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9일 (녹)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조재형 신부
복음; 루카13,18-21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그때에 1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19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20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21 그것은 누룩과 같다. 어떤 여자가 그것을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올랐다.”
중남부 사제 모임을 다녀왔습니다. 칸쿤에서 있었습니다. 9개 주의 사제들이 모였습니다. 숙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다가, 마지막 날에는 근처 성당을 찾아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서울 교구 5명, 마산 교구 2명, 청주 교구 2명, 부산 교구 2명, 인천 교구 2명, 전주 교구 1명, 수도회 1명, 이렇게 15명이 모였습니다. 저는 회의 중에 신심 단체의 담당 사제를 정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꾸르실료, 성령기도회, 레지오, 엠이의 담당 사제를 정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미 꾸르실료의 담당 사제를 맡고 있었고, 신부님 한 분이 성령 기도회 담당 사제를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엠이와 레지오 담당 사제는 추후에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담당 사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동북부에 있을 때는 담당 사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3년 동안 엠이 당당 사제를 맡았습니다. 엠이 봉사자들과 주말을 함께 했고, 코로나 시기에도 피정을 했습니다.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이제 중남부에도 성령기도회 담당 사제가 정해졌으니, 내년에 성령 대회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엠이와 레지오도 담당 사제가 정해지면 더욱 활성화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사제들이 겨자씨가 되어야 합니다. 사제는 말씀의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제는 복음의 줄기를 뻗어야 합니다. 사제는 미사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공동체는 말씀과 복음 그리고 미사를 통해서 성장하고, 열매 맺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는 말씀의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는 복음의 줄기를 뻗어야 합니다. 부부는 기도의 꽃을 피워야 합니다. 자녀들은 말씀과 복음 그리고 기도를 통해서 열매 맺습니다. 사제가 권위만 내세우려 한다면, 한국에서 했던 방식으로만 사목하려고 한다면 공동체는 갈등과 상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부부가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고, 복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다면 가정에도 갈등과 상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번 사제 모임을 통해서 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니, 중남부 한인 공동체가 큰 나무가 되어서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의 공동체가 되리라 믿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부부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훈아의 ‘사랑’이라는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나훈아의‘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랑아/ 비 내리는 여름날에/ 내 가슴은 우산이 되고/ 눈 내리는 겨울날엔/ 내 가슴은 불이 되리라/ 온 세상을 다 준대도/ 바꿀 수 없는 내 여인아/ 잠시라도 떨어져서는/ 못 살 것 같은 내 사랑아/ 행여 당신 외로울 때/ 내가 당신 친구가 되고/ 행여 당신 우울할 때/ 내가 당신 웃음 주리라” 참 아름다운 가사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전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교회가 그리스도를 섬기듯이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남편과 아내는 같은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안에 감추어졌던 놀라운 가능성을 보았고, 제자들에게 믿음과 사랑을 주셨습니다. 비록 시작은 12명이었지만, 지금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수많은 결실을 보고 있습니다. 박해와 시련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조건을 보시고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그런데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을 배반했음에도, 다시 악의 유혹에 빠져서 죄를 지었음에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런데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때, 비록 현실은 작고 초라할지라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큰 결실을 볼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도 저마다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아내도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주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성당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