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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Ψ향연의 밤Ψ 원문보기 글쓴이: master현
황진이역의 하지원
인간의 길을 알고자 했노라.
황진이 [黃鎭伊] 기명 명월(明月) -하지원
슬픈 여자다.
천랑성(늑대별)의 꼿꼿한 기상을 갖고 날려면 뜨르르한 사대부가 사내로 났으면 좋았다. 그러나 사랑에 목매는 기녀 현금의 불장난 같은 사랑으로 난 여자라..그래서 하는 수 없이 기녀로 살아야 하는 명운을 타고 난 여자라 슬프다.
그러나 슬프지 않은 여자다.
삶이란 놈이 쳐놓은 덫쯤은 제가 썩썩 몰아 낼 수 있는 기상을 지녀서, 시(詩), 서(書), 화(畵)를 고무찰흙처럼 주무를 수 있는 재주를 지녀서, 슬픔을 춤과 노래로 달랠 줄 알아서, 저와 남의 마음을 후릴 결고운 거문고 선율이 그녀의 몫이라 ,무엇보다 쉼 없이 사랑할 수 있는 튼튼한 심장을 지녀서 그녀는 슬프지 않다.
그녀는 예술가다.
괴테가 16세기 조선에서 났으면 따뜻한 악수를 청했을 시인이며, 또한 춤꾼이며, 음악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예술을 키운 건 팔 할이 사랑이다. 그녀는 은호와의 첫사랑에서 용감했고, 벽계수의 왜곡된 사랑을 질타할 줄 알았으며, 제 몫이 아니라 믿기도 했고 어느 만큼은 구속될 자유가 두렵기도 했으나 그의 아낙이 되라한
그녀는 예술 속에서 사랑하고 사랑 속에서 예술을 완성해간 어쩌면 너무 일찍 태어난 근대인, 당대 최고의 자유인이다.
기생 사감선생역 임백무
기녀의 가장 중한 벗은 말이다.
바로...고통이다.
임백무 [舞妓] -김영애
고집스런 사람이다. 희로애락이란 감정은 애 저녁에 엿 바꿔 먹은 지 오래라 도무지 그 마음 줄을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사람.
천출이라도 조선 최고의 춤꾼인 것이 좋고, 무기(舞妓)중의 무기라 그 재주를 인정받아 조선 최고의 풍류향 송도 관아의 행수기녀인 것도 좋다. 천출인 기녀가 재주라도 없으면 사람취급 받긴 글렀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이며, 그러므로 제 수하의 기녀들이 재주 이외에 딴 눈 파는 것은 제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인정할 수 없는 다소 강퍅해 보이기도 하는 사람이다. B사감과 러브레터의 그 사감같이 잔정이라곤 약에 쓸래도 없어 차가워 보이기도 하는 이. 그녀가 백무다.
그녀로 인해 황진이도 그 외의 다른 기녀들도 동기(童妓)시절부터 무던히 괴롭다. 황진이의 첫사랑을 무작스레 자른 것도 그고, 첫정을 못 이겨 화초머리 올리는 날, 정주간 대들보에 목맨 기녀를 가마니에 둘둘 싸다 버리라 명하는 인정머리 없는 이도 그다.
그러나 사람들은 알까. 그녀가 제 고집 속에 얼마나 큰 슬픔을 묻어두었는지. 팔자 거슬러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열여섯 풋정으로 이미 알아버려 나머지 인생은 그저 숙제하듯 살아가는 고단한 이였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까.
사랑도 잃고, 여인네로서의 행복도 잃었는데, 그래서 고집스레 춤에 매달리고 제 수하 기녀들을 그리도 몰고 닦달을 했는데, 기세 좋은 양반님 네는 그녀의 춤마저 제 성이 겨우면 썩 무시해 잘라버리고 든다. 그래서였다. 공들여 춤추고 예성강의 그 시퍼런 물줄기에 제 몸을 던진 것은..해어화라, 기녀라, 천한 년들이라는 욕지기들이야 얼마든지 참아낼 만 했다. 그러나 평생 가래톳이 골백번도 더 서가며 완성한 제 춤이 부정당하는 것은 참을 길 없었다. 그러니 그녀도 천생 예술가다. 희로애락 다 잊었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세상을 쥐어박고 산 그녀였지만 그녀 또한 참으로 슬픈 사람이다.
벽계수역의 류태진
재물에 눈 먼 년은 봐 너길 만하지만,
명예와 권세에 눈먼 년은 재미가 없어.
벽계수 -유태준
비틀어진 사랑이다. 그래서 이 사랑은 노엽고, 노여운만큰 안쓰러운 것도 사실이다. 왕실의 종친이라, 사내로 난 자나 출사의 꿈 따윈 품어선 안 되는 것이 현실.
출사를 꿈꾸면, 권력에 대한 욕심을 가지려 들면 그 즉시 언제 역모라는 올가미가 그의 덜미를 잡을지 몰랐다. 그래서 그는 아비에게 그리 배웠다. 그저 풍류나 즐기며 재물과 권세를 주무르는 것이 왕실 종친에게 주어진 삶이라..
권세와 재물로 살 수 있는 것은 다 샀다. 그림도 사고,
좋은 자기도 사고 때때로 지기와 계집도 샀다. 준수한 외모에 풍류 또한 남 못지않게 즐길 줄 알았으니, 제가 갖고자하면 마다치 않고 옷고름을 풀어주는 계집은 하 많았다. 그러나 가지면 그뿐 이내 흥미를 잃었다. 갖는데 까지가 전부인 그였다.
그래서였을까. 벽계수가 가장 오래 흥미를 가진 것은 황진이였다. 그녀는 재물로도 권세로도 살 수 없는 계집이었다. 천출의 콧대가 어찌 그리 높을까.
박탈감 없는 사랑이 그의 사랑이다. 쉬가졌으면 이내 버렸을 황진이의 사랑을 얻고자 참으로 물색없는 짓 많이도 한 자다. 꽤 많은 재물도 뿌렸고, 야비한 모사도 마다치 않았으며, 종당에는 그녀의 목숨도 앗고자 했다.
참으로 진절머리 나는 집착이다. 집착을 어찌 사랑이라 하리. 세사에 그 어느 집착도 아름다울 수 없는 법이다. 종당에는 황진이와 김정한의 안락한 일상도 깨버린 게 그다.
그래서 그의 삶에 남은 건 뭔가.
황진이의 첫사랑 김은호역의 장근석
사랑의 마음을 두고 도박을 했던 장자의 그
물색없는 마음이 싫다.
김은호 -장근석
황진이의 첫사랑이다. 대부분의 첫사랑이 그렇듯 일장춘몽처럼
짧은 사랑이며, 그러므로 가슴저린 사랑이다.
기져와의 정은 그저 잠시 지나가는 치통쯔믕로 여길 수 있었으면 땠을까. 그러면 최소한 상사지정에 제 목숨을 내어 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을지 몰랏다.
그러나 그가 사랑을 잃은 것은 단지 황진이와 그의 사이에 가로 놓인 신분의 높은 벽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리 사랑은 우유부단했다. 또한 망설임도 많았다. 어미의 분노 앞에서 망설였고, 아비의 농간 앞에서 당혹했다. 결국 제 우유부단에 넘어져 죽음에 이르는 병을 얻었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이 사랑이다.
망자가 되어 정인 황진이를 맘 놓고 지켜볼 자유를 얻었으니 말이다.
황진이와 그녀에게 연정을 품었던 남자들.
얼쑤 좋다
옆모습도 빼어나게 아름다우십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리 아름다워도 되느냐?
세상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다 하신 분이
아니십니까?
부용 [芙蓉] -왕빛나
그녀는 살리에르다.
굳이 기녀로 살지 않아도 좋은 평민의 딸로 났으나 춤이 좋아 교방에 들었고, 최고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정진을 다했다.
아마 황진이가 아니라면 그녀의 재주가 도성 최고, 아니 조선 최고가 될 수 있었을지 몰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황진이의 재주는 부용의 재주 저 너머에 있었다. 기왕지사 열등할 거라면 그저 재주를 알아보는 눈이라도 갖지 않고 났으면 좋았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 황진이의 재주를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 괴로웠다. 할 수만 있다면 살리에르처럼 황진이를 서서히 죽이고 싶었을 지도 몰랐다. 아니라면 살리에르가 동맥을 그어 피안을 꿈꾸었듯 그녀는 제 다리를 자르고 그만 세상을 등지고 싶었을 지도 몰랐다. 그만큼 천재는 노력하는 준재를 가슴 아프게 한다.
그러나 부용도 마지막까지 황진이를 미워하고 그녀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지는 못한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녀였지만 최고가 되기 위한 그 지난한 길, 그 시간의 갈피 속에 피가 터지는 고통을 수많은 불면의 밤을 묻어두었다는 것을 알았던 때문이다. 열등감으로 오래 자유롭지 못한 그녀는 황진이에게 패배를 인정하자 그나마 자유를 얻었다. 씁쓸했으나 그것은 부용이 안고 가야 할 제 몫의 삶의 질곡이었다.
진현금 [樂妓] -전미선
사랑만 있으면 석 달 열흘 굶어도 좋다고 여기는 참으로 얼치기 기녀다. 여북하면 첫사랑의 불장난으로 덜컥 애를 배고, 배내 아이 죽이라 독초를 건네기까지 한 황모를 못 잊어 기어이 제 눈까지 잃고 말았을까.
그러고도 정신 못 차리고 제 딸만은 한남자의 아낙으로 살게 한다며 동분서주 한다. 세상도 모르고, 현실감은 약에 쓸래도 없는 반편이 중의 반편이다. 그래서 그녀는 슬프고, 그래서 그녀는 아름답다. 사랑이 그리 좋으니 그녀가 쥐고 주무르는 가야금 소리도 그리 곱지.
그리 버리고 한 번 돌아봐 주지 않는 아비도, 그런 무참한 인사를 평생 그리는 어미도 밉고 한심하다는 딸 황진이를 곱게 끌어안고 ‘사랑은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이라도 보듬을 수밖에 없는 거다.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고 천갈래 만갈래 찢어진다해도 내던질 수 없는 마음이며, 제가 아프면 그리 아프게 한 그니는 또한 얼마나 아플까 먼저 헤아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할 줄 아는 이다.
그런 그녀지만 악공 엄수의 눈먼 사랑에는 한 번도 손 내밀지 않는다. 그녀는 그렇다. 한 생에 사랑은 한 번 뿐이라고 믿는 아름다운 반편이다.
엄수 -조성하
외로운 사랑이다. 손길은커녕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현금을 향한 삼십년 외사랑을 견딘 자니 천연기념물 감이다. 당대 최고의 악공이니 옷고름 풀어 제 사랑을 주겠다한 여인네가 왜 없었을까. 그러나 그 모든 유혹을 물리고 그저 한 여자밖에 바라볼 줄 모르는 그 역시 사랑에 눈먼 반편이다. 그는 제 가야금과 자고, 가야금과 일어나는 자니 사랑도 음률에 빗대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다. 그가 믿는 사랑은 진양이다. 자진모리나 휘모리가 아니라 그저 느릿하고, 느릿하니 울림이 오래고 깊은 그것이 사랑이다.
삼십년 외사랑이 딱 한 번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숨 떨어지기 직전 현금은 다음 생이 있으면 어르신의 여자로 살겠다 했다. 그 사랑이 눈물겨워 현금이 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절현하고 세상을 등졌다. 참 반편이도 가지가지다. 그러나 그 물색없는 사랑이 좋다. 참으로 고운 마음결을 가진 이다.
매향 [梅香] -
그녀는 화려하다. 춤으로 백무와 어깨를 겯고트는 라이벌이었던 그녀였지만 사는 방식은 백무와 꽤 다르다. 재주가 생기면 그 재주와 웃음을 팔아 적당한 부와 권력을 챙길 줄 아는 영악한 이가 그녀다. 그녀는 애 저녁에 도성으로 옮겨 앉아 기녀 중에서도 으뜸인 여악을 관장하는 행수가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백무에 대한 열등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백무를 행수자리에서 내몰고 기어이 퇴기가 되는 것을 보고 나야 그 열등감을 잠재울 수 있는 모양이다.
개똥이 -이인혜
제 첫사랑을 잘랐다 하여 백무에게 맞서고 있는 황진이를 제 수하로 받고자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으로 백무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녀는 남의 눈의 티끌을 보았으나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 헛똑똑이다. 결국 황진이를 가르치는 것에는 성공했으나 제 수하 기녀들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결함이 드러나 망신만 당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였으나 백무의 죽음 앞에서는 묵연했다. 춤을 안고 살든, 권력과 재물에서 만족을 느끼든 그것이 다 드센 팔자를 타고난 기녀들의 제 나름의 팔자 때움이라는 것을 아는 이기 때문이다.
관아 비자(婢子)의 딸로 나 물 긷는 수급비로 사는 그녀는 황진이와 동갑내기 동무다. 기왕에 천출로 날 거였으면 똑 떨어진 인물을 타고 나거나, 그도 아니면 세상 후릴 재주 하나 갖고 났으면 좋았다. 그러나 그도 저도 제 몫이 아니니, 천출 중에서도 젤로 하질인 수급비고, 그래서 박복하다. 그녀에겐 동기들이 우루루 몰려있는 교방은 선망이다. 부러움과 시새움으로 아이 적 그녀는 늘 괴로웠다.
그래도 그녀는 기녀가 되었다. 그녀의 괴로움을 기꺼이 나눠갖겠다한 황진이를 친구로, 그녀를 딸처럼 아끼는 현금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는 행운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소리기녀로 살아가는 것이 그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다.
어린 날 황진이 좋아라 하는 사내들이 주는 전언을 가지고 쥐 풀 방구리 드나들 듯 황진이와 사내들의 사이를 오가기도 했고, 황진이에 대한 비틀어진 사랑을 키우던 벽계수에게 이용당하면서도 그를 마음에 담기도 했다. 벽계수의 마음이 끝까지 제게 오지 않을 것임을 그녀라고 왜 몰랐을까. 그러나 사랑이 제몫이 아니라면 제 가 사랑한 이의 고통이라도 거둬주고 싶다 여기는 속정 깊은 아이다.
금춘 [今春] -정경순
넉넉한 몸집에 그 몸집 보다 훨씬 넓은 발에 수선스런 세치 혀마저 지녀 마당발에 왕수다라는 별명이 떨어진 일이 없는 이다. 자칭 한때 버들잎같이 야들야들한 몸매를 지녀 잘나가던 송도 교방의 꽃기녀였다 주장하나 아무도 믿어주는 이 없는 시들어가는 해어화다.
명색이 송도교방 동기들의 훈육을 맡고는 있으나 잔정이 넘치고 성정이 물러 항시 동기들의 잔꾀에 넘어가기 일쑤라 행수기녀 백무의 지청구가 끊일 날이 없다. 몸집에 걸 맞는 식탐을 지녀 관아 식어멈인 개똥 어미에게 빈축을 사기도 하고, 동기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는 그녀. 그러나 백무는 금춘의 식탐에만은 크게 나무람이 없다. 그 식탐이 금춘의 그 넘치는 잔정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아는 까닭이다. 금춘이 제법 해웃값을 벌어들일 무렵 얻어 걸리는 이마다 가난한 책방 서생들이었다. 그들에게 순정을 바친 대가는 늘 차가운 배신이요, 가슴 저린 이별이었다. 간사람 그리며 함지에 비벼먹은 밥이 쌓이고 쌓여 살집이 되어버린 우습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한 삶을 걸머지고 가는 이. 그녀가 바로 금춘이다.
앵무 [鸚鵡] -송선희
송도 교방의 기녀였던 어미에게서 나 교방에서 자라나 동기가 된 아이다. 그 어미가 일찍이 세상을 버려 금춘의 손에서 자라나 금춘을 어미처럼 믿고 따른다. 죽은 제 어미는 어느 구석 하나 닮은 바 없고 하는 풍신이 어찌 그리 금춘을 갖다 찍었을까. 앵무새처럼 잘도 지껄인다 하여 그 기명조차 앵무이니 이 아이도 마당발에 왕수다인 것은 불문가지. 열 남자 마다치 않고 순정을 갖다 바치는 것도 금춘을 찍어 붙였다. 아니 앵무는 신세대 기녀라 한 술 더 뜬다 해야 할까. 제 마음을 잡는 사내를 만나 그 팔에 새긴 연비(먹으로 새긴 문신)만도 예닐곱 개는 족히 된다. 그러나 참으로 딱한 노릇은 그 사랑의 유효기간이 석 달 열흘도 채우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참으로 씩씩하기만 하다. 오늘도 앵무는 교방 툇마루에 앉아 또다시 찾아올 제 몫의 사랑을 꿈꾼다.
섬섬 [纖纖] -유연지
이 아이는 처음부터 천출인 기녀로 나지 않았다. 양인의 딸로 났으나 가난이 죄라 그 입이라도 하나 줄일 요량으로 그 부모 네가 교방으로 보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숨기고 재주 배우는 것이 좋아 교방에 왔다 큰소리치며 잘난척은 독판하는 아이다.
“돈 없는 사랑은 유죄.”이것이 동기 섬섬의 제 일의 인생 철학이다. 그러나 늘 제 덫에 제가 걸리는 것이 인생의 서늘한 진실인가. 그의 마음을 잡아버린 이는 돈도 명예도 기대할 수 없는 관아의 종복이었다. 이 사랑을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 없었던 섬섬은 화초머리 올리기 전날 교방 정주간에 목을 매 그 꽃다운 인생을 접는다.
성익환 -현석
장악원 직장으로 봉직하던 젊은 관원 시절 백무를 마음에 두었던 이다. 살뜰히 그 마음을 전하고 또 전했으나 백무는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았다. 선비의 체통도 관직도 다 내던질 요량이 아니라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기녀와의 사랑이라 오금 박던 백무로 인해 그의 잚은 날은 쓸쓸했다.
그러던 중 장악원의 실세인 부제조로 초수 되자 백무에게 그랬었다. 제 권세로 그녀를 여악의 행수로 삼아주겠노라. 이리 하면 백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백무는 여전히 차갑고 도도했다.
하여 그의 쓸쓸함은 분기로 화했다. 그래서 마음 없는 계집 매향을 안았다. 이 일이 있은 연후, 백무는 여악 행수를 뽑는 연희 자체에 불참해 버렸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사랑을 잃은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정가은 -서현진
지송도 유수 정축의 여식이다. 후덕하고 넉넉한 성정을 지닌 이다.
관아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동기들을 천출이라 하여 무시해 치우는 바도 없었으며 재주 높은 진이에게 후한 찬사를 건넬 줄도 아는 다감한 이다. 그러나 진이와 그 밖에 기녀들에게 보여주는 다감함은 가진 자의 관용이지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애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일곱 살 때부터 그녀는 은호를 마음에 두었었다. 그의 모친 차씨를 따라와 햇살 고운 뒤란에서 오라비들과 투호놀이를 하고 간 그날, 그런 은호를 오래오래 훔쳐보았던 그날로부터 가은의 모든 시간은 은호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가은은 은호와 진이의 그 물색없는 사랑이 노여웠다.
장수만 -김승욱
송도관아를 오래 지켜온 아전으로 송도 교방을 관리하는 호장이다. 그도 옳고 저도 옳다며 제 주의주장이 얿는 허허실실한 인물.
기실 학문이 깊고 두자미(두보)의 시를 안고 시름할 수 있는 그나 세상이 그를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재주있는 시기 황진이만이 잠시 그의 시심을 훔쳐 보았을 뿐이다.
황진사
죄 많은 사랑이다. 신의는 어디다 엿 바꿔 먹고 그리도 매정할까. 그러나 어찌 그를 탓하랴. 세상이 그렇게 생겨 먹었음에랴. 기녀라는 여자들과는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았어도 갓끈 고쳐 매고 기방 나오면 잊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사대부가의 법도였으니...
그는 크게 잘못한 것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현금의 슬픔이요, 여식 황진이의 분노다. 그는 억울하다. 세상에 죄 있지, 나에게 죄 없다 강변하고 싶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