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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라
참고말씀: 시119:11; 행8:29,39; 10:19,20; 13:2; 18:3; 20:24,34,35; 고전15:8; 갈1:7; 히10:38
읽을말씀: 고전9:1~27
주제말씀: 고전9:24,25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첫째, 권리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1-18절)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전9:18)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는 어떤 이들이 있었습니까? 바울의 사도권을 의심하거나 부정한 이들입니다.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3절) 그들에게 바울은 본문을 통해 무엇을 했습니까? 자신의 사도권 변호입니다.
참고로, 바울은 어떻게 사도가 되었습니까?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뵈옵고 그 예수님께 사도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1절 상)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15:8)
그러면서 그 사역의 열매가 누구라고 했습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비롯해서, 그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이들입니다.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1,2절)
그러므로 자신에게도 당연히 어떤 권리가 있음을 밝혔습니까? 먹고 마실 권리, 즉 교회의 녹을 받을 권리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4절) /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11,12절)
왜 이렇게까지 말한 것입니까? 바울이 자비량 선교를 통해 복음 사역을 한 것을 ‘그의 사도권 없음’으로 왜곡시켜서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6절) /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행20:34,35) /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행18:3)
이에 바울은 어떤 것들을 비유로 들면서 계속 설명해나갔습니까? 군인, 농부, 목자, 소 등입니다. 즉 군인이 나라의 녹을 받으면서 복무를 하고, 농부가 그 심은 열매를 먹고, 목자가 그 기르는 양 떼의 젖을 먹으며, 곡식을 밟아 떠는 소가 곡식을 먹는 것이 당연하듯이, 사도인 자신에게 당연한 권리가 있음을 계속 설명했습니다.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7-10절)
그러나 바울은 왜 이와 같은 권리를 사용하지 않다고 했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기 위함이요,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12절 하) 자신의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않게 하려함이며,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15절) 이 같이 하는 것이 결국 하늘에 상급을 쌓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18절)
그 뿐만 아니라 바울은 무엇이 있기에 당연한 권리조차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까? 자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 곧 주 예수께 받은 사명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16,17절) 심지어 무엇조차도 전혀 아깝지 않다고 했습니까? 자신의 생명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사명 감당하는 것이 곧 하늘에 상급을 쌓는 길임을 깨닫고, 오늘도 묵묵히 사명을 감당하되 우리의 당연한 권리일지라도 기꺼이 내려놓고 또 포기하고 있습니까?
둘째, 상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되 분명한 방향과 절제가 필요합니다(19-27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4,25)
바울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무엇도 기꺼이 감수했습니까?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는 일과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19절) 또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는 일입니다.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22절 하)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입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와 같이,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어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를 힘썼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20-22절)
물론 이는 결코 무엇이 아닙니까? 세상과 타협하거나 거기에 동화되는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복음의 본질은 절대로 타협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1:7) /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몰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0:38)
그렇다면 이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복음 전하는 자가 취해야 할 유연한 자세입니다. 즉 복음의 본질은 타협할 수는 없지만, 그 방법적인 면에서는 얼마든지 유연하고 탄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왜 이렇게까지 한 것입니까? 복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함입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23절) 사실 복음운동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바울이나 우리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님이십니다. 즉 성령님이 주도적으로 행하시되, 복음 전도자들 안에서 그들을 통해서, 그들과 함께 행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행8:29) / “둘이 물에서 올라올 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행8:39 상) /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행10:19,20) /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13:2)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각각의 상황에 맞게 유연한 자세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바울은 성도들에게 어떤 자세로 사명을 감당하라고 권면했습니까?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는 자세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24절) 어째서입니까? 이왕에 하는 신앙생활이나 사명 감당! 하나님께 상을 받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합니까? 먼저, ‘분명한 방향’입니다. 왜냐하면 분명한 방향이 없다면, 전력질주를 해봤자 헛수고요 열심히 펀치를 날려봤자 헛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26절)
또한 ‘자기 절제’입니다. 왜냐하면 절제하지 않으면 우승은커녕 실격패당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25절 상) 특별히 우리는 무엇으로써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까? 주의 말씀과 교훈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27절) /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바울처럼, 우리도 상을 받도록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고 있습니까? 또한 주께서 보여주신 분명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며, 주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킴으로써 달려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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