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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1. 주일 큐티
에스라 3:6 ~ 13
새 성전의 기초를 놓는 사람들
관찰 :
1)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 6절.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 초막절은 칠월 보름부터 시작하는 절기입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라는 말은 초막절이 포로 귀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회복한 기점이 아니라 그보다 보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준비가 되지 못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제 성전 재건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고자 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 7절.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 성전 건축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믿음으로 해야 하는 은혜로운 일이기에 석수와 목수가 헌신하는 마음으로 무보수로 자발적으로 섬기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바르고 적절한 보수를 석수와 목수에게 책정을 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을 은혜로 한다고 하면서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사실은 바르지 않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도 아니고, 영성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포로 귀환의 이스라엘은 성전 재건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희생을 강요하는 형식이 아니라 합당한 보수를 지급함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돈”과 “두로”는 농토가 없어서 식량 사정이 좋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들의 산림에 있는 나무를 다루는 일에 능숙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들에게 일을 시킨 것도 그런 연유였고, 포로 귀환의 이스라엘 역시 시돈과 두로 사람들에게 목재를 확보하는 일을 시켰습니다. 당시에는 시돈과 두로 역시 페르시아의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고레스의 조서는 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백향목”은 `굳건히 뿌리 박힌 강한 나무'라는 `세드루스 리바니'라는 학명을 가진 나무입니다. 백향목은 최고 36m까지 자라며, 나무의 둘레도 최고 12m까지 됩니다. 백향목은 나무 자체에서 풍기는 향기로 인해서 벌레가 끼지 않고 옹이가 없는 목재이며, 내구력도 뛰어난 목재입니다. 성전 건축을 위한 최고의 목재였습니다.
2) 성전 건축의 시작
- 8절.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 시돈과 두로 사람들에게 목재를 운반하게 하여 그 목재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기까지 다시 7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준비가 되자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지도력을 발휘하며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레위인들을 주축으로 하여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종들고자 하고 있습니다. 본래 레위인은 25세 이상부터 성전 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민 8:24). 그러나 레위인들의 인구가 감소함으로 인하여 성전 봉사 시작 연령이 20세로 낮추어졌습니다(대상 23:24; 대하 31:17).
- 9절. “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 성전 건축을 위하여 애쓴 지도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 일꾼들을 압제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감독하여 일을 독려하고, 성전이 세워지기 위하여 필요한 일들을 채워나갔습니다.
- 10절.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 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 이스라엘의 예배에 찬양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의 규례는 모세의 규례와 대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이 말씀을 따라서, 신앙을 따라서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삽 자손”은 솔로몬이 세웠던 세 명의 찬양인도자들 “아삽, 헤만, 여두둔”의 한 명으로 영적 지도력이 뛰어났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자손들은 이제 포로에서 귀환한 상황에서도 그 직무를 따라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직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되”(הַלֵּל אֶת־יְהוָה, 할렐 에트 여호와)에서 “찬송하되”(הַלֵּל)는 “할랄”(הָלַל)에서 온 말로 “할렐루야”(הַלְלוּ יָהּ, 할렐루야)가 파생된 단어입니다.
- 11절.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 조상들의 범죄로 나라가 망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우는 기쁨을 찬양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느끼고 경배하고자 했겠습니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지극히 높으시며, 가장 광대하신 하나님으로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셔서 조상들의 허물을 변하여 자신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로 나오게 이끄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3) 성전의 기초에 대한 상반된 반응
- 12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 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는 포로로 끌려가기 전에 무너지기 전의 솔로몬 성전을 보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오매불망 예루살렘으로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소망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무너진 성전 터를 보면서 슬퍼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재건하는 성전의 기초가 솔로몬 성전의 그것보다 초라하고 부족한 것으로 인해서 대성통곡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의 성전을 비교할 수 없는 이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크고 놀라운 것이기에 기쁨으로 큰 함성을 지르며 즐거이 성전을 다시 세우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 13절.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 대성통곡과 기쁨의 환호가 섞여서 분간이 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가 이 기사를 기록하는 것은 그 때에 있었던 사실에 대한 기록입니다. 적은 수의 노인들이 이렇듯 많은 사람의 기쁨의 환호와 대등하게 큰 소리를 내었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슬픔의 크기를 대변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큰 소리를 내어 통곡과 기쁨을 표현한 이들이 성전의 기초만 이렇게 쌓고 그것을 완공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에스라는 그것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은 첫 번째 초막절 전부터 예배를 시작했고, 초막절을 기점으로 모든 제사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제사를 드린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히 자화자찬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냥, ‘바벨론에서 여기까지 와서 남들 눈치보고 이렇게 목숨 걸고 예배드리면 됐지, 뭘 또 하나?’ 이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열심은 여호와의 성전을 세우는 것에 그 비전이 닿아있었기에 멈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준비를 합니다. 석수와 목수를 구했습니다.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삯을 주고,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까지 운반하고 건축을 준비했습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이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많은 애를 써야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최소 7개월의 시간이 소요된 일이었습니다.
2) 이년 둘 째 달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7개월간 재료를 확보하고 준비한 이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이십세 이상의 레위인들이 성전 공사를 감독했습니다.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 그의 형제들,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했습니다. “일제히”라는 말을 다른 번역본에서는 “한마음 한뜻으로”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성전 공사를 감독하는 일에 이들이 한마음과 한뜻으로 힘을 모으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부흥은 다 갖추어진 다음에 하나로 모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예배를 시작할 때부터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야 참된 개혁과 참된 부흥과 참된 회복의 역사는 일어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들의 열심이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합의 모습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3) 여호와의 성전 기초를 놓을 때의 기본 자세는 이스라엘 왕 다윗의 규례대로였습니다. 다윗은 선견자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사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베레스 웃사”의 사건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는 일에 실패를 경험했던 다윗은 그에 대한 규례를 누구보다 잘 정리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실패가 후대에 와서 성전회복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기초가 되고 있는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4) “주는 지극히 선하심으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원망이 아닌 감사함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감사해야 합니다.
5) 성전 기초를 놓음에 대한 두 가지의 상반된 관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많고 성전의 옛성화를 본 구세대는 통곡했습니다. 과거의 여호와의 전을 모르는 신세대는 기쁨의 함성을 질렀습니다. 이것은 누가 옳은가의 관점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속에서 일어나게 되는 반응일 뿐이었습니다. 과거의 성전을 기억하는 자들에게는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에 대한 통곡이었을 것이고, 이러한 사건을 처음 접해보는 이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의 환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설복하려는 노력은 없었습니다. 그것을 단지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의 입장을 잘못되었다 지적하고 구세대는 신세대에게 과거에 누렸던 향수를 신세대에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신세대도 자신들의 기쁨에 방해적인 요소인 대성통곡을 하는 구세대들을 타박하지 않았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도록 하려한다면 분란이 일어나는 것이고, 한마음, 한뜻이 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가지고서는 “일제히” 하나님의 성전을 건립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6)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의지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 맞다면, 그리고 학개 2장 9절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는 말씀을 생각해 본다면, 이날 통곡한 이들의 통곡은 하나님의 대한 소망과 참된 믿음의 행위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경험을 의지함으로, 과거로 회기하고자 하는 신앙이 아니었겠는가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은 결국 성전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그 모든 영광을 이루셨습니다. 이전 성전의 영광을 본 노인들의 슬픔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새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기대하는 영성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적용 :
1) 과거의 영광의 단물만 빨아먹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에, 나의 삶속에 과거의 어떤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멈추시는 분이 아니심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새 일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옛날에는 좋았었지~”하는 모든 요소로부터 나를 격리시키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자가 되고자 합니다.
3) 2024년의 마지막 달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