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雪江 유 장원
어릴 적에 내 시간의 동무가 되어 준 것들은 주로 놀이였다.
대표적인 것이 구슬치기-당시에는 다마치기라고 불렀지만-와 딱지치기였고 계절에 따라 땅따먹기 혹은 자치기,
운 좋게 공을 얻는 날에는 축구라고하기엔 좀 미안한 공차기 수준의 놀이를 하곤 했다.
다마치기는 거의 고수의 수준이어서 한 때는 구슬을 아빠의 와이셔츠 각에 두 개를 다 채우고도 남아서
아빠 몰래 땅에 파묻어서 감추곤 하였다.
시간이 남아돈다거나 모자란다거나 하는 것을 잘 모르던 시절이어서 학교를 파하면 바로 친구를 불러내 시간을 쪼개가며(?) 놀았고
쪼개고 또 쪼개도 남는 시간이 있으면-사실 그런 날은 별로 없었지만-어린이 잡지를 탐독했다.
“어깨동무”,”소년 중앙”,”새 소년”등이 주로 그 시간에 나와 함께 있었는데
자주 기획 기사로 미래의 모습을 소개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난다.
주로 타임머신을 타보고 가는 21세기라든지, 우리가 어른이 되면 어떻게 바뀌는가라는 식의 글들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대부분이 실현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를테면 휴대용 전화기라든가 전기로 가는 자동차 등.
그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기사들은 아주 먼 공룡시대의 공룡들과 원시인들의 생활이거나
또는 우리 조상들의 생활 엿보기 등 과거의 모습을 그럴듯한 그림과 더불어 설명해 놓은 것들이다.
어린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잡기 기자들의 멋진 설명이 고리타분하게 설명되어 있는 교과서보다 더 뚜렷하게 박히곤 했다.
어쨌든 지금 생각해 봐도 어릴 때 상상 속에 그렸던 시간들은 참 다양하게 존재했던 것 같다.
별로 그려진 것이 없는 하얀 도화지 위에 아무거나 덥석 덥석 물어서 색칠해 놓았던 그때의 그 시간들이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현재라는 시간을 꽤나 바쁘게 산 반면 미래에 대해서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고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취사선택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던 그런 시대였다.
지금 시간 여행을 통해 그 시절을 가보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현재의 시간을 잘게 쪼개가며 살고 있는가?
미래에 대해서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올 2월에 5년 만에 고국에 1개월 동안 다녀왔는데,
비슷한 시기에 15년 만에 고향에 다녀왔다는 이민 선배 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었었다고 하는 그 선배는 ‘이젠 여기가 편하고 이곳이 고향이야’라며
더 이상 한국에 다녀오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셨음을 암시하셨다.
그러면서 65세가 넘으신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을 하시며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서 그분에겐 이제 더 이상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필요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현재의 시간을 잘게 쪼개며 살고 있는 그분의 모습이 나에겐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래가 현재의 바로 앞부분들의 무한수열이라고 볼 때 -헉, 이렇게 살벌한 수학 용어를 이 글 문맥과 맞는지도 모르고 쓰고 있다니- 현재를 아름답게 살고 계신 그분의 미래는 세월이 많이 남아 있는가 와는 상관없이 분명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다 힘들다고 한다.
코로나가 끝나서 겨우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다시 경제 불안에 시달린다.
잠시 잠깐 시간 여행을 통해서 어린 시절을 다녀오곤 하는 이유는 지금이 많이 힘들어서 일 것이다.
숨을 쉴만한 여유가 없기도 하겠지만 마음이 어수선하면 즐거웠던 과거가 생각나는 것이다.
시간 여행은 그런 것이다.
지금 숨 쉴 공간과 시간이 부족할 때 잠시 떠나오고 나면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되는 것.
공간 여행보다 시간 여행을 더 선호하는 이유는 오히려 시간에 쫓기며 살아서일까?
아니면 이런저런 생각으로 꽉 찬 머리에 숨을 쉴 공간을 주기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까?
또는 떠나기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그 장점 때문일지도 모른다.
목적지는 불분명하다.
아니 왔다 갔다 한다.
코흘리개 다마 선수로 활약하던 때일 수도 있고 만원 들고 2주일간 제주도를 돌아다니던 황당했던 젊은 날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제2의 코로나로 다시 마스크를 쓰고 집에 웅크리고 있는 더 피폐해진 미래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래로 갔다 오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지금 캐나다의 시간은?
9시 조금 넘음.
아직 훤한 밖을 바라보며 내일을 위한 시간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잘 자란 얘기다.
첫댓글 추억을 불러 오고 아름다운 기억이 더 많은, 시간 여행 속으로 …
‘어깨동무’ … 기억 나네요.
거기서 꼬마 배우 송승환 기사도 읽었고 … ㅎㅎ
좀 더 크면 '학원', '문학사상' ...
현재 사는 곳이 편하고,
고향같은 느낌이 드는 건 이미 적응되었기에 그렇겠죠.
유장원님, 잘 감상했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그 이민 선배분은 완전히 캐나디언이 되셨고 그게 더 편해보이는데 전 아직 고국이 그리워요.
ㅎㅎ
아직 캘거리 때가 안빠진 모양입니다.
밴쿠버도 적응해야죠.
이 곳을 통해서 더욱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