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 일이 아닙니다, 도종환 의원님 / 박민희
2009년 2월27일 티베트 설인 로사르의 셋째날, 타페이(롭상 따시)라는 승려가 사원 밖에서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이것을 시작으로 외부로 알려진 것만 159명의 티베트인들이 잇따라 분신했다. 처음엔 승려들이었지만, 유목민, 학생, 노동자, 예술가,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뒤를 이었다.
1950년 중국군이 ‘제국주의 압제로부터 해방’을 명분으로 티베트를 무력 점령하고, 강압 속에서 티베트 정부와 ‘평화해방 17개조 협의’를 맺었다. 강제 합병에 대한 저항이 확산되는 가운데 1959년 3월 달라이 라마를 지키기 위해 모여든 티베트인들을 중국군은 탱크를 동원해 진압했다. 티베트인 1만2천명이 숨졌고, 달라이 라마는 험준한 설산을 걸어서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이어진 학살, 문화대혁명의 정치적 탄압 등으로 1984년까지 120만명이 처형, 기아, 고문, 자살로 사망했다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통계도 있다.
티베트 작가 체링 외세르는 <불타는 티베트>(Tibet on fire)에서 그들이 살아온 일상을 이렇게 기록했다. 중국 당국은 승려들을 추방하고 사원들을 파괴하고, 승려들이 달라이 라마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도록 강요했다. 불심검문과 가택수색으로 달라이 라마 사진을 몰래 품고 있던 이들까지 색출해 감옥에 가뒀다. 대규모로 이주한 한족들은 ‘개발’과 ‘빈곤 퇴치’ 명목으로 목초지에서 유목민들을 몰아내고 광산 개발로 환경을 파괴하고, 경제적 이권을 독점했다. 티베트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는 강제동화 정책, 이웃을 서로 고발하게 하고 첨단기술로 옥죄는 삼엄한 감시가 계속된다. 이런 숨막히는 상황 속에서 70년 넘게 살아왔노라고.
티베트인들은 1959년, 1989년, 그리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계속 봉기를 일으켜 저항했지만, 중국의 군사력 앞에 계속 무너졌다. “티베트인들이 시위를 할 수 있는 실낱 같은 기회라도 있었다면, 분신에 의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체링은 썼다. 티베트인들은 고통과 슬픔을 알리기 위해, 존엄을 지키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분신할 수밖에 없었다고.
시진핑 시대 들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강조되면서 상황은 훨씬 엄혹해졌다. 지난 2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티베트에서 어린이들을 강제로 가족과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에 보내, 티베트어, 문화, 역사 교육을 금지하고 중국어로만 교육하는 강제동화 정책에 대해 우려하는 보고서를 냈다.
지난 16~18일 중국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 7명이 중국 정부가 주최한 ‘티베트 관광문화 국제박람회’에 참가해 축사까지 했다. 단장인 도종환 의원은 티베트 인권 탄압 논란에 대해 “그건 1951년, 195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도 의원은 2015년 동북아역사재단이 작성한 역사 지도가 ‘중국 동북공정, 식민사학 논리와 똑같다’고 비난하며 지도 발간까지 막았던 자칭 ‘역사 전문가’다. 한중관계를 위한 교류라면, 역사의 의미는 더욱 제대로 알고 가야 한다. ‘탄압은 70년 전에 끝났다’는 무지를 방패 삼아, 전태일 열사처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참혹한 현실을 알리려 한 티베트인들의 마음마저 짓밟지는 마시라.
박민희 <한겨레> 논설위원 minggu@hani.co.kr
등록 2023-06-25 13:36 수정 2023-06-2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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