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제가 드릴 말씀이요"
그렇게 해서 준상이는 조민석 군청직원과 밀약을 끝냈다.
그래서 나락 50석 값을 가방에 담아 조민석이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주었다.
이건 촌놈 준상이로서는 인생 일대에 자기 목숨을 내건 대 모험이었다.
"인생을 한번 바꿔볼 라면 모험을 두려워 하지 마라
기회가 왔는데도 거기에 도전은 않고 항상 우유부단하게 행동을 하면 그 얼빠진 녀석에게
누가 와서 자기 입에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줄 것이냐?
사람이 죽을 때 죽더라도 미리 겁을 먹어서는 아무 일도 못한다.
물 들 때 노 저어라 했다 . 기회란 한번 노치면 그만이다 . 다시는 안 와..
사람들은 일생에 기회가 세 번 있다고들 하지만 그걸 누가 알아?."
이 말은 준상이가 늘 부러워했든 거부. 최철 사장의 아버지 최억대의 말이다.
늘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거부 최억대의 일화는 그의 조부님으로부터 물러 받은
문전옥답 40여 두락을 다 주색잡기(酒色雜技)로 탕진하고 오직 하나 남은 방천거리
물방앗간을 쌀 일곱 가마니 받고 팔아서 그걸 돈으로 바꾸어 전대에 차고 배를 타고
목포에 가서 무슨 장사할 것이 없을까 하고 찾아다니다가 마땅한 것을 찾지 못하고
밤에 베에 와서 누웠는데 옆 배에서 소곤소곤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면화장사들의 이야기였다.
그 면화 값의 차이가 자기 고장 보다 무려 7-8배나 비싸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그 이튼 날 아침 그걸 선창에서 확인하고 주저 없이 최억대는 가지고 간
돈 전부로 면화를 사서 담을 마대와 저울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제일 처음 간곳이 최억대의 할머니 친정, 진외가 마을 모정 이었다.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 인사들이고 면화장사를 하려고 하니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그들은 흔쾌히 응낙했고 그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면화장사는 최억대에게 엄청난 노다지를
안겨 주었다.
이렇게 면화와 맺어진 인연으로 그의 아들 최철은 수많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능율 좋은
기께베틀과 함께 그걸 나눠 주어 길쌈을 시켜 돈을 벌게 하고 수매한 그 베를 팔아 엄청난
돈을 벌었던 것이다.
참 세상에는 뿌리 없는 나무가 없더라고
최억대가 영암군 여기저기에 방앗간을 무려 다섯 개를 가지고 큰아들 윤이에게 그 경영을
맡겼던 것도 알고 보면 그 최억대가 하루에 약 쌀 두어 가마니를 찧어서 그 요미로 쌀
두어 되를 받아서 식량을 해왔던 그 물방앗간을 팔아치웠기에 그 선대유업의 연민에서
비롯된것 같다.
그리고 그 기계 방앗간에 대한 상식을 지닌 그의 아들 최철이가 이장을 하면서 반장인
준상이 한태 정미소를 지어 준 바람에 준상이도 그 정미소에 대한 상식을 얻었다.
옛 말에도 쇠가 쇠를 먹는다고 이 무슨 운명 이란 말인가 ?
준상이는 지금 최철이가 지어 논 그 정미소를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다.
이장 준상이가 군청직원 조민석에게 돈을 건네준 날부터 정확히 3일후 아니나
다를까 준상이를 조용히 만나자 하더니 이 일과 관련된 군청직원들끼리 회의를 했다며
, 지금 상황에서 최철 이름을 바꿀 순 없고 그대로 최철 명의로 도정만 하라고 했다 는 .것이다
최철이가 비록 지금 쫓기는 몸이라 할지라도 재판을 통한 어떤 실형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사유 재산권을 임의로 빼앗을 수는 없는 일이니 그 문제는 나중에 법적절차를 밟아서 해결하기로
하고 우선 완비된 도정시설을 활용 군경비 절감을 위해 군에서 직접 도정을 하기로 했다. 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탄로되면 남로당위원장 최철이가 가만 두겠냐며 군청직원들이 겁을 먹고 있더라는 것이다
준상이는 그 말을 듣고보니 오히려 얼마나 다행한 일이냐 싶었다..
"참 머리들은 좋아 "
그렇지 않아도 그게 탈로나면 어쩌나 하고 오금이 저렸는데 하고 준상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
그 어디에도 자기의 이름은 들어가 있지 않고 자기가 그 도정을 할 수 있다니 참으로 좋았다
누가 묻더라도 자기는 마지못해서 정부가 하라고 해서 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하면되고..
그리고 준상이는 친구 오종길이를 양곡관리소 소장을 시킬 생각을 했다. .
오종길이는 가장 마을에서 평판이 좋은 점잖고 착실한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오공수씨는 서당 훈장님이시다.
해마다 동짓날부터 설 전날까지 부락에서는 동각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서당을 열었는데
그 분이 맡아 놓고 훈장 노릇을 해 오셨다.학생 하나당 나락 한말이 훈장 수고비다 .
그걸 이장 최철이 해마다 다 부담했다. 그게 작지만 최철이가 부락에 장학사업도 해 왔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반상은 없어져야 한다. 최철은 이렇게 늘 말했다.
오공수씨를 직접 대놓고도 말했고 오종길에게도 지접 말 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
그들은 무얼 어떻게 먹고 사는지 궁굼할 정도로 가난 했지만
. 그는 남들처럼 지개지고 날마다 일은 안했다.
양반이란 굶어서 죽었으면 죽었지 상것들처럼 옷을 더럽히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아버지 오공수씨의 지론은 추상같았다..
선비란 오로지 여름날 마당에 보리를 널어 놨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와서 그 보리가
다 떠내려간다 해도 그걸 개의치 말고 책만 보아야한다 하는 그의 부친 오공수씨의
가르침을 받아서 인지 아무튼 그는 매일 놀고먹는 백판 이었다.
그러나 그는 늘 그의 손에는 책이 들려있었고 어디서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었다.
준상이가 친구 오종길이를 불러서 양곡관리소 소장이 되어 달라고 했을 때 오종길이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이것이 다 부락을 위한 일이라고 부락민이 모든 재정보증을 서주기로 했다면서 유비가
재갈공명을 모실 때 삼고초려(三顧草廬)했듯이 끈질기게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최철 사장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자네 아닌가?> 하면서 은근히
최철이가 부탁한 것처럼 말을 하기도 했다
첫댓글 잘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