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표결을 앞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바라보는 재계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2004년과 2016년 대통령 탄핵정국을 겪으며 얻은 학습효과부터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이전과는 대내외 경제상황이 달라 걱정이 많기 때문이다.
재계는 어느 때보다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형 악재가 덮친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 달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시작되면 글로벌 정세는 예측 불가능하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높은 관세를 앞세운 통상정책을 예고하고 있지만,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은 직격탄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내수도 좋지 않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1.8%로 0.4%포인트나 낮췄다. 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 국내 500대 기업(매출액 기준)의 68%는 내년 투자계획이 없거나 미정인 상황이다(한경협 조사). 국내외 경제전망이 부정적(33.3%)이고 국내 투자여건이 악화(20%)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상계엄 사태와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돌발 변수까지 발생하면서 기업들은 '시계 제로'라고 호소하고 있다.
당장 생산이 중단되거나 수주가 취소되지는 않겠지만 신규 계약 수주에 미치는 마이너스 영향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생산거점을 통해 지역별 공급망을 관리하고 있어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미치는 당장의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장기화될 경우 기업이 해외에서 영업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계는 한시가 급한 산업정책이 무기한 연기된 듯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전까지 국회에서는 여야가 반도체 등 첨단산업 지원을 위한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지만 현재는 논의가 어려운 상황이다.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설비투자세액공제 기한도 2029년 말까지 연장하는 데 여야가 힘겹게 합의했지만 법안 통과가 무산될 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도 정부의 보조금으로 공장을 건설하는 등 반도체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각국 정부가 신속히 움직이고 있지만 우리는 탄핵 정국 들어 반도체 산업 지원 논의가 올스톱되는 등 경제산업 정책이 표류하게 됐다"고 우려했다.
석유화학업계도 고민이 깊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4월 석유화학업계와 함께 산업경쟁력 강화방안 협의체를 발족하고 준비를 진행해 왔다. 석유화학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 아래 산업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환율도 주목받고 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실장은 "국내 정유기업들은 원유를 전량 수입하기 때문에 환율이 떨어지면 손해와 환율 불안정의 영향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재계는 어떤 방향으로든 정국의 조속한 안정을 기대하고 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업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불확실성이지만 현재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모두 극대화된 상황"이라며 "어느 쪽이든 상황이 조기에 정리되는 것이 기업에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신용평가기관들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경우 신용등급 강등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피치는 6일(현지 시간) 한국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즉각 철회 이후 정치적 리스크는 앞으로 수개월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하거나 정치적 분열이 정책 집행, 경제 성과 또는 재정 관리를 훼손할 경우 신용등급 강등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기본 시나리오상 한국의 신용등급 'AA-/안정적'을 뒷받침하는 경제·대외 신용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피치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신속히 해결되면 성장 리스크는 완화되고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리스크를 상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