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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개발원>
나는 지난 화요일(21일) 상경하여, 30대 시절의 꼬박 10년 동안을 몸담고 있었던 교육개발원을 방문하였다. 몇 년만의 방문이니 여러 가지 스산한 감회가 없지 않았지만 ㅡ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으며,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높은 자리로 밀려 올라가 있더라 ㅡ 이 글은 감상에 젖어 그러한 감회를 풀어놓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그 날 내가 전해들은 하나의 대화법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다. ‘양반 대화법’이라고 하면, 사돈을 맺으려고 하는 배삼룡과 구봉서가 나누는, 어처구니없는 코믹 대화가 떠오를까? 내가 소개하려고 하는 대화도 코믹한 것은 사실이며, 어처구니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참, 별 일이 다 있더라.
나는 이 방 저 방 찾아다니며 몇 몇 지인들을 만나 보았으며 그 중 일부와는 저녁 식사를 같이 하였다. (내가 찾아 본 지인 중에는 우리 고등학교 6년 선배인 박재윤형도 들어 있다. 그리고 아,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는데, 교육개발원과 한 울타리 안에 있는 교육방송에 근무하는, 형범이와 상철이는 찾아보지 못했다. 만약 이 친구들도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고, 또 개발원의 옛 동료들도 저녁식사를 제안하면 어느 쪽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나 하고 그 전날 고민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날 거기에 가서는 그 두 친구를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미안하이.) 나하고 저녁 식사를 같이 한 개발원 인사는 세 명이었다. 한 분은 류(柳)처장(59세)이었고, 나보다 아랫 쪽인 다른 두 사람은 양(楊)소장(50세)과 박(朴)연구원(43세)이었다. 이 분들은 모두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나왔지만 ㅡ 그리고 나도 용케 같은 곳을 나왔지만 ㅡ 이 분들 사이의 공통점은 그런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분들 사이에 있는 보다 중요한 공통점은, 이 분들은 공히 양반이라는 사실에 있다.
술이 거나해지면서 개발원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화제로 떠오르자, 양소장이 흥취를 억누르지 못한 채 20 여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젊은 양선생을 개발원으로 불러낸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라고 한다. 양선생은 내 전화를 받고, 마치 튕기기라도 하는 듯이, 장차 자기가 같이 일하게 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관하여 물었다고 하며, 나는 “다른 것은 알 필요 없고, 그저 그 팀에 양반이 한 분 계시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양반 한 분’은 물론 류처장이시다. 20 여년 전의 미숙한 내 눈에도 양반은 양반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입사 계기가 화제로 떠 오른 것은 박연구원 때문이다. 박연구원은 불과 몇 달 전에 개발원에 입사하였으며, 바로 류처장의 배려로 입사할 수 있었다. 사실, 박연구원의 지위는 1년 안 쪽으로 계약된 임시직으로, 정규직의 경우와 달리 임시직은 이렇게 비공식으로 채용되곤 한다. 우리는 그 때 우면동 한 귀퉁이에 있는 ‘포장마차’라는 이름의 술집에서 산오징어, 두부김치 등등을 안주로 소주를 마셨는데, 술이 조금 더 거나해지자 류처장이 박연구원의 채용과 관련된 비화를 한 가지 털어 놓으셨다.
<양반 대화법>
이 비화의 주인공은 류처장과 류(柳)교수이다. 다시 말하지만, 류처장은 박연구원을 채용해 준 59세의 개발원 인사이고, 지금 처음 등장하는 류교수는, 서울 시내 모대학에 계신 원로 교수(63세)로서, 박연구원을 채용해 줄 것을 청탁한 분이다. 이 분 역시 같은 학교, 같은 학과를 졸업하였지만, 이 분들 사이에 있는 공통점은, 역시, 그런 것만이 아니다. 류처장은 4년 선배인 류교수를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존경하여 항상 깍듯하게 대하곤 하였다. 어처구니없는 코믹한 비화가 만들어진 데에는, 무엇보다도, 류교수와 동일한 이름을 쓰는 동명이인이 한 명 있었다는 사실과 그 동명이인이 류교수와 동일한 용건(채용 청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큰 몫을 한다. 류처장은 4년 선배인 류교수와 10여년 아래인 류아무개를 혼동하였던 것이다.
류처장은 비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류00선생님에게 전화 좀 대 줘요.” 비서는 류교수에게 전화를 연결하였고, 류처장은 젊은 류아무개에게 연결된 것으로 생각하였다. 류처장은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였겠지? “아이쿠, 안녕하십니까? 제가 곧바로 전화를 했어야 했는데, 이렇게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류처장은 아랫사람에게도 존대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 점은 류교수도 마찬가지이다. 류교수는 아마도 “어려운 때에 어려운 부탁을 해서 미안합니다. 너무 무리를 하지는 마세요.” 하는 식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무리라고 할 것까지는 없어요. 임시 계약직의 경우에는, 때마침 전공에 맞는 자리가 있으면, 잠시 같이 일하는 것이고, 자리가 없으면 그나마 못하는 것이니까요.” 등등으로 전화 통화가 이어졌겠지. 전화로 이야기하는 경우, 대화 상대를 혼동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화 초기에는 말이다. 그런데, 혼동한 채 계속 대화를 하다가 대화를 끝낼 때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 혼동한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일어날 수 있는 모양이다. 류처장과 류교수의 통화가 그러하였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코믹하게도, 두 분의 전화 통화는 그 상태 그대로, 즉 류처장의 입장에서 보면 류처장과 젊은 류아무개 사이의 통화인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짧은 통화가 아니라 상당히 긴 장시간의 통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또 단순한 안부 전화가 아니라 용건을 가진 중요한 통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비화를 우리에게 털어 놓는 중에 류처장은 “통화는 그런대로 잘 마무리되었다”고 말하였다. 물론 ‘잘 마무리되었다’는 말은, 통화 내용에 관한 한 그러하였다는 뜻이다. 류처장과 류교수는 아랫사람에게도 존대한다고 말하였지만, 아랫사람에게 쓰는 존댓말과 윗사람에게 쓰는 존댓말 사이에는 미묘하나 분명한 차이가 있지 않는가? 내가 코메디나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두 분의 대화를 구체적으로 재구성하되, ‘미묘하고 분명한’ 그 차이를 반영하여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연출해 낼 수 있을텐데...... 이런 식이 되지 않을까?
류처장(59): “우리 쪽에서도 사람이 필요하긴 필요해요. 그러나 그렇게 너무 서두르시면 곤란한테”
류교수(63): “......”
류처장: “잘 될 거라는 뜻입니다.”
류교수: “아, 예...... 그건 그거고, 점심이라도 한번 같이 해야 하는데, 이쪽으로 한번 오시든지.”
류처장: “예? 날더러 오라고요?”
류교수: “이 쪽에 순두부 잘 하는 집을 하나 개발했거든요.”
류처장: “아, 난 또.”
그 며칠 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류교수는 사람을 시켜 류처장에게 확인 전화를 하게 하였다고 한다. 물론 그 확인 전화 한 통으로 모든 오해는 풀렸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것이 양반 대화법이다. 그것이 양반 대화인 것은, 대화의 쌍방이, 상대가 아랫사람인 줄 알면서도 존대하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류교수였다면 “내가 청탁하는 처지인 줄은 알지만, 류처장, 선배에게 너무 함부로 대하는 것 아니요?”라고 대놓고 말했을 것이며, 내가 류처장이라면 “류아무개박사, 젊은 사람이 말버릇이 그게 무어요? 오냐 오냐 하니까 말이야.”라면서 아예 감정을 폭발시켰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처구니없는 코믹한 대화가 끝까지 이어진 데에는, 공교롭게도 동명이인이 동일 용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한 대화의 쌍방이 공히 양반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것이 만약 재난이었다면, 그것은 천재(天災)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인재(人災)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답답한 양반들>
두 분 중에 한 분이라도 내 식으로 대놓고 말했거나 감정을 폭발시켰다면, 물론, 훨씬 빨리 오해가 풀렸을 것이며, 훨씬 효율적으로 대화가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양반 대화법은 비효율적인 대화법이다. 그것은 참으로 답답한 대화법이다. 그리고 양반은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다. 류교수는 경기도 용인 양반이고, 류처장은 전북 고창 양반이다. 대선배를 놓고 인물평을 하듯이 이러쿵 저러쿵 말하는 것은 삼갈 일이다. 그러나 그 대화법에 관한 한, 기왕에 말한 것이니 마저 말해도 용서가 되리라. 이 분들은, 우선, 말수가 적다. 그리고 말을 하지 않아서 안 될 때에는 할 수 없이 말을 하지만, 대체로 목소리가 크지 않고, 톤이 낮고, 속도가 느리다. 결코 흥분하여 말하지 않으며, 발언 내용을 살펴보아도, 단언적으로 말하는 법이 없다. 이 쪽도 옳고 저 쪽도 옳다고 말하는 황희정승 비슷하다고나 할까?
처음에 말하였던 개발원의 두 후배, 즉 양소장(50세)과 박연구원(43세)도 두 분 선배를 많이 닮았다. 양소장은 충북 증평 양반이고, 박연구원은 경남 진주 양반이다. 박연구원의 경우, 오죽 주변머리가 없었으면 서울대학교를 나오고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면서도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자리를 잡지 못했겠는가? 주변 사람들이 오죽 답답했으면 임시직 자리라도 알아봐 주려고 나섰겠는가? 양소장의 경우도 큰 차이가 없다. 꼭 무엇을 이루어내겠다는 집념 같은 것은 이 사람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소장 직함을 얻은 것은 최근의 일이고, 그 전까지는 거의 평연구원으로 지냈던 모양이다. 그래도 양소장은 그 직책을 맡은 후 자기 자신까지 놀라게 하는 괴력의 리더쉽을 발휘하여 부하 직원들로부터 크나큰 칭송을 받는다는데, 그것은, 틀림없이 이 사람에게는 딴 욕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양소장이 자기 직책에 만족하여 자기 직무를 즐기고 있다는 점은, 남아서 일하고 있던 부하 직원 한 사람(정팀장)을 불러내어 우리 자리에 합석시킨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정말로 답답한 사람이다. 양소장이 맡은 직책은 개발원 내에서는 유명한 한직으로, 누구나 가기를 꺼리는 자리이다. 하여간 답답한 이 양반들, 흥부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 양반들이 얼마나 답답한 사람들인지는 노는 모습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류처장부터 시작해서 양소장, 박연구원은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했다. 아니, 별로 끊으려고 하는 것 같지가 않다. 처음에 말한 ‘포장마차’에서 너, 덧 개의 안주로 포식하고 난 뒤에 일어서면서 하는 말이, 무엇이었냐 하면, 2차는 일식집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물론 나의 필사적인 만류로 생맥주집으로 방향을 틀기는 하였다. 그 다음에는 노래방에 갔다. 뭐가 그렇게 흥겨웠는지, 이 양반들, 새벽 2시가 훨씬 넘어서까지 죽기 살기로 노래를 하였다. 그리고는 나와서 순대국을 먹었는데, 순대국을 먹고 나서는, 또 뭐라고 하였는가 하면, 다시 노래방으로 가자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혀서...... 그러려면 도우미 아줌마라도 불러주든지. 답답하기는...... (나는 원래는 도우미 아줌마 안 불러주면 노래 안하거든.)
우리가 각자 택시를 타고 흩어진 것은 새벽 3시 경이었을 것이다. 홀로 택시에 앉자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오늘 나를 이토록 환대해 준 한 선배와 두 후배의 단순하고 선한 표정이 떠올랐다. 너무 아쉬웠다. 내가 그 분들을 조금만 닮았더라도 양반 계보가 보다 촘촘하게 정리되는 것인데. ‘조교수, 53세, 경북 봉화 양반’하고 말할 수 있었다면 말이야.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면 지역적으로도 구색이 맞잖아. 그 분들 옆에 세워 놓으니, 나는 너무 약삭빠른 사람이었며, 너무 효율적이고 너무 세상 물정에 밝고 너무 세련되고, 이른바 똑 부러지는, 너무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날 나는 심지어 노래를 너무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 그 양반들은 노래를 즐길 뿐이었지, 잘 부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 양반들이 부르는 사이에 끼어서 부르다보니, 나는, 내가 공연히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Soldier of Fortune’을 부르다가는 아예 머쓱해지고 말았다.
첫댓글 ㅎㅎㅎ 양반만세!!
교육개발원에 갔던 에피소드구먼. 노래방 가는 것도 2차가 있나? 순대국 한 그릇 잘먹고 또 노래 방이라.
오랫만에 영태덕분에 양반들 잘 노는 모습을 보네... 양반 파이팅!!!... 나도 영태한테 글쓰는 법 배워서 유럽 귀족대화법을 써볼까나...
답답한 양반들이라 노래방에서 스트레스 푸나보다~ㅎㅎ
(영태한테 글쓰는 법 배울 것이야 무엇이 있겠어?) 유럽 귀족 대화법은 양반 대화법과 약간 다르겠지? 그런데, 내가 그려 본 양반이 조선 시대 양반과 같은가? 그게, 속마음(혼네)을 숨기고 매너상 좋은 겉모습을 내 보인다는 일본사람들과는 약간 차이가 있겠지? 그리고, 산상수훈에 나오는 '온유한 자'와는 또 어떤 관계에 있을까?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여러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온유한 자'는 "그것 내 땅이니 돌려 주시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자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는 것 같더라.)
아, 그리고 (어제 알게 되었는데) 동명이인의 젊은 류아무개는 류처장과 10년 차이가 아니라 아예 16년 차이더라.
왜 늘 양반은 코미디 소재꺼리가 될까?? ㅎㅎ
이 양반아! 원래 윗사람 흔드는 재미가 스트레스 날리기에는 무척 좋지 않은감?
허긴 그래도..너무 착하고 선한 사람들인데~~
답답한지는 모르지만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상대방을 서로 존중하는 양반 대화법을 배우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요새 신문에 나오는 많은 댓글이 무서워서 감히 읽지 못할 정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