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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한지(楚漢誌) 2-91 (121)
《한신(韓信)의 매복 작전과 항우(項羽)의 돌파 작전》
항우가 듣건데, 유방과 한신이 철군 할거라던 이좌거의 말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보고가 들어오니,
항우는 좌우를 돌아보며 이좌거를 찾았다.그러나 이좌거는 어디를 갔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이좌거가 어디 갔는지, 빨리 찾아 보거라."항우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불호령을 내렸다.이좌거를 찾는다는 소리를 듣고, 경계 책임 장수가 달려와 아뢴다.
"폐하 ! 그 어른은 어명을 받들고 적정 시찰(敵情視察)을 나가신다며, 어젯밤 한밤중에 적진을
향하여 달려가셨습니다."항우는 그 보고를 받고 혼비백산할 듯이 놀란다.
"뭣이 ? 그러면 이좌거란 놈은 거짓 귀순을 해온 적의 첩자였단 말이냐 ? 그 자를 나에게 데려온
사람이 상서령 항백이었으니, 상서령을 당장 불러오너라! "
항백이 부리나케 달려오자 항우는 벼락 같은 호통을 내지른다.
"그대는 이좌거의 내력을 알아보지도 아니하고, 그런 놈을 모사로 나에게 천거했단 말인가 ?
이제 그 자가 도망을 치고 없으니 그 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항백이 사색이 되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이좌거는 워낙 유명한 지략가이기에,
신이 그를 믿었다가 이런 과오를 범하게 된 것이옵니다.그러니 폐하께서 어떤 벌을 내리시더라도
신은 달게 받겠사옵니다.""그대의 실책은 결코 용서할 수 없노라. 여봐라 !
상서령을 당장 감차(監車)에 가두어라 !" 하고 명했다.그러자 주란이 즉시 달려 나와 간한다.
"폐하 ! 상서령이 이좌거를 천거한 것은 주공을 위한 충성심 때문이었습니다. 본의 아닌 과오가
있었다 하더라도 상서령에게 중벌을 내리시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인 줄로 아뢰옵니다.
우리는 이미 대군을 여기까지 몰고 왔으니, 기왕지사 잘못만을 뉘우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용감하게 싸워 적을 격파하는 것만이 상책일 것이옵니다. 주공께서는 그 점을
각별히 통찰해 주시옵소서."항우는 그제서야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싶어, 항백의 과오를
용서함과 동시에 계포와 주란의 간언을 진작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였다.
그리하여 장중으로 돌아와 우미인에게 말한다.
"나는 이좌거의 간계에 빠진 줄을 모르고, 그대의 간언을 무시한 것이 무척 후회스럽소."
우미인이 대답하는데,"이미 지나간 일은 아무리 후회하셔도 소용없사오니, 폐하께서는
지금부터나마 모든 장수들과 합심 협력하셔서, 적을 용감하게 쳐부수도록 하시옵소서.
폐하께서 평소부터 갈망하시던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 길이 있을 뿐이옵니다."
항우는 우미인의 간곡한 부탁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
"오오, 그대가 아니면 나에게 이처럼 용기를 북돋아 줄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 것인고 ! "
항우는 일대결전을 각오하고, 모든 장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비장한 어조로 말한다.
"그대들은 오늘까지 나와 더불어 수백 번을 싸워 오는 동안에 우리가 크게 패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들의 전쟁사(戰爭史)는 이처럼 천하무적(天下無敵)이었다.그러나 이번만은 사정이 크게 다르다.
이번 싸움에 동원된 적의 병세(兵勢)가 우리보다도 엄청나게 강하므로 적을 가볍게 여겼다가는
큰일난다는 말이다.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하나로 모아 힘을 합하지 않으면 승리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모든 대장들은 그런 줄 알고, 최후의 일각까지 전력을 다해 싸워 주기를 바란다."
"......."
모든 장수들은 숙연히 머리를 수그린다.항우가 구체적인 군령을 내린다.
"종리매 장군은 정병 3만을 거느리고 좌익군(左翼軍)이 되고,계포 장군은 정병 3만을 거느리고
우익군(右翼軍)이 되고,항초 장군은 선봉장이 되라.
그리고 우자기 장군은 후비군(後備軍)이 되어 중군(中軍)인 나의 뒤를 따르라.
한신이란 자가 무슨 위계를 쓸지 모르니, 우리는 싸움에 이겨도 결코 추격은 하지 마라.
우리가 장기전으로 나가면 적은 한 달이 못되어 군량 부족으로 지리 멸렬하게 되어 버릴 것이다.
우리는 그때를 기해 총공격을 퍼부어야 한다. 그러면 승리는 틀림없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에 모든 대장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탄해 마지않는다."폐하의 작전계략은 진실로 신기묘산(神機妙算)
하옵나이다."그러나 항우의 계략에는 커다란 착각이 하나 있었다.그것은 한 달이 지나면 적의 군량이
부족해질 것만 알았지, 초군 자신은 그보다도 훨씬 앞서 군량에 곤란을 받게 될 것은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그 무렵 한신은 전투태세를 갖춰 놓고 적이 나타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비마가 달려오더니,"초나라에 가셨던 이좌거 선생이 돌아 오시옵니다." 하고 알리는
것이 아닌가 ?한신은 원문 밖까지 달려나가 이좌거를 반갑게 맞아들였다.
"항우를 만나 보신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좌거(李左車)가 그간의 경과를 자세하게 말해 주고 난뒤,
"계포와 주란이 발군(發軍)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항우를 교묘하게 부추겨가지고 패현으로 출동
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항우는 지금 20만 군사를 끌고 패현 50리 밖에 진을 치고 있으니
이제는 장군께서 대책을 세우시면 되겠습니다."한신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수고많으셨소이다. 선생이 아니셨다면, 항우를 어떻게 패현까지 유인해 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이좌거가 한신에게 묻는다.
"이제부터가 문제라는 말씀은 무슨 뜻이옵니까?"한신이 대답한다.
"항우를 패현으로 유인해 오신 것은 크게 잘하신 일입니다.
그러나 항우를 철저히 때려부수려면 구리산 계곡까지 끌어들여야 하겠는데, 그를 어떡해야 구리산까지
꾀어 올 수가 있을른지, 그것이 문제라는 말씀입니다."이좌거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무겁게 수그린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이옵니다.""물론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나 그 일도 선생이 아니면
누구도 불가능한 일이니, 선생께서 다시 한번 지혜를 베풀어 주소서.""무슨 말씀을....
원수께서도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마는, 저로서도 한 가지 계략이 없지는 않습니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선생의 금옥(金玉)같은 계략을 부디 들려주시옵소서."
그러자 이좌거는 한동안 깊은 궁리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며 조용히 말한다.
"지난날 원수께서는 항우와 싸우실 때에는 번번히 거짓으로 쫒기다가, 복병을 이용해 항우를 골탕먹이곤
하셨습니다.항우는 원수에게 그런 일을 번번히 당해왔기에, 이번에는 그런 수법에는 항우가 좀처럼
말려들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작전을 쓰더라도 이번에는 원수께서 표면에 직접 나셔서는 안될 것이옵니다."
그 점에는 저 역시 동감입니다. 그러면 이번에는 누구를 내세워 항우를 유인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이번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대왕께서 직접 나가 싸우도록 하셔야 합니다.
대왕께서 직접 싸우시더라도 항우는 지난날 여러 번 혼이났기 때문에 좀처럼 추격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에는 제가 나서겠습니다.제가 나서서 욕설을 퍼부으면, 항우는 저한테 속은 일이
너무도 분해서, 신하들이 말려도 맹렬히 추격해 올 것 입니다.
그렇게 항우를 구리산 계곡으로 꾀어 오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한신은 이좌거(李左車)의 계략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리하여 유방에게 달려가 사실대로 고하니,
유방은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그렇다면 내가 공희, 진하 두 대장을 좌우에 거느리고 나가
직접 싸우다가 항우를 꾀어 오도록 할 테니,원수께서는 구리산 계곡에 군사를 미리 매복시켜
두었다가, 항우의 군사를 일거에 괴멸시켜 버리도록 하시오."한신이 머리를 조아리며 숙연히 말한다.
"대왕께서 항우를 구리산 계곡으로 유인해 오시기만 하면, 신은 기필코 초군을 괴멸시켜 버릴 것을
명예를 걸고 엄숙히 맹세 하옵니다."....
한신이 이번 구리산 작전에 큰 기대를 갖는 것은 몰고온 병력도 많지만, 세력이 약해진 항우를
때려부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그러기에 한신은 장중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밤을 새워 가며 구체적인 작전 계획을 골똘히 짜고 있었다.포진법(布陣法)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그러나 구리산 계곡에서는 지형의 특성을 살린 주역진법(周易陣法)을 쓰는 것이 가장 적합해 보였다.
밤을 새워 진법을 연구한 한신은 다음날 아침, 장량과 진평을 비롯한 모든 대장들을 한자리에
소집해 놓고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주상께서 군사를 일으키신 이후로, 우리들은 지난 5년 동안
많은 싸움을 계속해 왔다. 때로는 이기기도 하였고, 때로는 참패의 고배를 마신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항우를 상대로 싸우기를 무려 70여회, 항우의 세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가장 약화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번 싸움이야말로 우리가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싸움으로 우리가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되면,이번 싸움에 나선 모든 대장들은 모두가 열후(列侯)에
책봉(冊封)되어 자손 만대까지 영화를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니, 모든 대장들은 심혈을 기울여
이번 전쟁에 임해 주기를 바란다."모든 대장들은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고 나면 열후(列侯)에 책봉한다>는
말을 듣고 저마다 머리를 수그리며 이구동성으로 충성을 맹세한다.
"원수께서 명령만 내리시면 저희들은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싸워 이기겠습니다."
이같은 대장들의 맹세를 듣자, 마음 든든하게 느낀 한신이 즉각 군령을 하달한다."이번 싸움에서는
과거에 전혀 쓰지 않았던 <주역진법>에 의하여, <십면매복진(十面埋伏陣)>을 펼치기로 하겠다.
8명의 대장에게 각각 부장(副將) 16명과 정병 4만 5천씩을 줄 테니, 구리산의 각각 정해진 임지로 달려가
즉각 매복하고 있다가 초군이 몰려 오면 결정적인 때 들고 일어나 그들을 쳐부수라."
첫째, 대장 왕릉은 구리산 계곡의 서북쪽에 매복하라.
둘째, 대장 노관은 구리산계곡 북쪽에 매복하라.
셋째, 대장 조참은 동북쪽에 매복하라.
넷째, 대장 팽월은 동남쪽에 매복하라.
다섯째, 대장 영포는 동쪽에 매복하라.
여섯째, 대장 주발은 남쪽에 매복하라.
일곱째, 대장 장이는 서남쪽에 매복하라.
여덟째, 대장 장다는 서쪽에 매복하라.
이렇게 친 팔괘진(八掛陣)에,대장 하후영은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대왕 전하의 뒤를 따르라.
장량과 진평 선생은 방호사(防護使)로써 각각 10만 군사와 함께 대왕 전하를 측근에서 호위하소서.
이상과 같은 명령에 즉각 대장들은 군사를 배당 받아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 !"
대원수 한신의 명령은 간결하고 거침이 없었다.
각 대장들은 명령에 따라 군사를 분류하여 조직을 점검하느라고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한신의 계획대로 항우와 일선에서 처음으로 맞서게 될 한왕 유방이 먼저 출발하게 되자,
공희와 진하가 군사 2만 씩을 데리고 좌우 선발대로 한왕에 앞서서 진군을 시작하였고, 여마통과 여황은
군사 2만 씩을 데리고 그 뒤를 따랐다.근흠과 자무는 10만 군사를 각각 좌우로 나누어 장량과 진평을
비롯한 중앙의 한왕을 겹겹히 에워싸고 그 뒤를 따라 하후영이 진군을 시작하니 그 행렬의 위용은
땅을 덮고도 남음이 있었다.유방이 3천기만을 측근에 거느리고, 구리산 지척인 계명산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나자, 한신은 수행하던 장수들에게 새로운 군령을 내린다.
"이제 곧 싸움이 시작되거든 유고, 박소, 손가희, 고기, 장창, 척사 등은 각각 군사 1천 명씩을 데리고
초군의 후방을 크게 교란시켜라.그러면 팽성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이 달려 나와 그대들을 격퇴 시키려고
할 것이니, 그때를 이용하여 진희, 유가, 부필, 오예 등 네 장수는 각각 정병 5천씩을 거느리고
서주(徐州)를 돌아 팽성 근처에 잠복해 있다가,성문이 열리고 초군이 나오면서 그 행렬이 끝날 즈음
성안으로 밀물처럼 몰려 들어가 성을 점령함과 동시에 항우의 일가족을 모조리 생포하고,
성루에 붉은 깃발을 높이 달아 올려라.
성을 점령한 뒤에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니, 그 점은 각별히 명심하라 ! "
한신은 또 다른 부대에 다음과 같은 군령을 내린다."관영 장군은 대왕께서 항우와 싸움을 시작하거든
즉시 달려 나가 싸움을 가로맡으라. 그리하여 항우와 20여 합 접전을 벌이다가, 회해 계곡으로
쫒겨 들어오도록 하라. 그러면 항우는 맹렬히 추격해 올 것이니, 그때에는 양희, 양무, 양익, 여승 등은
각각 5천 명의 군사를 데리고 오강(烏江) 강변에 미리 매복해 있다가 추격해 오는 항우를 단숨에
생포해 버리도록 하여라. 항우는 워낙 천하무쌍의 무용을 자랑하는 인물이므로 여간해서 붙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점을 각별히 유념하여 각자는 임지로 출발하라 !"
대원수 한신으로부터 임무를 부여 받은 장수들은 각각 임지로 자기가 몰고온 병사들을 데리고 떠나가는데,
왕릉을 비롯한 몇몇 대장들이 한신을 찾아와 묻는다.
"원수께서 소장더러 구리산 북쪽에 매복해 있으라고 명령하셨사오나, 구리산은 워낙 넓고 광활하여
그 북쪽은 여기서 2백 리나 떨어져 있사옵니다.그 사이에는 초군이 가는 곳마다 진을 치고 있어서,
어느 길로 가야 적의 눈을 피하여 매복할 수가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대장쯤 되면 지리(地理)에 정통해야 하는 법이오.
다른 사람도 아닌 왕릉 장군이 그런 말씀을 하실 줄은 몰랐소이다."
왕릉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제가 아직 미숙하여 패현 지방의 지리를 꿰뚫지 못하였사옵니다."한신이 웃으며 대답한다.
"병법에 아무리 정통하여도 작전 지역의 지리를 몰라 가지고는 이길 수가 없는 법이오.
구리산은 서주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인데, 계곡이 깊고 많아 군사를 매복시키기에 가장 좋은 산이오.
항우가 이좌거에 속아 패현까지 군사를 몰고 오기는 하였으나, 구리산 계곡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지금쯤은 군사를 몰고 온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것이오.
따라서 항우는 한 번 싸워 보아서 이기지 못하면 팽성으로 되돌아가 버릴 공산이 크오.
그러기에 나는 항우의 근거지를 빼앗기 위해 진희, 오예등 네 장수로 하여금 항우가 없는 틈을 타서
팽성을 점령해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소.항우는 한 번 싸워 패하게 되면 근거지를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부득이 강동(江東)으로 쫒겨갈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러기에 강동으로 가는 길목인 오강(烏江)에는 양무, 여승 등 네 장수를 잠복시켜 놓았소.
결국 항우는 오강을 건너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우리손에 생포되고 말 것이오.
그러므로 왕릉 장군은 신속히 임지에 도착하여 매복해 있어야 하오.장군이 적의 눈에 띄지 않고
목적지에 무사히 가려면 고릉 북쪽으로 황하를 따라가다가, 귀덕군을 지나 우성현으로 가면
구리산 북쪽에 무사히 도착할 수가 있을 것이오."왕릉은 한신의 지리의 정통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원수의 말씀을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면 말씀하신 길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러자 한신이 다시 말한다."구리산은 구의산이라고도 부르오. 그곳에는 네 개의 산이 있는데,
동북쪽에 있는 산이 계명산이고, 서쪽에 있는 산은 초왕산, 그 뒤에 있는 산이 성녀산이오.
그 주위는 무려 2백여 리나 되오. 항우가 일단 팽성으로 쫒겨갔다가, 성루에서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면,항우는 성을 탈환할 생각을 못하고 반드시 왕릉 장군이 매복해 있는 북방으로
도망쳐 올 것이니그때에 매복해 있던 군사들이 들고 일어나면, 제아무리 항우인들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것이오. 그런 줄 알고 장군은 준비하도록 하시오."
대원수 한신의 귀신같이 치밀한 작전 계획을 듣고, 지켜보던 한왕을 비롯한 대장, 장수들은
모두들 혀를 털며 임지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좌중에 장수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볼멘 소리로
크게 외쳐대었다."원수께서는 저와는 무슨 원수가 졌다고 소장만은 아무데도 써주지 않으십니까 ?"
그 목소리가 너무도 거칠어서 모두가 그에게 시선을 행했는데, 한신에게 정면으로 항의하고
나선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무양후 번쾌 장군이었다.모든 장수와 대장들에게
제각기 중책을 맡기면서, 유독 번쾌에게만은 아무런 임무도 주지 않아 크게 노여웠던 것이었다.
한신은 번쾌의 격노하는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한다.
"내가 번쾌 장군에게 원수질 일이 있겠소 ? <원수>란 말은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이오."
번쾌는 큰소리로 외치듯이 다시 말한다."주상이 포중(褒中)에서 군사를 일으키신 이후로,
저는 여러 백번의 전투에서 한번도 빠져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후의 결전이라고 볼 수 있는 이번 싸움에서만은, 하찮은 장수까지 모두 총동원 하시면서
저만은 쏙 뽑아 버리시니, 이런 수모가 있사옵니까 ?"한신은 근엄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정중하게 말한다.
"장군의 말씀대로, 이번 싸움에서는 모든 장수를 총동원시켜 임무를 부여하면서도 장군 한 분만 빼놓은
것은 사실이오.
왜냐 하면, 가장 중요한 임무가 꼭 하나 남아 있는데, 장군에게 특별히 그 일을 맡기고자 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그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기에, 만약 그 일이 실패하면, 백만 대군의 승리가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번쾌는 그제서야 엄숙한 자세로 돌아가며 말한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오나 원수께서 그 일을 제게 맡겨 주시면 소장은 전력을 기울여 기필코 완수하겠습니다.
만약 실패를 하게 된다면 군법에 돌려 참형에 처해 지더라도 원망을 아니하겠습니다."
번쾌의 말을 듣고, 한신이 숙연히 말한다.
"지금 우리는 구리산에 군사들을 십면 매복(十面埋伏) 해놓고, 항우를 일거에 때려잡으려고 하고 있소.
그런데 양군이 흩어져서 싸움을 하게 되면,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분간하기가 매우 어렵게 될 것이오.
그렇다면 누군가가 산 위에서 양쪽 군사들의 움직임을 관망해 가면서, 우리 군이 평소에 훈련을 했던 대로
깃발 신호를 통해 작전을 지시할 기수(旗手) 한 사람이 꼭 필요하오.
그러니까 그 임무야 말로 우리 군의 승패를 판가름 할 수있는 사실상의 실전 지휘관이 되는 것이오.
장군이 그 임무를 맡아 주셔야 하겠소이다."번쾌는 그제서야 얼굴에 희색이 돌며 간곡히 말한다.
"원수께서는 그 임무를 부디 소장에게 맡겨 주시옵소서. 소장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완수하겠나이다."
한신은 그제서야 정식으로 군령을 내린다."우리가 각 부대에서 모여든 군사를 일사 분란하게
훈련시킨 효과를 이번 싸움에서 반드시 펼쳐 보여야 하오.
그러니 번쾌 장군은 3천 군사를 거느리고 구리산 산상에 도착하여, 적의 이동경로를 관찰하여
깃발 하나로써 삼군을 총지휘할 준비를 하고 계시오.만약 대사를 그릇치는 날이면,
군법에 회부하여 엄중히 처벌할 것이니, 그 점은 미리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하오."
그러자 번쾌가 즉석에서 한신에게 반문한다."낮에는 깃발로 신호를 보낼 수 있지만, 야간에는 무엇으로
신호를 보내야 하옵니까? 혹시 횃불로 신호를 보내라는 말씀입니까 ?"
한신은 머리를 대번에 좌우로 흔든다."야간 전투에는 누구나 횃불을 이용하니까, 야간에는 그냥 횃불로는
안 되오.야간에는 이번에 훈련한 대로 등롱(燈籠)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것도 횃불과 혼동하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우리 군의 색깔인 붉은 빛깔의 등롱을 써야 하오.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 편 군사들이
야간에 싸울 때에는 언제나 훈련한 대로 행렬(行列)을 지어 가면서 싸울 것이니, 횃불이 움직이는
광경을 보게 되면 적과 우리를 식별할 수가 있을 것이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야간에는 등롱의 숫자로써 공격의 방향과 멈춤을 조절하겠습니다."
번쾌는 한신에게 정중한 작별인사를 고하고 구리산으로 떠났다.
한편,항우는 많은 정찰병을 보내어 적정을 탐지시켰는데, 그들은 돌아와 이구 동성으로 이렇게 보고하는
것이였다."한나라 군사들은 백만 명이 넘을 뿐만 아니라, 모두들 사기가 무섭게 왕성하옵니다."
항우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불안하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 그냥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기에,
모든 장수들을 불러 놓고 군령을 내린다.
2-92편에 계속
첫댓글 구리산 십면매복진을 준비한 한신의 용의주도한 전략에 감탄할 뿐입니다.
늦더위에 존경하는 작가님과 이준황님께서 영육간에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