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도덕군자, 성인군자는 되지 않으리라.
한때는 유명인사는 결코 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들 대부분은 유명해지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유명하다는 것은 좋은 점이 많기도 하겠지만, 불편한 점이 더 많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명하기 때문에 남들이 그만큼 알아 줄 것이리라는 것, 그리고 어느 자리에서도 "오셨다~"라며 떠받들림을 받을 것이리라는 것, 강연회다 잔칫집이다 해서 초대되고 먹고 살만큼 돈을 받아 쥘 수 있으리라는 것... 그 외엔 오히려 불편하고 낯 뜨거우리라 생각합니다.
유명해지면 외롭습니다. 아니, 외로움을 더 타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사람들... 그 사람들이 더 이상 히트를 칠만한 뭔가를 내놓지 못하면 결국 팬들은 더 이상 찾아주지 않을 것이고 어느새 잊혀지고 말 것입니다. 높이 떴던 스타일수록 한번 맛 본 유명세가 사라지는 날, 사무치는 고독감과 끝없는 절망의 나락속으로 자신을 한없이 밀어넣게 마련입니다.
잘 알려진 얼굴이 홀로 대중음식점에 나타나 혼자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왜 그렇게 왜소해 보이고 측은해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궁상스럽게 보인다는 얘깁니다. 유명인들은 혼자서 어디를 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물건을 사려해도 깎아서도 안되고 급히 소변이 마려워도 아무 데서나 쉬 할 수도 없습니다. 워낙 알아보는 눈들이 많겠기에...
진정한 자유를 원하신다면 결코 유명해져서는 안됩니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이 평범하게 누릴 수 있는 크나 큰 절대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자서도 할 일 없이 길바닥을 거닐 수 있는 자유... 아무에게나 다가가 담뱃불을 빌릴 수 있는 자유... 물건을 살 때 '깎아달라'며 조를 수 있는 자유... 쌈밥을 먹을 때도 입이 메어 터져라 우적 거릴 수 있는 자유... 급하면 으슥한 구석을 찾아가 방뇨할 수 있는 자유...
성공에 비례하여 대접 받는 사회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고 취향이 다르듯이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과 성공철학도 다르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세상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즉 누구나가 다 인정할 정도로 반드시 성공했어야 만족하고 이름을 만천하에 드날렸어야 성공했다고 여기고 만족해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런 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런 명성이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방해요인으로 작용하리라 믿고 끔찍히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단지 세상사람들의 고정관념이 문제이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이유 없이 곤혹스런 경험을 겪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지요.
어린아이들에게 '누가 제일 훌륭하고 높은 사람인가'를 물어 보시면 다 아시겠지만... 단연코 "우리 아빠요~!" 그러지 않던가요? 어린아이에게 있어 자신의 아빠야 말로 제일 위대하고 제일 거대하며 제일 힘이 쎄서 아빠만 곁에 있으면 세상 무서울게 없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그나마 그런 대접을 자식에게 받을 수 있을 때라면 그런대로 행복하기도 하고 괜히 어깨마저 으쓱거려 집니다. 그런데 아이가 크면서 상황은 달라 집니다. 아이가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 갈 수록 자신의 아빠 처지는 점차 왜소해지고 초라하게 보일 뿐이지요. 아빠보다 사회적으로 더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아빠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아빠보다 더 힘이 세고 덩치도 더 큰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아빠보다 더 돈이 많고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 등을 알아 갈 수록 아빠를 향한 눈초리가 실망스럽게 변해 갑니다. 결국 아빠가 자신에게 해줄 수 있는 능력이란 것이 형편 없음을 깨닫게 되면서 아이의 절망감은 골이 깊어 갑니다. 아빠는 자식에게 있어 여전히 변함 없이 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당당하게 살려 해도 세상이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옛날 우리조상들, 특히 선비들 가운데 몇몇은 굶주림과 헐벗음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속된 물욕과 헛된 출세에 연연하지 않았다지요. 전설같은 얘기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기에 '청백리'란 말도 나온 것이고 그런 사람들을 높이 칭송한 문헌들도 발견되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세상에도 옛 선비같이 청렴결백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지요. 주어진 대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 맡은 소임에 충실하며 결코 다른 이들이 지닌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가난하다 하여, 남들로부터 대접 받지 못한다 하여 스스로 가슴을 치고 통탄하리라 여기십니까?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마음이 평안하고 근심 걱정 없는 신선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세상사람들로부터 그리 존경을 받는다거나 우러러 뵈질 않는 겁니다. 제자들까지도 심지어 마누라 자식들까지도 속으로는 비웃고 조롱하고 있다니까요. '무능한 인간이라고...'
반면에 공부도 지지리 못했고 인간 축에도 끼이지 못했던 개망나니같은 인간이 돈벼락을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어느날 갑자기 외제 승용차를 끌고 지갑속에 뭉치 돈이라도 지니고 나타났다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지요. 모두들 그리로 우르르르르~~~~~~~~~~ 몰려가 한 마디씩 합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자넨 뭐가 달라도 달라 보였다니깐" 세상인심이 아무리 조석으로 바뀐다지만 이렇듯 간사한 것이 인간이라면 이러한 세상에서 신선이랍시고 유유자적한다는 것 또한 코메디이긴 하지요.
얼마 전 모 여론조사기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가장 존경하고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이 누구인가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어처구니 없게도... 정치인으로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았고, 경제인으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꼽았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낙후된 한국의 경제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끈 공을 높게 평가할 수 있다지만 반면에 북한의 김일성 못잖은 극악무도한 독재자였지요. 그의 공과를 따지자면 최악의 빈곤상태에서 백성들을 구제했다는 것 외에는 한국 정치를 현재까지 후진국상태로 머물게 한 장본인이요, 한국 국민성을 기회주의자로 이기주의자로 변질시킨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한국이 이 만큼이라도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 어찌 박정희 전 대통령 한 사람의 몫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도 제대로 된 대통령을 뽑았더라면 더 잘 살 수 있었을 가능성은 과연 없었던 걸까요? 삼천리 방방곡곡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새마을 노래가 우렁차게 진동을 하는 가운데 부정부패와 폭압정치는 그 도를 더해 가고 있었지 않았던가요?
중앙 유력일간지에 '大統領(대통령)'을 '犬統領(견통령)'이라 잘못 표기하였다 하여 그 많은 신문들을 모조리 불사르게 하고 숱한 관련자들을 엄벌한 사례는 아프리카 어느 미개국의 무식한 독재자 '이디아민'과 다를 바가 뭡니까? 얼마 전에 그런 독재자를 위해 기념관을 건립하겠다느니...하는 무리들이 있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그 추종세력들이 엔간히 설쳐대는 것 같습니다. 하기사 한나라당이 지난 4.15총선을 맞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식 박근혜 씨를 당 대표로 선출한 것을 보면 코메디도 그런 코메디는 없지요. 가장 잘 나가는 제1당이 그래 인물이 없어 독재자의 분신을 전면으로 내세웠다니 정치란게 대단한 사람들만 하는 것인 줄 알았더니 별게 아닌가 봅니다. 하기사 오래 전에 이탈리아에선 상원의원으로 '치치올라'라는 창녀가 선출된 적도 있었고 이주일 씨같은 코메디언이나 얼굴 반반한 탈렌트 아나운서들 가운데 많은 인사들이 금뱃지를 차지했었던 것으로 보아 박근혜 씨 정도로 연예인들 뺨칠만한 인기인이라면 별다른 정치업적이나 행보 없이도 당대표가 될만 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건희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날 한국 경제계를 주름잡는 인물이지요. 일류대학 출신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장이 삼성그룹 아니던가요? 가장 많은 급료를 주고, 또 가장 좋은 근로환경을 제공해 주고... 얼마 전 언론 가쉽에서 보니 전년도 삼성전자 평균 임금이 6,500만원이었던가 해서 전체 기업 중 임금순위에서 랭킹 1위를 차지했답니다. 그러니 삼성의 입사 경쟁이 고등고시 뺨칠 정도이지요. 그래서 '삼성고시'란 말도 나올 법 합니다.
그러나 이건희 씨야 말로 존경받을 자격은 결코 없는 사람이지요. 그 아들 재용 씨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주려는 그 수법을 보면 마피아가 따로 없다니까요. 온갖 편법은 다 동원되고 온갖 비열한 수단방법이 다 동원되었죠. 그래야만이 자식대에서도 한국 제일가는 갑부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겠지요. 삼성이 추구하는 일류정신, 제일정신... 처럼 이건희 씨는 둘째는 싫은가 봅니다. 그게 게걸스런 욕심이란 겁니다. 아무리 좋기로서니 그 1등 자리도 때가 되면 누군가에게 양보할 줄 알아야지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가며 1등만 해먹겠다는 것은 자부심도 아니요, 긍지도 아닌 그냥 게걸스런 욕심이다 그런 말입니다. 따라서 이건희 씨가 자식에게 수조원대의 재산을 형성케 하고 또한 삼성그룹의 지휘권을 이어받게 하려는 작태를 보면 그가 한국 경제를 위해 얼마나 지대한 공을 세웠는지는 몰라도 존경할만한 그릇은 절대 아니란 겁니다. 그런 인간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가장 닮고 싶은 인물로 선정했다면 학생들의 사고방식이 얼마나 속된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전 모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하려던 이건희 씨가 큰 곤욕을 당했다지요. 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겁니다. 그 사람 돈 많은 것 때문에 명예까지 주고자 했던 대학의 의도란 뻔한 것이지요. 돈 좀 쓰라는 뜻 아닌가요? '기브 앤 테이크'
"학위 줄테니 대신 돈이나 듬뿍 내 놓으슈~"
삼성그룹 등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한결같이 못된 짓을 예사로 저지르면서도 특혜대출이다, 부동산투기다, 독점사업이다 등등 그동안 저절로 돈 벌 수 있는 온갖 특혜를 누리며 승승장구 장수를 누려 왔지만 앞으론 어림 없을 겁니다. 아무리 기업이 '이익만을 쫒는 집단'이라지만 기업도 이익을 환원할 줄 알아야 하며, 기업윤리를 저버리지 않아야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겁니다.
"이건희 씨 정신 차리세요. 돈이란 돌고 도는 겁니다. 니 돈이 영원한 니 돈이 아닙니다. 니 돈이라 여겼던 니 돈이 어느 날 엉뚱한 사람 주머니에 들어 갈 수도 있습니다. 엉뚱한 사람 주머니에 들어 갔을 땐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엉뚱한 사람 주머니에 들어 갈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좋은 일이라도 해볼 껄... 하고 후회해도 소용 없다 그런 말입죠."
성공하려면 먼저 유명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자신이 더 나은 사람과 비교되는 것은 결코 용납하려 하지 않으면서 '아무개보다는 아무개가 못하다.'라고 비교하려 드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특히 그 비교의 잣대란 것이 얼핏 겉으로 드러나는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에 불과할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들 명문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박사학위를 땄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한테서 오랜 기간 강의를 들었다거나 그와 무슨 대화라도 자주 나눴다면 '그를 대단히 잘 안다'거나 '세뇌되었구나' 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기회조차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들 단정적으로 말을 합니다. 반대로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그가 합당한 자격증이라도 취득하지 못했다면 은근히 그를 돌팔이로 매도하려 듭니다.
지금이야 널린게 박사학위지만, 박사학위가 귀하던 시절에 대학 강단에서는 박사학위를 딴 새파란 친구가 석사학위밖에 못 딴 나이 든 교수를 우습다고 깔 본 적이 많았지요. 재단 측에서는 나이든 노회한 교수보다 더 파격적인 대우를 해줘가며 젊은 박사들을 영입하게 되었고요. 그런데 박사학위증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더군요.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보다 많이 알고 있어야 가능한 겁니다. 아무나 딸 수 없는 것이 박사학위라면 박사학위정도를 지녔다면 의당 보다 많이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질문들을 모두 답변할 수 없는 박사들이 많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비록 석사학위밖엔 지니지 못했던 노회한 교수들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결과는 학생들이 박사학위를 지닌 교수의 수업거부로 나타났습니다.
보다 실력이 있음에도 유명하지 않다면 별 볼일 없는 것으로 치부합니다. 아무리 잘났어도 아무리 능력이 뛰어났어도 유명하지 않으면 설익은 인간으로 봅니다. 돈을 많이 벌은 경우나 높은 지위에 오른 경우에도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는 많이 알려졌어야 성공했다고 봅니다. 탈렌트 등 인기연예인도 그렇고 정치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하다 못해 글을 쓰는 작가들도 그렇습니다. 제가 광고기획 사업을 오래 하다 보니 유명하다는 것은 곧 그 상품의 브랜드 가치라는 것 또한 잘 압니다. 잘 알려진 상품과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상품의 브랜드 가치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마련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상품은 아무리 질이 좋고 가격이 싸더라도 소비자의 관심을 절대로 끌지 못합니다. 반면에 잘 알려져 있는 상품은 다소 질이 떨어지더라도 다소 비싸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사람이 유명하고 안 하고는 실제로 그 사람의 됨됨이나 그 사람이 지닌 능력의 차이와는 전혀 별개의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나이가 들 수록 많이 배울 수록 철이 든다고 생각하는데 그것 역시 별개의 것 아니던가요? 나이와 비례하여 철이 들 것 같으면 늙어 벽에 똥칠하는 따위의 '노망'이란 것은 없어야 겠지요. 열 살 짜리 코흘리게 보다 스무 살 짜리 청년이 곱절은 철이 들어야 할 것이고, 스무 살 짜리 청년 보다는 마흔 살 짜리 중년이 역시 곱절은 철이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보다 못한 어른들이 많고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자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호로배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기사 나라의 제일 어르신 격인 대통령을 지낸 자들의 후안무치한 행동들을 지켜 보노라면 나이 들수록 많이 배울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철 드는 것하고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음을 느낍니다.
철이란 뭡니까? 행동이 민첩하고 계산이 빠른 것을 철이라 합니까? 그렇지 않지요. 철이라 함은 '식견'을 말함이며 이는 곧 '세상 사는 도리의 깨달음' 아니던가요? 그런데 아이들이 오히려 세상 사는 도리를 더 잘 아는 눈치이고 나이 들수록 어린 아이보다 오히려 철이 없어지는 것 같더라는 겁니다.
철이란 운동경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생길에 꼭 지니고 다녀야 할 '페어플레이정신'입니다. 신체를 단련 시키고 경기력 향상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마침내 상대와 정정당당하게 겨뤄 승리를 쟁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생 역시 정정당당히 정도를 지켜가며 나아가는 것을 말함입니다.
그런데 체력이 밀린다고 또는 경기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상대방의 눈에 고춧가루를 뿌린다거나 발을 걸어 넘어뜨리는 간교함을 보인다면 그로인해 이겼기로서니 진정한 승자로 인정 받기는 어렵지요. 경기에서 비굴하게 승리를 쟁취하려 드는 선수가 있다면 소위 철이 들만큼 나잇살 먹은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가 철 들었다고 보기엔 전혀 아닌 경우가 많지요. 법은 마치 어기라고 만든 것인양 지키려 들지 않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더라도 제 한 몸 편해지려 하고 제 한 몸 부귀영화를 누리려 들지요.
벼락부자된 사람들은 걸핏하면 공돈 벌어들인 것을 마치 무용담처럼 늘어놓질 않나 벼락출세한 사람들의 가소로움은 하늘을 찌를 듯합니다. 벼락부자가 되었거나 벼락출세를 하였다면 의당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로인해 피해를 입었을 사람들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해야 하는데 하는 짓거리 보면 영 딴판이지요. 다 제 잘난 탓에 부자되고 출세한 것으로 착각한다는 겁니다.
사람의 겉모습은 '빙산의 일각'과 같은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유명하고 안 하고는 다분히 '쇼맨쉽'이 좌우합니다. 어쩌면 이 쇼맨쉽이란 것도 타고난 재능에 속하겠지만, 유명하다 하여 반드시 '된 인간'이나 '든 인간'이나 '난 인간'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유명하다는 것 때문에 속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 그런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분별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 참 유명한 속담이죠. 이 속담의 긍정적 의미는 살아가는 동안 모범적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인류에 크게 기여하고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등등 죽어 이름을 남기는 당사자의 경우 얼마나 가치있는 삶을 살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 세상에 그런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크나 큰 행운이겠지요.
그러나 따지고보면 유명하다는 것은 허상입니다. 사실 아무 것도 아니란 것이죠. 1,300건이 넘는 특허를 얻어 '최후의 발명왕'이라고 일컬어지게 된 '에디슨'이 죽은지 70년이 넘습니다. 그래도 그의 이름은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익숙합니다. 상대성이론의 창시자이며, 20세기 최대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아인슈타인' 역시 죽은지 50년이 지났지만,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후에도 후세에 길이 길이 명성이 자자하고 높이 칭송받는다지만 죽은 자는 알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본인들이 누릴 수 없는 긍지나 자부심을 그들의 후손들이 또는 조국이나 자국민들이 대신하여 누리게 되겠지요. 하물며 깜빡이듯 잠시 누리게 된 유명이란 명예는 한낱 물거품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장식장에서 녹 슬어가는 양철조각으로 만든 훈장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유명이란 허울에 집착하고 그 허울에 속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는 얘깁니다.
과학이 발달할 수록 세상은 점점 빠른 급물살처럼 속도제어가 불가능해져 갑니다. 그리고 인간은 사고마저 단순해져 겉으로 보여지는 것만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려 합니다.
과학이 발전할 수록 인간은 보다 편해지고 보다 안락해져 가겠지만, 반대로 인간은 보다 무기력해지고 지능은 보다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과학이 발전해 나간다면, 머잖은 미래엔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여 모든 일을 처리하게 될 것이고 반대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의사들이 필요 없게 됩니다. 굳이 종교계가 반발하는 간세포를 이용한 복제술을 펼 필요까지 없습니다. 컴퓨터가 한치의 착오도 없는 진단과 처방을 하게 될 것이고, 정밀 로봇이 수술을 집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게놈의 완벽한 해독과 신약개발로 인해 만병통치약이 개발되어 한 가지 약만으로도 어떠한 질병이나 질환도 치료가 가능해 집니다. 그러니 새로 개발된 세포의 신진대사 촉진만으로도 젊음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판검사나 변호사도 필요 없게 됩니다. 컴퓨터가 죄질에 따라 판례를 종합 분석하여 합당한 판결을 내리게 되며 로봇이 죄인들을 결박하여 감옥에 쳐넣게 될 것입니다. 선생들도 필요 없게 됩니다. 입시나 취직 등 시험 칠 일도 없어질 것이고 전문 기술을 익혀야 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니 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이 전혀 없어집니다. 배우는 것 자체가 중노동인데 컴퓨터나 로봇이 해야 하는 저급한 일을 왜 인간이 해야 합니까? 농부도 어부도 필요 없게 됩니다. 지능 로봇이 알아서 닭도 키우고 염소나 돼지도 말도 키웁니다. 쌀 농사도 짓고 옥수수 고구마도 생산합니다. 더 나아가 지천에 깔린 천연자원을 분해하여 단백질을 합성하고 그 단백질로 버섯을 만들고 생선도 만들고 우유도 만들어 냅니다. 그러니 요리사도 필요 없게 되고 운전기사도 필요 없게 되는 겁니다. 모든 노동은 지능로봇이 대신하여 하게끔 프로그램 되니까요. 인간은 그저 먹고 자고 싸고... 그리고 말초적 쾌락만 탐닉하는 짐승으로 전락하게 될 겁니다.
극단적 이기주의와 배타적 사고의 팽배로 인간성은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빈곤했지만 '나' 보다는 '우리'를 더 중시 여겼지요. 3대가 어우러져 함께 살던 가족관계도 오로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으로 쪼개지더니 이젠 경제적 능력만 있으면 결혼조차 하려 들지 않지요. 노후를 자식에게 의존하기 위해 자식을 많이 나으려던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이지요. 자식도 믿을게 못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불신과 자식을 낳고 키우기 위해 자신의 황금기를 희생할 수 없다는 철저한 계산은 국가가 대신하여 인큐베이터에서 후손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합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겠노라는 극단적 사고만 존재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러한 징후들이 상당히 진행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희귀했던 도덕군자 성인군자들이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출현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졌음을 시사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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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수님도 우리가 평가하는 도덕군자시고 인류가 인정하는 성인군자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