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30대 중반의 여성 K씨. 그녀는 기독교 가정이지만 역기능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 때문에 늘 자기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었다. 그녀가 스물다섯 살 때, 같은 교회 청년이 사랑을 고백하면서 청혼하였다. K씨 부모는,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라며 그만한 사람은 찾아볼 수 없으니 결혼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결혼했다.
그런데 10년 간 결혼생활을 하면서 생각이 변했다. 남편은 친절하고 애정이 깊은 사람이지만, K씨는 진심으로 그를 사랑한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지나치리만큼 종교 활동에 심취했다.
K씨는 가는 곳마다 성경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의 각종 모임뿐 아니라 슈퍼마켓이나 초등학교 학부모회, 미장원, 심지어는 영화관까지 들고 다녔다. 남편은 그녀가 신앙의 열정을 갖게 된 것이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아내가 성경을 전혀 읽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 챘다.
어느 날, K씨가 성경을 가지고 잠들었다. 남편이 성경을 머리맡에서 옮겨놓으려 하자 그녀는 두려워하며 성경을 도로 움켜쥐고는 베개 밑에 두었다. 그때 남편은 K씨가 성경에 집착하는 것은 성경 자체가 주물, 즉 헌신의 대체물이 되었고 아내는 그 주물이 주는 안락함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K씨의 성경에 대한 집착은 진정한 헌신의 표현이 아니라, 불안감을 덜어 내려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사회와의 단절 일으키는 ‘위험한 습관’
K씨의 경우를 보면서 “종교 행위도 중독되는가?” 라는 의문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답은 “그렇다”이다. 흔히 마약이나 알코올만이 중독 대상으로 여겨져 왔지만, 정신의학계는 사회적인 규범에 크게 어긋나지 않아 잘 드러나지 않는 중독도 그 자체로서 중독이라고 설명한다.
“중독되었다”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매우 일반적이다. 즉 습관적으로 열중하다가 몰두하는 것을 두고 “중독되었다”고 표현한다.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행동에만 적용되지만 때에 따라서는 ‘좋은 활동’도 포함시킬 수 있다. 중독의 영어표기인 ‘Addiction’의 라틴어(Addicene) 어원을 보면 ‘동의하는 것’, ‘양보하거나 굴복하는 것’을 뜻한다. 고대 사회에서 감금되거나 노예가 된 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신과 의사들은 현대의 중독자들을 일컬어 ‘집착에 대한 노예’라고 해석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상담학자들은 어떤 물질이나 대상, 느낌, 행동, 환경, 사람, 관계 등을 향해 반복적이며 과다한 욕구가 존재할 때 “중독됐다”고 표현한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이나 쇼핑, 일, 주식투자, 도박 등의 행위는 물론 환상이나 분위기, 권력, 심지어 섹스와 종교 등의 심리상태도 중독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경기도 안양시의 김은호(32·가명) 씨는 최근 한 기독교 상담소를 찾았다. 결혼을 앞둔 배우자가 열성적인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래 그녀는 그 단체에 열심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 성사과정에서 부모님이 그녀의 가정환경을 탐탁지 않게 여기자,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여호와의 증인’에 심취해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김 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도를 더해가는 결혼 상대자의 종교중독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직장여성 이은혜(40·가명) 씨. 그녀는 몇 년 전 개인적인 불행을 겪은 뒤, 매일 밤 10시마다 집에서 통성기도로 아픔을 달래는 습관이 생겼다. 4년 전, S교회 유년부 여름캠프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외동딸이 익사한 것이다. 그때부터 이 씨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속죄의 의미로 대성통곡하면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이웃들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지나친 종교적인 행동 때문에 매일 밤 고통을 겪고 있다.
기독교인도 중독될 수 있다
종교중독자는 ‘강박적인 종교 행위에 몰입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 특징으로는 종교 행위에 몰입하지만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곧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없고,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는 방편으로 종교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감정과 행위가 분리되어 있고, 종교적 지침에 열심인 듯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그것을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가족관계연구소 정동섭 소장(57)은 “종교인들 중에서 열광적인 샤머니즘적 분위기에 탐닉하는 경우 신도들은 중독된 종교생활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영생교나 아가동산 등 사회 문제가 된 종교들 대부분이 열렬한 기도의식과 율법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데, 신도들은 그런 의식이나 율법이 신앙의 전부인 줄 알고 빠져들게 된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그럴 경우, 가정을 소홀히 하게 되거나 재산의 전부를 갖다 바치는 등 비정상적인 종교 행위로 가정파탄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인도 충분히 종교중독에 걸릴 수 있다. 지난 1999년 8월 20일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잘못된 믿음’편에 등장한 신애 이야기는 종교중독의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소아암으로 배가 임산부만큼이나 부풀어 오른 딸(김신애·당시 9세)의 병에 대해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라며 치료를 거부하는 부모의 고집과 그 대안을 짚어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4년째 앓고 있는 신애는 아프리카 기아 난민처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참혹한 표정으로 “병원에 가고 싶다”며 집에서 울부짖었다. 보다 못한 연출진은 한 달여간 부모를 설득, 아이를 입원시켰다. 그러나 부모는 여전히 신앙을 이유로 완치 가능성이 높은 수술을 완강히 거부했었다. 연출진은 국회보사위 의원 공무원 등과 대책을 논의했으나 현행법상 어쩔 수 없다며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은 끝났다.
헌신과 중독을 구별해야
기독교 상담전문가들은 종교중독을 이해하려면 ‘주물’의 개념을 올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주물이란 그 자체로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 대상이나 관습 혹은 비합리적으로 헌신을 바치는 대상을 일컫는다.
루터신학교에서 가족학을 전공한 김현진 목사는 “종교중독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신앙생활을 엉망으로 만들고 만다”면서 놀랍게도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예배, 성경, 십자가, 기도, 교제, 십일조, 봉사 등도 중독의 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었는가보다는 예배에 참석했다는 것이 안도감을 준다면 그것이 주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앙생활의 초점을 주물의 대상에 두지 않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서 오는 충만함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김 목사의 주장이다.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감당해야 될 일을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기쁨으로 감당하되, 항상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여 모르는 사이에 종교적 주물이 신앙을 왜곡하지 못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중독은 건강한 삶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다는 면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양산한다. C 신대원에 재학 중인 L(38) 전도사는 최근 가정 파탄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의 아내는 어린 남매가 있는 가정을 팽개쳐 놓고 2년째 기도원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일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L 전도사는 아내의 헛된 열심 때문에 가정이 풍비박산 났음을 안타까워하며, 기도원에 가서 아내가 가정으로 돌아오기만을 설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종교중독은 인간의 내면세계를 서서히 좀먹고, 종국에는 그를 둘러싼 사회와의 관계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L 전도사의 가정처럼 종교적인 열심의 도가 지나쳐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가정생활을 불안하게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존경이 아닌 치료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중독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한세대 고병인 교수가 출간한 <중독자 가정의 가족치료>에 따르면,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성인아이들이 자신의 정체감을 찾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존하거나 때로는 종교중독 현상까지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고 전제한다. 이에 따라 “종교중독을 해독하는 길은 가족 서로가 배려해주는 정상적인 가정 분위기와 쉼과 여유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기술돼 있다.
예수전도단 중독자 상담학교 설립자 다빈 스미스(Darvin W. Smith) 박사는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드리는 많은 시간과 물질들이 자기도취와 종교 중독에 의해 드려진 것일 수도 있다”고 전제하면서 “내가 많은 것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더 많은 것을 주실 것이다. 헌신적으로 생활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문제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것”이라는 식의 믿음은 신앙의 옷을 입은 불신앙이요, 종교중독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교회 일에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내면의 헌신이 없다면 그 헌신은 중독으로 변할 수 있음을 직시하고, 헌신과 중독을 잘 분별하는 지혜가 오늘을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내자신부터 돌아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