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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 해외동포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 가
목 차
1. 해외 동포 현황
2. 이민 역사
3. 생활 실태 - 6대권
4. 전환기
5. 한반도와 해외동포
1. 해외 동포 현황
2006년도 한국 외무부가 집계한 바에 의하면 170개 국에 700만의 해외 동포가 거주하고 잇다. 이들은 은
중국에 243만명
미국에 208만명
일본에 90만명
CIS에 53만명
캐나다에 19만명
남미에 10만명
유럽에 10만명 등이라 한다.
2. 이민의 역사
해외 동포를 이해하는데 하나의 기준이 되는 것이 이민의 역사이다. 해외 한인 이민사를 크게 6기로 나눌 수 있다.
1기 - 1860년에서- 1919년까지 – 주로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북간도로 이주한
농업이민과 망명이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2기 - 1919년에서- 1945년까지 – 일본으로 이주한 노동이민
1937년 중일전쟁 이후 강재이주.
3기 - 1945년에서- 1965년까지 – 주로 미국 향한 이주이며
국제 결혼여성, 입양인, 유학생이 이주.
4기 - 1965년에서- 현재까지 - 새 이민법에 의한 미국 이주가 이루어지고,
남미의 농업이민이 이루어지고
서독 광산 근로자와 간호원 계약노동으로 이주.
5기 - 1975년부터 – 5-6년간 – 월남전이 끝나고 월남이 있던 한인들이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 호주, 뉴질랜드까지 이주하였다. 이들을 사
업이민이라 한다.
6기 – 1997년부터 – 현재까지 – IMF 이후 해외로 이주한 교민들은 무 방향, 무 분별,
무 작정한 것이 특성이고., 낙하산이민, 기러기이민,
정년이민 등으로 알려젔다.
3. 생활 실태 - 6대권
170개 국에 거주하는 동포를 크게 6개 영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러시아 권 - 러시아 권이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포함한 CIS내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들을 말한다. 이곳은 다시 우즈베키스탄에 20만 카자흐스탄에 10만 그리고 러시아내에 13만 명으로 나눌 수 있다. 한인 동포들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거주하게 된 것은 1937년 스탈린의 강재이주에 의한 것이다. 원래 한인들이 연해주 지역에 살고 있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스탈린은 일본과의 일전을 각오하고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 16만 명을 강재로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로 분산 거주하게 한다. 1937년의 이 강재이주는 한인의 이민사에서 가장 비참한 비극의 하나이다.
중앙아시아로 이주 당한 한인들은 집단농장에 배정되어 농사에 주력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불법이지만 자녀를 도시로 보내 공부 시쳤으며 이들이 도시로 진출하여 러시아의 여러 도시에 거주하게 된다.
러시아 동포 중에 가장 비참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이 사할린에 거주하는 동포들이다. 이들은 1942년 내지 1943년 전쟁이 끝나기 불과 몇 년 전에 일본에 의하여 강재로 징용되어 간 사람들이다. 전쟁이 끝난 후 일본인들만 사할린에서 빠져 나오고 그곳 한인들은 그대로 남게 된다. 그 후 한국은 일본에 미루고, 일본은 한국에 미루고, 소련은 한국과 국교가 없다고 미루고 결국 40여년이란 긴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1990년 이후 러시아와 한국의 국교가 맺어지고 사할린 사람들이 한국을 올 수 있게 되었으나 떨어진 세월이 하도 길어 한국으로 영주 귀국한 노인 동포들은 또다시 사할린에 자녀를 두고 오는 이산 가족의 신세가 되어 있다.
2. 중국 권 – 위 통계에서 본 것과 같이 중국에 한인 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수는 최근 한국에서 기업하기 위하여 입국한 한인을 합한 것이고 원래 중곡 조선족이라고 하는 중국 동포는 190만이 불고하다. 중국 동포는 원래 함경도나 평안도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이 아니라 과거 너무나 다른 길을 걸어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중국에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이 싸우는 시기를 해방전쟁이라 하고 이것이 1949년 모택동이 북경에 입성함으로써 끝이 난다. 말하자면 4년간 중국은 내전에 휩싸였었고 그곳의 한인들은 모택동을 도와 많은 희생을 치르고 그의 대가로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얻는다.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바로 시작하는 것이 반 우파운동이다. 반 우파운동이 끝날 무렵 다시 대 약진운동 이라 하여 인민공사를 실시하고 모든 사람을 가족에서 불리하여 인민공사에 소속시키고 몹시 괴롭히는 시기가 있었다. 이것이 끝날 무렵 이번에는 대 문화혁명 이라 하여 사회를 완전히 뒤집는 대 혁명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숙청을 당하고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덕해 주장이 숙청을 당하는 수난을 겪는다.
등소평의 등장으로 중국이 개혁 개방을 표방하고 있으나 이것은 재중동포들에게 마치 1960년대 한국에서 중국화교가 겪는 것과 같은 사항에 처하게 되어 중국 조선족은 또다시 새로운 조건에서 생존하여야 하는 시련기에 있는 것이 된다.
3. 일본 권 – 지구상에 2차 대전 이후 해방이 되지 않은 민족이 있다면 그것이 일본의 한인 동포일 것이다. 재일 동포들이 아직도 한국 명함과 일본 명함을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인임을 될 수 있으면 감추고 일본인 행세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일본의 현상이다. 재일동포는 아직도 교육에서 차별 받고, 졸업 후 취업에서 차별 받고, 결혼 시 다시 한번 일본인들에게서 차별을 받는 것이니 재일동포 일생은 차별과 좌절의 연속이라 하겠다.
이것이 변하는 계기가 1970년에 발생한 히다지 사건이다. 히다지 공장에 합격 통보를 받은 박종석군이 한인이라는 것으로 입사를 거절 당하자 일본 동기생을 위시하여 한인들이 단합하여 박종석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어 재판을 걸고 항의하였으며 3년을 끌면서 한국이 협조하고 미국이 협조하여 결국 일본이 지고 만 사건이다. 이후 한인들은 민단 등 단체가 앞장서 행정적 차별 철폐운동을 전개하여 공공주택 입주 권, 아동복지 수당, 연금 등의 이권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한인들이 요구하는 지방참정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4. 유럽 권 – 유럽은 원칙적으로 이민을 받는 나라들이 아니다. 오히려 이민을 보내는 나라였고 민족의식이 기초가 되어 있는 나라들이다. 현재 유럽에 10만 명의 한인이 거주한다 이들 동포의 가장 많은 수가 독일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것은 독일로 계약 노동으로 온 광산 근로자와 간호원이 계약이 끝난 이후 귀국하지 아니하고 독일에 남아 영주권을 받아 이곳의 이민이 된 것이다. 독일의 경우 게스트 아르바이터라 하여 터키 계 사람이 전체 인구의 10%가 넘으며 한인들은 소수민족의 소수민족으로 존재하여 독일에 정착한 한인들이 미국과 같이 형제자매를 초청하지 못한다.
현재 유럽에 이주하는 사람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 상사 주재원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수년 그곳에서 생활하면서 자녀들이 한국에 와야 대학을 들어갈 가능성이 없어 개척하여 놓은 상거래나 친구를 배경으로 연주권 신청을 하고 정주하게 되는 사람들이다.
이민자를 받지 않는 나라들이기 때문에 유럽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그 곳에서 출생하여 한국말이 서툴러도 한국의 여권을 버리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한국과 서류상으로 아무 관련이 없는 입양인들 도 한국적인 것을 찾으려 노력한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실시하는 나라가 많아 미국과 같은 큰 부자가 없고 생활보장이 확실하여 생활에 아무 불편이 없다. 말하자면 생활보장이 잘되어 잇고 여유 있는 사람을 세금으로 모두 국가에 헌납하여 부자가 없다.
그러나 스페인에 거주하는 한인으로 최영호 라는 갑부가 있다. 이분은 스페인 영 서아프리카의 Las Palmas라는 원양어업기지에서 큰 사업을 일으켜 큰 부자가 된 사람이다.
5. 남미 권 – 남미 여러 나라에 약 10만 명이 거주하는 것은 멕시코 이남의 인구를 말하며 중남미 중 한인이 가장 많은 곳이 브라질이다. 이곳에 약 4만 명이 거주하고 아르헨티나에 약 2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멕시코 역시 한 2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 또한 한인이 없는 곳이 없다.
남미는 특이하게 농업이민으로 시작하였으나 현재 농사를 짓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 도시에서 의류상에 종사하고 있다. 남미로 이주한 사람들이 평생 입을 많은 옷을 가져가 이민 초기에 살수 없어 이것을 팔기 시작한 것이 결국 의류상이 된 것이다. 초기에는 재봉을 하고 집에서 옷을 만들어 팔기도 하였으나 한인들이 워낙 부지런하여 소매에서 도매상으로 발전하고 도매에서 제조까지 장악을 하였고 상 파울로 유태인들이 의류상가를 이루고 잇던 곳을 한인들이 완전히 점령하였고 아랍인들이 상가를 이루고 잇던 곳은 한인들이 완전히 장악하여 현재는 한인 거리가 되어 있다. 이곳 한인들의 의류상은 LA의 자바 시장과 깊은 연관이 있다.
6. 북미 권 – 캐나다를 미국 권에 편입시킨다면 북미 대륙에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것이 된다. 미국을 평하자면 미국에는 동포도 많고 국제 경혼한 한인 여성도 많고, 입양인도 많은 곳으로 각각 20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에는 한인들이 ethnic business라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이 있다. 이것은 그로서리, 라운드리, 그리고 뷰티서풀라이 이다. 전 미국에 뷰티서풀라이가 약 8천 개가 있고 그로서리가 약 2만개 그리고 라운드가 약 3만개 정도로 추정한다. 이것 이외에 지역에 따라 다른 업종이 있다. 뉴욕의 경우 청과상, 수산업 종사자 그리고 내일가계가 유명하다. 내일가계는 전국적으로 있으나 뉴욕 이외의 지역은 월남 여자에게 빼앗기고 뉴욕만 한인들이 점유하고 있다.
이들 한인들의 업소들이 적은 점포인 것 같으나 막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다 특히 뷰티서풀라이는 한인이 미국 경제에 공헌한 대표적인 업종이라 하겠다. 1960년대 한인들의 이민이 본격화할 때, 미국에 이주한 한인들이 유태인들에게서 가계를 물려 받는다. 그 중의 하나가 흑인 머리용 기름과 샴푸 등이다. 유태인은 이것을 독점하였기에 고가로 판매하였다. 한인들이 이것을 물려 받으면서 박리다매로 싸게 팔았고 때 마침 흑인 인권운동이 고조하여 흑인들도 모양을 내기 시작할 때 였다. 특히 한국에서 가발이 들어오면서 한인들은 가발장사에서 뷰티서플라이 가계를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의 뷰티서풀라이는 한인들이 미국 사회에 이룩한 대표적인 상권의 하나이다.
재미 동포가 공헌한 것의 최대 공헌이 미국 SATII에 한국어가 채택되게 한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한국어를 중국어, 일본어와 더불어 세계가 그래서 미국이 배워야 할 언어로 인정한 것이 된다. SATII에 이어 미국은 Flagship Scholarship 9개 언어에 한국어를 넣었고, Bush Grant 2004에 추천한 6개 언어에 그리고 2008 National Security Language Initiative 에 한국어를 추가하여, 한국어를 명실공히 미국이 존중하는 국제어로 인정한 것이다.
4. 전환기
해외동포들이 어디에 거주하던 한민족으로서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한인은 역경을 성실로서 극복하려는 민족이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그것을 열심히 일하고 참고 인내로서 극복을 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 공통점은 모든 것을 희생하여서라도 자녀의 교육에 최대의 희생을 경주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한인을 아시아의 유태인 또는 제2의 유태인이라는 말을 듣고, 스스로도 Kews 라 한다.
해외 한인 사회의 공통점을 한인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변화 변동 중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지역적인 이동이고 하나는 사회 상승작용이다. 지역적인 변동을 보여주는 곳이 CIS와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다. 특히 눈에 두드려 진 곳이 중국이다. 중국은 1990년대 문호를 개방하고 한국과 수교하자, 중국에 있는 조선족이 한국으로 이주하여 왔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 귀국하여 중국 연안도시나 대도시로 진출하여 나아갔다. 현재는 해외로 이동하는 와중에 있다..
CIS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두 가지 작용을 동시에 행하고 있다. 말하자면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지리적인 수평운동을 하고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사회 상승작용을 한다. 지역적인 수평 이동이란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이 동으로 연해주로 이주하거나 서로 불가그라드로 이주하여 가는 것이다. 지금도 비참한 상태에서 이러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전환기를 기하여 경제력을 가진 부자가 생기고 부를 이용하여 정치권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젊은 계층에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일본 동포도 경제력을 가진 자와 학문적으로 실력 있는 자가 나오기 시작하여 학계에 진출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경제계에서 유명한 사람이 IT계의 손정의이다. 다행이 일본에도 한국 교포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여지고 있어 이에 편승한 것이다. 일본에서 알려진 것은 최근에 이주한 이른바 뉴커머(New Comer) 들이다. 동경 신주구 쇼꾸안 도리는 새로 이주한 힌인들이 한인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또 하나의 공통된 특성이며 전화기를 촉진하는 것이 한류 바람이다. 동남아시아와 중국은 한국의 연화, 한국 노래, 한국 음식 등이 한류를 타고 크게 유행하고 있으며 일본도 한류에서는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앞지르는 느낌이다. 이러한 한류는 한국의 한국학의 유행과 맞물려 쉽게 사라질 것이 아니며 한국의 국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재외 동포 특색인 사회변동이 미국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오히려 사회상승작용은 미국이 더 현저하다. 1.5세 2세들이 사회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뉴욕에서는 KACF와 KALCA가, LA에서는 KAC 그르고 San Jose의 KIN등이 유명하다. 이들은 2세답게 한인 사회에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여 가고 있다. 특히 뉴욕에서는 KACF 이외에 한인봉사센터, 청년학교, 가정상담소, YWCA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두 1.5세 2세들이다.
이러한 해외동포들의 사회적 경행은 흥미롭게도 인류학에서 말하는 “시계축의 원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느 동포보다 이러한 원리가 잘 보이는 곳이 일본이다. 일본 1세는 무조건 조국 지향적이다. 그러나 2세는 1세에 반대하여 일본 지향적이다. 일본에 거주하자니 차별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히다지 사건이다. 그러나 3세는 다시 조국 지향적이 된다. 3세의 조국 지향은 1세의 무조건 조국 사랑이 아니라 열정이 빠진 조국 지향적이다. 그리고 다시 4세가 되면 일본지향으로 가면서 중간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시계축의 원리가 사회적인 조건에 따라 약간 달라질 수 있다. 말하자면 미국과 같이 다민족 국가 다 인종 사회에서는 일본처럼 2세가 1세에 크게 반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이러한 시계축의 원리를 볼 수 있다. 시계축의 원리에 따라 1세와 2세에 차이가 있는 데다 다시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의 차이가 더하여 미국 동포의 1세와 2세는 복잡한 관계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세대교체라는 사회변동의 와중에 있는 것이다. 한국 문화가 다음 세대에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이 미국 동포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오히려 재일 동포 1세들과 같이 미련하고 우직근하여 무작정 자기의 주장을 자녀에게 강조하는 사람들 보다 더 심한 심리적 갈등 세대차이의 문제를 안도 있는 곳이 재미동포들이다.
재미 동포 1세들이 보다 바람직한 모습은 자기 주장이 확실한 것이다. 그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정체성을 보다 강하게 2세에게 전하고 앞으로 미국과 같은 다 인종사회에서 심한 경쟁을 이기려면 민족 정체성이 간한 자 만이 살아남는다는 확고한 신념이 필요하다. 이러한 신념이 필요한 동포는 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한국을 올바로 인식하고 한국을 이용하는 자가 유리하다는 것을 2세에게 알려야 한다.
5. 한반도와 동포사회
동포 사회는 한반도와 직결되어 있다. 근년 통신과 교통이 발달되어서 국경개념이 희박하여 지기도 하고 매일 서울의 TV를 같은 시간대에 볼 수 있고 전화를 할 수 잇는 사항에서 의식적으로 이민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특히 미국과 같이 국가가 다민족 국가이고 사회가 다문화 사회를 이루고 있는 곳에서 이민 왔기 때문에 본국과 단절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과 같은 나라는 경제적으로 세계 10대 강국에 진입하였고 후기산업사회의 기준에서는 세계 3대 강국에 진입하였으며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룩하였다. 한국은 비 유럽 문명권에서 민주화를 성취하고 경제강국이 된 유일한 나라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앞으로 미국과 한국의 FTA가 국회의 비준을 얻으면 한국과 미국은 더욱 가까워 진다. FTA로 한국의 경우 관세의 80%가 감소되어 양국에 큰 이익이 돌아온다고 한다. 따라서 FTA를 “제3의 개국”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것을 계기로 한국은 경제적인 이익을 볼 뿐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가깝다고 하나 일본은 월남의 보드 피플에서 본 것과 같이 성숙된 나라가 아니며 금번 미국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종군위안부에 관한 결의안이 통과된 것과 같이 일본은 성숙된 선진국으로 미국이 신뢰할 만한 나라가 아니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의 FTA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라 한다. 미국과 중국은 FTA를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과 미국의 FTA는 미국이 한국을 신임하는 나라가 되었고 한국은 아시아의 중심국가가 되는 것이다.
재미 동포는 이것을 백분 이용하여야 한다. 오히려 한국과 미국의 FTA는 재미 동포를 위하여 채결하는 것인지 모른다. 한국의 제3의 개국을 맞아 재미 동포들의 역할이 증가한 것이다. 한국은 우선 단일민족의 경험이 너무 오래이기 때문에 타 민족과 더불어 사는 지혜가 없다 이것을 깨우치는 것이 다민족 국가에서 상 거래는 하면서 백인 도매상, 히스패닉 고용인 그리고 흑인 고객을 가져본 재이 동포 중소기업인들이 한국을 깨우치는 역할을 담다 하여야 한다. 한편 재미 동포의 중소기업은 한국과의 거래를 촉진하여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낙후된 영역을 보완하여 동포에도 이익이 되고 한인에게도 이익이 되게 하여야 한다.
재미 동포가 한국을 이용하여 미국사회에서 보다 높은 차원으로 올리려면 한국과의 교역을 통하여 더욱 사업을 확대하여 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것보다 한국의 문화를 미국에 알려 자기의 정신세계, 문화 세계에서 확고한 자리를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은 다 민족 국가이고 다 문화사회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타 문화를 많이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데에 참가하는 것은 문화라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동포 자신이 보다 한국적인 것에 익숙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이 인정한 한국어 보급에 재미 동포가 앞장을 서고 한반도의 한인들이 협력하여 미국에 한국학을 확산하고 한국학을 보급하는데 협력하여 한국을 명실공히 세계 선진국 대열에 서고 그 역할을 다할 수 있게 상호 도와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이 인정한 한국어를 실제 미국 주류사회에 알리는 것은 우리 동포들의 과제이다. 이것을 위하여 동포는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동포들의 사명이며 한인 동포 사회의 미래의 과제라 생각한다.
2008. 2. 8.
Korea Forum International
첫댓글 성동문님, 강연 내용 아주 많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하지 않고 이렇게 내용을 알수 있게 해주어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간단명료 하게 해주시어 더욱 감사합니다
재미동포들의 1세와 2세의 갈등의 해결로 제시한 방법이 이론에만 치중한 것 같아 좀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잘 읽었습니다.
강연의 주제가 1세와 2세 갈등의 해경방안이 아니었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여서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을 것 같군요. 주제 그대로, 이교수께서는 "전 세계에 산재한 한민족의 역사와 현황, 그리고 이들의 지향점"에 관한여 2시간 30분여 길면 길고, 또 짧기도 한 시간에 잔 가지 치고, 굵은 줄기만 말씀하셨고, 성동문께서 또 여과하셔서, 성동문의 시각으로 요약하신 것입니다. 이와 유사한 내용의 강연이나 토론은 많이 있어왔는데, 인류학자의 눈에,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사람의 눈과 귀를 통해서는 어떻게 비춰졌는지, 흥미로왔지요. 다행히 동포재단을 거친 분이라 이론만이
--(계속) 아니라, 실상을 많이 보셔서 현실감이 있는 내용의 강연이어서 아주 좋았습니다.
세계의 수도답게 다양한 행사가 있는 곳에 사시는 분들이 부럽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성정숙선배님.
이렇게 정리하여 올려주시니 내용도 좋지만 성선배님의 실력 또한 돋보입니다. 결코 쉬운일이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성정숙 동문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 합니다.
우리의 현주소파악에 도움되는 강연회를 글로써라도 알게 해주신분께 감사드립니다. 물론 토론을 통해 더많은 좋은 현실 이야기가 있었을 것을 아쉬어 하지만 또다른 기회가 계속 계획되고 있을 것이라 믿어 열심히 기대하겠읍니다.
흥미있는 주제의 강연에 참석하지 못하여 섭섭했는데, 이렇게 내용을 잘 요약 해서 알려주신 성동문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광규 교수님, 이렇게 지면으로 나마 뵙게되여 반갑씁니다. 지난 3월에 학국에 가서 국학수련 (체험기는 "*칼람 / 시사" 란에 실림)을 받고 왔읍니다. 워싱턴주에는 언제 들리시는지요. 강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