀자 두 팔에는 검은 센 털이 곤두서기 시작했고,
두 손은 구부러지며 안으로 굽은 발톱들로 자라나더니
발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전에 윱피테르가 칭찬하던
두 입술도 쭉 째지며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녀의 기도와 간청하는 말이 동정을 사지 못하도록
그녀는 말하는 능력도 빼앗겼다. 그리하여 화난 듯한 위협적이고
무시무시한 목소리가 그녀의 거친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그녀는 곰이 되었지만, 그래도 예전의 마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탄식으로 자신의 슬픔을 드러냈고,
두 손을 생긴 그대로 하늘의 별들을 향하여 뻗었으며,
비록 말은 못 해도 윱피테르의 배은망덕을 원망했다.
아아, 그녀는 혼자 숲 속에서 쉴 용기가 나지 않아 얼마나 자주
자기 집 앞으로, 전에는 자기 것이었던 들판에서 헤맸던가!
아아, 얼마나 자주 그녀는 개 떼가 짖는 소리에 바위 위로 쫓겼으며,
스스로 사냥꾼이었으면서도 사냥꾼들 앞에서 놀라 도망쳤던가!
가끔 그녀는 자신의 겉모습을 생각하지 못한 채 야수들을 보면
얼른 숨었다. 그녀는 암곰이 되어서도 산에서 수곰들을 보면 전율했고,
자기 아버지도 그 중 한 마리인데도 늑대 떼를 무서워했다.//
그렇게 암곰이 되어 숲을 헤매던 칼리스토가 사냥꾼으로 자란 아들 아르카스와 마주쳤고, 아르카스의 창이 칼리스토의 가슴을 찌르려는 순간, 윱피테르가 회오리바람을 일으켜 그 둘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는 것이고, 그래서 생긴 별자리가 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의 북두칠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 편 한 편의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깊은 깨우침을 주는 내용이었고, 또 감동이었다.
내 이번의 바이칼 여정에서 이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친 배수진 같은 ‘공개선언’의 덕분이었다.
바이칼 여정이 끝난 뒤인, 2015년 90월 30일 수요일에 있을 우리들 ‘Book Tour’ 417회 모임에, 내가 발제자로 나서게 되어 있음을 내 미리 알고 있던 터여서, 그 모임에서 그동안 미루고 또 미루어왔던 바로 이 책 ‘변신이야기’로 독후감 발표를 하겠다고 미리 공개선언을 해놓으면, 그 선언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될 경우 쪽팔릴 것은 불문가지여서, 그 쪽팔리는 것이 겁이 나서, 죽자 사자 그 책을 읽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공개선언을 한 효과는 현실로 다가왔다.
여정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후감 발표를 할 수 있도록 책을 완독하는 것은 더 중요했다.
버스를 타고 당일의 목적지로 향할 때도 읽었고, 매끼 식사 후에 잠시 쉬는 시간에도 읽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읽었다.
4박 6일의 여정이 끝나고 이르쿠츠크에서 우리나라 땅하는 그 비행기 안에서도 읽었다.
결국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하는 그 순간에, 책의 끝 장을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열성을 다해서 읽었지만, 책에 담긴 내용을 다 전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너무나 방대해서 1시간의 모임으로서는 그 전부를 전하기에는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족해도 한참이 부족하다.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직접 책을 읽어보라는 권고로 오비디우스의 대서사시 ‘변신이야기’의 독후감 발표를 끝낼 수밖에 없다.
4박 6일의 바이칼 여정에서 덤으로 한 짓이라고는 했지만, 사실은 내 그동안 알고 있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좀 더 깊게 이해하는데 있어, 크게 도움이 된 귀한 성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