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지맥
산행을 자주 가다보니 등록 불자가 아님에도 절간 언저리는 무상시 드나든다. 내가 부처님 가피를 입는 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이날이 공휴일이기에 덤으로 산행 여가가 하루 더 생기기 때문이다. 성큼 여름이 다가온 듯 날씨가 더워진 오월 하순이다. 가끔 함께 등산을 다니는 대학 동기와 산행이 약속되었다. 평소 출근보다 이른 시각 창원의집 앞으로 나가 110번 시내버스를 탔다.
대방동에서 출발해 온 버스에는 벗이 먼저 타 있었다. 110번은 창원 대방동에서 마산 내서로 오가는 버스였다. 나와는 생활권이 달라 잘 타 보질 않은 구간이었다. 휴일 이른 아침이라 승하차 손님이 적다보니 운행 속도가 무척 빨랐다. 우리가 가려는 산행 목적지는 내서 화개산이다. 삼계초등학교 근처에서 내리자 산행지도를 미리 검색해 온 동기는 등산로 들머리를 쉽게 찾아냈다.
굴참나무가 우거진 언덕에 데크를 따라 오르니 사람들이 많이 다닌 반질반질한 등산로가 나왔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자주 찾는 산인 듯했다. 휴일을 맞아 중년 남녀 등산객이 다수 보였다. 아카시아 꽃이 진 숲에는 때죽나무에서 하얀 꽃이 피어 초롱처럼 달려 있었다. 꽃이 진 꽃잎은 바닥에 떨어져 있기도 했다. 활엽수림을 지나자 소나무가 우거진 평탄한 숲길이 길게 이어졌다.
언덕을 얼마간 오르자 남향으로 전망이 트인 곳에 체육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몇 해 전 산불이 나 나무들이 불타 죽은 곳이었다. 동기는 올 봄 두 차례 화개지맥을 다녀온 바 있어 주변 일대 산세를 잘 알았다. 화개지맥은 낙남정맥 광려산에서 북으로 분기하여 동으로 흐르는 광려천 울타리가 되면서 남강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 장포마을까지 가는 산줄기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출발하는 낙남정맥은 경남 일대를 니은 자로 뻗어가면서 김해 신어산에서 끝난다. 함안 여항산에서 광려산과 대산을 거쳐 무학산으로 와 천주산으로 건너간다. 광려산에서 북으로 뻗친 곁가지가 화개지맥이다. 화개산에서 신당고개를 지나 자양산으로 건너간 산세는 낙동강 남지철교 근처 용화산에서 끝나 남강 하구 건너편 우봉지맥의 끝점인 기강나루와 마주본다.
전망대에 서자 남쪽으로 깊숙한 내서 시가지 일부와 산세가 훤히 드러났다. 벗은 마주한 산봉우리 이름을 훤히 알고 있었다. 삼자봉에서 침대봉으로 이어진 산등선은 삿갓봉 용수봉 상투봉 지존봉으로 솟구쳤다. 모두 광려산에서 북으로 향하는 연봉이었다. 벗은 훗날 그런 산자락을 넘어 함안역까지 걸어보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전망대 쉼터에서 화개산 방향 소나무 숲길을 걸었다.
정상을 저만치 앞둔 곳 평상에서 잠시 배낭을 풀어 벗이 가져온 곡차를 꺼내 목을 축였다. 얼마 전 산행에서 채집했다는 한입버섯 차를 끓여 와 시음해 봤더니 향기가 독특했다. 한입버섯은 고사한 소나무에 붙는 버섯이었다. 쉼터에서 일어나 화개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맞은편에서 오던 중년 여인 둘이 인적이 없는 줄 알고 ‘아, 좋다!’라고 함성을 질러 우리도 좋다고 응수해주었다.
드디어 화개산 정상 바위에 섰다. 457미터의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칠원과 남지 일대가 훤히 드러났다. 마산대학과 내서 청아병원이 그리 멀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하산 방향을 그쪽으로 택하지 않고 정상에서 되돌아 입산재로 향했다. 넝쿨에선 벌써 딸기가 익어갔다. 산비탈을 내려서다 벗은 한입버섯과 고사리를 몇 줌 채집했다. 소나무 숲에 앉아 남겨둔 곡차와 점심도시락을 비웠다.
조씨 무덤을 지나니 입산재였다. 고개에서 산익마을로 내려섰다. 골짜기엔 절로 자란 머위가 있어 몇 줌 뜯었다. 두릅은 순이 쇠어 끝만 따 모았다. 숲을 빠져나가니 산익마을이었다. 바깥은 고속도로 건너는 고려동이었다. 초등학교 동기회장을 맡고 있다는 벗은 얼마 후 정기모임 행사 장소를 답사했다. 신당고개 근처에서 같은 동기가 운영하는 국밥집으로 찾아들어 하산주를 들었다. 18.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