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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Je9ciRuNoYU
Colosseum(콜로세움)
외부
내부
콜로세움 복원도
자연과 예술의 결합,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옛날 귀여운 소녀가 목마른 병사에게 샘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어서 ‘처녀의 샘’이라 불리는 Trevi의 힘찬 물줄기와 맑은 물. 모인 사람들이 자리를 뜰 줄 모르는 이상한 마력 같은 것이 있다. 그 분수를 등지고 동전을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를 찾게 된다는 전설에 따라 많은 동전이 물 속에 잠겨있다. 저 맑은 물은 BC19년 전에 아그립파가 로마의 교외에서 끌어들인 것으로 수도관의 길이가 20km에 이른단다.
여행사 시절에 찾은 트레비 분수,
근접 촬영과 햇빛으로 대리석 흰색이 잘 보이는 영상
오늘날 로마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가 있으니 다름 아닌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이다. 모든 여행 일정을 마친 관광객들은 마지막으로 이 분수로 달려가 동전을 손에 쥐고 분수를 등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영원의 도시를 방문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동전을 분수에 던진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의 가호이자 작별
인사가 되었으며, 세계 곳곳에 복제되어 로마를 느끼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광장에 엇비슷한 것이 하나 있다.
후기 바로크에 이르러 로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수 하나를 더 갖게 되었다. 이 분수는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의 설계와 감독으로 완성되었다. 분수가 만들어진 곳은 로마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트레비(Trevi) 광장이다. 트레비 광장 주변에는 바로크의 가장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산 빈첸초 에드 아나스타지오(San Vincenzo ed Anastasio) 교회가 있고, 그 뒤로 교황의 정궁으로 사용되었던 팔라초 퀴리날레(Palazzo Quirinale)가 버티고
서 있다. 세 개의 길(라틴어로 tre viae, 로마제국 시절 세 개의 상수도가 모이는 곳이었다는 가이드 해설)이 만나는
광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트레비 광장에 가장 아름다운 분수가 들어선 것이다.
마스키(O Maschi), 트레비 분수 설립 전 광장 풍경, 펜 소묘, 1665년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 트레비 분수를 위한 디자인, 펜 소묘, 1670년경 추정, 바티칸 도서관
1732년까지 그 자리엔 물이 나오는 반원형의 작은 담으로 이루어진 초라한 우물과 수저가 있었다. 원래 교황
우르바누스 8세가 베르니니에게 분수를 만들도록 했었지만, 그것은 베르니니의 기초 스케치에서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 베르니니는 로마 특유의 궁전 형식을 취하고 있는 건축 정면을 배경으로 하고, 건물의 중앙부를 안쪽으로
완만하게 들어가게 한 다음 그 남은 자리에 자연적인 형상을 조각한 분수를 만들려고 계획했다. 또한 자연을 그대로 모방한 암산에는 해신(海神)을 비롯해 신화적 형상들을 채우려고 하였다. 베르니니의 스케치는 니콜라 살비의
분수가 만들어지기 이미 60년 전에 그려졌는데, 오늘날의 분수와 매우 흡사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장엄하고 규모가 큰 듯하다. 아마도 살비는 베르니니가 만든 스케치를 기본으로 자신의 시대와 취미에 맞게 수정했던 것 같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의 다른 분수들과 마찬가지로 1570년 교황 피우스 5세가 개축한 성(聖) 처녀의 수로를 원천으로 하였다. 즉 트레비 분수 역시 교황들이 도시를 위해 복원하고 개축했던 로마시대의 수로를 기념하고, 교황들의
위상을 선전하기 위한 조형물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트레비 분수에 사용된 건축과 조각들의 모습에서 잘 읽혀진다.
니콜라 살비, 트레비 분수, 1732~1762년
언급했던 것처럼 이 분수는 건축 배경을 뒤로하고 그 앞에 조각상들이 서 있는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건축과 조각의 조화로운 결합은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두 가지 유형의 분수를 절충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건축 배경은 로마의 궁전을 연상하게 한다. 말 그대로 이것은 순수하게 배경일 뿐이다. 이 건축 배경은 실제가 아니라 영화
스튜디오의 세트처럼 앞면만을 가지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단지 로마식 궁전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건물의 중앙부는 다른 부분에 비해 도드라져 보인다. 이 돌출 부분은 궁전의 형상이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 볼 수
있었던, 그리고 로마의 유적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개선문의 형상을 띠고 있다. 개선문은 아치(홍예)를
가진 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벽이 있고, 윗부분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 아티카가 있다. 아티카 위에는 교황의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이 천사들의 형상과 함께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것은 고대 로마 황제들에게 어울릴 법한 기념비적 형태로 권력을 미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문을 통해 개선하는 형상은 교황도, 황제도 아닌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Oceanos)이다. 오케아노스는
흡사 로마 황제가 말들이 끄는 전차를 타고 개선하듯 두 마리의 해마(海馬)가 끄는 조개를 타고 있으며, 바다의
광풍을 몸에 안은 듯 수염과 옷자락이 휘날리는 극적인 상황에서 여유로운 자세를 하고 있다. 그 앞에는 날뛰는
해마의 재갈을 잡고 있는 두 명의 트리톤(Triton)이 있다. 이는 물이 해신의 형상을 띠고 도시 한가운데로 개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도시의 목줄에 시원한 생명을 불어넣는 순간을 개선 장면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트레비 분수, 해신 조각
트레비 분수는 단순히 신화적인 형상에 그치지 않는다. 비교적 넓게 자리 잡은 수조 위로 솟아오른 암산은 건축
배경과 대비를 이루며 물과 함께 도시로 개선하는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해신의 발밑에서 뿜어져 나온 물은
자연이 빚어 놓은 것 같은 계단식 암산을 타고 흘러내려 와 수저를 넉넉하게 채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과 자연이 서로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분수는 우리에게 그것을 일깨우는 거의 유일한 예술이다. 물을 이용한 예술이며, 그 의미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조형물인 것이다.
나아가 트레비 분수는 자연과 인간의 운명적인 관계를 묘한 방식으로 알려 준다. 분수의 오른쪽 구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축 배경의 기둥 밑부분이 암산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냥 연결된 것이 아니라, 기둥이 서서히 붕괴되면서 자연스럽게 암산이 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듯 트레비 분수는 자연과 인간의 예술이 결합된 형상을 띠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 앞에 드러난 인간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인간의 예술은
자연의 법칙, 즉 시간과 운명 앞에 나약할 수밖에 없다. 찬란하고 위대한 예술, 수백 년에 걸쳐 후세들을 감동시키는 예술이라도 자연 앞에서는 그저 작고 약한 존재일 뿐이다. 오른쪽 기둥에서 보았던 것처럼 예술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언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트레비 분수는 그런 자연 앞에서 인간이 자만심을 여미고
경건해지길 경고하고 있는 듯하다.
트레비 분수, 오른쪽 구석 부분
모든 예술 가운데 분수는 자연의 일부인 물을 중요한 소재와 원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물이 없으면
그 자체로 무용지물이 되는 까닭이다. 또한 분수는 자연의 힘과 의지 그리고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을 형상화하는
매우 철학적인 예술품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예술이론이 견지했던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이라는 생각의 틀을 뛰어넘는다. 분수는 곧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인간 사회를 연결하는 소통로의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놓은 도시 속에 자연을 불러들여 인간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동시에 쉼터로서 기능한다. 자연과 합일되는 예술
그리고 자연에 순응하는 예술로서, 분수는 매우 의미 있는 예술이다.
고대 로마의 사학자 프리니오는 세계의 경이로운 것 중의 하나로 "물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는 로마제국의 상수도를 꼽았다.
한때 로마의 인구가 약 150만을 육박했던 시절에 건설되었던 14개의 고가수로를 통해 물을 풍부하게 공급받았던
로마는 이로 인해 아름답고 기념비적인 분수들을 많이 갖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교황들은 고대 로마제국의 상수도 시설들을 수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수로를 개발하여 물의 공급을 원활하게 하였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많은 분수들을 만들었는데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것이 트레비분수다.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분수 설계를 공모하였는데 이 때 니콜라 살비가 당선되어 트레비 분수를 만들게 되었다.
트레비 분수는 1732년에 착공하여 1762년에 완성되었으며, 로마시대에서 볼 수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분수에는 트리톤 신들과 두 해마가 끌어 올린 커다란 조개 위에서 넵툰 신이 위엄 있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대리석 조각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모두 브라치의 작품이다.
트레비 분수에 공급되는 물은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목마른 로마 병정들에게 한 처녀가 샘을 알려 주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샘을 수원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설이 있어서 로마를 다시 방문하기를 기원하는 많은 관광객들이 분수에 동전들을 집어넣고 있다.
'오른손으로 동전을 쥐고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지면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한다.
등 뒤로 동전을 던져 한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을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는 전설이 있는 분수로 이곳의 동전은 정기적으로 수거하여 자선사업에 쓰인다.
오드리헵번이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젤라또(아이스크림)를 먹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란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꼭먹어야 기념(?)이 된다나.
너무 덥고 찌는 날씨라 기념은 둘째치고 아이스크림이 잘 어울리는 장소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배경으로 유명하던 스페인 광장
로마의 휴일 영화 장면이랍니다.
저 멀리 정면에 보이는 곳이 스페인 광장이예요.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인 젤라토를 맛있게 먹길래
저도 똑같이 젤라토를 사먹고 싶었지만 이제는 스페인 광장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것이 금지라네요.
왜왜왜? 저희는 이렇게 젤라토를 사먹으면 안 되는 건가요. 흑흑
스페인 광장의 계단에서 그레고리 팩과 오드리 헵번이 우연히 만나고
바로 앞에 유명 쇼핑가인 콘도티 거리가 있고
코르소 거리 주변으로는 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어 많은 이들이 이 광장을 꼭 거쳐 간다고 해요.
역사와 종교가 살아 숨쉬는 도시, 로마 -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콜로세움, 스페인 광장과 함께 로마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일 것이다. 트레비 분수는 교황 클레멘스 13세가 모집한 분수 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된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의 작품으로 1732년에 착공하여 1762년에 완공되었다. 단순한 분수 이상의 석조 건물로서 바로크 양식 특유의 굴곡과 곡선의 움직임이 살아 있어 로마의 분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힌다. 트레비 분수를 뒤로하고 동전을 한 번 던져서 분수 안으로 들어가면 로마로 다시 올 수 있다는 의미이며, 두 번째는 원하는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고, 세 번째는 그 사람과 이혼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속설이 생겼는지 분명치는 않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거리로 인해 트레비 분수가 더욱 세인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분수가 큰 광장이나 정원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트레비 분수는 잘 눈에 띄지 않는 골목 안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로마의 길은 도로명 확인이 쉽지 않은 데다가 큰 길가가 아니라 좁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트레비 분수를 찾아가는 길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때 '아, 이곳이 바로 트레비 분수구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트레비 분수를 처음 봤을 때 그 의외의 모습에 놀랐는데 사전 정보가 부족했던 탓도 있었지만 하나의 건물과 같은
형태의 분수가 내게는 참 생소했기 때문이었다. 분수 앞에는 뒤로 돌아 동전을 던지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동전을 분수 안에 넣겠다는 의지는 별로 없어 보였다. 실제로 대부분의 동전들은
분수가 아닌 그 앞에 고여 있는 물속에 떨어져 있었는데 매일 약 3,000유로 정도의 동전이 수거된다고 하니 실로
엄청난 양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로마에 갔을 때는 트레비 분수가 수리 중으로 광장 둘레에 철망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고,
거리가 멀어 조각품을 잘 볼 수도 없고 분수도 물이 나오지 않아 실망이 컸다.
분수에 동전 던지는 사람도 물론 없었다. 대리석 조각품도 희지 않고 회색이었다.
그래도 오전에 가 보고 오후에도 또다시 갔다.
애천 영화를 보았다.
'분수를 뒤로 하여 오른손으로 동전을 쥐고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지면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한다.
한 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고, 두 번 던지면 애인과 결혼하고, 세 번 던지면 이혼하게 된다는 말을 들었다.
파리에 무랑루즈도 내가 방문 했을 때는 수리중이어서 캉캉춤을 볼 수 없었다. 더 크고 화려한 리도는 영업 중인데
들어 갈 마음이 없었다. 유서가 깊고 풍차가 있는 무랑루즈에 들어가고 싶었다.
트레비 분수에서 멀지 않은 곳에 로마의 또 다른 명소인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이 있다. 로마에서
유명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냐마는 영화 '로마의 휴일'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곳이 바로 이곳이다.
영화 속에서 오드리 헵번이 난간에 걸터 앉아 젤라또(아이스크림, 한국에는 본젤라또)를 먹고 거닐던 장면이 눈에 선한 곳으로 스페인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17세기때 바티칸 주재 스페인 대사관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페인 광장에 도착했을 때 그 명성에 걸맞게 광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래의 사진에서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곳을 응시하며 사진 찍기에 바빴는데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 바로 영화 속에 나왔던 그 계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그 계단 제일 위 교회까지 올라 갔다.
오드리 헵번이 거닐던 계단의 모습.
봄 햇살을 한껏 머금은 모습이 흐드러지게 핀 철쭉과 아울러 너무나 따스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금방이라도 오드리 헵번이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며 계단을 내려올 것처럼...
계단을 오르면서 내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짜릿함을 맛볼 수 있었다.
계단의 끝에 위치한 트리니타 데이 몬티 교회.
교회 앞에서 내려다본 모습.
앞으로 길게 이어지는 거리가 바로 로마 최대의 쇼핑 거리인 콘도티 거리(Via Condotti)로
이곳에서 이탈리아의 유명한 명품 상점들을 모두 만나 볼 수 있다.
계단 바로 앞에 자리잡고 있는 조각배 분수(Fontana della Barcaccia).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인 베르니니가 만든 것이 아닌 그의 아버지가 만든 분수로 수압이 낮아서 분수라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졸졸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넓지 않은 스페인 광장은 계속 많은 사람들로 넘쳐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곳에 머무는 동안 불편함이나
짜증 같은 것 대신에 푸근함과 행복감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너무나 따스하고 아름다운 이곳의
풍광 때문이었으리라...
스페인 광장을 떠난 나의 발걸음은 로마 시내의 끝자락에 위치한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으로 이어졌다. 포폴로 광장은 핀초 언덕과 테베레 강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1820년에 주세페 발라디에르에 의해 완성된 곳이다. 포폴로 광장은 로마 시내의 여러 광장 중에서도 그 규모가 가장 큰데 크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더욱 넓어 보인다. 핀초 언덕 뒷편으로는 보르게세 공원도 조성되어 있다.
포폴로 광장의 모습.
광장의 중앙에는 높이 24미터의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 있는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온
기원전 13세기의 유물이라고 한다.
핀초(Pincio) 언덕의 모습.
핀치(Pinci) 가문이 4세기경에 처음 만들었고 1814년에 건축가 발라디에르가 언덕과 정원을 다시 조성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바라본 포폴로 광장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며 뒷편으로는 보르게세 공원과도 연결되어 있다.
포폴로 광장의 남쪽에 면해 있는 쌍둥이 교회의 모습.
17세기에 건축되었으며 마틴 루터가 첫 마사를 올렸고
갈릴레오(이름) 갈릴레이(성)가 구금을 당하기도 했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현재는 프랑스 대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란 이름은 갈릴레오 보냐우티(Galileo Bonaiuti, 1370~1450)라는 15세기의 갈릴레오의
조상의 이름에서부터 나왔다. 저명한 내과의사이자 행정장관이었던 그는, 사회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던 까닭에
가문에서 그의 명예를 기리기 위해 자신들의 성을 '갈릴레이'로 바꾸기로 결정하게 된다. 당시 갈릴레이가 태어난
피사의 투스카니 지역에서는 맏아들(장자)의 이름을 붙일 때 자신의 성을 변형시켜 붙이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맏아들이었던 갈릴레오는 부모의 성씨인 빈센치오 갈릴레이(Vincenzo Galilei)의 Galilei를 남자이름 형태인 -o로 변형해 이름으로 받들어 갈릴레오 갈릴레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는 약간 아이러니로,
한때 유명했던 갈릴레오 보냐우티가 이제는 이름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조상으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포폴로 광장의 북쪽에 있는 포폴로 문(Porta del Popolo).
3세기경 고대 로마의 북쪽 입구인 플라미니오 성문 입구에 세워졌으며 17세기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의
로마 방문을 기념하여 건축가 베르니니가 장식했다고 한다.
포폴로 문 옆에 위치한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Santa Maria del Popolo).
네로 황제의 유모와 애인이 몰래 황제의 시체를 묻었던 곳에 지어진 성당으로 로마에서 예술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포폴로 문 한쪽에 자리잡고 앉아 구걸 중인 사람의 모습.
나란히 다리를 뻗고 잠이 든 두 마리의 강아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잡는 데는
최고의 아이디어다 싶었다.
핀초 언덕에서 바라본 포폴로 광장의 모습.
과연 핀초 언덕에서 바라본 포폴로 광장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핀초 언덕에서 이어지는 보르게세 공원(Villa Borghese)의 모습.
원래는 17세기 때 추기경인 시피오네 보르게세의 저택으로 만들어 졌던 것이라고 한다. 걸어서는 다 둘러보기 힘들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데 이 공원 안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르게세 미술관(Museo e Galleria Borghese)이 위치하고 있다.
트레비 분수에서부터 보르게세 공원까지는 지하철 역으로 두 정거장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였다.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도 걸어서 둘러볼 수 있었다. 비록 짧은 거리였지만 참으로 볼거리 많은 로마의 일면을 충분히 느껴 볼 수
있었다.
밤에 다시 찾은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은 화려했던 낮과는 다르게 차분한 모습이었다. 요란하지 않고 은은하게 밝힌 조명 아래 그 모습을 수줍은 듯 드러내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의 발길만은 변함 없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찾는 스페인 광장에서는 젊음의 활기와 낭만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옮겨온 글 편집
첫댓글 로마투어로 인해 [로마의 휴일]을 볼거리가 없을 때면 관람하게 되는데
이 글 쓴 이가 자세하게 올려 주어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여행기를 올리는 건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작업인데 글쓴이에게 감사하게 되네요.^^
관광을 하려면 유럽을 가고 유럽 관광은 로마를 가봐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대한항공의 경우 과거에는 파리, 런던, 츄리히, 암스텔담만 직항 편이 있어서
로마, 그리스, 베를린은 방문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회사 업무로 출장 갈 때, 파리에서 로마로 가서 2박3일로 콜로세움,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로마노 광장, 바티칸에 가 보았는데
트레비 분수는 보수 중이라 물도 흐르지 않고 광장 둘레에 철망을 쳐 놓아 대리석 조각품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서 실망이 컸습니다.
로마의 휴일, 애천 영화로 관광을 대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