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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2. 3. 큐티
여호수아 6:1 ~ 11
기묘한 여리고성 함락 작전
관찰 :
1)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 1절.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 여리고는 사해에서 북쪽으로 12km, 요단에서 서쪽으로 9km, 또 예루살렘에서 동북 방면으로 약 30km지점에 있는 도성이었습니다. 고고학적 발굴 결과, 당시 여리고 성의 넓이는 대략 8에이커(1 에이커 = 약 4 평방킬로미터)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므깃도의 14에이커, 라기스의 18에이커, 특히 하솔의 200에이커에 비하면 작은 도시 국가이지만, 여호수아 시대에는 가나안의 평균 도시 크기에 해당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읍 규모에 비하여 여리고 성의 비중은 매우 컸습니다. 즉 여리고 지역은 좋은 샘들을 가진 '오아시스' 지대였습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개발된 고대 도성으로서 '종려의 성읍'(The city of palm trees)으로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요단 대평원 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여리고 성은 그 전략적 위치상 매우 중요한 가나안의 방어 거점으로서 군사 요충지일 뿐 아니라 가나안 중부로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 도시 국가들의 남북 연합 작전을 미연에 차단하고 가나안 정복의 주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여리고 성을 장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은 직접적인 군사 작전으로서는 거의 공격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천연 요새였습니다. 가파른 경사지 정상에 위치하고 있는 여리고 성은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 밖으로 3-4m 높이의 석조 장애물을 설치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본성의 중앙 벽과 약 35도 각도로 경사지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파르고 미끄러운 경사지와 여러 방해물 때문에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접근하는 행위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따라서 유일한 방법으로써는 장기간의 포위 작전을 구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게되면 오랜 기간이 지체되어 나머지 가나안 족속들이 연합하여 반격할 기회만을 줄 뿐 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여리고 성은 성문을 굳게 닫고 버티는 작전을 구사했고, 이미 그 과정에서 다른 족속들의 원호를 약조해 놓았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군대에게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고 계셨습니다.
- 여리고성은 성벽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이 들어온 정보도 즉각적으로 알 정도로 방비를 잘하는 도성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추격하여 잡고자 하는 추격자들을 보내기까지 하는 도성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이스라엘이 도강하는 모든 과정을 정탐꾼들을 보내 예의주시했고, 그 모든 과정이 보고가 들어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가 행하시는 큰 이적을 보았기 때문에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애굽에서 있었던 40여년 전의 사건들에 대해 들었고, 또 요단 동편의 아모리 왕들을 쳐서 죽이는 사건들에 대해서도 들었던 터입니다. 게다가 이제 요단강을 가르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목도하게 된 마당에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굳건하게 세운 여리고의 성벽을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성벽 안으로 들어와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그 누구도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방비한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에 누가 문을 열어주지만 안는다면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에게는 공성 무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성벽을 타고 넘을 사다리도 없고, 문을 쪼개버릴 큰 도끼나 철퇴도 없고, 전쟁을 위한 장비가 변변하게 갖추어지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여리고의 왕이 선택한 것은 성벽 안에 들어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버티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나안의 다른 족속들의 원조를 이미 약조해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판단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좋은 전략이고 전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 비해 이스라엘이 붙잡고 있는 최고의 능력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이것이 여리고 왕이 계산해 넣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 2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으니” => 여기서 “여호와”는 5장에서 나오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여호수아에게 철옹성인 여리고를 무너뜨리기 위한 하나님의 약속을 베푸시고, 또 전략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시는 승리는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시기에 확정적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아시는 하나님이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다 넘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승리의 보장이 어디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확정적 승리에 대한 역사를 이렇게 여호수아를 통해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확정적 승리는 “내가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하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을 통해서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다시금 주어진 것입니다.
2)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전략
- 3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이상한 요구를 하고 계십니다. 여리고성의 그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무기를 만들라’, ‘토성을 쌓으라’ 이런 전략을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군사들이 여리고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엿새 동안을 그렇게 하라시는 것이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이스라엘이 아니었다면 이런 이상한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로 작정을 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했습니다.
- 4절.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 하루에 한 번씩 여리고성을 도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라고 명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라 명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명하실 수 없는 전략입니다. 인간이 이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상 어떠한 성벽도 이런 식으로 깨뜨린 적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이디어이고, 하나님의 전능으로 이루시는 역사를 순종으로 감당하도록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 5절.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에 불면 백성들도 큰 소리로 외쳐 부르라 명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되면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만약 성벽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은 정말 바보가 되는 것이고, 앞으로의 모든 전쟁의 승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기에 가능한 이 전략은 백전백승의 전략이고, 순종만하면 어떠한 대적도 무너뜨릴 수 있는 필승의 전략이었습니다.
3) 말씀대로 순종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 6절.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제사장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언약궤를 메고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가라 하고” => 여덟명의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그 앞으로 일곱 명의 제사장들이 양뿔로 만든 나팔을 하나씩 잡고 나아갈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나팔을 마지막에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준비하고 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다 갖추고 여리고성 주위를 행진하게 하는 것입니다.
- 7절. “또 백성에게 이르되 나아가서 그 성을 돌되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나아갈지니라 하니라” => 백성들에게도 무장한 자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함께 행진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는 여호와의 궤가 맨 앞에서 나아가 물을 갈랐는데, 이번에는 여호와의 궤가 중간에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 8절.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 백성들 중에 이게 무슨 전쟁이냐? 이상하게 여기며 불평하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전쟁을 위해서 모든 준비를 하고 왔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우습게 여겨졌을 수도 있으나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잠잠하고 모두가 다 순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온전히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얻게 하시는 방식입니다.
- 9절.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 무장한 자들이 나팔 부는 제사장들을 호위하면서 행진했습니다. 여호와의 궤 뒤에서도 무장한 자들이 따르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했습니다. 이러한 행진의 모습을 보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리고 성의 백성들은 기묘한 긴장이 흐르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리고성의 왕은 성문을 굳게 걸어 닫고 성벽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면서 처음에는 비웃었을지 모르지만 더욱 깊은 두려움으로 빠져들게 되었을 것입니다.
- 10절.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신호에 반응할 것을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신호에 반응해야지 엉뚱한 때에 반응하면 여리고성 함락작전은 망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장군이 지휘하고는 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렇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 11절.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 여리고성 함락작전의 핵심은 백성이나 무장한 자, 혹은 나팔을 분 제사장들이 핵심이 아니라 여호와의 궤가 핵심이었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중심으로 여리고성을 돈 이스라엘은 길갈의 진영으로 돌아와 여리고성 함락작전의 첫날밤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한 일은 조용히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불평하거나 떠드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침묵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며 잠자는 것이었습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사람으로서는 나올 수 없는 기묘한 전략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전략의 핵심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결코 어떤 사람도 어느 무엇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수종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 정복전쟁을 하라고 하시면서 사실은 자신이 다 일하고 계십니다. 견고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이 힘으로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방식을 제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공략하겠다고 했다면 그들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2) 언약궤는 여리고성을 도는 행진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행진의 모습이었습니다. 앞과 뒤에서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그 중심에 당당하게 행진을 하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상상해 봅니다. 우주의 중심이 이 시간 이곳에 집중되어 운행되고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이 그렇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3) 백성들은 소곤거리지도 않고 침묵을 지켜야 했습니다. 불평도, 섣부른 환호도 모두 잠재우고 다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침묵하며 따라야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순간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때론 필수적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에 불평이 없어야 하고, 또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 어떤 자랑질도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섣부른 기쁨을 노래함도 자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로써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과정을 통하여 보다 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숙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훈련을 강도높게 이스라엘 모든 백성 남녀노소가 다 동참하여 받았던 것입니다.
적용 :
1)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지혜로 측량할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의 전략은 “말씀대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백성들은 또한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이 프로세스가 이스라엘의 승리를 거두는 조건이었고, 또 패하게 되는 조건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시기까지의 시간에서 침묵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러한 훈련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250여만의 무리들, 60만의 장정들이 조용히 숨죽이며 일주일의 시간을 보낼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이상해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며, 침묵하여 그 과정을 보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침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3) 주님이 말씀하시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지혜이고 또 은혜임을 믿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