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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장 칼럼(박신영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차장)
* '캐시미어 입은 늑대'의 자녀 교육법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떴다. ‘세계 최고 부자가 다섯 자녀를 오디션을 통해 럭셔리 제국 LVMH를 경영하게 하다’는 제목의 글이었다. 세계적인 명품 대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다섯 자녀를 후계자로 키우는 과정을 집중 조명하는 내용이다.
LVMH는 루이비통, 디올, 티파니, 불가리 등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4일 포브스가 발표한 ‘2023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은 재산 2110억달러(약 278조원)로 1위를 차지했다. 아르노 회장의 다섯 자녀 중 누가 승계자가 될지는 세계 투자자 및 기업가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WSJ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은 한 달에 한 번 자녀들과 함께 90분 동안 점심을 먹는다. 이 자리에서 태블릿PC로 준비한 토론 주제를 소리 내 읽은 뒤 다섯 자녀에게 돌아가며 의견을 묻는다. 주제는 주로 경영과 관련한 것이다. 프랑스 샴페인 포도밭부터 이탈리아의 핸드백 제조 공방에 이르기까지 LVMH의 무수한 브랜드 중 하나에 변화가 줄 때가 됐는지, 어떤 변화를 줘야 하는지 등을 묻는다.
아르노 회장의 이 같은 경영 교육은 최근 시작된 것은 아니다. 그는 자녀들이 어린 시절 수학을 가르치는 것부터 출장과 협상 자리에 자녀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까지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자신이 신임하는 임원을 자녀의 멘토로 둔 점도 눈에 띈다. 아르노 회장은 수십 년 동안 크리스찬디올을 이끌었던 시드니 톨레다노 등의 참모와 함께 회사를 경영했다. 아르노 회장의 장녀이자 최근 크리스찬디올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델핀 아르노는 톨레다노 밑에서 12년 동안 일했다.
업계에서는 아르노 회장이 이처럼 혹독하게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은 그가 이뤄낸 명품 제국을 경영하기가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아르노 회장은 럭셔리 기업에 대한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지금의 LVMH를 일궜다. 명품 트렌드를 읽는 능력과 기업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 등을 모두 섭렵한 사람으로 통한다. 경쟁 기업들이 그를 “캐시미어를 입은 늑대”라고 부르는 이유다.
아르노 회장의 자녀 교육을 다룬 기사를 보며 한국이라면 어땠을지 돌아보게 된다. 기업 창업자 집안의 승계 시점마다 떠들썩했던 상황들이 떠오른다. 후계자의 경영 능력을 검증하기보다 승계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아르노 회장은 능력에 따라 후계자를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주변 관계자들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이 ‘내 후계를 위해 아이들을 준비시켜야 한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누가 됐든 승계 작업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엔 절감한 듯 보인다. 미사일 제조업체 마트라와 출판사 하셰트 등을 거느렸던 친구 장뤼크 라가르데르가 2003년 갑작스레 숨진 다음,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기업을 매각하거나 포기하는 장면에서 충격을 받아서다. 승계를 준비하는 한국의 기업인도, 그들을 삐딱하게만 바라보는 사람들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