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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은 성경적 신앙고백인가? 주문주술인가?
저는 어려서부터 오랫동안 사도신경을 외웠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교회에서 구원을 얻고 거기서는 사도신경을 암송하지 않았으므로 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이 과연 성경적으로 옳은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성경 어디에도 사도들이 신경이나, 신조를 만들어서 외우게 하였다는 구절을 살펴볼 수 없습니다. 이 사도신경은 카톨릭이 형성될 무렵인 니케아 공의회(325AD), 아타나시우스가 아리우스파와 논쟁하던 당시 (3세기 후반)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소위 니케아신조, 아타나시우스 신조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만 그것들은 오늘날 암송되는 신경과는 많이 다르고 오늘날 암송되는 신경과 동일한 형태의 사도신경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주후 710-714년경 로마 카톨릭이 작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주후 390년에 밀라노의 암브로스가 로마 교황에게 쓴 편지에서 처음으로 사도들의 상징 혹은 신경이라는 뜻으로 Symbolum Apstolicum 을 언급했는데 “ 로마교회가 항상 지켜온 사도들의 신조를 그들로 하여금 믿게하라” 고 언급한 것이 가장 오래된 언급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노바티안 등이 사도신경에 들어있는 신념과 비슷한 언급들을 한적은 있습니다. 또한 6세기 경의 신경도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형태는 8세기에 들어서야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의 위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The title, Symbolum Apostolicum (Symbol or Creed of the Apostles), appears for the first time in a letter, probably written by Ambrose, from a Council in Milan to Pope Siricius in about 390: "Let them give credit to the Creed of the Apostles, which the Roman Church has always kept and preserved undefiled".[3][4] But what existed at that time was not what is now known as the Apostles' Creed but a shorter statement of belief that, for instance, did not include the phrase "maker of heaven and earth", a phrase that may have been inserted only in the 7th century.[5]
While the individual statements of belief that are included in the Apostles' Creed – even those not found in the Old Roman Symbol – are found in various writings by Irenaeus, Tertullian, Novatian, Marcellus, Rufinus, Ambrose, Augustine, Nicetus, and Eusebius Gallus,[9] the earliest appearance of what we know as the Apostles' Creed was in the De singulis libris canonicis scarapsus ("Excerpt from Individual Canonical Books") of St. Pirminius (Migne, Patrologia Latina 89, 1029 ff.), written between 710 and 714.[10] Bettenson and Maunder state that it is first from Dicta Abbatis Pirminii de singulis libris canonicis scarapsus (idem quod excarpsus, excerpt), c.750.[11] This longer Creed seems to have arisen in what is now France and Spain. Charlemagne imposed it throughout his dominions, and it was finally accepted in Rome, where the old Roman Creed or similar formulas had survived for centuries.[4] It has been argued nonetheless that it dates from the second half of the 5th century, though no earlier.
[http://en.wikipedia.org/wiki/Apostles%27_Creed
로마 카톨릭, 성공회, 루터파, 장로교, 연합형제단, 연합 감리교등 신경들이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루터파와 연합 형제단은 거룩한 공회 혹은 거룩한 카톨릭 교회 대신 거룩한 기독교회로 기술합니다. 다음은 영미의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 신경인데 오늘날 세계적 장로교회 신경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분별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 1884 신경
The basic creed of Reformed churches, as most familiarly known, is called the Apostles' Creed. It has received this title because of its great antiquity; it dates from very early times in the Church, a half century or so from the last writings of the New Testament.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the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See Calvin]
The third day He arose again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I believe in the Holy Ghos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http://www.westminsterpetersburg.org/theapostlescreed.htm
위의 장로교 사도신경에서도 예수님이 지옥에 내려가셨으며, 거룩한 카톨릭 교회를 믿으며 성인들의 통공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주목할 일입니다.
이제 한 구절 한 구절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처음부터 이 사도신경은 대충대충 교리에서 출발함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모든 만들어진 것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지음을 받지 않고는 생겨나지 않았습니다(요 1:2)
또한 골로새서 1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성서 공회 개역개정)
다시 히브리서 1장2절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개역 개정)
에베소서 3장 9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진 비밀의 경륜이 어떠함을 모든 자들에게 비추도록함은, ( 전수사본 번역)
(네슬알란드 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를 빠뜨렸으나 압도적 절대다수의 사본들은 이 대목을 포함하고 있음)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창조사역에서 성자께서 주도적 역할을 하셨음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신경은 예수께서는 아버지 품속에서 몇 천년동안 잠만 자다가 때가 되어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난 아들로 들리게 합니다. 그분은 구약시대에 무수히 나타나셔서 일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분의 날을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았고 기뻐했으며 (요8:56-8) 모쉐는 그리스도의 수치를 이집트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히 11:26)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니
로 바꾸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입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외아들은 아들 둘이 있다가 하나가 죽으면 남은 아들은 외아들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처음부터 오직 한 분 아들만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안에서 독생하셨는 분, 예수 그리스도를 독생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외아들과 독생자는 분명 다릅니다.
그분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에 의해 태어났습니다.(마태 1:20) 여기에 쓰인 게나오 동사는 태어나다는 뜻입니다. 마태 1장20절의 정확한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비드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암 맞이하기를 두려워 말라. 그녀안에 있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태어나져서 계시느니라.
예수님은 마리아의 난자와 하나님의 정자가 결합하여 태어나진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 이전에도 계셨으며 그를 만난 것을 기억하십니다! 정자는 기억력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자는 뇌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완벽한 인간으로, 완벽한 인격체로 성령에 의해서 태어나져 마리아안에 심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대리모에 불과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정확히 한다면 성령에 의해 태어나사 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저는 마리아가 평생동정녀였다는 주장을 안믿습니다. 마리아는 적어도 5남2녀 이상을 낳았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예수님이었습니다. 나머지 자녀들은, 야고보, 요세, 시몬, 유다였으며 딸들도 복수인 것으로 보아 둘 이상이었습니다.(마 13:55) 카톨릭은 이들이 마리아의 다른 자매들에게서 나왔다는 둥, 요셉이 마리아와 재혼했다는 둥, 마리아가 평생을 처녀로 살았다는 것을 주장하는데 필사적입니다! 마리아의 평생동정은 마리아종교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하여 동정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동정녀는 처녀와 다릅니다. 처녀는 결혼이전에 처녀인 것이고 동정녀는 평생동안 처녀로 살기로 서약하고 그렇게 산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대목은
처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라고 바꾸어야 합니다. 영문의 경우 그냥 버진 마리아라고 되어 있지만, 그것도 평생동안 처녀였음을 주장하는데 쓰이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처녀일 때 그녀에게서 나오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애쓴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으로 오셨으며 그 어린양은 대제사장에 의해 잡혀서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분은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에 의해 고난을 받았습니다. 이 구절은 성경의 기본 진리를 모르고 쓴 구절이며 실제 빌라도의 역할에 대해서도 잘못 인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요즈음에는 빌라도 아래에서 고난을 받으사로 바뀌기도 한것으로 압니다만 빌라도 아래가 되었든 위에가 되었든 빌라도가 대제사장 대신 왜 나옵니까?
굳이 써야 한다면, 대제사장과 장로들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이 대목의 중대한 하자를 읽어보십니까? 소위 신경이라 함은 교리의 중요부분을 요약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도신경 전체를 통해보아도,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며 그분의 죽으심으로 무엇이 이루어 졌는가를 안 가르쳐 줍니다! 일종의 눈가림 작전이며, 수십억의 사람들을 눈멀게 하는 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피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이 사실과 진리를 믿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았으며 구원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 진리가 어디에 나타나 있습니까?
바로 이 대목에서 언급되어져야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사도신경을 어렸을 적부터 외웠지만, 저의 모든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사해졌다는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서는 피흘림이 없은 즉 죄사함이 없습니다(히 9:22)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 대신 피흘리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가 못박혔어야 할 그 십자가에 우리 대신 나타나셔서 못박히셨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입니다(갈2:20)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대신 우리 안에 사시며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며 왕이시며 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셨으며, 우리의 의롭다함을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습니다(롭 4:25)
사도신경은 바로 이런 중요진리를 못깨닫고 다른데로 관심을 돌리게 하려고 사탄이 배후 조종하여 만들어낸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시며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리시고 피흘리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하시고, 우리 대신 죽으셨으며, 우리를 모든 죄로 부터 구속하셨으며,
라고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카톨릭과 장로교등 세계의 많은 교단들은 위에 언급된 웨스트민스터 사도신경처럼 다음 대목이 들어 있습니다.
He descended into hell.
지옥에 내려 가셨다가,
그런데 이 구절은 엄청 잘못되었거니와 이 사도신경이 기독교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카톨릭의 교리에서 나온 것임을 확신 시켜줍니다.
예수님은 강도와 함께 낙원에 가셨습니다. 낙원과 지옥이 같습니까? 만일 같지 않다면 성경과 사도신경중 둘중 하나는 틀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절이 들어 있는 이유를 최근에 알게되었습니다. 로마 카톨릭의 부활절 철야기도회는 사실상 여신 이스터를 기념하는 예배입니다. 그 철야 제사에서 그들이 암송하는 주문이 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이렇게 암송합니다.
라틴어 이스터 철야 기도시
Flammas Dius Lucifer Matutmus invenient
Ille, inquam, Lucifer Qui nescit occasum.
Christus Fillus Tuus Qui, regressus ab inferis,
Humano generi serenus illuxit Et vivgt et regnet in saeculorum
Saeculorum
(English)
Flaming Lucifer finds mankind,
I say oh Lucifer Who will never be defeated. Christ is your son who came back from hell, shed his peaceful light, is alive and reigns in the world without end
불꽃의 신, 새벽이 찾아낸, 루시퍼 !
그분은, 내가 말하기를, 루시퍼, 결코 패하지 않으시는 분
그리스도는 당신의 아들이니이다.
그분은 지옥으로부터 돌아왔아오며 그분의 평화로운 빛을 발하시고
살아계시며 세상에서 무한히 통치하시나이다.
( 하토브역, 위의 라틴어의 영문 번역이 부정확하다 생각되어 번역하였습니다만 저의 라틴어 번역 또한 오류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즉 바빌론 종교에서 그들의 그리스도는 루시퍼의 아들이며, 그 아들 그리스도는 연옥 혹은 지옥으로부터 돌아온 것으로 나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가 지옥에 내려갔다고 암송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낙원으로 내려가셨으며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만일 이 대목에서 장사한지 3일 만이라는 말이 금요일에 죽으셨다가 일요일에 부활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앞 부분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카톨릭이나 많은 개신교인들은 예수님이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이틀밤을 무덤에서 지낸 다음 일요일 아침에 부활하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땅의 심장에(땅속에) 세 밤과 세 낮 동안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40) 이렇게 금요일에 죽으셨다가 일요일 아침에 부활하신 경우 예수님의 예언은 틀린 것이 됩니다!
예수님이 금요일에 죽으셨다는 주장은 다음날이 안식일이었다는 것을 잘못 인식한데서 온 오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 그분의 시체를 내릴 때, 안식일이 거의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정규 안식일이 아닌 큰 안식일이었습니다(요 19:31) 이 큰 안식일이란 유월절-무교절 안식일을 말하는 것으로 일년중 한번 있는 큰 안식일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다음날은 정규 안식일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리하여 사흘만에가 정확히 세 밤과 세 낮을 지낸다음이라면 앞 대목은 문제가 없겠으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성금요일이라는 개념으로 알고 있다면 잘못입니다.
다음 대목에서 죽은 자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는 우리의 의롭다함을 위하여 죽은자 가운데서 살려내신 바 되시고가( 또는 살려지시고) 정확합니다(롬 4:25)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피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죄값을 갚으셨으며 우리의 의롭다함을 위하여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 살아나시고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는 부분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나 그분이 직접 스스로를 부활케 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전적 신뢰하고 순종하셨으므로, 아버지와 성령님께서 일으키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을 간접적으로 예수님은 내가 사흘만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고 (요 2:19), 바울은 그분의 부활의 능력이라고 하였으나(빌3:10), 대체로 성경은 예수님의 전적인 신뢰와 순종에 대응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님께서 그분을 일으키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많으신 긍휼대로 그분을 부활케 하셨습니다(벧전 1:3) 또한 성령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롬1:4)
아버지께서 살리셨음을 말하는 대목들의 몇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행 2:24, 2:32, 3:15, 4:10, 5:10, 10:48, 13:30, 13:37, 17:31 롬 8:11, 10:9 고전 6:14, 15:15, 갈 1:1 그외에 무수히 많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스스로가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성령님으로 역사하시사 그분을 일으키셨으며 예수님은 전적인 순종과 그분께 대한 신뢰를 통해 아버지의 부활케 하심에 호응하셨고 화합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살아나셨다는 주장의 위험을 제거합니다. 그 주장은 바로 예수님이 죽은 상태에서 누구를(스스로를) 부활케 하셨다면 그분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철저히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일으켰다는 주장은 영지주의자들이나 그밖의 이단들이 예수님이 죽은 것은 육체 뿐이었지 영은 죽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과 육 모든 것이 철저히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완전한 죽음을 맛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스스로를 부활케 하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롭다함을 위하여 살려지신 바 되었습니다.
이 대목은 이렇게 바꿉니다.
장사한지 3일 후에 우리를 위하여 살려내신바 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대체로 사도신경이 예수님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바는 창세때부터 아버지 품속에서 계속 잠만자다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세상에 태어난 아이처럼 보이며, 그분이 창조주이셨고 세계를 운행시키시는 하나님이심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서 쉬며 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중보기도 하십니다 (롬 8:34, 딤전2:15, 히 12:24) 그분은 우리와 교제하십니다(고전 1:9) 그분은 우리가 범죄하였을 때 아버지 앞에 우리를 위하여 대언하여 주십니다(요일 2:1) 그분은 일곱 금촛대들 사이로 다니시며 교회들의 머리로서 교회들을 다스리십니다(계1:12-20, 계 2, 3장) 그분은 온 우주의 운행을 맡고 계십니다(히 1:3)
그분은 앉아계시다가 일어서실 때도 있었습니다(행 7:55) 그분은 바울에게 직접 말씀하실 때도 있었으며(행 9:4-16) 성만찬을 직접 가르쳐 주시기도 하였습니다(고전 11:23) 바울은 다른 사도들에게 성만찬에 대해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 믿는 자들이 영원히 거할 처소를 준비중에 계십니다(요 14:2-3)
이 대목을 반복하여 암송하는 것은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여진,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사역을 다 알게 해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어디에서도 신경을 암송했다는 말을 우리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앉아있기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며 중보기도하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어거스틴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천년왕국을 세우시고 다스리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칼빈 또한 천년왕국을 믿지 않았습니다. 즉 전천년설 대신 무천년설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천년동안 통치하시며 그후에 산자와 죽은자들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 것으로 나옵니다. 계 19장과 20장을 읽으시면 이 점이 분명히 나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은 세상을 친히 통치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이며, 산자와 죽은자의 심판은 천년후에 있을 일인 것입니다. 저는 무천년설을 안믿습니다! 저는 천년왕국과 그 이후의 심판을 믿으며 이것이 성경적으로 옳다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무천년설에 근거한 것으로 읽혀지며 저는 이 대목을 거부합니다.
그분은 거기로부터 만왕의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시기 위하여 오시며,
성령을 믿사오며
고장난 벽시계(사도신경) 앞에 정확한 시계(성경)을 갖고서 하루 종일 앉아서 그 고장난 시계가 언제 정확한 시각을 맞추는지 한번 뚫어지게 계속 쳐다 보십시오. 하루에 두번 정확히 맞춥니다! 그것은 정확한 시계(성경)가 가르치는 시각이 고장난 시계가 고장난 지점을 통과할 때 두번 일어납니다!
이 고장난 시계(사도신경)도 이 대목에서는 맞았습니다! 이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이 고장난 시계가 정확한 시각을 맞추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24시간 동안 잠 안자고 뚫어지게 쳐다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대목은 맞았습니다!
거룩한 공회와(Holy Catholic Church)
여기서 말하는 거룩한 공회는 홀리 카톨릭 쳐치를 번역한 것입니다. 칼빈, 어거스틴, 카톨릭 교황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공회라 하면 대개 바티칸 공의회, 트렌트 공의회, 니케아 공의회, 에베소 공의회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들 공의회들은 성경읽기와 성경 소지를 금지시키기도 했으며(1229 툴루즈 공의회)
http://www.aloha.net/%7Emikesch/banned.htm
외경을 성경안에 포함시키기로 하고 기독교 개혁운동을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하였으며( 트렌트 공의회 1545-63), 카톨릭 밖에는 구원이 없다든가( 라테란 공의회 1215, 플로렌스 공의회 714) 등의 매우 엉터리 도그마를 주장해왔습니다. 또한 카톨릭은 마리아가 공동 구속주라고 주장하기도 하였고 현재도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거룩한 공회가 일반 카톨릭 교회를 칭하든, 아니면 바티칸 공의회나 트렌트 공의회, 에베소 공의회등을 칭하든 저는 거룩한 공회를 안믿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고문하고 살육하였으며 쟌 후스가 화형당한 것도 콘스탄스 공의회에 의해 정죄받아 죽은 것입니다(1415) 그는 루터보다 100여년 먼저 면죄부 교리와 싸웠고 그로 인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Jan_Huss
한마디로 저는 거룩한 공회 안믿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두 세사람이 모이면 그것이 교회입니다(마 18:20)
거룩한 공회를 믿지 않사오며 카톨릭 교회도 믿지 않사오며!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이것은 카톨릭의 성인 통공을 다르게 번역해놓은 것입니다. 카톨릭은 죽은 신자들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성경적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성도입니다(고전 1:2). 그들은 늘 교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는다고 말할 필요가 없으며 교통이라는 단어도 교제라는 말이 적합하지 거기에 있을 수 없습니다. 성도가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말은 바로 카톨릭에서 말하는 성인통공을 의미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인 통공이 무엇입니까? 죽은 성도들에게 기도하면 그들이 중보기도 해주고 하나님께 전달해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잡신교, 무당들이 죽은 영혼을 불러내는 초혼이나 강신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수천의 죽은 성도들에게 전세계에서 기도하며 그들 죽은 성도들은 어디에서든지 기도하면 들어준다는 것으로 죽은 성도들이 신으로 바뀌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카톨릭이 다신교임을 다시 알려주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그들 많은 신들 중에 하나이며 마리아는 그 신들의 어머니 인 것입니다.
저는 죽은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 안믿습니다!
성인통공을 믿지 않사오며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당신은 이 말을 믿습니까? 이 말의 저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앞서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분에서는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진리를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믿는다고 하였습니다. 즉 이말은 현재와 앞으로 죄를 사해주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매주일 미싸(라틴어로 희생)를 거행합니다. 그 미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비슷한 희생제사를 매주일 지내며, 그것을 통해 죄가 매주일 용서되어진다고 가르칩니다.
그 미싸에서는 한번도 인류의 모든 죄가 이미 십자가에서 사해졌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믿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이미 십자가에서 사해졌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날에 위대한 함성으로 “ 그것이 이루어졌다” 고 선언하셨습니다. 인류 구속의 대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더 이상 희생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졌다고 선언합니다( 히 10:17-19).
그런데도 불구하고, 카톨릭은 우리의 죄가 매주일 새로 발생하므로 다시 희생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미싸에서는 영성체라는 쿠키와 잔을 들어올리며 자기들의 신 하느님에게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이유는 인류의 모든 죄가 이미 십자가에서 사해진 사실을 안믿기 때문에 자기들이 들어올리는과자와 잔을 근거로 다시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싸를 거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안믿는 행위이며 짓밟는 행위입니다. 미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하고 그분의 피흘리심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죄까지 이미 십자가에서 완벽하게 사해졌으며 깨끗하게 되었다고 선언한다면 다음 주에 미싸를 다시 거행할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싸에서는 정확한 십자가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카톨릭 미싸는 기독교 예배와 정반대입니다!
저는 모든 죄가 이미 십자가에서 사해진 것을 믿으며, 이제야 희생제사로 죄를 사해주신다는 주장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사 죄를 사해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희생없이, 속죄 예물 없이 사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매주일 우리가 범죄할 때마다 예수님이 내려오셔서 피흘리시고 죽으셔야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의 피흘리심은 영원한 효력을 갖추었습니다(히 9:12)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의 죄를 사해주실 때,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마저도 이미 십자가에서 담당하시고 피흘리시고 죽으셨음을 깨닫게 하심으로 사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사함은 2천년전의 십자가에 근거하는 것이며 이제야 사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저는 모든 죄가 이미 십자가에서 사해진 것을 믿으며, 이제야 희생제사로 죄를 사해주신다는 주장을 믿지 않습니다.
이미 모든 죄를 사해주신 것을 믿사오며, 다시 희생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음을 믿사오며, 다시 희생제사를 드리는 미사를 안믿사오며!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우리가 부활할 때는 새로운 몸을 입습니다. 우리 썩을 몸이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영광의 몸을 입습니다(고전 15:35-54) 우리는 부활시에 썩지 않을 몸을 입습니다. 우리의 현재 몸이 다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죽은자가 순식간에 썩지 않을 몸을 입고 부활하며 우리는 변화되어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입니다(요일 3:2).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함을 믿사오며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고장난 시계가 또 한번 정확한 시각을 맞추는 순간입니다.
사도신경에서 가장 중대한 오류는 무엇인가?
사도신경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허점들을 갖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경과 그 성경의 권위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예를들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임을 나는 믿사오며, 와 같은 성경의 권위 언급이 없습니다.
2) 사도신경은 왜 그리스도께서 인류가운데 오셨으며, 왜 죽으셔야 했는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3)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피흘리시고 죽으심으로 모든 죄값이 지불된 사실과 인류가 속죄함을 입은 사실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4) 사도신경은 어떻게 죄사함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이나 처방을 말하지 않습니다.
5) 사도신경은 삼위일체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6) 사도신경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얻음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7) 사도신경은 천국에 대한 언급도, 지옥이 영혼을 소멸시키는 장소가 아니라 영원히 형벌받게 하는 장소라는 고백이 없습니다.
주문 주술
바빌론 종교, 이 세상 종교에서는 무슨 예배문을 암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에서도 그렇고 유교에서도 초혼이나 제사 지낼때 제사 기도문을 암송합니다. 성경적인 기독교에서는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지 말며, 헛된 반복으로 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톨릭에서는 이러한 신경을 암송하게 하며, 복되신 마리아, 를 끝없이 반복하여 열창하게도 합니다. 불교인들은 목탁을 두들기며 정구압지는 수리 수리 마수리 몬타나 ... 중얼대기도 합니다.
이렇게 비성경적인 사도신경을 반복적으로 암송하게 하는 것은 바로 중언부언에 해당되며, 미신이나 잡신교의 주문 주술에 속하는 방식에다 기독교 진리라고( 실제는 오류 투성이이지만) 집어넣어 암송하는 것으로 분별됩니다. 성경에 무슨 구문을 암송하라고 쓰인 구절이 없습니다! 사도신경 보다 더 좋은 구절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암송하라는 말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결론
이런 사도신경을 매주일 암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태 복음 6장7절에서 말씀하신 바와같이 헛된 반복으로 기계적으로 암송하는 것이 되며 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지 않게 합니다.
성경에서 사도들이나 초대교회가 사도신경을 암송하였다는 말도 없거니와, 사도들이 그 신경을 썼다는 말도 없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것은 수백년 지난 다음에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도신경을 외우게 하느니 차라리, 성경 말씀 그대로를 외우도록 성도들이 행한다면 훨씬 더 정확한 신앙으로 자라게 할것입니다. 이사야서 53장은 외우기에 좋은 성경입니다. 또 디모데 전서 3장 16절은 기독교 진리의 대강이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체를 입고 나타나셨고,
영으로 의롭다함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어지시고,
영광 중에 올려 받아지셨느니라.
“하나님은”그는 으로 바꾸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약하게 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킹제임스 성경으로 여호와의 증인과 논쟁하면 킹제임스 성경을 절대 인정못한다고 말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은 여호와의 증인이나, 이단들이 아주 싫어하는 성경이며 가장 정확히 번역된 성경입니다. 물론 약간의 오류는 있습니다.
그런데 위의 구절은 초대교회의 찬송가였던 것으로 저는 믿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교리의 중요 부분을 찬송가로 가르쳤음을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사도신경보다는 위의 성경말씀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10년전에 제 아들이 나가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저희 모임에 나간다고 말하니까, 그 친구들이 젊은 목사를 불러왔습니다. 그 목사는 이단인지 아닌지를 아는 방법으로 두가지를 제 아들에게 물어보았는데, 하나는 신학대학을 나온 목사가 가르치는지이고 다른 하나는 사도신경을 외우는가 여부를 물었습니다. 제 아들은 둘다 아니라고 말하니까, 이단인 교회라고 판정해주었습니다!
신학대학은 성경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두란노 학당(행 19:9)은 바울이 세운 것이 아니라, 도시 국가 왕들이 세운 왕립학교였으며 바울은 그 장소를 빌려서 안믿는 자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새로 믿는 자들이 많이 복음을 들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목사제도는 성경에 있지도 않으며, 간통목사등의 오늘날 수많은 교회의 타락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오직 두 가지 직분이 있을 뿐이며 장로와 집사이고 장로는 감독이라고도 불리웠습니다(행 20:17, 28) 성직자 제도는 예수님이 미워하시는 니골라당의 행위와 교리를 말합니다(계 2:6, 15)
이제 사도신경은 오류 투성이요, 온전치 못하므로 암송할 것이 못됨을 아셨을 것입니다.
이래도 당신은 사도신경을 믿습니까? 거룩한 공회와 성인통공을 믿습니까?
저는 자랑스럽게도 안믿습니다!
http://cafe.daum.net/Eliyahu?t__nil_cafemy=item
2013. 2. 21 하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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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연합형제단이라는 교파도 있군요
독일 지역에 개혁시대 무렵에 형성되었던 모임들의 연합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루터파의 신조와 비슷하게 움직입니다.
위의 글은 3년전에 올렸던 글을 보완 수정한것입니다. 달라진 점은 1) 지옥으로 내려가셨다가, 의 근원이 카톨릭의 교리에서 그리스도는 루시퍼의 아들이고, 그 그리스도는 지옥에 갔다가 지옥에서 올라왔으며 2)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왜 죽으셔야 햇는가 가빠져 있고 3) 삼위일체나 기본 교리가 언급되지 않았고 4) 어떻게 구원을 얻는지 행위구원인지 믿음으로 인한 은혜구원인지가 빠졌고 5)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는 신념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추가는 느디님님이 가져오신 박노찬님의 글을 많이 반영한 것입니다. 그분의 글은 제가 쓴 글보다 넓은 숲을 보게합니다. 제글은 나무를 분석하는데 촛점이 있었습니다.
빅노찬님의 글은 < 사도신경과 이단 판별의 기준 > 이라는 제목으로 느디님님이 스크랩해오신 글로 올려져 있습니다. 이분 글은 매우 훌륭한 글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제글은 나무를 그분 글은 숲을 그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교회 다니면서 "거룩한 공회와,(쉼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이 부분을 제대로 아는 사람 못 봤습니다. 죄다 "~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으로 알고 있다니깐요. "서로 교통"이라고 하니 공회랑 성도랑 뭐가 서로 통하는 것으로 대충 넘기고 있을 뿐... 알려 주어도 중요하지 않다는 식입니다. 이게 예수님께서 금지하신 중언부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거룩한 공회, 성도가 교통하는 것, 카톨릭 교리에서 지옥에 가셨다가, 가 가장 걸작품이라 생각합니다. 한국 장로교 사도신경에서는 지옥에 내려가사, 가 빠져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최대 걸작인데 이것을 한국 장로교는 갖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옥에 내려간 자는 바로 루시퍼의 아들로 보입니다.그 루시퍼의 아들을 그리스도로 불렀다는 뜻이 되는데 그는 지옥에서 부터 올라왔습니다. 마치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을 말하는 것같습니다! 아마 사도신경은 훗날에 적그리스도 짐승을 찬양하는데 쓰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도신경은 로마 카톨릭의 주술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기독교가 받아들여서 어느 정도 다듬어도 그 뿌리는 개톨익에 있으며 그것은 그들의 신 루시퍼를 즐겁게 해줄 뿐입니다. 개톨익에서 말하는 하느님은 마리아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는 루시퍼의 아들입니다. 마리아와 루시퍼를 부부관계로 그리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만 그들이 말하는 삼위일체는 1200명이 넘는 신들 중의 좀 똑똑하고 큰 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시스 오리씨스 호러스 혹은 이시스 호러스 셉의 삼위일체를 기독교로 포장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성체 곧 IHS 라고 쓰인 과자를 먹습니다.
인간이 제정한 '사도신경'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소위 '주 기도문'이라는 것도 그 정신은 아랑곳하지 않고 집회의 개회나 폐회의 한 식순으로 하여 외우게 하는 것이 과연 '기도'인지? 옳은 것인지?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십니까?
그 또한 중언부언입니다
성경 어느 구절들을 암송하여 자동으로 기도해도 자판기식 기도이고 그것은 심령 깊은데에서 마음이 끊어지는 것같은 간절한 기도를 경험하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그와같은 요령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지 그것을 반복하라고 하신 말씀이 아니지요.
오늘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것같이 우리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가 맞지않아 그렇지 (십자가 사건 전 이라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해요.)
예수님이 친히 이런식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기도이므로 사도신경과는 다르다고 생각 합니다.
뜻을 생각하며 기도하면 좋은데 외워버리는게 문제는 문제 입니다.
그리되면 중언부언이 되니까요.
예수님이 부활하신후 지옥에(땅에중심부에 있는.) 내려가셨구
또 음부에도 가셔서, 믿고 죽은 그리스도인들을 데리고 세째하늘로 가셨는데
그곳이 낙원이고.(십자가 우편강도에게 말씀하신)
그곳을 사도바울이 14년전에 가 봤다는 곳 이라고 설교하는걸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젠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낙원에 간다구요.
보통 기독교목사가 아니구 복음주의 침례교목사님께서요.
그런데 지옥에 가셨다가 가 카톨릭의 걸작품 중 하나 라니....
제가 그설교를 들으면서 그런생각은 했습니다.
뭐하러 저런설교 하시나?
괜히 말 들을수도 있을텐데...
라며 그목사님 걱정이 들었습니다. 하토브님도 아시는분이지요.
아마 베드로 3장을 인용하여 항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 라틴어 기도시 원문을 처음부터 문자들로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카톨릭이 그들의 기도나 암송들을 오직 라틴어로만 행하고 평문으로 안하는데는 그들의 정체가 폭로되는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멘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루시퍼를 찬양하고 루시퍼의 아들 그리스도를 칭송하는 기도시입니다!
사도신경 최대의 걸작은 아마도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는 구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들을 안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