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한지(楚漢誌) 2-92 (122)
《가을 달밤 옥퉁소 소리》
"적이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우리는 싸우기만 하면 이길 자신이 있다.
나 자신이 20만 군사를 이끌고 선두로 치고 나갈 테니, 종리매 장군과 주란 장군은 각각
좌군 우군이 되어 나를 도우라.나머지 30만 군사는 여섯 명의 대장들이 각 5만 명씩 나누어
진격하고, 우자기 장군은 본진을 지키고 있으라."
항우는 군령을 내리고 즉시 병사들을 이끌고 적진으로 달려 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한왕 유방은 싸울 용기가 있거든 곧바로 나오라. 한신이란 놈처럼 무장답지 못하게 거짓
도망하는 수법을 쓰면, 이번만은 용서하지 않겠다."유방은 갑옷과 투구로 튼튼하게 무장을 하고
철갑을 입힌 용마를 타고 공희, 진하 두 장수를 좌우에 거느리고 항우가 버티고 소리치고 있는
최일선으로 달려 나왔다.
항우는 유방이 저만치 나타나기 시작하자 다시 한 번 유방을 노려보며 큰소리로 외친다.
"그대는 지난날 나와 이곳에서 싸워서 크게 패한 일이 있거늘, 오늘은 무슨 용기로 이곳에
다시 나왔느냐.그대와 나는 지난 5년여 동안에 70여 전을 치렀지만, 그대는 한 번도 나를
이기지 못했었다.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오늘 또다시 나타났다는 말인가?"
유방이 크게 웃으면서 질책한다.
"그대는 혈기를 믿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지만, 그런 것을 어찌 참다운 용기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나는 오늘 그대에게 지혜로써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려고 나왔노라.
전쟁은 혈기로써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지혜로써 싸워서 승리하는 것이다."
"이놈아 ! 싸우는 데는 혈기가 제일이지, 지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
항우가 벼락 같은 소리를 내지르자 유방은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었다.
"하하하, 어리석은 자는 아무리 하여도 끝까지 어리석을 뿐이구나."
항우는 유방이 자신을 <어리석은 자>라고 하는 말에 화가 치밀어 올라, 장창을 바람개비
처럼 휘두르며 번개처럼 달려들었다.항우와 유방이 단둘이 싸운다면, 유방은 항우의 상대가 결
코 되지 못한다.그러기에 유방이 달려 오는 항우를 옆으로 피하자, 좌우에 대기하고 있던
공희와 진하가 싸움을 가로맡고 나섰다.
항우는 성난 사자처럼 좌충우돌로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며 큰소리로 외친다.
"요, 강아지 같은 놈들아 !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른다는 말이냐 ?"
과연 항우의 창검술은 번개와 같았다.그러나 공희와 진하도 일당백의 용장이었다.
1대 2로 싸우기를 무려 30여 합. 공희와 진하는 점점 힘에 부쳐 가건만, 항우의 기세는
싸울수록 왕성해 갔다.그리하여 어느 순간, 항우는 벼락 같은 소리를 지르며 비호같이 달려들어
공희의 가슴을 창으로 찔러 버린다.진하가 크게 당황하여 덤벼들려는 순간, 항우는 다시
창을 돌려 이번에는 진하를 찌르는데, 천만 다행하게도 창이 빗나가 진하의 투구만이 땅에
떨어져 버렸다.진하는 전신이 오싹해 오는 공포감에 본진으로 쏜살같이 쫒겨 돌아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근흠과 자무가 달려 나가 항우와 접전을 벌였다.
항우가 근흠과 자무를 상대로 싸우다가 문득 유방을 찾아 보니, 유방은 저 멀리 언덕위에서
이쪽을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우는 유방을 발견하기가 무섭게. 싸우다 말고 그쪽으로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덕으로 달려 올라가는 도중에 하후영이 일군을 몰고와 길을 가로막고 싸움을 걸어 온다.
그러나 하후영은 항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후영은 불과 2, 3합을 겨룬 후에 동북쪽으로
쫒겨가는데,어느 사이에 유방(劉邦)의 모습은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말았다.
"유방이란 놈이 패잔병들과 함께 도망간 것이 분명하니, 추격을 하여라."
항우는 좌우 군을 거느리고 앞장서 5리쯤 추격을 계속하니, 어지럽게 쫒겨가던 한나라 군사들이,
거기서부터는 좌우로 정연하게 갈리면서 양분되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계포가 항우에게 급히 간한다.
"적들이 좌우로 질서 정연하게 갈리는 것을 보니, 적은 거짓으로 쫒겨 온 것이 분명하옵니다.
이 부근에 복병이 있는 것이 분명하니, 더 이상의 추격은 삼가하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항우는 계포의 간언을 옳게 여겨, 말을 멈추고 적진을 관망하고 있었다.한신의 위장 도주
(僞裝逃走)에 여러 차례 골탕을 먹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추격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적진에서는 이좌거가 단신으로 말을 타고 달려 나오는 것이 아닌가 ?
항우는 이좌거를 보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자기도 모르게 장창을 움켜 잡으며 외쳤다.
"이놈아, 잘 만났다. 거짓항복으로 나를 여기까지 꾀어 온 놈이 바로 네놈이 아니었더냐 ?"
이좌거가 말을 멈추더니 시치미를 떼고 말한다."지난날 제가 폐하를 찾아갔을 때에는 많은
신세를 졌습니다.폐하는 지금 한신의 계략에 빠져 있사오니, 모든 것을 체념하시고 깨끗이
항복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옵니다.
그러면 제가 한왕에게 품고하여 목숨만은 건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항우는 우레 같은 소리를 지르면서,"이 우라질 놈아 ! 네 놈이 아직도 나를 속일 셈이냐 ?"
하고 덤벼 들었다.이좌거가 잡힐 듯 잡힐 듯 쫒겨가니, 항우는 더욱 약이 올라 추격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이렇게 10리쯤 추격하여 어떤 숲속에 다다랐을 때, 돌연 이좌거는
간 곳이 없고, 사방에서 복병들이 들고 일어나 일제히 공격을 퍼부어 오는 것이었다.
항우와 그의 군사들은 불시에 사면으로 기습을 당하는 바람에 크게 패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숨가쁘게 퇴각하고 있는데, 5리도 채 못 갔을 때, 이번에는 한신이 대군을 몰고 나타났다.
계포와 종리매가 항우를 호위하며 가까스로 군사들을 추스려서 본진쪽으로 되돌아 가려는데
이번에는 근흠과 자무가 사방에서 겹겹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것이었다.
항우는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아 결사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신이 대군을 몰고 추격해 오는데, 그 기세는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끓어오르듯
요란하기 짝이 없었다.항우는 그런 기세에 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작정 쫒겨 가는데,
주란이 대군을 몰고와 항우를 구한다.항우는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쉬며 본진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 또다시 적의 기습을 당하게 될지 몰라, 항우는 본진을 지키고 있는 우자기에게 말한다.
"적의 기세가 워낙 막강하여, 우리는 이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오늘 밤에
일단 팽성으로 철수했다가, 전력을 재 정비하여 다시 오기로 하자."
그러자 우자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아뢴다."사실 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한신의 군사들이
이미 팽성을 점령하고 폐하의 일가족을 모조리 생포했다는 소리가 있었사옵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팽성으로 가신다한들 대책이 묘연하옵니다."
항우는 그 소리를 듣고 기절초풍 할 듯이 놀라며 말한다."뭐야 ? 한신이란 놈이 이미 팽성까지
점령해 버렸다구 ?"항우가 대경 실색하는 꼴을 보고, 우자기는 얼른 위로의 말을 한다.
"폐하 ! 너무 상심하지 마시옵소서. 우리에게는 아직 10만 가까운 군사가 남아 있사옵니다.
오늘 밤 그들을 형초호(荊楚湖) 방면으로 후퇴시켜 후일을 기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항우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한다.
"팽성이 함락되었다는 소문은, 적의 첩자들이 퍼뜨린 유언 비어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일단 팽성에 들러 가족들을 데리고 가야 한다.
그래서 산동(山東)에 있는 노군(魯郡)을 근거지로 하여 재기(再起)를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대장들은 항우의 의견에 따라, 한밤중에 삼군을 거느리고 팽성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밤을 새워가며 행군하여 소현(蕭縣)에 도착하였다. 거기서부터 팽성까지는 50리가 남았을 뿐이다.
항우는 그제서야 군사들과 함께 마음을 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문득 여기저기서 수상한
움직임이 감지 되어 정찰병을 보내어 정탐해 보니,적병들이 남쪽에서 구름과 같이 집결해 오고 있고,
동쪽에서는 수백개의 붉은 깃발이 새벽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데, 그들 역시 수십만 명이나 되어
보인다는 보고가 들어 오는 것이 아닌가 ?
항우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놀라며 좌우를 돌아보며 외친다.
"적병들이 그렇게나 많다 하니, 천하의 군사들이 모두 유방의 군사들이 되어 버렸다는 말이냐 ?"
종리매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앞에서는 적병이 가로막고, 뒤에서는 한신이 맹렬히 추격해
오는 걸 보니, 팽성이 함락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사옵니다.그러니 우리는 재빨리 산동으로
피신함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팽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곳에서 어물거리다가는
재기의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되시옵니다."주란도 뒤를 이어 이렇게 간한다.
"종이매 장군의 간언은 지당한 말씀인 줄로 아뢰옵니다. 폐하께서는 신속히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러나 항우는 격노한 어조로 외친다."내 일찍이 수많은 곤경에 봉착해 보았으되, 완패(完敗)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적의 대세가 막강하기로, 나를 당할 자가 과연 누가 있더란 말이냐. 내가 여기서
쫒겨갈 수는 없는 일이다.그대들은 나를 따라와, 나 혼자서 적장들을 모조리 때려죽이는 광경을
보고만 있으라.나는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팽성을 빼앗기고 지지리 못나게 쫒겨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항우가 이처럼 완강하게 나오니, 대장들은 싫든 좋든 간에 항우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팽성으로 달려가고 있노라니까, 얼마후에 비마가 달려와 항우에게 아뢴다.
"팽성이 적에게 함락되어서 성루에는 붉은 깃발이 수없이 펄럭이고 있사옵니다. 게다가 그들은
사대문(四大門)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사옵니다."그 말을 듣고 초군 대장들은 크게 낙심하였다.
그러나 항우는 투구 끈을 새삼스럽게 졸라매며 외친다."어떤 일이 있어도 팽성만은 탈환하여야 한다."
항우는 팽성 탈환전을 전개하려고 구리산으로 향하여 전진하는데, 문득 산 위에서 커다란 붉은
깃발이 전후좌우로 펄럭이더니, 사방에서 복병들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
서북방에서 왕릉의 군사가, 북쪽에서는 노관의 군사가, 동북방에선 조참의 군사가, 동쪽에서는
영포의 군사가, 동남방에선 팽월의 군사가, 남쪽에서는 주발의 군사가, 서남방에선 장이의 군사가,
서쪽에서는 장다의 군사가,이렇게 여덟 무리의 군사가 항우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죄어 들어 오니
깊은 산중에는 살기가 등등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항우(項羽)는 분노가 극에 달하여, 장창을 꼬나잡고 여덟명의 적장들을 둘러보며 외친다.
"오냐 ! 여덟 놈이 한꺼번에 덤벼 오너라. 나의 장창은 너희 놈들을 한 놈도 살려 두지 않을 것이다."
항우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덟 명의 장수들은 일시에 항우에게 덤벼 들었다.
그러나 항우의 행동은 번개같이 날쌔고 벼락같이 강해서 여덟 명의 적장들의 공격을 귀신처럼
막아내며 공격에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초진에서도 종리매, 주란, 우자기 등이 총동원 되어, 양군은 격렬하게 부딪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일진 일퇴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한군이 쫒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한군에서는 박소, 손가회, 고기, 장창, 척사 등의 제 2진이 파상 공세를 가해 온다.
그러나 항우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들과 20여 합을 싸우면서 손가회를 창으로 찔러 죽이고,
척사를 장창으로 후려갈겨 죽였다.이에 박소, 고기, 장창 등이 쫒겨 달아나니, 이번에는 성녀산 계곡에서
진희, 전관, 자무, 오예 등이 무리를 지어 공격을 가해 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들은 애초부터 항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항우와 부딪쳐 불과 10여 합을 넘기지 못하고,
제풀에 뿔뿔이 쫒겨 달아나고 말았던 것이다.한신은 <주역진법>에 의하여 <십면매복(十面埋伏)>으로
항우를 사로 잡으려고 했지만, 항우는 60여 명의 적장들을 거의 혼자의 힘으로 막아냈던 것이다.
<십면매복(十面埋伏)>의 겹겹이 둘러 친 무서운 전법을 혼자의 힘으로 극복해 낸 항우의 위력은
실로 초인적인 위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싸움이 끝나자 모든 장수들은 땅에 엎드려 항우의 위력에 탄복하였다.
"폐하는 진실로 하늘이 내리신 신장(神將)이시옵니다. 폐하가 아니면 60여 명의 적장들을 어떻게
혼자서 물리칠 수가 있었겠나이까 ?"사실 항우는 이날 60여 명의 적장들과 싸웠지만, 창검을 손에서
떨어뜨린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상처조차 한 군데도 입지 않았다. 항우는 장수들의 찬사를 받자
용마 오추의 목덜미를 툭툭 두드려 주며 말한다.
"오늘 싸움에서 내가 적의 대장들을 물리칠 수가 있었던 것은, 오로지 이 <오추>의 덕택이었다."
그러자 오추는 주인의 말을 알아들은 듯, 두 귀를 쫑끗 세우고 머리를 들어 먼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오호호호호 ! "하고 큰소리로 울어댄다.
이윽고 항우가 장중으로 돌아와 투구를 벗어 놓으니 우미인이 달려와,
"폐하께서 무사하셨음을 축하하나이다."하고 큰절을 올린다.
항우는 아리따운 아내의 용모를 보고 흔쾌히 웃으며 말한다.
"당신은 오늘 엄청난 적군을 보고 무척 떨었겠구먼 ! "우미인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신첩은 폐하의 천위(天威)와 모든 장수들의 노력으로 적군을 물리친 것을 무엇보다도 기쁘게
생각하옵니다.폐하께서는 60여명의 적장을 상대로 싸우시느라고 얼마나 피곤 하시겠사옵니까?"
"무슨 소리 ! 나는 그 옛날 장한과 아홉 번을 싸우면서 여러 날을 굶은 일도 있었지만, 그때에도
피로를 몰랐노라. 오늘 정도의 싸움으로 피로를 느낄 내가 아니로다."
항우의 말을 듣고 좌중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때 주란이 항우에게 아뢴다.
"폐하 ! 적들은 오늘의 패배를 설욕하려고 야간기습을 감행해 올지도 모르옵니다. 지금부터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옵니다."항우는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한다.
"그놈들이 그만큼이나 혼이 났는데, 설마 또다시 덤벼 올라구."주란이 다시금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자고로 매사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일러 오니, 설사 적이 오지 않더라도 대비만은 꼭 해두어야
하옵니다.""그렇다면 사방에 진을 치고, 중군을 철저히 방비하게 하라."
항우는 군명을 내려 놓고 우미인을 상대로 장중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다.
크게 싸우며 적을 모두 물리치고,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마시는 술맛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훨씬 감미롭고 좋았다.한신은 항우를 생포하려고 구리산에 <십면매복(十面 埋伏)>의 덧을 설치 했다가
실패하고 나자 크게 낙심하였다.그리하여 이좌거를 불러 상의한다.
"항우가 워낙 천하 제일의 맹장이어서, 우리는 그를 생포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전차(戰車)로 구리산을 포위하고 있으면, 항우가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는
못할 것입니다.그러노라면 초군은 군량이 떨어지고 구원병은 오지 못해 결국은 항복하지 않을 수가
없겠는데, 선생께서는 이 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이좌거가 대답한다.
"항우의 용맹이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필부의 만용에 지나지 않습니다.
염려되는 것은 그의 곁에는 계포, 주란, 종리매 등 몇몇 용장들과, 항우를 근거리에서 밀착하여
그를 호위하고 있는 8천여명의 친위 부대(親衛部隊)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군량이 떨어지더라도, 끝까지 거세게 저항을 해올 것이 분명한데, 우리가 그들을 쉽게
이겨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따라서 굳게 뭉쳐있는 항우의 친위 부대를 어떻게 해야
흐트려 놓을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이번 싸움에서의 최대에 관건이라고 생각하옵니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포위망을 뚫고 강동으로 이동하여 군비(軍備)를 새로 갖추게 되면 그때에는
항우를 영원히 정벌할 수가 없을 것 같아오니, 원수께서는 그 점에 각별한 고려가 있으셔야 하옵니다."
한신은 머리를 무겁게 끄덕이며 말한다."선생은 참으로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아무리 궁리를 하여도 좋은 계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장량 선생을 모셔다가
함께 의논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장량 선생이라면 반드시 좋은 묘책을 말씀해 주실 것이옵니다."
그리하여 한신은 즉석에서 육가를 보내어 장량을 모셔 왔다.
그리고 그간의 경과 내용을 낱낱이 말해 주고 나서 물었다.
"항우에게는 계포, 주란, 종리매 등 몇몇 충신들과 8천여 명의 친위 부대가 철통같이 뭉쳐 있어서
그들의 단결을 무너뜨리기 전에는 우리가 승리할 가망은 전혀 없사옵니다.
어떻게 하여야 그들의 결속을 무너뜨릴 수가 있을지, 좋은 지혜를 가르쳐 주소서."
장량은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한다."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걱정을 하시오 ? 장수들의 충성심을
무너뜨리고, 친위 부대를 뿔뿔이 흩어 놓기만 하면 항우를 생포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오."
한신은 그 말을 듣고 뛸 듯이 기뻤다."무슨 수를 써야 그들을 뿔뿔이 흩어 놓을 수가 있을지,
구체적인 계획을 들려주소서."장량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들의 마음을 산산조각으로 부수려면 옥퉁소 한 가락이면 충분할 것이오. 아마"
하고 지극히 간단하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 한신과 이좌거는 너무도 뜻밖의 대답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다."옥퉁소 한 가락이면 적의 결속을 산산조각으로 부술 수가 있다니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
장량은 너털 웃음을 웃어가며 말한다."두 분은 퉁소도 모르시오 ? 퉁소, 이 퉁소 한 곡조만 잘 불면,
친위 병사들의 결속을 산산조각으로 와해 시킬 수가 있을거라는 말이오."
"퉁소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소리는 들어왔사오나, 그같은 옥퉁소를 언제 누가
어떤 방법으로 분다는 말씀입니까 ?""누가 불기는..퉁소를 제대로 불 줄 아는 사람이 나밖에 누가 있겠소 ?
결국은 내가 불어야 하겠지요.""에엣 .... ? 선생께서 퉁소를 ? "한신은 장량의 대답에 또 한번 놀라며,
"선생께서 퉁소를 잘 부신다는 말씀을 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사온데, 선생께서는 퉁소를 그 처럼
잘 부시옵니까 ?" 하고 물었다.장량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한다.
"내가 퉁소를 배우게 된 연유를 말씀드리지요. 그 옛날 내가 젊었을 때, 나는 하비라는 곳으로 놀러 갔다가,
퉁소를 잘 부는 기인(奇人)을 한 사람 만난 일이 있지요.그 사람은 퉁소를 기가막히게 잘 불었는데,
그 사람 말에 의하면 <퉁소는 모든 고락(古樂)의 근본으로서, 황제께서 창시(創始)한 악기>라는 거였어요.
그 사람은 퉁소를 어떻게나 잘 불었는지, 그 사람이 퉁소를 불기만 하면 공작(孔雀)과 백학(白鶴)들이
몰려와 춤을 추는 것이었소.그러나 그뿐이오 ? 그 사람이 퉁소를 기쁘게 불면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가 기뻐하였고, 그 사람이 퉁소를 슬프게 불면 고향을 떠나 있던 사람들은 고향 그리움에 모두들
눈물을 짓더란 말이오.그 사람이 퉁소를 그렇게도 잘 불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선인 소사(仙人蕭史)>라는 별칭으로 불려오고 있었습니다.나는 그 사람의 퉁소 소리에 반해,
며칠을 두고 퉁소 소리를 즐기다가, 결국은 그 분에게 퉁소를 배우기로 했지요.
물론 <선인소사(仙人蕭史)>에게 비하면 나의 퉁소 실력은 문제가 안 되오. 그러나 나도 퉁소를 어느 정도는
불 수 있다오."한신은 그 소리를 듣고 또 한 번 놀라며,"그러면 선생께서 퉁소로써 항우의 친위 부대의
결속을 산산조각으로 분쇄해 주시옵소서. 수고스러우시겠지만, 꼭 부탁드리옵니다."
하고 간곡히 부탁하였다.장량이 웃으면서 대답한다."나의 퉁소는 <선인소사(仙人蕭史)>처럼 신의
경지에 도달해 있지는 못하오. 그러나 때마침 고향을 떠나 싸움터에 있는 병사들이 감상(感傷)에 젖기 쉬운
가을철이라, 내가 퉁소를 불어도 효과는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되오."
한신과 이좌거는 장량의 말을 듣고 머리를 수그리며 간곡히 부탁한다.
"선생께서 그런 비술(秘術)을 가지고 계시면, 퉁소를 꼭 한 번 불어 주시옵소서. 그래 주셔야만 저희들이
쉽게 승리할 수가 있을 것이 아니옵니까 ?"
2-93편에 계속
첫댓글 사면초가, 항우의 최후가 가까워지군요.
더운 날씨에도, 매일 올려주시는 대단하신 작가님과 이준황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