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맛푸딩#───※※ 킬러에게 중독되다. ※※ 1. 그들 이야기.
“이번 상대야.”
“윽, 역겨워. 난 이런 새끼 패스! 니가 맡아.”
기름이 줄줄 흐르는 한 중년 사내의 사진을 탁자위에 올려놓는 현인과 사진을 번갈아 보곤,
은혁은 헛구역질을 하며 쇼파에 편하게 앉아 사진을 발로 쳐버린다.
“내일 오후 7시 GP호텔 3층.”
“내 말은 듣지도 않는군.”
쇼파에 등을 기대고 두 팔을 등받이에 편하게 올리며 말하는 은혁의 행동에선
짜증스러움 보단 즐거움이 묻어 나온다.
“넌 언제나 즐기는 구나?”
진지하게 물어오는 현인의 물음에 은혁은 피식 웃고는 어깨를 두드리며 방으로 향한다.
“killer. 이게 나니까.”
짧게 말하곤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은혁을 보곤 남겨진 현인은 씁쓸하게 웃으며
컴퓨터 앞에 앉는다.
[X]라는 문서를 더블 클릭하자, 나라에서 꽤한다는 유명인사들의 모든 정보가 뜬다.
“이 사람도 끝이군.”
차가운 현인의 말과 함께 [임혁주]라는 사람의 데이터는 삭제되었다.
탕―!
한 번의 총성과 함께 쓰러지는 사진 속 중년의 남자.
총의 위치는 알지 못해 헤매는 사람들 속에서 은혁은 유유히 걸어 나오며,
휴대폰으로 현인에게 전화를 건다.
“끝.”
짧은 한마디와 함께 전화를 끊어버리는 은혁의 행동에,
원래 그렇다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휴대폰의 플립을 닫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신번호제한]이 뜨는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처리는?]
“깨끗하게 끝났습니다.”
[역시. 돈은 곧 넣도록 하겠네.]
“네. 그럼.”
역시나 짧은 통화.
현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쇼파에 눕는다.
.
.
.
탕―! 탕―!
두 번의 총성.
“아버지!!!!”
떨리는 손으로 아버지의 몸을 흔들자, 내 손에 묻어나는 건 붉은 색의 뜨거운 액체.
힘들게 숨을 내쉬다 내 머릴 한 번 쓰다듬으시고는 힘없이 손을 떨어뜨려 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버렸다.
그저 미웠다. 날 따뜻하게 안아주던 아버질 죽인 자가 미웠다.
그리고 나 자신 조차도 용서할 수없었다.
왜 진작 잡지 못했을까....... 왜 빨리 그 자를 의심하지 못했을까........
집에 들어오는 길에 잠깐 스친 그 자의 얼굴을 다시 한 번 내 뇌리에 깊이 박아두는 일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웃의 신고로 조금 후, 경찰들이 집으로 왔고,
유일한 목격자인 나에게 경찰들은 여러 가지 질문들을 해왔다. 너무나 식상한 질문들.
“생김새는?”
“.....”
“나이는?”
“.....”
“어떤 옷을 입었었는지도 몰라??”
“.......”
경찰들은 귀찮아 보였다.
모처럼의 휴일을 뺏겨서 아주 재미없단 표정으로
아버지 시신의 가슴에 박힌 총알을 꺼내는 모습이 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버진 [가정불화로 인한 자살]이라는 신문 기사 속 주인공이 되셨다.
다시 며칠 후 [잇따른 불행인가..]라는 신문 기사 속 주인공이 되신 어머니.
난 혼자 남겨졌다.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뭘 어떡하면 좋을지 마땅히 떠오르는 것도 없이
그저 신문 두 장을 내 앞에 펼쳐놓고 생각했다.
많은 친척들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냥 집안을 휘젓고 다녔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어차피 속물들. 섞이고 싶지 않았다.
“킬러??”
눈을 감고 잠든 척을 하고 있던 내 귀에 박힌 단어. 킬러.
“응. 오빠가 이번에 SR물산을 사들이면서, 그 쪽에 있던 간부들 몇 명을 내보낸 모양이야.”
“그럼....”
내가 혹시라도 깨있을까 조심하는 듯 보이는 그 들이였지만,
어차피 목소리는 걱정보단 들떠있었다.
“다시 SR물산을 매수한 [진성욱]. 그야.”
[진성욱]. 아버지를 죽인 자의 이름을 듣자 난 분노로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난 입술을 꽈악 깨물고 참았다. 내 손으로 그 자를 죽이기 위해서.....
“진성욱이라....... 그 사람이 설마.......”
“이건 정확해. 흠흠....... 우리 둘이니까 하는 말인데........ 내가 진성욱 회장한테 직접 캐낸거야.”
“직접 캐내다니. 킬러까지 고용한 자가 그렇게 허술하게?”
“훗, 몸뚱이만 있다면야.”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래도 그 전까진 고모였던 사람.
“설마, 너 자기 친오빠를 죽인사람한테.......”
“이제 오빠는 없어. 그러니 돈도 없지. 난 돈이 필요하고,
내가 필요한 걸 안겨줄 수 있는 사람에게 갔을 뿐.”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하는 더러운 인간.
내 입안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맴돌았다.
“어머, 나 이제 가봐야겠다. 이제 이 집도 안녕이군.”
그렇게 말하고 그 여자는 집을 나서는 듯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얼마 후 집은 조용해졌고, 내 눈에선 눈물이란 것이 흘러내렸다.
아버지, 어머니를 내 곁에서 사라지게 만든 사람,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란 다짐을 하며,
난 집을 나섰다.
내 18살, 겨울은 더 없이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
.
.
시내를 조금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온 은혁은 쇼파에서 잠들어 있는
현인이 식은땀을 흘리는 것을 보곤, 그 옆에 조용히 앉았다.
현인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는 은혁.
세상에게서 마음을 돌려버린 현인이 유일하게 마음을 연 상대가 은혁인 만큼,
은혁도 현인이 매우 걱정되었다.
은혁에게 감정이란 것은 사치이다. 짜증스럽고, 불쾌한 것.
하지만 현인이 은혁에게 만큼은 마음을 열었듯이, 은혁 역시 현인에게만큼은 걱정이라던가,
힘들다던가, 즐겁다던가...하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이란 건....
.
.
.
“감정 따윈 필요 없단다.”
18살. 다른 아이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킬러가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다.
내가 왜 여기에 오게 됐는지, 왜 여기서 이런 이상한 것들만을 배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난 킬러가 되어야만 한다.
그게 아버지가 바라는 것이고, 또 아버지께 버림받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네.”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감정을 가진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알겠니? 은혁아.”
“네. 아버지.”
은혁이라는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 사람. 나의 아버지.
“음.....니가 내 곁으로 온 지도 벌써 13년이구나. 아들아.”
난 5살 때, 지금의 아버지께로 입양되었다.
날 버린 사람들이 누군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저 난 지금의 아버지께 매우 사랑받으며, 자랐다.
아버진 킬러들을 키우는 어떤 조직의 보스로 계신다.
아버지가 키운 킬러들은 이 쪽 세계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고,
실수 또한 없었다.
처음 내가 피를 경험한 건 1년 전, 수환 형을 따라나섰을 때였다.
수환 형은 아무렇지 않게 중년의 사내와 젊은 여자를 죽였다.
그리곤 내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었지만, 어쩐지 그 미소엔 시린 외로움이 묻어났다.
난 그런 형을 모른 척 그냥 같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때 수환 형은 ‘넌 이런 일 무섭지도 않냐??’ 라고 내게 물었다.
난 ‘killer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수환 형은 ‘그렇군. 우린 killer군.’ 라고 말하며,
내 앞에서 자신의 머리를 겨냥해 쐈다.
놀랐지만, 크게 슬프거나 당황하진 않았다. 그렇게 교육받았으니까.....
‘후.......내가 죽인 여자 말야. 우리 누나야........ 제길........ 그렇게 교육받았는데도,
난 킬러가 될 수 없는 인간인가 보다......... 이렇게 가슴이 아프니 말이다.....’
끊어질 듯한 숨으로 수환 형은 한 번도 보이지 않던 눈물을 보이며, 그렇게 가버렸다.
수환 형이 아마 아버지가 키운 킬러들 중 유일한 실패자였던 것 같다.
“.......”
갑자기 수환 형이 생각나, 씁쓸하게 미소 짓는 날 보시던 아버진 말없이 내 머릴 쓰다듬으셨다.
다정한 느낌에 눈을 들어 아버질 쳐다보자 아버진 나의 눈가를 만지시며 말씀하신다.
“난 너의 눈을 좋아한단다. 은혁아.”
아버진 나의 눈을 좋아하신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진 나의 눈을 좋아하신다.
난 어쩐지 지독히도 싫은 나의 눈을.........
“너의 눈엔 뭐랄까........ 그래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다.’라는 말이 나을 듯 하구나.”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다. 아, 그래서 난 내 눈이 싫었던 거다.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아서, 그래서 난 내 눈이 싫었던 거다.
“그런가요........”
그리고 난 그 날 현인이라는 내 또래의 아이를 만났다.
까만 눈 속에 분노가 가득한 아이를..........
.
.
.
“왔으면 깨우지 웬 청승이냐.”
현인은 가만히 현인의 머리를 큰 손으로 쓰다듬어 주고 있던 은혁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그냥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빌어먹을 두통 때문에 잠시 누웠던 게....”
“또 그 꿈이냐?”
“응. 제길........ 언제쯤 그 새낄 죽일 수 있는 거지?”
“그 새낄 죽이고 나면, 이 일 그만 둘꺼냐?”
은혁의 물음에 현인은 까만 눈동자로 은혁을 쳐다봤다.
“그래. 난 이 일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흠....... 그럼 난 파트너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건가?”
현인에게 만큼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은혁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드러냈다.
그런 은혁은 보며 현인은 피식하고 웃는다.
“왜 웃냐??”
“너도 참 많이 변했다.”
“뭐가??”
“너 나랑 처음 만났을 때, 이렇게 쫙 째진 눈을 하고선, 내 옆에서 오면 죽일 줄 알아.
이런 식으로 쳐다봤잖아.”
“그랬나??”
자신의 과거를 얘기하는 것이 좀 우스운 지 은혁은 살짝 미소 지었다.
“어찌나 무서웠던지, 근데 언제부터 우리가 파트너가 됐지?”
“음........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미소를 짓고 있던 은혁에게서 표정이 사라진다.
“그래....... 쿠데타....였지?”
“응.”
“어째서 쿠데타가 일어났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보스.........좋은 분이셨는데...”
“응.”
은혁은 이상하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슬프지 않았다.
그래서 울지도 않았다.
“너 그때 정말 무서웠었던 거 알아?”
“...?”
“보스 돌아가셨을 때, 무표정으로 내게 와선 ‘같이 나가자.’라고 했을 때 말야.”
“아...”
“왜 하필이면 나한테 같이 나가자고 했냐??”
“글쎄....... 그냥........ 그 자리에 니가 있었고, 그래서 니가 내 눈에 띄였고.”
“간단하네??”
“그러는 넌 왜 따라왔냐??”
“너랑 같은 이유.”
현인의 말과 함께 기분 좋게 웃는 은혁과 현인, 그 둘은 알고 있다.
은혁이 왜 현인에게 ‘같이 나가자.’라는 말을 했는지, 현인은 왜 말 없이 은혁을 따라 나섰는지.
둘에게서 느껴지는 지독한 외로움.
서로 너무도 잘 아는 외로움에 이끌려 그렇게 말하고 행동했다는 것을
둘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둘 다 말하지 않는다. 그 지독한 외로움이 얼마나 위험한 줄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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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체리맛푸딩
*메일: skyangel378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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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 로맨스소설
[ 시작 ]
※※ 킬러에게 중독되다. ※※ 1. 그들 이야기.
체리맛푸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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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26 01:0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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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밌네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