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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기도
주님...
주님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생각이 성령의 통치를 받게 하소서.
주의 말씀이 내 삶의 기준이 되게 하시고 기도가 성령으로 이끌림 받게 하소서.
죄를 향하여 달려가게 만드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사오니 죄의 몸이 변하여 의의 몸이 되게 하소서.
나의 죄성과 모든 허물은 주의 십자가 앞에 내려 놓습니다.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케 하옵소서.
나를 용서하옵소서.
오직 주의 것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딤전 3:14-4:5
제목 : 새 언약의 자녀가 옛 언약에 매여 갈등과 번민 속에서 살아가는 우를 범하다.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4:1. 그러나 성령이 발기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 나의 묵상
에베소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은 본문 14-15절이다.
에베소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지금 당장이라도 가기를 원하지만, 혹여 빨리 갈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편지를 먼저 보낸다고 하는 그 마음은 그들이 이단이나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온전히 세워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할 수 있겠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세운 것이 거짓 교사들에 의해 무너지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데 애쓴 자신의 열심이 무참히 짓밟히는 그런 정도의 아픔이 아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또한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의 교회를 이루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진리의 기둥과 터이기 때문에 바른 진리 안에서 행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다.
이 편지를 쓰게 하심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바울 안에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의 손에 이런 생명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한 사람이 아버지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오고 오는 세대에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먼저는 이런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한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민감한 믿음의 귀한 선배이신 바울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의 집이요 성전인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를 사수하는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오직 복음만이 선포되어야 한다.
이것저것이 섞여서는 절대 안 된다.
(고후 6:14-18)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 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성전인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와 비 진리, 복음과 다른 복음이 섞여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바르게 설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이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목숨을 거는 바울을 보게 된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증거하는 진리, 곧 복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16절에서 밝히 증거하고 있다.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의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경건의 비밀이 놀라울 정도로 크다고 말한다.
경건의 비밀이란 우리로 하여금 경건하게 만드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바로 경건의 주체가 되신다.
따라서 경건의 비밀은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복음의 핵심을 뜻한다.
복음은 창세기 3:15절과 21절에서 제시하는바 여인의 후손으로 오시는 이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존재로써의 복음이 되시고, 또한 가죽옷으로 예표되는 메시야로써 십자가에서 죽으신 행위가 바로 복음이다.
본문 16절은 바로 이 복음을 증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나셨다.
이것은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먼저 계셨다는 선재하심에 대한 방증이다.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시기 전 창세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말씀으로 계셨다.
그러다가 때가 차매 여인에게서 나심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이다.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원시복음인 창세기 3:15절의 말씀대로 여자에게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에 나신 이유는 율법 아래에 있는 모든 이들을 속량하시고 거기서 자유케 하기 위함이다.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고 그를 구주로 믿는 자들은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셨다.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결국 아담 안에서 만들어진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어 그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며 이는 곧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한다.
(요 2: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참 복음은 창세전에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며 무덤에 장사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영광 가운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구속사건을 말한다.
이 복음을 믿는 자를 일컬어 경건의 비밀을 아는 자요 진리를 아는 자며, 이런 자가 바로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로써 영생을 누리는 자이다.
바로 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으로 서로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을 가리켜 교회라고 한다.
교회는 ‘에클레시아’로써 이는 복음으로 교제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교제라 하면 사람들이 모여서 먹고 마시며 노는 것을 교제라 한다.
그러나 교회라는 말 안에는 교제를 포함하는데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교제는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서로 사귐을 갖는 것을 말한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며, 복음으로 성도와 성도가 서로 교제와 사귐을 갖는 것은 사람들만의 만남이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것을 말한다.
(요일 1:1-3)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바요 눈으로 본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이처럼 복음으로 성도간에 사귐을 가질 때 그 안에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사귐을 가지시며 거기서 오는 기쁨이 바로 하늘의 기쁨이다.
이 하늘의 기쁨은 넉넉히 땅의 모든 고통을 초월하며 수용하고 삼킬 수 있다.
(요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다.
(롬 14: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복음은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던 아담 안에 있는 자들을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얻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게 하여 의를 세우게 된다.
이런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 안에 진정한 평강을 가져다주고 그 평강은 기쁨을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참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은 이런 자유를 빼앗아 가는 사탄의 앞잡이들이요 사탄에 종노릇 하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 아래 태어나심으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다 속량하셨고 이제는 아들의 생명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더 이상 율법에 속한 그 계명에 얽매일 필요가 없음에도 계속해서 날과 달과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며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먹는 것에 대해서도 금지해야 할 품목들을 정하여 그것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레위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곧 음식 규례에 대해서 주신 이유는 그들과 언약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지켜야 할 계명을 주신 것이며 이 계명을 지키므로 해서 언약 안에 거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끊임없이 계명을 지키지 않고 어김으로 결국 옛 언약인 시내산 언약을 폐하시고 완전하고 더 이상 갱신할 필요가 없는 언약인 새 언약을 약속하셨으며 이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성취하셨다.
(눅 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그래서 우리가 구약 시대처럼 계명인 율법을 지켜서 언약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다.
새 언약의 조건의 규정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를 힘입어 담대히 아버지께 나아가는 팔레시아에 있다.
그렇기에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는 일이나 혼인을 금하는 것이나 정한 음식 또는 부정한 음식을 구분하여 먹어서는 절대 안 되는 그런 규례를 따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우리가 욕되게 하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기 때문에 우리가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곧 그리스도의 구속 사건에 연합하여 주님과 하나된 자들이요 복음 안에서 진리로 행하는 자들은 먹는 것으로 문제를 삼을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으면 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기 때문이다.
나는 일명 모태신앙인으로 어려서부터 교회에 나갔으며 교회에서 자랐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가는 것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가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갈등의 소지가 전혀 없이 교회에 가야하고 그날은 거룩한 날이기 때문에 돈도 쓰면 안 되었고, 오락이나 텔레비전 보는 것도 금기시 하였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보수적으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대원에서는 고난주간에 고기를 반찬으로 주지 않았다.
주님이 고난당하신 주간이기 때문에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때는 그런가보다 했었다.
이런 가르침을 받은 나는 흑백논리에 빠져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일은 안식일이기 때문에 주일에는 육체로 하는 것은 그 무엇도 하면 안 되었으며 공부도 하지 않았다.
학생 때는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주일날 공식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정말 좋았지만(ㅎㅎㅎ) 나는 신약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면서 사는 자가 되었다.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런 가르침에 얽매여서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예수를 믿는데 자유함이 없었다.
이것도 하면 안 되고, 저것도 하면 안 되었다.
그런데 주일만 그랬다.
주일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아무런 제약조건이 없었다.
그래서 나머지 날은 내 맘대로 살면서도 전혀 마음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부활하신 그 구속 사건에 연합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는 매일 매일이 주일이요 안식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는데 곧 이 때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주일만 거룩한 날이요, 주일만 예배하는 날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와 그런 가르침은 오늘 이 시대의 성도들에게 외식을 조장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우리를 모든 율법과 계명에서 자유케 하셨고 참된 예배자로서 살아가도록 이끄셨다.
주일만 예배자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뵙는 그런 예배자를 하나님은 찾으신다.
그런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함을 누린다.
이 자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 나라요, 지금 이 시간 말씀으로 주님 앞에서 예배자로 서 있는 나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영광이요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나의 몸은 오늘 이 시간 크로노스의 시간 안에 매여 있지만, 나의 영혼은 카이로스 안에서 자유하다.
그래서 내 영혼은 영원에 잇대어 살아간다.
아~~ 나에게 이런 자유를 주신 주님께 감사의 찬송을 올린다.
이것이 진정 나에게 주신 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늘도 이 복을 마음껏 누리자.
* 묵상 후 기도
주님...
그동안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율법과 계명, 옛 언약에 매여 살았던 나였음을 고백합니다.
현재를 살면서도 과거에 매여 있는 자가 얼마나 어리석은지요?
그런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구약의 율법에 매여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살았던 나를 건져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 안에서 참된 자유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복음으로 주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 진정한 자유요 그 안에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허락하심을 감사하나이다.
오늘도 그 나라와 의를 구하며 오직 주의 성령 안에서 살게 하소서.
그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내 영혼이 그 안에서 자유함으로 춤을 추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