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누이 - 느림보 거북이
우리 누이가 아프네
팔월에 소식을 듣고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찾아뵈었는데
나을 기미가 없다 하시네
만났을 적에 울 누이와 남매들
어릴적 살던 곳 다녔던 학교들
그리고 추억 서린 곳 다 함께 다니며
기억 놀이 하고
또 맛난 것도 먹고
즐거워 했었는데~~~
어머니 같은 누이였네
1961년 박정희 군사 쿠데타 때
정치하시던 울아버지 군 지프에 잡혀가셨네
그 사실도 3년 후에나 알았네
우리 집은 그때 풍비박산 났네
울아버지가 졸지에 행방불명되셨으니
온 가족이 찾아 나서야 했네
작은 아버지. 고모부. 이모부 모든
고향의 친인척이 물어물어 찾아도
결국 아버지는 행방묘연이었네
고향의 논 팔고 밭 모두 팔아
이런저런 사업도 하셨던 아버지.
그런데 그것마저 모두 문을 닫게 됐네
날마다
사업체에 찾아와 군인과 순경들이
들볶아버리니 직원들마저 무서워
하나둘씩 뿔뿔이 흩어 저 도망가 버렸네.
어렸던 우리 누이 그 무렵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네
그리고 어딘가에 취업하여 돈을 벌어야 했네
울어머니 역시 삯바느질을 하며
울가족들의 생계에 매달려야 하셨네
자존심 상하게 어머니의 주 고객은
아버지의 정치적 동지들이었고
그 동지들은 5.16 군부에 협력하며
갑자기 벼락출세를 한 집안이 되었네
울 어머니는 그 부인들의
한복 깁는 일을 주로 하셨네
울 어머니 몸종 데리고 시집오실 무렵
경북 상주에서 가장 명문가집 딸이셨고
그 오빠가 6.25 무렵엔 농림부 장관 하셨고
그분은 독립 운동가 이기도 하셨네.
우리 3남 2녀의 생계는 만만하지 않았네
누이는 그 뒤로도 학교로 돌아오는 일이 없었고
학업을 아예 포기를 해야 했네.
그 누이 이쯤의 가을 끝에
꼭 동복(겨울 옷)을 힘들게 번돈으로
사 오시어 동생들에게 입혀 주셨네
끔찍하게도 동생들을 위하셨던 그 누님
이제 몸이 아프시고 거동이 불편하시네
이제 86세 이신대
더 좋은 날을 누리기에 버겁다 하시네
5.16 전만 해도 공주 같았던 누님
일순간에 삶이 변해 버린 인생... 울 누님.
아프네... 이 글을 쓰고
울 누님을 생을 돌아보니 눈물이 나네
8월 뵈을 때 쇠약해지 몸
그리고 그 얼굴의 주름 살을 떠 올리니
여전히 가슴이 매이고 아파 오네..
누님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부디부디 쾌차하시길 기도합니다.ㅜㅜ
- 못난 동생 -
첫댓글
저도 오래전 여러번 뵈었건만 참 고상..고매하신
분이었지라...ㅜ 옛 누나들이란 참..엄니보다 더한
마음의 고향..정처?..사무치는..
세세년년 화상사..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