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제대로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부모·시인·웅변가·사제·교사·심리학자와 충실한 친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랑으로 하느님과 서로를 섬기고 또 자신을 섬기도록 창조되고 부름을 받았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이러한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고 기르고 돌보아 주는 부모가 있다. 그리고 우리의 안녕과 안전, 자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부와 든든한 사회도 있다. 우리가 소개받는 교회 공동체는 사랑하고 사랑받는 형제자매이자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씀과 표양으로 우리에게 가르치는 곳이다. 우리가 발을 들여놓는 교육계는 우리에게 가능한 한 가장 훌륭한 인간이 되는 방법을 가르치고 우리의 잠재 능력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격려하는 곳이다. 우리는 우리의 특수한 재능을 어떻게 계발하여 다른 사람들을 섬기면서 우리 자신의 깊고 깊은 소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를 배운다. 우리는 직업 세계에 뛰어들어 우리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사회에 봉사하며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으로 적어도 검소한 안락과 안정을 누리도록 가르침과 격려를 받는다. 우리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은 사회적·공적 관심사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능력을 키워주고 욕구를 채워주며 이치에 맞는 야망을 지지해 주는 배우자와 결혼한다. 그러고 나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온전하고 만족스러운 일생이 끝나면 ‘태초부터 우리를 위해 마련된 하늘나라’에 들어가도록 부름받는다.
그대는 이 글을 읽고 어떤 기분이 드는가? 야유인가, 회의인가, 불신인가, 회한인가, 흥미로움인가, 아니면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소망인가? 우리는 사랑하도록 창조되었으며 다른 모든 것도 이 사랑이 가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창조되었다. 인간의 소명을 이상적으로 묘사한 이 글은 사랑이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비현실적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대가 보기에 우리에게 기대할 권리가 있는 사랑과 그 사랑에 당연히 수반되어야 할 정성 어린 봉사에 어울리지 않아 빼버리고 싶은 대목이 하나라도 있는가?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위해 노력하고 거기에 손을 뻗치며, 심지어 당연한 것으로 기대할 권리가 있다. 그대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그래, 이런 일들은 믿음이 가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도 똑같은 사랑과 봉사로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네 세상에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함과 불완전한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뉴햄프셔 출신의 농부 아버지를 둔 친구가 있었다. ‘행운을 찾아’ 농장을 떠날 때 그의 아버지는 작별하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아들아, 만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네 한계에 이르러 그것을(마땅히 누려할 권리)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불완전한 세계에 살고 있다.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거나 빵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주는 경우를 자주 본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가 어리거나 많거나 우리에게는 ‘행복을 추구하고’ 미래를 구축할 권리가 있다. 물론 이런 권리가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계에 이르러 도움의 손길에 힘입어 그 권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그대가 어렸을 때 위로보다는 학대를, 따뜻하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거부를, 사랑보다는 미움이나 무관심을, 격려와 존중보다는 수모를 받았다 해도 상관없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대는 이토록 흔들리는 가운데 성년기에 들어섰다. 차갑고 엄격하고 무섭고 위협적이고 지지해 주지 않는 세상에서, 작으나마 그대가 기꺼이 내놓거나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거나 합당한 보상도 해주지 않고 그냥 가져가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대는 바꿀 수 있다. 그대 자신을 바꾸고 그대가 살고 있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대에게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대는 한계에 이르러 그 손길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하느님의 은총과 진실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애정 어린 사람들이 그대에게 베풀고자 하는 도움을 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을 얻기 위해 그대는 손을 뻗어야 한다. 이때 그대를 도와줄 손 역시 그대 자신의 손이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루시는 방식이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만이 줄 수 있는 응답을 알거나 기대할 수 있는 정도만큼 우리에게 도움을 베풀 따름이다.
그대는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갖기를 바라는가? 그대는 사랑과 포용, 친구와 지지자, 성장과 성숙, 안정과 충만을 바라는가? 그렇다면 이런 바람을 확인하고 적어보라. 이것이 가능한 목표임을 알고 추구하라. 이 방향으로 첫발을 내딛기만 하면 그대는 무기력한 패배자들의 무리에서 빠져나와 도전과 가능성과 희망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대만이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용서와 거기에 따른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참조 문헌:용서의 과정 윌리엄A. 메닝거 지음 –바오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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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