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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모토는 당황하며 눈을 돌리고는 창백해진 시선을 책상으로 향했다. 어두침침한 실내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들켰다. 다쓰로는 심한 낭패감을 느꼈다. 이 무슨 일이람. 그가 보다니. 누구도 모르게 하고 싶었던 비밀의 영역이 드러났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지금의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구라모토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장인의 가발을 벗겼을 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떨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었다. 심신미약이란 필시 이런 경우를 말하겠지.
다쓰로는 분명 광기를 느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장인의 가발을 벗길지 모른다. 그건 내일일지도.
온몸이 땀에 젖었다. 장난칠 때의 쾌감은 없었다. 이라부가 말한 보상행동 따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그래? 안색이 나빠 보여” 이라부는 여전히 태평했다.
“내가 그랬잖아. 충동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네가 말한 보상행동이 정말 억제효과가 있는 거야?
다쓰로는 일을 끝내자마자 이라부의 진찰실로 달려갔다. 혼자 있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있지” 이라부가 코를 파며 말했다. “당연히 있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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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다쓰로는 머리를 들이대며 호소했다. “무책임한 소리 관둬. 이대로 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아.”
“살인이라도?”
“멍청아. 비약하지 마. 거기까진 아냐” 언성이 높아진다.
“그럼 뭐야”
“…” 다쓰로는 말문이 막혔다. 노무라의 가발 건은 꺼내고 싶지 않다. “어쨌든 대학을 떠나야 할지도 몰라.”
“말을 안 하면 치료 못하지” 이라부가 훤히 들여다보듯 말했다. “숨기는 환자를 치료할 방법은 없어. 정신과는 이인삼각 경기나 마찬가지야.
잠자코 듣기만 했다. 하긴 혼자서 낑낑대봐야 나을 리가 없겠지. 하지만 싫어.
“그래, 좀 더 느긋하게” 이라부가 싱긋 웃었다. “우선 오늘밤에 오지(王子)세무서에 가보자.”
“정말? 싫다 싫어” 다쓰로는 난색을 표했다.
“해보자. 도중에 관두는 게 제일 바보짓이야.”
“부탁이야. 그만 해.”
“가만히 있으면 나을 리가 없지. 정신과의 기본은 시도와 실패의 연속이지.”
“그렇긴 하지만……” 또 이끌려간다.
다쓰로는 자신이 한심했다. 연구자로서 성과는 내고 있지만 자신의 문제는 해결책이 없다. 물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 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