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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야호♬ (lil_ili@hanmail.net)
친정 ★ 야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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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법칙>
법칙 38. 구원과 칼날.
“그럼 저희 초하 잘 좀 부탁드려요. 살림은 잘하니까 걱정 없으실 거에요. 초하야, 나 간다! 촬영장에서 보자규!”
쌍년.
내가 이름 한 번 불러볼 틈도 없이 다솔이는 후다닥 짐을 챙겨 유진태 감독의 집을 벗어나버렸다. 남아있는 것은 딱딱하게 굳은
자세로 소파에 앉아 식은 땀만 줄줄 흘리는 나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인 채 현관 앞에 서있는 유진태 감독 뿐이었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전 영화사에서 지내는 게…”
“내가 싫다니까요.”
가철 오빠가 길길이 날뛰며 다솔이를 불러들인 것 보면 독고산하도 내가 유진태 감독 집에서 지내는 걸 탐탁찮게 여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독고산하를 좋아한다는 여자네 집에 독고산하를 들여보내 놓고 내가 발 뻗고 잘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솔이가 함께 있었더라면 그래도 나란히 지내니까 덜 했을 텐데 졸지에 혼자 남겨지고 나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하지만 어렵사리 꺼낸 내 말을 단호하게 가로지르는 것은 유진태 감독의 중저음 목소리였다.
“하지만 산하도 분명 싫어할 것 같고…”
“초하씨, 아까도 말했지만 난 내 영화 스탭이 불편한 곳에서 지내는 게 싫어요. 물론 다른 스탭이 아니라 초하씨니까 마음이 더
쓰이는 것도 사실이긴 해요. 그래도 영화사보단 감독 집이 더 낫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지만 기자들도 있고, 아무래도 감독님한테 폐 끼치는 것 같아서 좀…”
“영화사에서 지내면 기자들이 안갈 것 같아요? 더 쉽게 드나들 수 있어요. 차라리 여긴 경비가 삼엄해서 기자들이 쉽게 드나들지
못해요.”
유진태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들어올 때보니 누가 고급스러운 동네 아니랄까봐 경비가 심하긴 하더라.
같은 한국에 살면서 누군 이런 집에 살고 누군 비 쫄쫄 새는 집에 산다는 사실이 배알 꼴려 배 아프기도 했으니까.
아니 독고산하도 그렇고 유진태 감독도 그렇고, 내 주위엔 왜 자꾸 부자들이 득실대는 거야? 에이씨.
부자랑 친하면 콩고물 하나라도 떨어질까 싶어 처음엔 기분 좋았지만 자꾸 생각할 수록 배가 살살 아픈 게, 난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픈 전형적인 한국인이 맞긴 맞나보다.
“그래도 만약 산하가 싫어한다면 여기서는 못 지내요.”
“아마 산하씨는 싫어한다고 못할 거에요.”
“네?”
약간은 웃음기를 머금으며 내뱉어진 유진태 감독의 말에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며 되묻자 그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바로 전화하려는 건가 싶어 ‘아, 아니 저기요…’하고 유진태 감독을 불러보았으나 이미 유진태 감독은 통화버튼을 누른 후였다.
윽.
“아, 산하씨. 유 감독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죠?”
바꿔 달라 손을 뻗어보았으나 유진태 감독은 아예 직접 산하와 통화를 할 생각인지 내 손을 간단하게 무시해버렸다.
허공에 둥둥 떠버린 민망한 손 끝이여.
“지금 초하씨가 우리 집에 있는데 아무래도 영화사나 다른 친구 집보단 여기가 더 안전할 것 같아서요. 저희 집이 기자들이 잘
못들어오는 동네거든요.”
산하가 무어라 말을 내뱉고 있는 걸까.
앉아있는 나와 서있는 유진태 감독의 거리 때문에 산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무어라 길게 말을 내뱉고 있는 건지
유진태 감독은 한동안 별다른 말 없이 산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이내 유진태 감독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깐만요-’하고 말을 내뱉은 뒤 내게 핸드폰을 건넸다.
“에?”
“받아봐요. 산하씨가 바꿔달라고 하네.”
얼떨결에 핸드폰을 받아들고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유진태 감독을 쳐다보자 유진태 감독은 별다른 첨부설명 없이 어깨만
으쓱거리고는 부엌으로 걸음을 옮겼다.
설명은 해주고 가야지!
“아니, 저기 감독님…”
“초하씨 커피가 좋아요? 아니면 녹차가 좋아요? 우리 집에 그거 밖에 없는데.”
“에? 그럼 전 커피로… 아, 아니 이게 아니고…”
“받아봐요. 초하씨랑 직접 통화하고 싶다고 하니까.”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까닥 삼켜지는게 나답지 않게 긴장까지 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잖아! 나도 여잔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푼수처럼 칠렐레 팔렐레 긴장 안하면 그게 더 웃기잖아!
“산하야, 나 초하…”
- 싫어.
“에?”
내가 싫다고?
- 나 진짜 네가 유진태 감독네 집에 있는 거 싫은데.
“아, 그거…”
이 새끼가 앞자르고 뒤자르고 다짜고짜 핵심만 말하는 건 어디서 배워온 거야? 난 또 나 싫다는 줄 알고 식겁했잖니.
깜짝 놀라 잔뜩 움츠리고 있다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살짝 풀자 부엌에서 힐끔 날 쳐다보던 유진태 감독이 가볍게
웃는 웃음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존경하는 유진태 감독이라 하더라도 내 모습을 보고 웃다니, 얄미워지는군.
“네가 싫다면 나도 굳이 여기서…”
- 근데 참을게.
“에?”
- 유진태 감독 말이 맞아. 영화사나 다른 친구집보단 유진태 감독 집에 있는 게 너한테도 더 좋을 거야.
“…….”
- 다른 집에 신세지고 있는데 기자들 들이닥치면 너도 난감하고 친구도 난감하잖아. 유진태 감독 집이라면 일단은 기자들이
함부로 못들어가는 동네이기도 하고, 만약 기자들이 들이닥친다고 해도 유진태 감독은 그걸 각오하고 널 자기 집에서 지내게 했을
테니까 부담이 덜하잖아.
산하가 내뱉는 말은 모두 머리로 납득되는 말이지만 어딘가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살짝 핀트가 어긋나 묘하게 뒤틀어진 기분은… 나, 역시 독고산하가 질투해주길 바라고 있었던 걸까? 강제로라도 소리치며 내게
당장 거기서 나오라고 얘기해주길 기대하고 있었던 걸까?
…상황이 상황인데도 어줍잖은 기대를 하고 있던 내가 우스워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참, 이거 생각보다 기분 꽤 나쁜데?
- 민초하, 듣고 있어?
“응? 응, 듣고 있었지 그럼 뭐하고 있었을까봐. 알았어, 여기서 지낼게. 다행이다, 네가 싫어하지 않아…”
- 얘기 안듣고 뭐했어. 싫다니까.
말을 가로지르고 내뱉어지는 독고산하의 목소리엔 약간의 웃음기가 묻어있었다. 장난스러운, 하지만 약간은 피곤함이 배어있는.
- 최대한 빨리 네가 지낼 수 있는 집 구할 거야. 그동안만 유진태 감독 집에서 지내. 그냥 호텔에서 며칠 묵는다고 생각해.
“뭐? 그게 뭐야.”
- 유진태 감독은 벨보이다 생각하고, 아니면 집사라고 생각하든지.
“야, 신세지는 마당에 그게 무슨…”
- 절대로 남자라고 생각하지마. 알았어?
“에?”
얘 지금… 나한테 투정부리는 거 맞지?
- 이게 멍청해서 내 말이나 제대로 알아들었나 모르겠네. 아무튼 최대한 빨리 집 구해볼 테니까 짐 풀지말고 지내. 데리러 갔는데
짐 풀러놓고 ‘그냥 여기서 지낼래.’이러면 너랑 나랑 신문 1면에 나는 거야. 치정 관계에 얽힌 살인 사건으로.
“뭐? 야, 그게 말이 되냐!”
- 멍청아, 말이 되면 그게 사랑이냐?
그건… 그렇지.
순간 ‘아, 이 녀석 되게 불안해 하고 있네. 질투하네. 걱정하네.’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가슴이
따듯하게 물든다는 말, 뭔지 잘 몰랐는데 어렴풋하게 실감이 나는 것 같다.
사랑 받고 있구나, 나 독고산하한테 굉장히 소중한 존재구나 하는 생각에 살짝 민망한 기분이 들어 ‘에… 아니, 뭐…’하고 말을
얼버무리자 핸드폰 너머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 멍청이.
“자꾸 멍청이라고 하지 마. 듣는 멍청이 기분 나빠 짜식아.”
- 지켜줄게.
“그래, 지켜주… 뭐?”
얘가 진짜 뭘 잘못 먹었나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깜짝 놀라 핸드폰을 얼굴에서 떼어 내가 통화하는 사람이 독고산하가 맞나 이름을 확인하니 독고산하가 맞다. 얼레리오?
어안이 벙벙해서 다시 핸드폰을 붙들고 ‘뭐?’하고 되묻자 부드러우면서도 또렷하게 들리는 한줄기 목소리가 가슴을 울렸다.
- 네가 날 구원한 것처럼.
*
고소한 밥 냄새에 무거운 눈꺼플을 들어올리자 새하얀 벽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아 여기가 어디지, 천국인가 하는 생각에
천국이니까 늦잠자도 되겠지 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렇게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을까, 몸이 느끼기엔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내가 천국에 왔을 리 없잖아?’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깜짝 놀라 잠이 싹 달아남과 동시에 나도 놀랄 정도로 자리에서 팍- 튕겨져 일어났다.
“뭐지?”
어안이 벙벙한 채 그 자리에 멈춰있기를 잠시, 고소한 밥 냄새가 콧속을 강타하며 뇌로 들어와 ‘배고프지?’하고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어댈 때쯤, 이곳이 유진태 감독의 집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아, 그래 어제 이곳에 왔지. 독고산하와 스캔들이 터지고 일단은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아, 머리가 지끈거리네.
“어? 초하씨 벌써 일어났어요?”
“에? 네. 잘 주무셨어요?”
“그럼요, 우리 집인데. 초하씨는 잘 잤어요?”
“…네.”
이럴 때 원래 밤새 뒤척이며 고민해야하는게 정상인데 난… 정말 잘 잤다.
코까지 골며 잔 것은 아닐까 싶어 힐끔 유진태 감독의 눈치를 살피며 방 밖으로 나왔으나 유진태 감독은 그저 내 대답에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어제, 유진태 감독의 집에서 당분간만 지내라던 독고산하가 ‘그럼 내일 아침에 봐.’하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고나서 한참을 울었다.
쪽팔리게도.
“초하씨 못 먹는 음식 없죠?”
“네? 네.”
지켜주겠다는 말이 왜그렇게 울컥이며 가슴을 울렸을까.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든 순간, 아차 하고 유진태 감독을 쳐다보았다.
“음? 왜요? 뭐 못먹는 음식 있어요?”
“아니, 그게… 저 오늘 촬영장에서 산하랑 아침 식사 같이 하기로 해서… 이거 못먹는데.”
어제 말하고 잔다는 게 우느라 정신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한 유진태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주뼛거리며 말을 열자 유진태 감독은 잠시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빙긋 웃었다.
“오늘 산하씨 못올 걸요.”
“네?”
“먹어두는 게 좋을텐데, 정말 괜찮아요?”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은 귓등으로 흘려들었나.
“네. 산하랑 먹기로 했어요. 오늘 촬영장에서 보자고 했으니까.”
“흐음, 그럼 별수 없죠. 도시락으로 싸둬야겠네.”
“죄송해요. 기껏 준비해주셨는데…….”
“괜찮아요. 이따 먹으면 되니까. 그보다 초하씨 얼른 씻어요, 이러다 늦겠어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는 감고 가야겠지 싶어 화장실로 들어와 샤워기 물을 틀었다. 적당히 따듯한
물이 시원스레 쏟아지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머리를 감는 것이 무척이나 귀찮아졌다.
…어차피 기자들 싫든 좋든 만나야 할 텐데 그럼 모자 쓰고 나가야 할 거고…… 아, 귀찮다. 그냥 머리 감지 말아야지.
“아, 칫솔.”
칫솔을 꺼내오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부랴부랴 방으로 돌아가 가방을 뒤적였다. 다솔이가 챙겼으니 꽤 꼼꼼하게 챙겼을거라
생각하고 가방을 열었는데 웬걸, 칫솔이 저멀리 안드로메다로 사라졌는지 도통 보이질 않았다.
「다솔아, 칫솔 챙겼어?」
결국 침대에 걸터앉아 다솔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전화를 할까 했지만 내 핸드폰 요금이 아깝기도 했고 핸드폰을 달고 사는
다솔이라면 바로 문자를 날릴테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에 걸터 앉아 콧노래를 막 흥얼거리려던 찰나, 핸드폰이 가볍게 진동하며 문자 도착 소식을 알렸다.
「…응. 내 가방에.」
죽여버릴거야 너.
네 가방에 챙겼으면서 어제 밤에 지 가방을 홀라당 챙겨들고 튀었다 이거냐? 내 칫솔 정도는 주고가야지!
당장 입에서 불을 뿜어낼 것처럼 울컥이며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다솔이가 뭔 죄랴, 자기도 황가철씨가 길길이 날뛰며 당장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할 줄 몰랐을 텐데.
결국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 폴더를 닫고 방 밖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다 씻었어요? 씻는 소리 안나던데.”
유진태 감독이 정성스레 차렸던 아침 상을 도시락 통에 옮겨 담으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쪽팔리게 칫솔 안가지고 왔다고
할 수도 없고,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칠칠맞은 캐릭터나 하고 있을 때냐고.
아 생각할수록 괘씸하네, 윤다솔 네이년.
나중에 촬영장에서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다 생각하며 이를 빠득 갈다가 조심스레 유진태 감독을 향해 입을 열었다.
“…칫솔을 다솔이가 가져가버려서요. 혹시 남는 칫솔 있으신가요.”
힐끔 유진태 감독의 얼굴을 살피니 ‘어라?’하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게… 난감한 눈치 같은데?
“아, 아니 혹시 없으시면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손가락에 치약 묻혀서 양치해본 적 있어요! 그거 꽤 할만한…”
“제 방에 여유분 칫솔 있어요.”
“에?”
“그냥 주뼛거리면서 눈치보는 초하씨가 꽤 귀여워보여서 잠깐 넋을 잃은거니까 오해하지 말아요.”
뭐…요?
“네?”
그게 더 어이없는 말인걸 모르는 건가 싶어 깜짝 놀라 유진태 감독을 쳐다보자 유진태 감독은 가볍게 웃는 얼굴로 날 쳐다보더니
자신의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첫번째 서랍에 여유분 칫솔 있어요. 꺼내서 써요.”
그리고는 또 여유로운 표정으로 도시락 싸는 것에 열중하는 유진태 감독을 보고 있노라니 이젠 어이가 없다 못해 상대해서
무얼하랴 싶은게 결국 내가 졌소, 하고 유진태 감독의 방으로 들어갔다.
외간 남자 방에 이렇게 함부로 덥썩덥썩 들어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 주인이 들어가라고 했으니까.
“저건 벨보이다, 저건 집사다.”
독고산하가 말한 대로 생각하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꽤 고급스러운 서랍장에 흠칫-거리며 다가가 첫번째
서랍을 조심스럽게 열자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꽤 큰 감동이었다.
나와 다솔이, 즉 여자 둘이 사는 우리 집도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 못하는데 유진태 감독 되게 깔끔하구나.
서랍 안에 들어있는 칫솔 세트중 노란색을 집어들고 방을 나오려는 순간 예쁜 액자에 걸려 방 한면을 예쁘게 꾸미고 있는 사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 유진태 감독인가?”
액자에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유진태 감독이라기엔 뭐랄까… 이건 좀 지나치게…….
“제 동생이에요. 그때 지갑에서 봤던.”
“어? 아, 죄송해요. 훔쳐보려던 건 아니었는데 감독님 사진인 줄 알고…”
“괜찮아요. 보라고 걸어놓은 사진인데요 뭘.”
어쩐지 유진태 감독이라기엔 너무 앙증맞다고 생각했어.
벽을 장식하고 있는 사진은 어릴 적 사진부터 내 또래로 성장한 모습까지 쭉 담고 있었다. 증명사진으로만 볼 땐 몰랐는데 꽤나
웃는 모습이 귀여운게 애교가 많을 것 같은 여자네.
“근데 진짜 안닮았네요, 감독님하고.”
“네, 그래서 어릴 땐 어머니가 ‘둘 중 한 명은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누구게?’하고 장난치면 둘 다 울어버리곤 했어요.”
“하하, 정말요? 하긴 분위기는 어떨지 모르지만 외모는 정말 안닮았어요. 분위기는 좀 닮았어요? 어때요?”
내 물음에 유진태 감독은 잠깐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더니 곧 넉살 좋게 웃으며 ‘글쎄요-’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거리는
바람에 결국 답을 듣지 못했다.
하긴, 자기 입으로 ‘제 분위기는 이러저러해서 제 동생은 이러저러 하고…’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얘기하는 것도 우습긴 하지.
게다가 유진태 감독 성격이라면 되도록 자기 자랑 안하는 축에 끼는 사람이니까. (간혹 영화에 관해선 자랑을 할 때도 있지만)
“스튜어디스라고 했죠? 손님한테 되게 친절한 승무원일 것 같다. 히히.”
다정다감하고 부드러울 것 같은 분위기가 애교있는 눈웃음과 맞물려 꼭 막내동생 같은 이미지를 풍기고 있었다.
난 외동 딸인데다 엄마가 교도소를 꽤나 자주 들락날락 거리는 탓에 외롭게 자란 편이라서 좀 부러운 기분이 들었다.
나도 이런 동생이 있었더라면 잘해줬을 텐데.
“나중에 만나게 해줄 수 있어요? 나 어쩐지 감독님 동생이랑 되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그래요?”
“네. 어쩐지 성격이 잘 맞을 것 같아요.”
“그 녀석이 들으면 기뻐하겠네요. 아마… 초하씨랑 동갑일 걸요?”
“네? 정말? 우와, 디게 어려보이는데. 감독님 동생 진짜 동안이네요. 우와, 부럽다.”
나보다도 동생인 줄 알았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칫솔을 챙겨들고 유진태 감독을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아무렴 어때 같은 나이 친구여도 동생 같은 친구가 있고
언니 같은 친구가 있으니까 동생 같은 친구로 사귀면 되는 걸.
“아무튼 나중에 꼭 소개 시켜주셔야 해요. 알았죠?”
“네, 그럴게요.”
빙긋- 웃는 유진태 감독을 보며 ‘나 또 친구 하나 늘었네. 윤다솔 따윈 버려버리겠어.’라는 생각과 함께 키득키득 웃었다.
다솔이가 알면 머리 껍데기를 벗겨버리겠다며 내게 덤벼들겠지만.
룰라랄라 화장실로 들어와 칫솔에 치약을 묻혀 입에 넣었다. 양치질을 시작함과 동시에 허기진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울렸다.
“…미안하다, 내 위야. 이따 독고산하 만나면 실컷 들여보내줄테니 조금만 참으렴.”
유진태 감독이 꽤 정성들여 만든 아침 식사가 콧속을 끊임없이 찔러대고 뱃속에선 걸신 들린 위가 배고프다 울부짖었지만
악착같이 양치질에 집중했다.
이따 독고산하 만나면 왕창 먹어주겠어-라는 일념 하나로.
*
“민초하씨! 스캔들 영상에 나온 여성이 민초하씨 본인이 맞습니까? 독고산하씨와는 언제부터 연인 관계가 되셨습니까?”
“촬영 감독과 배우로 만나서 사랑을 싹트신 겁니까? 영상에는 그 전부터 만난 것이라던데 확인해주시죠!”
“독고산하씨와는 연락하셨습니까? 독고산하씨는 뭐라고 하던가요?”
“어느 분이 먼저 고백하셨습니까? 전 레이디 심플지의 아무개입니다. 인터뷰 하실 생각이 있다면 저희와 가장 먼저…”
“이봐요! 우리가 먼저 하려고 했다구요! 민초하씨, 민초하씨 인터뷰를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이놈이건 저놈이건 시끄러워 못살겠네.
그나마 유진태 감독의 집에서 나올 땐 꽤나 경비가 삼엄한 곳이라서 ‘흐음 별것 아닌데?’하며 여유롭게 기자 두어명정도만
재치고 나왔는데 촬영장에 들어가려 입구에 차를 세우니 이건 정말 심각하다.
소란스러운건 둘째치고 내 머리카라을 잡아당기질 않나, 옷을 잡아당기질 않나 마음대로 주머니에 명함을 쑤셔넣질 않나…….
“독고산하씨 측에서 얘기 들으십시요, 저흰 해드릴 얘기가 없습니다.”
“유진태 감독님! 감독님 맞으시죠? 감독님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촬영 감독이나 배우 교체설이 있던데 정말 입니까?”
“독고산하씨와는 연락을 하셨나요?”
날 살짝 감싸며 촬영장으로 걸음을 옮기던 유진태 감독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어지간하면 짜증내는 얼굴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미간에 주름까지 잡으며 짜증난 걸 팍팍 드러낼 정도면 장난이 아니란 소리겠지.
스캔들 여파가 클 줄은 알았지만 나를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끼치니 여간 미안한 게 아니다.
…대체 연애 한 번 하는게 왜이렇게 힘든건지.
“산하 오빠 사랑해요! 우린 오빠를 믿어요!”
“어디서 우리 산하 오빠한테 꼬리를 쳐? 꺼져버려!”
“산하 오빠가 연애하는 사람한테 왜 욕이야? 사랑하면 지켜봐줘야지!”
그래, 암 그렇고 말고.
기자들 물리쳤다 싶으면 촬영장 근처에서 독고산하 얼굴이나 볼 수 있을까 싶어 서성이던 팬들이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
현수막은 기본이요, 날 협박하기 위한 건지 빨간 물감 묻힌 손수건을 흔들어보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게중에 그마나 착한 척 하려는건지, 진심인지 모를 아이들 몇몇이 ‘산하 오빠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라는 말을 하며
날 옹호했지만 그걸 일일이 찾아가 ‘고마워’라고 말할 겨를따윈 없었다.
“진짜 전쟁이네, 전쟁. 촬영 감독님 괜찮아요?”
“난 막 들어오려는데 몰래카메라가 든 가방 쥐어주면서 촬영 해주면 돈 주겠다고 하는 거 있지? 진짜 무섭더라.”
“정말? 그 사람들 장난 아니네. 감독님 우리 몰래카메라 수색이라도 해봐야하는 거 아니에요?”
“민초하 감독 아느냐고 코치코치 캐묻는 건 또 어떻고? 독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기자가 괜히 사람 하나 죽인다는 말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 우호적이면 한 없이 우호적이어도 이럴 땐 진짜 좀비 같아.”
촬영장에 들어오자마자 어제 스캔들 소식을 접하고, 오늘 아침 기자들에게 시달린 스탭들이 우르르 나와 유진태 감독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기자들에게 이리 붙들리고 저리 붙들리고 한바탕 난리부르스도 아니었기에 대충 손만 훠이 젓고 구석으로 주뼛주뼛
걸어가 철푸덕 엎드렸다.
아, 돌아버리겠네. 앞으로 한동안 계속 이럴 거 아냐? 진짜 미친 거 아냐?
“몰래카메라까지 나올 지경이니 좀 찜찜하긴해도 짐은 모두 격리 보관 해야겠네. 다들 이해 좀 해줘요. 그렇다고 내가 여러분
짐을 일일이 열어보고 확인할 순 없으니까. 괜찮죠?”
날 힐끔 쳐다본 유진태 감독이 안쓰러운 눈빛을 잠시 보이는가 싶더니 곧바로 고개를 돌려 스탭들을 향해 말했다.
스탭들은 그다지 큰 불만은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들의 짐을 건네주었다. 주요 스탭들은 물론이고 매니저와 코디까지
짐을 건넸고, 단 한컷 밖에 촬영하지 않는 엑스트라 배우들도 모두 짐을 건넸다.
일을 번거롭게 만들고 이리저리 시달리게 해서 그들 앞에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없었기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에 앉아
‘내가 죽일 년이지, 죽일 년이야.’를 중얼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옆으로 다가와 앉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감독님, 이거 드세요.”
“어? 아, 고마워.”
촬영팀 퍼스트였다. 이새끼 나 촬영 감독하는 거 길길이 날뛰며 반대하더니 내가 좀 불쌍해보였나, 이렇게 음료수까지 건네주고.
얼떨결에 그가 건넨 음료수를 받아들고 물그러미 그를 쳐다보자 퍼스트가 희미하게 웃는 얼굴로 날 쳐다보며 말했다.
“저 좋아해요.”
“에?”
뭐?
“감독님이 촬영하는 거 좋아한다구요. 처음엔 진짜 싫었는데, 촬영하는 거 보고 알았어요. ‘아, 저 사람은 촬영하는 걸 정말로
좋아하고 있구나. 무척이나 즐거워하고 있어.’라구요. 물론 제대로 된 촬영은 한 번 밖에 못했지만.”
“아, 난 또 날 좋아한다는 줄 알았네.”
“네? 설마요, 저 지금도 감독님은 무척 싫어하는데.”
“나도 알아, 이 짜샤.”
여기 독고산하처럼 앞자르고 뒤자르고 핵심만 말하는 분 또 계시네. 하마터면 또 헛다리 짚고 벽에 달라붙어 ‘왜이러세요.’를
외칠 뻔 했구나.
머쓱함에 콧잔등을 긁적이며 퍼스트를 쳐다보자 그는 가볍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지 마세요.”
“응?”
“기자들이요. 좀비떼처럼 덤벼들지만 우리가 악착같이 지켜드릴 테니까 영화 촬영에 전념해주세요.”
“졸지에 보디가드가 생겼네.”
“네, 그러니까 감독님은 운 좋은 줄 아세요. 저희 같은 촬영팀 만나기 쉬운 줄 아세요?”
“어렵지, 암 어렵고 말고. 대놓고 반대하는 촬영팀 어디가서 구경하려나 몰라.”
“그땐 뭐… 촬영을 못하는 줄 알았으니까 그랬죠. 아무튼 힘내시라구요. 절대 지면 안돼요. 독고산하랑 연애를 하는지 안하는지는
관심 없어요. 그건 뭐 감독님하고 독고산하 일이니까. 다만 촬영은 꼭 끝까지 책임지셔야 해요. 중간에 꼬리 말고 도망치지 말고.”
“내가 미쳤냐? 나 천하의 민초하야. 얘가 날 뭘로 보고…”
“배우가 살아 숨쉬는 영화,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예쁘게도 싱긋 웃고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탁탁 털고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 퍼스트 녀석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음료수를 가볍게 원샷했다.
이온음료라 목이 따갑거나 눈물이 찌잉-하고 올라오는 게 없어서 원샷은 생각보다 쉬웠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탁탁 털고 기합을 있는 힘껏 주었다. 그래, 날 욕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퍼스트처럼 어딘가엔
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힘내자.
…이건 처음부터 내가 각오했던 내 몫이니까.
“오늘 촬영은 씬 17부터 시작합니다. 모두 준비해주세요!”
그래, 나도 힘내서 촬영하자! 내 영상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잖아. 배우가 살아 숨쉬는 영상을…… 응? 잠깐, 뭐라고?
“씬 17이라니? 오늘 씬 23 촬영할 차례 아냐? 일정표 체크해봐.”
조감독이 외친 말에 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조감독이 꽤 난처한 얼굴로 날 쳐다보더니
쪼르르 달려와 조용히 속삭였다.
“그게… 오늘 아침에 변경됐어요.”
“뭐? 그럼 미리 얘길 했어야 할 거 아냐! 어떤 멍청이가 그따위로 스케줄을 조정해? 촬영팀에서 미리 씬설계 하는 거 몰라?
기껏 오늘 촬영분에 맞춰서 해놨더니 지금 뭐라는 거야, 얘가?”
“죄송해요, 저도 조금 전에 연락 받아서. 죄송해요!”
“어떤 미친 놈이야? 누가 이따위로…”
“독고산하에요.”
멋대로 바뀐 촬영 일정표에 깜짝 놀라 길길이 날뛰려는 찰나, 내 어깨를 가만히 누르며 나지막이 말을 끊고 들어오는 목소리는
유진태 감독의 것이었다.
느닷없는 유진태 감독의 도움에 조감독은 그제야 살았다, 하는 표정으로 날 힐끔 쳐다보더니 후다닥 다른 곳으로 달아나버렸고
난 혼자 씩씩거리는 콧김을 뿜으며 유진태 감독을 쳐다보았다.
“네? 독고산하요? 그 자식 그렇게 개념없는 놈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산하씨 소속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분간 입장정리하고 기자회견 준비할 때까지만 스케줄을 조정해달라구요.”
그래, 아무 해명도 없이 당장 촬영장으로 날아와 기자들 상대하고 팬들 상대하고… 그럴 순 없겠지. 게다가 촬영장에 오면 나와
만나는 건 당연한 일이니 소속사 측에선 잔뜩 날이 섰을 수밖에.
“그래도 그렇죠. 이렇게 일방적으로 스케줄을 바꾸는 게 어디있어요?”
“미안해요, 씬 설계할 시간은 충분히 줄게요. 당분간은 독고산하 촬영 없이 김수옥씨 위주로 촬영 하게 될 거에요. 지금 스케줄을
조정중이니까 다시 촬영일정표 나오면 얘기해줄게요.”
“…그럼 오늘 걔, 아니 독고산하 안와요?”
나지막이 내뱉어진 내 물음에 유진태 감독은 난처한 얼굴로 날 쳐다보더니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져나와 미간을 찌푸리며 머리를 쓸어넘기는데 유진태 감독이 가만히 내 손을 잡더니 어디론가 날 이끌고 갔다.
“가, 감독님 저 지금 씬 설계…”
“챙겨가요. 아침 못먹었잖아요. 역시 도시락으로 챙겨오길 잘했죠? 집에서 먹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보온 도시락 통.
유진태 감독은 가만히 내게 그걸 건네더니 ‘촬영은 한 시간 후에 시작할 것 같네요.’라고 말하고는 가볍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촬영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탭들과 배우들 사이에 멍청하게 가만히 서서 도시락 통을 든 채 허공을 쳐다보았다.
정말 괜찮다고, 난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독고산하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오한이 서렸다.
울컥이며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려는 울음에 ‘이대로 질 순 없어.’라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울음을 삼켜보지만 눈가에 가득 고이는
뿌연 액체들까진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
“…짜, 짜증나게 눈에 먼지가 왜이렇게…… 촬영장엔 먼지가 뭐이렇게 많고 지랄이야!”
혼자 히스테릭하게 눈을 벅벅 문지르며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독고산하는 이미 어렴풋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스캔들이
터진 순간 한동안은 나와 만날 수 없다는 걸 짐작했겠지. 유진태 감독도 그런 것 같고.
나만 멍청하게 같이 아침 먹을거라며 들떠선…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줄도 모르고, 독고산하 독고산하 노래를 불러댔으니.
내 한심함에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해지고 미워졌다. 괜히 억울한 마음에 짜증까지 울컥 치미는 찰나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이
진동했다.
“뭐야?”
못만나게 된 것이 미안해진 독고산하가 연락했나.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쳐다보니 모르는 번호로 날아온 문자였다. 뭐야? 누구야?
「야홍신문 초미남 기자입니다. 시간 되신다면 인터뷰……」
「월간마녀입니다. 저희 잡지와 인터뷰를 가장 먼저 하신다면……」
…이, 이게 다 뭐야!
한통만 온 줄 알았던 문자는 내가 느끼지 못한 새에 꽤 많이 왔는지 벌써 열 통을 넘긴 상태였고 대부분, 아니 전부다가 나와
인터뷰하길 원하는 신문이나 잡지, 티비 프로그램에서 보낸 것이었다.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오싹한 소름이 돋아 문자를 전부 삭제하려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핸드폰이 또 진동하더니 전화가 왔음을 알렸다.
모르는 번호였기에 받지 않으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버튼을 눌러버린 탓에 자연스럽게 전화가 연결됐다.
“…여보세…”
- 민초하씨? 민초하씨죠! 저 문자 보낸 야홍신문의…
“안합니다.”
마음 같아선 ‘끊어 이 개자식아! 이 고자새끼! 죽여버릴거야!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라고 쏘아붙여주고 싶었지만 나도 꽤나
방송국에서 눈치코치 쌓으며 일한 여자라 이게 녹음중이란 것쯤은 간단하게 알 수 있었다.
나중에 텔레비전을 통해 내가 욕하는 음성을 듣고 싶지 않았기에 정중하게 전화를 끊고 나니 울컥- 울화가 치밀었다.
아니, 도대체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아낸거야?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만 내뱉고 있는데 다시 핸드폰이 진동했다. 안받아야지, 라고 불과 1초전에 생각해놓고 습관적으로
통화버튼을 누른 이 한심한 행동을 어쩌며 좋단 말인가.
- 민초하씨! 인터뷰 좀…
“안합니다.”
민초하 이 멍청아.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도시락 통을 옆구리에 낀 채 시나리오를 체크하며 씬 설계를 위해 펜을 꺼내들었다.
촬영팀 녀석들이 장비 체크를 위해 몇 번 왔다갔다하며 이것저것 물었지만 날 방해하면 안된다는 생각에서였는지 되도록 짧게
말을 하고 사라졌다.
이 상황에서 날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핸드폰이 다시한번 진동했다.
- Rrr. Rrr. Rrr.
안받을거야. 이짜샤. 인터뷰 안한다고, 귓구멍이 막혔냐?
- Rrr. Rrr. Rrr.
- Rrr. Rrr. Rrr.
- Rrr. Rrr. Rrr.
- Rrr. Rrr. Rrr.
…끈질긴 새끼, 지독한 놈!
전화를 받지 않자 그대로 끊어질 것 같던 진동은 잠깐의 텀을 가지고 계속 반복됐다. 시나리오를 뚫어버릴 듯 노려보다가 결국
손에 쥔 펜을 집어던지다시피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래, 좋아! 나랑 한 판 뜨자 이거지? 원하는 대로 해줄게. 좋아, 좋다고! 나도 이미지 말아먹고 너도 기분 한번 잡쳐봐 새꺄!
“안한다고 했잖아! 인터뷰 안하겠다는데 왜자꾸 전화해? 너 미친놈이야? 내 스토커야? 이 또라이 자식아! 안한다고! 그만 좀 해!
나 지금 돈 벌어야 해서 일하거든? 얘기가 듣고 싶으면 독고산하 소속사로 꺼지든가! 왜 나한테 자꾸 지…”
- 여전하네, 민초하.
가볍게 귓가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목소리에 순간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 시간 좀 내봐. 우리 할 얘기가 많잖아?
닿기만해도 베일 것처럼 날카로운 칼날을 내 심장에 겨눈 채, 곽하주가 돌아왔다.
***
웰컴투코리아.
야호♬ 올림.
(+ 너무너무 늦어졌죠? 정말 미안해요. 인터넷이 미쳤나 봐요ㅜ.,ㅜ. 자꾸 에러 걸리고 강제종료 되네요. 암쏘리!)
(+ 이미지 작품은 친정 식구 ‘디아이’님께서 주신 가상이미지에서 살짝! 인소닷 가상 게시판에서 온전히 만나보실 수 있어요^^)
첫댓글 하앗... 드디어 곽하주의 등장인건가요... 허얼.. 우리 초하 조심해야되는데.. 하주 무셔무셔>,<
곽하주의 등장....산하가 뿅~~~하고 나타나서 우리의 초하를 지켜주세요.^^
아아아아아아아아 곽하주저얄미운년ㅠㅠ잉 산하랑 별탈없어야할텐데ㅠㅠ
허얼... -_- 진짜 곽하주 밉상이야.
드디어 일이 터지는구나 .... 산하도 잘 못만나는 상황에서 곽하주가 입 잘못놀리면 큰일인데 ㅜ
와우! 기다린 만큼 재미있네옇ㅎㅎ 다음편이 너무 기대대요!
무슨일이 일어나는건가요???ㅜㅜ
왕 기다렷어요 하주가 나와서 더 재밋어질꺼같은데ㅋㅋ
아 오는 길에 죽어버리지 왜!!!!!!!!!!!!!!!!!!!!!!!!!!!!!!!!!!!!!!!!!!ㅠㅠㅠㅠ 작가님 넘 오랜만이에요♥
역시.. 님♡ 님 기다리느라 제 목, 기린으로 변했어요
★
곽주하 너 곽주하너내가너내가너 테러시킨다
헐................ 곽하주..............
죽어버려 곽하주. ㅋㅋㅋ
오오오 드뎌 곽하주 등장 ? ㅋㅋ
* 어이쿠야...................................곽하주야! 이제 퐈힛이다.응???ㅋㅋㅋㅋㅋ
아정말곽해주싫다
해주ㄲㅈ
ㅋㅋㅋ하주.ㅋㅋㅋㅋㅋ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